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의 소설<동백꽃>이 지닌 색감을 알고 있는가? 우리가 흔히 아는 그 붉고 매혹적인 꽃이 정작 이 소설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김유정의 동백꽃은 노란 꽃잎과 알싸한 향을 지녔다. 그의 세계에서는 실제로 노란 동백이 피었던 것인지, 그가 동백이 아닌 것을 두고 동백이라 한 것인지 적잖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 수수께끼는 김유정의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어느 마을길을 따라 걸으면 답을 알려주겠다고 속삭인다. 그렇게 <트래블투데이>는 강원도 춘천으로 갔다.
노란 ‘동백꽃’의 수수께끼
강원도에서는 산수유 꽃처럼 생긴 이 노란 생강나무 꽃을 '동백'이라고 부른다.
순진한 시골 남녀의 사랑을 그려낸 소설 <동백꽃>에서 노랗고 알싸한 꽃은 종결부에서 남녀의 사랑을 잇는 중요한 매개다. 정작 우리는 이 소설에서 괴롭힘 당하는 닭과 삶은 감자, ‘점순이’라는 이름의 독특한 여주인공을 주로 기억하곤 하지만 말이다. 김유정이 태어난 강원도 지방에서는 노란 생강나무 꽃을 동백 혹은 산동백이라 불렀다. 강원도 아리랑에 나오는 ‘동박’도 같은 의미다. 생강나무 꽃은 흡사 산수유 꽃과 착각하기 쉽지만, 주로 산과 계곡에서 자라므로 인가가 많은 곳에서 자라는 산수유와는 구별된다. 꽃 가까이 코를 대거나, 나무껍질을 벗기면 알싸하게 퍼지는 향도 그 특징 중 하나다. 소설가 김유정이 나고 자란 춘천 실레마을에는 지금도 생강나무가 노란 동백꽃을 피우며 소설<동백꽃>의 막바지에 ‘점순이’가 ‘나’를 쓰러뜨리던 순간의 아찔함을 재현한다.
짧지만 강렬했던 삶, 소설가 김유정의 고향
김유정의 소설의 주무대가 된 그의 고향 춘천 실레마을
강원도 춘천 실레마을 출신 소설가 김유정이 태어난 것은 1908년 2월.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하였음에도 지금의 연세대학교인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해 상경했지만, 결석으로 제적처분을 받는 바람에 고향으로 돌아와 ‘금병의숙’이라는 야학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다 스물다섯 되던 해인 1933년 다시 서울로 가 고향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 시작하면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등 명성을 얻었고 활발한 집필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그것은 겨우 4년밖에 이어지지 못했고 1937년 폐결핵으로 스물아홉의 나이에 김유정은 요절하고 만다. 본격적인 활동기간이 길지 않았음에도 그는 1930년대 한국 소설의 독특한 영역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고향인 실레마을의 모습을 바탕으로 당시의 현실적인 농촌의 현실과 비리를 해학, 풍자의 기법으로 소설 속에 효과적으로 녹여냈다.
여전히 이야기가 숨 쉬는 곳, 실레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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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 지붕과 흙길이 정다운 이 마을은 김유정의 소설의 무대 그 자체로 남아있다.2
경춘선이 정차하는 김유정역은 국내 최초로 인명을 따서 이름지었다.김유정의 작품은 속어와 비어를 사용한 해학적 문장으로 엉뚱한 전개와 반전이 존재하며, 주인공은 우직한 모습이 주를 이루는 이야기들이 대표적이다. <봄·봄>, <산골나그네>, <만무방>, 앞서 말한 <동백꽃>이 그것으로, 모두 그의 고향인 실레마을의 특정장소를 바탕으로 구상됐거나, 마을에 실존했던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래서인지 실레마을은 단지 작품에 나오는 배경이나 모티브로서의 공간을 넘어, 소설 속 이야기가 현실에서 살아 숨 쉬는 형태로 다가온다. 이 때문에 김유정의 작품을 읽은 사람들의 발길이 실레마을을 찾아 문학기행으로 이어지자, 실레마을 주변에 있는 경춘선 기차역의 이름을 다름 아닌 ‘김유정 역’으로 바꾸었고 실레마을 내에는 작가의 생가와 문학 기념관 등을 묶어 ‘김유정 문학촌’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현재 국내에서 인명을 딴 기차역명으로는 유일하다고 한다.
