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또 무릎이 다 까져서 왔습니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그랬는지 빨갛게 살갗이 찢어져서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들어옵니다. 흐르는 물에 상처를 씻어주고 바람을 호호 불어주었지요. 아이는 금세 울음을 그치고 다시 생기를 되찾습니다.
어릴 적 넘어져 무릎이 다치거나 상처가 나면 우리엄마도 반창고를 붙여주지 않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저 깨끗한 물에 씻고 소독을 하여 바람을 쐬어주는 것이 제일이라고 하셨지요. 여섯 살에 나는 우리 엄마가 계모인가 생각한 적이 있답니다. 나도 친구들처럼 예쁜 곰돌이 반창고를 붙이고 싶었는데 엄마는 상처가 덧난다며 단호하게 안 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소독약을 발라주고 따가울까 봐 호호 불어주는 모습을 보고 우리 엄마로 확신을 하긴 했지만요.
사실 상처가 난 곳에 물이 닿고 소독약이 닿으면 따갑기 때문에 반창고를 붙이는 것인데 엄마는 그것도 모르나 보다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물에 씻어 치료하는 것은 할머니 때부터 엄마까지 쭉 이어져 내려온 치료법으로 다 이유가 있다고 했지요.
옛날 신라와 백제가 전쟁 할 당시 싸움에서 크게 다친 아들의 약을 애타게 찾던 어머니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백설이 온 땅을 뒤덮은 곳에 날개를 다친 학 한 마리가 눈이 녹은 물웅덩이에 날개를 적셔 상처를 치료하고 있는 것을 보고 아들의 상처를 물에 담그게 하여 치료하였다는 전설이 있다고 말이지요. 엄마는 옛말 그른 것 하나 없다고 했지만 나는 그런 게 어디 있느냐고 들은 체 만 체하였답니다.
엄마는 할머니와 동네에 아주 오래된 온천에 자주 가셨습니다. 전설이야기도 여기에서 들은 이야기이지요. 동네에 으리으리하게 세워진 좋은 찜질방들도 많은데 엄마랑 할머니는 꼭 유성온천으로 가셨답니다. 특히 몸이 여기저기 쑤신다거나 마음에 근심이 쌓이면 어김없이 온천을 찾으셨지요. 한참을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다 먼저 나가겠다고 투정을 부리면 엄마는 온천을 하고 나면 몸이 개운해지는 것처럼 마음도 개운해진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마음에 근심이 물에 씻겨 내려간다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서 시험이 끝나는 날이면 친구들이랑 놀기보단 엄마랑 온천에 가는 일이 더 잦았습니다. 엄마는 꼭 수고했다고 온천에 가 그동안의 몸 고생, 마음고생을 다 씻겨 보내라고 하셨지요.
지금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보니 엄마가 더 그립습니다. 엄마와 마지막으로 온천에 갔던 날이 떠오릅니다. 엄마는 내 손을 꼭 잡으시고는 말씀하셨다.
"그저, 몸이나 마음이나 같은 법이다. 상처가 덧날까 꽁꽁 싸매고 있으면 그 속이 더 곪아 터지는 법이지."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셨지요.
어렸을 때 나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뜨거운 물에 몸을 숨이 턱턱 막히는데 왜 그렇게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지. 그런데 지금 이렇게 엄마를 그리워하며 내 딸아이의 손을 잡고 유성온천으로 향하고 있는 것을 보면 엄마의 말에 일리가 있나 보다 생각이듭니다. 내가 지금 이곳에서 엄마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내 딸아이도 나를 기억할까요? 문득 엄마가 보고 싶어지는 날입니다.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는 내게 너는 놀아달라며 짓궂게 내 품에 파고든다. 읽던 책은 마저 읽고 나가자고 해보아도 이내 무릎을 베고 눕더니 무슨 내용을 읽느냐며 귀찮게 군다. 취미로 플로리스트 과정을 배우고 있던 차라 책을 고를 때에도 이런 장르로만 손이 간다.
