해풍 젖은 솔향기에 취해
- 충청남도 태안군 -
혹자는 왠지 모를 먹먹함이 찾아들면 낙조의 비경과 솔향기가 그윽한 충남 태안의 안면도로 떠나보라 했습니다. 또, 시인 김지헌은 ‘누구든 태안반도에 들어서면 안온하고 평안해진다’고 했습니다. 이는 태안의 본래이름인 국태민안(國泰民安)의 뜻풀이와도 일맥상통합니다. 해안선이 아름다운 이곳에는 바다를 허리춤에 끼고 소나무 사이를 헤집고 가는 솔향기길이 있습니다. 걷는 내내 해풍에 젖은 솔향기를 맡고 있으면 마음의 평화도 되찾을까요? ‘가슴 깊이 먹먹함이 느껴진다면 홀연 안면도로 떠나라! 바로 <트래블아이>의 미션입니다.
태안반도 북쪽 끄트머리 이원면 해안가에 조성된 솔향기길은 모두 4코스. 이중 으뜸으로 친다는 코스가 있는데, 출발점은 바다로 툭 터진 방향을 찾아가야 한다고.
“저기, 아주머니. 여기서 내려가면 꾸지나무해수욕장까지 갈 수 있나요?” “아주 제대로 왔구먼. 여기가 바로 만대여. 쉬엄쉬엄 걸어가면 여섬까지 4시간쯤 걸릴겨.”
“와~ 그렇게 오래 걸어야 해요?” “만대가 괜히 ‘만대’겄어? ‘가다가다 그만 가고 만대’라고 만대라잖여!”
서해를 바짝 끼고 솔숲 사이로 끝없이 이어진 길. 눈길 주는 곳마다 솔향기만큼이나 사람냄새 또한 짙게 풍기는 건 뭐 때문일까?
“태안기름유출 때 자원봉사자들이 당봉과 큰봉, 후망산, 산재산으로 이어지는 위태로운 산길을 오르내리는 모습에 한 이원면 주민이 이 길을 닦아서 지금 이 길도 탄생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나. "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삽과 곡괭이를 들고 이 길을 닦았을 거야. 이 길을 개척해 살아온 사람들의 삶의 과정은 또 어떻고. 온몸에 상처를 달고 살았을 테지.”
만대항을 지나 솔나무숲길로 접어들면 초입은 깎아지른 듯한 바윗길이지만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부담 없는 높이의 산길은 얼마 못 가 진풍경을 드러낼 테니.
“산자락 유순한 언저리를 돌아가는 숲길은 굽이굽이 선이 곱구나. 중간중간 바다로 터진 곳에 이런 비경이 숨어 있다니."
"자연훼손이 적은 만큼 숲은 원시자연의 냄새로 가득해. 솔향기는 은은하고 흙냄새는 구수하고…. 천연송림으로 융단을 깐 숲길 어디든 발길이 닿는 곳마다 마음의 안식처가 되는구나.”
서해를 바짝 끼고 솔숲 사이로 끝없이 이어진 길. 행여 심심하지 않을까 생각하면 오산이다. 곳곳에서 불쑥불쑥 나타나는 재미난 아이템이 줄줄이 이어진다. 과연 뭘까?
“‘삼형제바위’가 바로 이 녀석인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삼형제가 어느 날 어머니가 뻘일을 나가 돌아오지 않자 나란히 앉아 어머니를 부르다 앉은 채로 죽어 바위가 됐다는 전설이 전해진다는. "
"한 스님이 나무열매를 따다가 떨어졌다는 ‘중떨어진 앙뗑이’ 절벽은 사연이야 어쨌든 해학적인 이름에 웃음이 안 날 수가 없겠어.”
당봉(만대) 전망대부터 해안을 따라 두 나무가 서로 얼싸안은 부부소나무 등 줄줄이 이어진 사연들에 흥미도 더해가지만 난관도 따른다. 하지만 그때마다 해결책은 늘 있다고.
“오르막과 해변으로 내려서 길이 가팔라지니 장딴지가 뻑뻑해 악소리가 절로 나오네. 그래서 악너머고개인가. "
"바위틈에서 솟는 약수 맛을 일단 보고 가자. 숨이 차오르는 지점마다 쉼터가 있고 통나무로 의자도 만들어 놓았구나. 의자 몸통에는 유명시인의 시가 적혀 있으니. 잠시 사색에 빠져 시름을 놓아볼까?”
"숲길은 내내 소나무로 울창하다. 한여름 땡볕에도 그늘을 만든다. 하지만 곳곳에 한국전쟁 당시의 흔적 등 낯선 풍경도 눈에 띈다. "
“한국전쟁 당시 파놓은 참호와 녹슨 철조망도 눈에 띄는구나. 아직까지 덜 알려진 까닭이겠지."
"하지만 걸음을 옮길 때마다 늘 코를 찌르는 향긋한 솔향기와 청아한 솔바람 소리, 새소리, 파도소리가 있으니 마음 쓸 겨를이 없겠어. 바닥에 깔린 솔잎융단은 마음까지 더 푸르게 만들어주는 듯해.”
중간지점에 이르자 자그마한 여섬이 반긴다. 이원방조제 축조 후 제방 안의 이 섬은 육지로 단 하나 남게 됐다는데, 그 이름의 유례도 알고 나니 진지해진다.
“바위로 둘러싸인 저 섬 있지유? 들물에 유속이 빨라지면 바위를 때리면서 물보라를 일으키는 파도, 참 장관이여. 그래서 외지인도 오면 실컷들 보고 가더라고."
"이쪽으로 어족도 풍부해서 갯바위 낚시도 그만이여. 낚시하겠다고 찾아오는 강태공도 그래서 많고. 근데, 그 옛날 남을 여(餘)자를 붙여 ‘여(餘)섬’이라 부른 선인들의 예견이 제법 흥미롭지 않은가?”
해식동굴 용난굴을 거쳐 다시 숲길로 들어서 전망대에 오르면 종착점인 꾸지나무꼴해수욕장까지 금방이다. 이곳에 서면 억눌린 감정이 기지개를 켜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는데?
“멀리 이원방조제까지 먼 바다를 보고 있으니 가슴이 탁 트이는구나. 그런데 지금 들려오는 파도소리가 참으로 희한해. 와랑와랑~ 거린다고 한다고 해야 할까. 보아 하니 전망대 절벽 아래 수직굴로 치는 파도가 이런 독특한 소리를 내는가 보네.”
“소리 참 신기하제? 그래서 우리 주민들도 이 해안은 따로 부르는 이름이 있구먼.”
태안의 안면도 솔향기길에는 소나무와 엄나무, 두릅나무, 소사나무가 군락을 이뤄 산림욕에 좋다. 야생화가 꽃을 피우고 새순이 돋으면 꽃향기와 솔향기에 취해 마냥 해변을 등대 삼아 걷게 됩니다. 기세를 죽인 해가 바다로 빨려들 때쯤이면 바위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 한 그루가 어느새 해를 이고 있습니다. 그렇게 발품으로 고단한 하루의 노고가 해풍에 쓸려 노을에 잠깁니다. 언제부턴가 마음이 먹먹하고 답답해와 당장 가슴 탁 트일 만한 곳으로 훌쩍 떠나고 싶었다면, 솔향기 가득한 안면도로 지금 달려가 보는 건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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