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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호 따라따라 퇴계 이황 만나러 갈까, 퇴계종택


‘강가에서 기다리나 임은 오지 않아, 내 먼저 고삐 잡고 그림 속으로 들어가네.’
퇴계 이황이 친구 이문량에게 안동 청량산에 대해 적어 준 시구의 일부분이다. 그는 관직에 나갔던 짧은 세월을 빼고는 고향인 안동을 거의 떠난 적이 없었다. 그가 태어나고 제자를 가르쳤던 도산면 일대는 퇴계의 가문인 진성 이씨의 집성촌이기도 했다. 그만큼 그의 자취를 돌아볼 수 있는 장소들이 많은 지역이다. 오늘의 트래블투데이, 퇴계 이황의 생애를 밟아가는 시간여행을 떠나봤다. 

                    
                

퇴계의 시간여행 1- 성인의 어린시절

퇴계태실은 그가 태어난 방이 있다고 해서 불리는 이름이지만 본디 유래를 따지자면 노송정 종택으로 불리는 게 좀 더 정확하다. 그 고택에 있는 방 하나에서 퇴계가 태어난 것이고 고택 자체는 퇴게의 할아버지였던 노송정 이계양이 지은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노송정 18대 종부 최정숙이 종택을 지키며 전통체험을 진행하고 있다. 이 노송정 대문에는 성림문이란 현판이 붙어 있다. 어머니인 춘천 박씨가 꿈에서 대문으로 들어오는 공자를 본 뒤 퇴계를 임신했다 해 성인이 임한 문이라는 뜻의 이름이 붙었다.

  • 툭 튀어나온 퇴계태실의 모습. 온돌이 정착되지 않았던 남부 한옥에서 온돌방을 새롭게 시공한 흔적이다

그렇다면 이 많은 방에서 어떤 방이 퇴계가 태어난 방일까? 답은 쉽다. 성림문을 지나 왼쪽에 있는 본채 안쪽에서 톡 튀어나온 방 하나가 바로 태실이다. 전해지는 말로는 노송정이 온돌을 증축한 뒤 퇴계의 아버지였던 이식과 어머니였던 춘천 박씨를 합방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6남 1녀 중 막내였던 이황이 태어나고 7개월 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이황은 할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숙부의 가르침을 받으며 자라게 된다.

 

퇴계의 시간여행 2- 소박하지만 단단하고 꼿꼿하게

  • 퇴계기념공원을 거닐어 보는 동안 퇴계의 일생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고택과 종택의 차이는 무엇일까? 똑같이 오래된 집이라도 종가의 문화를 충실하게 이어온 곳을 특별히 종택이라고 한다. 시간이 지나도 가문의 문화를 꿋꿋하게 가지고 오기란 쉽지 않다는 사실에서 퇴계 종택이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기꺼운 일일 것이다. 사실 이 집은 본디 퇴계 선생이 살던 시대로부터 쭉 보존되지는 못했다. 1907년, 일본군이 지른 불로 인해 집이 모두 불탔던 것을 사림들이 다 함께 비용을 추렴하고 13대손이었던 하정공 이충호가 그 전 모습을 추측해 1926년부터 새롭게 지은 것. 들어가면 사랑마당과 함께 널찍하고 푸근한 사랑채가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안쪽으로 조금만 더 보면 안채로 들어가는 문이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종손들이 살고 있는 관계로 안쪽까지 들여다 보는 것은 어렵다. 제사를 지낼 때만 열리는 사당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오른쪽에 위치한 추월한수정이란 별채를 볼 수 있는 것이 위안이 된다.

종택을 보고 나오면 자그마하게 퇴계기념공원이 조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2001년 퇴계 이황의 탄신 500주년을 맞이해 만들어진 곳. 퇴계가 지었던 글귀를 돌에 새기고 한자의 음, 뜻도 함께 배치해두어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도록 했다. 특히 비가 한차례 온 뒤 찾아가면 초록 풍경과 철쭉,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 등이 어우러져 자연과도 가까운 느낌이 든다.

 

퇴계의 시간여행 3-마지막까지 지킨 검소함

 
  • 무덤을 검소하게 남기라 한 유언을 지키기 위해 퇴계 묘소에는 번쩍거리는 석물이나 비석 등은 볼 수 없다. 

퇴계 이황의 묘소는 퇴계 종택에서 그리 멀지 않다. 2km 남짓하게 떨어져 있으니 차로 가면 5분 만에도 도착할 수 있지만 별다른 주차장이 없고 산길을 올라가야 하니 어둡기 전에 올라가는 것을 추천. 묘소로 올라가는 계단길을 쭉 걷다가 보면 자그만 봉분이 나온다. 여기서 첫 번째로 나오는 묘소가 이황 선생의 묘라고 생각한다면 큰 실수다. 실제 퇴계 이황의 묘소는 첫 번째 무덤보다 더 올라가야 있다. 조선의 성현으로 모셔진데 비해 묘소는 매우 간소한 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몇 개의 석물 빼고는 화려한 비석이나 커다랗게 위세를 부리는 장식물을 볼 수 없다. 마지막까지 검소할 것을 당부했던 선조의 유언을 받들어 지금도 진성이씨 문중에서는 이 무덤에 별다른 장식을 덧붙이지 않는단다.
 
그렇다면 올라오면서 보았던 다른 무덤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이황의 첫째 며느리의 묘다. 시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자기가 제대로 모시지를 못했으니 저승에서라도 모시고 싶다며 시아버지 무덤 발치에 묻어달라고 한 이야기가 얽혀있는 곳이다. 대체 얼마나 며느리를 잘 대했길래 죽어서도 시아버지를 존경하며 모시겠다고 했을까? 고추가 맵다해도 시집살이가 더 맵다는 민요도 있는 마당에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 모습이다. 그러나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고 자신의 몸은 낮추기로 유명했던 이황의 면모를 더욱 드높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신의 재주를 자랑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세태기에 퇴계 선생의 이야기가 더욱 인상 깊게 남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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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종갓집, 온계종택! 이곳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우리의 전통문화와  선비정신이 곳곳에 깃들어 있습니다. 퇴계 이황의 형인 온계 이해 선생이 살던 종택으로 온계 12대손이였던 이인화의 의병활동 당시 이곳을 의병소로 사용했다는 이유로 1896년 소실, 2005년 복원된 곳이기도 합니다. 아주 옛스러운 멋은 덜하지만 온계종택만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는 방문한 이에게 특별한 하룻밤을 선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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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투데이 박선영 취재기자

발행2021년 05월 06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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