꽃말에 관한 책을 읽고 있던 중이다. 꽃말이라고 하면 10대의 여린 감수성에 내게 맞는 꽃말은 어떤 것일까 찾아본 것 이외에는 없었다.
“음~ 장미라고 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이 아마 빨간 장미가 아닐까 싶어! 빨간 장미는 사랑, 절정, 기쁨, 아름다움이고 하얀 장미는 순진, 존경, 순결이래. 노란 장미는 질투라네!”
“너는 질투가 많으니까 노란 장미가 딱 잘 어울리겠다.”
그러고 보니 너는 장미꽃 한번을 사준 적이 없다. 그 흔한 장미꽃 한 송이도.
“꽃꽂이 하면서 예쁜 꽃들도 많이 봤겠다. 그치? 그럼 넌 어떤 꽃이 제일 좋아?”
“글쎄. 꽃은 다 너무 예쁘고 각자가 가진 매력이 다 달라서. 근데 오늘은 장미!”
“오늘은 장미? 뭐가 그래. 그럼 내일은 또 다른 꽃으로 바뀐단 말이야?”
“그럴 수도 있지 뭘. 어차피 계절마다 피고 지는 꽃들도 다른데 사시사철 같은 꽃만 좋아하라는 법 있어? 오늘은 수요일이니까 빨간 장미!”알아들었을까? 이렇게까지 빨간 장미를 받고 싶다고 메시지를 보내는 데 못 알아 듣는다면 정말 미련 곰탱이라고 불러줄 것이다.
이야기가 금세 또 싫증이 났는지 내가 보고 있는 책을 뺏어가더니 나가자고 성화다. 나가면 어차피 밥, 커피, 영화. 영화, 밥, 커피의 반복일거면서 굳이 왜 나가서 시간을 보내야 하냐고 물으려다 그만 둔다.
“어디 갈 건데? 뭐 하고 싶은 거라도 있어? 그래서 이렇게 보채는 거야?”
“그냥. 네가 가면 좋아할 만한 곳이 생각이 나서.”
남자친구의 손에 이끌려 온 곳은 풍암호수 수변공원이었다. 그곳은 때마침 장미축제가 한창이었다. 공원 곳곳을 아름답게 수놓은 장미꽃들의 지릿한 향기에 금세 매료되었다. 그곳에는 연인, 가족, 친구 등 다양한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더 다양한 종류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장미를 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문득 심수봉의 백만 송이 장미가 떠올랐다.
“여기 있는 장미를 다 모으면 백만 송이가 될까?”
“백만 송이? 글쎄. 감이 안 잡히네. 그런데 아니지 않을까? 수백만 송이면 그게 다 얼마야?”
백만 송이 장미의 노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고 했다. 한 여자를 향한 구애의 도구로 전 재산을 털어 백만 송이 장미를 선물한 남자. 여자는 백만 송이 장미가 주는 아름다움만큼 황홀했을까?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포토존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생각에서 일까 포즈를 취해가며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확실히 꽃이 예쁜 곳에는 사람이 많았고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차례가 돌아왔다.
색색 깔의 장미로 둘러싸인 터널 같은 곳에서 브이자를 그렸다.
천천히 장미꽃을 둘러보는데 장미의 종류가 이렇게 많았나 싶기도 하고 장미처럼 생기지 않은 장미꽃도 많았다. 프린세스 오브 모나코, 코사이, 람피온과 같이 이름들도 모두 귀족적이었다.
“이름들이 하나같이 다 멋있네. 마치 공주님 이름 같아.”
“그럼 얘한테도 예쁜 이름 하나 지어줘봐.”하며 빨간 장미꽃 한 송이를 내밀었다.
“뭐야. 갑자기?”
“뭐긴, 네가 오늘은 빨간 장미가 좋다며. 그래서 준비한 거지. 얼른 이름이나 지어줘.”
“쳇, 둔감한 척 하더니만.”
그렇다면 이 장미의 이름은 빨간 장미를 위하여!