김유정을 따라 가는 길, ‘실레이야기길’
주변에 빼곡히 둘러싼 산 속에 있는 실레마을을 두고 김유정은 이렇게 적었다. 1987년 출간된 <김유정 전집>에 실린 그의 생전 글이다. 필시 드나들기 힘든 두메산골이었을 것이나, 그 조차도 ‘옴팍한 떡시루'라 다정히 불렀던 이들의 마음도 다정하게 느껴진다. 지금은 통째로 김유정의 고장이 된 이 마을에 들어서면 소설에 등장하는 곳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심심찮게 보인다. 예를 들면 ‘<봄·봄>의 무대, 점순 네 집 터’ 같은 식으로, 금방이라도 점순이가 닭을 안고 튀어 나올 듯하다.
실레마을 곳곳에는 소설의 주인공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실레마을에는 소설의 배경이 된 길을 따라 걷는 ‘실레이야기길’이 있다. 모두 열여섯 가닥으로 이뤄진 길은 ‘장인어른 입에서 할아버지 소리 나오던 데릴사위길(봄·봄)’, ‘점순이가 나를 꼬시던 동백숲 길’(동백꽃), ‘응오가 자기 논의 벼 훔치던 수아리길’(만무방) 등 이름만 들어도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게 과연 김유정의 마을이다 싶다. 실제로 김유정이 생전 드나들었다는 주막이 있던 ‘김유정이 코다리먹던 주막길’도 있다. 실레이야기길은 소재별로 나누어져 많은 듯 보이지만 길을 모두 걷는다고 해봤자 길어야 한 시간 반 정도. 어차피 실레마을을 찾았다면 응당 두루 둘러볼 일이기에, 마을 구석구석 문학작품과 엮어 재미를 더한 실레이야기길을 걷는 것보다 더 실감나게 김유정의 실레마을을 볼 수 있는 법도 없겠다. 김유정의 육성은 아니더라도 해설사와 동행하며 설명도 들을 수 있으니, 원한다면 방문 일주일 전까지 미리 신청하면 된다.
실레마을과 김유정, 그리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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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레마을은 매년 김유정 선생 추모제를 비롯, 김유정 문학제, 실레마을 이야기잔치 등 축제가 끊이지 않는 정다운 곳.2
생강나무 꽃뿐만 아니라, 사철 다양한 들꽃이 피는 실레마을이다.실레마을은 봄의 시작을 알리는 노란 동백(생강나무 꽃)을 선두로 제비꽃, 금낭화, 원추리, 들국화 등 계절별로 들꽃이 끊이지 않아서 들꽃축제를 연다고도 한다. 봄의 문턱인 지금은 실레마을의 상징과 같은 노란 동백과 제비꽃, 할미꽃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또 매년 3월 29일에는 ‘김유정 선생 추모제’가 기일에 맞춰 열리니 일정을 맞추면 더 뜻 깊은 나들이가 되겠다.
마지막으로 실레마을을 옴팍한 떡시루로 만든 산인 ‘금병산’도 빼놓을 수 없다. 실레이야기길을 따라 마을을 둘러본 후 왕복 세 시간이면 충분한 등산로를 따라 가벼운 산행을 해보자. 봄이면 생강나무 꽃이 덮여 화사하게 변하는 등산로는 ‘금따는 콩밭길’, ‘산골나그네길’, ‘동백꽃길’ 등 김유정의 작품명으로 이름 지어 문학기행의 여운을 이어갈 뿐 아니라, 금병산 정상에서 보는 춘천시 전경도 제법 괜찮다.
애향심이 작품 속에 그대로 남은 소설가 김유정, 그리고 오늘날 그 고향과 후손 역시도 그에게 깊은 존경과 애정으로 보답하고 있기에 실레마을에는 꽃이 핀다. 김유정의 유품을 정리한 이들이 모두 월북하는 바람에 흔한유품 하나 보유하지 못했지만, 실레마을은 주옥같은 소설 구절과 마을 귀퉁이에 유품보다 더 생생한 김유정의 숨결을 지니고 있다. 노란 동백꽃의 수수께끼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러 춘천 실레마을로 가보자. 누가 알 일인가, 닭을 쫓는 ‘점순이’를 혹은 주막에서 코다리를 뜯고 앉은 김유정을 만나게 될지.
행여 김유정의 작품을 모르고 가더라도 돌아와선 꼭 읽고싶어질 춘천 실레마을. 이미 그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들도 여행 후 다시 책을 펼치게 되지 않을까요?
글 트래블투데이 심성자 취재기자
발행2022년 04월 01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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