내 이름은 성춘향이다. 나이는 열 살이다. 나는 학교나 학원뿐만 아니라 어디를 가도 금세 주목받기 일쑤이다. 아마 이름 때문이겠지. 나는 한동안 누가 내 이름을 물어보는 것이 싫었다. 성춘향이라고 하면 무엇인지 나를 통해 춘향전의 춘향이를 떠올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아닌 소설속의 인물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은 데 말이다.
언젠가 할머니 댁에 친척들이 모두 모인 적이 있다. 나는 언니, 오빠들이 많이 신 나게 방방 뛰어다녔으나, 할머니께서는 춘향이가 단정하고 단아하지 못하고 그렇게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어다녀서야 되겠냐고 꾸짖으셨다. 난 춘향이라는 이름 때문에 늘 조심조심하여야 했고 상냥하게 웃어야 했다. 특히나 내가 남원사람이라서 더욱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가끔 잠자리에 들 때면 이런 생각을 한다. 정말 소설에 나오는 춘향이도 조신하고 얌전하며 단아했을까.
나는 일기 속에 춘향이를 만나보고 싶다고 적었다. 춘향이를 만나면 꼭 한번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잠자리에 들면서 되뇌었다. 지금의 춘향이가 과거의 춘향이를 만나는 상상을 말이다. 생각만 해도 키득키득 웃음이 새어나왔다.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들렸다. 춘향이의 꿈속이다. 그곳은 조선시대였다. 춘향이도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있었다. 춘향이는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춘향이의 이름을 불렀고 춘향이는 대답을 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뒤를 돌아본 것이 자신 하나가 아닌 또 다른 사람도 있었던 것.
그리고 춘향이를 부른 사람도 열 살 성춘향을 부른 것 같지 않았다.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나 하는 생각에 고개를 돌려보니 웬 도령이 한 처자에게 춘향이라고 부르며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순간 어린 춘향이는 자신이 정말 과거의 춘향이를 만나러 온 것임을 짐작했다. 놀랍고도 신기한 마음에 춘향이는 몰래 과거의 춘향이 뒤를 졸졸 따라갔다. 인기척을 느낀 과거의 춘향이는 어린 춘향이의 손을 탁 잡았다.
“얘! 너는 뉘 집 자제이기에 나를 이리도 졸졸 쫓아다니는 것이냐!”
“아... 그게.. 그게 아니라.”
놀란 춘향이는 쉽게 말을 잇지 못하다가 두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혹시 언니가 그 성춘향이에요? 내 이름도 성춘향이라고 해요. 나는 저 먼 미래에서 왔어요. 나이는 열 살이에요.”
“뭐? 언니? 그리고 먼 미래?”
과거의 춘향이는 이 꼬마 춘향이가 하는 말을 도통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고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미래에서 온 춘향이가 말을 이었다.
“믿을 수 없겠지만 사실이에요. 먼 미래의 이곳 남원 땅에서 왔다고요. 그리고 중요한 건 난 언니가 참 보고 싶었어요. 내 이름도 춘향이니까.”
과거의 춘향이는 이름이 같다는 것에서일까 여전히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미래에서 왔다는 춘향이가 궁금해졌다.
“그래? 미래에서 왔다고! 믿을 수 없지만 네 말이 사실이라고 치자꾸나. 그런데 왜 날 찾아온 거지?”
둘은 졸졸졸 흐르는 시냇가 앉아 어느덧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지요.
“난요. 누가 내 이름을 물어보는 것이 싫었어요. 이름을 말하면 먼저 웃음부터 터졌고 그다음으로는 내 얼굴을 보면서 언니를 떠올렸을 테니까요. 사람마다 자신의 머릿속엔 춘향이라는 사람이 다 다른 모습으로 있나봐요. 마치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첫사랑처럼요. 그리고 모두들 자신이 생각하는 언니의 모습을 나한테서 보길 바라는 것 같았어요. 얌전해야 하고 조신해야 하며 심지어는 이몽룡을 만나야 되겠다고 놀리기도 하였지요.”
과거의 춘향이는 미래에서 온 춘향이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 길이 없었으나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말했지요.
“그런 것 신경 쓰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그저 춘향이라는 이름의 너. 너 자신을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어. 그러다보면 사람들도 다른 사람이 아닌 너를 기억하게 될 거야. 춘향이라는 이름의 다른 너를 말이지. 새로운 춘향이를 네가 만들어 나가는 것 말이야.”
그렇게 말하고는 어린 춘향이의 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따뜻하고 보드라운 손길에 어린 춘향이는 잠에서 깬 줄도 몰랐지요. 눈을 떠보니 옆에 자던 곰돌이의 손을 꼭 잡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춘향이의 학교에서 자신의 이름의 뜻과 자기소개로 발표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서둘러 학교에 간 춘향이는 꿈속에서 만난 과거의 춘향이의 말대로 자신의 이름을 사랑하게 되었고 당당하고 자신 있게 말했지요. 이제부터 과거의 춘향전을 이을 새로운 춘향전이 시작되었다고.
주말인 오늘은 승호가 가장 기다리는 날 중 하나입니다. 오늘은 아빠와 단 둘이 여행을 떠나는 날이기 때문이지요. 눈을 뜨자마자 승호는 아빠에게 달려갑니다. 오늘의 목적지가 궁금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아빠는 어떤 영문인지 목적지를 알려주지 않는 것입니다. 아빠 다리에 매달려도 보고 힌트라도 달라고 졸라보아도 요지부동이었습니다. 돌아오는 말이라고는 그저 잠자코 아빠만 믿고 따라오라는 말뿐이었습니다.
궁금증과 기대에 한껏 들뜬 승호는 연신 싱글벙글하며 동생인 연호에게 자랑도 늘어놓았습니다. 드디어 출발입니다. 아빠 차에 탄 승호는 엄마와 동생에게 인사를 한 뒤 콧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도 도착하지 않는 바람에 승호는 그만 지쳐 잠이 들었습니다. 집에서 출발한 뒤 무려 3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잠에서 깬 승호는 도로 이정표를 보고 강원도 태백에 와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승호는 속으로 오늘 아빠와 둘이 등산도 하고 맛있는 한우도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마침내 도착한 목적지. 그런데 도착한곳은 태백산도 아니고 한우고기집도 아닌 석탄박물관이라는 곳이었습니다. 급격히 실망한 승호는 투덜거리고 싶었지만 아빠가 목적지도 알려주지 않고 여기로 온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일단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곳에는 책에서만 보던 광부들이 캄캄한 동굴에서 석탄을 캐는 모습과 그 시대 광부들의 삶을 모형으로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모형들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향해 아빠는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하나 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옛날 옛날에 승호가 아직 태어나기도 전이니까 아빠가 딱 승호만한 나이였을 때였어. 아빠의 아빠. 그러니까 승호 할아버지는 여기 보이는 사람들처럼 석탄을 캐는 광부셨어. 할아버지도 이렇게 검은 때가 온 몸을 뒤덮어도 열심히 일하셨지. 우리 승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삼겹살 있지? 그것도 사실 이렇게 하루 종일 탄가루에 뒤덮여 있는 광부들이 검은 가루가 씻겨 내려가라고 먹었던 음식인거 알았니?
그리고 아주 가난하던 시절 가족들의 끼니와 교육을 위해 앞이 보이지도 않는 어두컴컴한 지하 막장에서 땀 흘려 일하셨단다. 할머니는 노란 양은 도시락에 부족하지만 정성스레 담은 도시락을 매일 싸드렸어. 그리고 할아버지가 돌아오시기만을 기다렸지. 달그닥 달그닥 빈 도시락 통이 부딪히는 소리만 들려도 반가운 마음에 버선발로 뛰어나가셨던 모습이 생생해. 석탄 캐는 일이 목숨을 내놓고 일할만큼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에 도시락 소리가 들려야만 안심을 하곤 했었지. 승호 넌 모르겠지만 할아버지는 정말 멋진 일을 하시던 분이셨어.”
이야기를 하는 아빠의 눈이 잠시 붉어졌습니다. 개구쟁이 승호도 이야기를 듣고는 얌전히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습니다. 아빠가 왜 오늘 다른 곳이 아닌 태백에 석탄박물관에 왔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며칠 후 승호는 4시부터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 두 시간 뒤에 아빠가 회사에서 돌아오실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승호는 아빠와 석탄박물관에서 들었던 아빠의 이야기가 자꾸만 머릿속에서 맴돌아 아빠도 할아버지가 보고 싶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빠 몰래 승호가 맛있는 저녁밥을 만들어드리기로 마음먹은 것이지요. 서툰 솜씨지만 뚝딱뚝딱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딩동! 초인종이 울리고 아빠가 들어오셨습니다. 으쓱한 마음에 승호는 아빠에게 달려가 품안에 쏙 안기며 아빠를 위한 멋진 선물을 준비했다고 말했습니다.
삼겹살에 돼지고기 김치에 돼지껍데기 등 돼지고기로 가득한 한 상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빠 귀에 대고 귓속말로 속삭였습니다.
“아빠, 아빠도 할아버지처럼 정말 멋진 아빠에요!”
아빠도 승호도 정말 푸짐하고 따뜻한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아리랑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
막걸리 한 사발을 기분 좋게 들이키신 할머니께서 목청 높여 노래 한 가닥을 뽑으셨다. 자리에서 일어서서 부르시는 것도 아니고, 앉은 자리에서 울음을 울 듯 부르신다. 친척들의 분위기가 어느 새 숙연해 졌다.
애국가에 이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노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곳이야 널리고 널렸지만, 할머니께서 부르시는 아리랑만 들으면 나도 모르게 괜스레 코끝이 찡해진다.
“어이구, 우리 어머니. 또 이렇게 많이 취하셨네.”
아버지가 할머니를 이부자리로 부축해 가시는데, 어느 새 내 입에서도 아리랑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다. 콧노래로 내 노래를 따라 부르시던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정말이지, 이게 딱 우리 어머니 노래지. 옛날에는 이 노래만 부르시면 눈물을 뚝뚝 흘리셨는데, 이제는 그러지는 않으시는구나.”
가락이 슬픈 노래이긴 했지만 눈물을 흘릴 정도는 아닌데, 왜 그런가 여쭈어 보았더니, 아버지가 아리랑고개에 얽힌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셨다. 외증조 할아버지, 그러니까 할머니의 아버지는 괴나리봇짐을 지고 성북구의 가파른 고개를 매일같이 넘어 다니던 분이었는데, 어느 겨울 날 고개 하나에서 기력이 다하셔서 쓰러지고 마셨다는 것이다. 추운 날에 몇 시간이나 고개에 쓰러진 채 겨울바람을 맞아야 했던 할아버지는 그대로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길을 가던 나는 ‘아리랑고개’라고 적힌 고개를 발견했다. 자주 가던 길이 아니라 평소보다 많이 두리번거리며 걸었기 때문일까. 서울 시내에 언덕길은 많고 많지만, 지명에 ‘고개’가 들어간 경우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추운 겨울 날 언덕에서 쓰러지고 마셨다는 우리 외증조 할아버지. 나는 노래 속의 이 고개를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오십 년 전, 아니, 백 년 전의 이 고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마 할아버지처럼 봇짐을 지고 수염을 기른 사람들이 흰 옷 차림으로 이 고개를 넘고 있지 않았을까.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자연스레 발걸음이 느려졌다. 조금 더 숙연하게, 조금 더 진지하게 넘어야 할 것 같은 고개였다.
“아리랑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
나는 입 안으로 웅얼웅얼, 아리랑을 부르며 고개를 넘었다. 외증조 할아버지가 쓰러지신 채 가쁜 숨을 내쉬었던 고개도 어쩌면 이 고개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리랑을 처음 불렀던 사람이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을 목 놓아 부르며 주저앉았던 고개가 바로 이 고개일지도 모른다. 이 고개를 넘으며 생겨난 이야기들과, 이 고개 너머로 사라진 이야기들이 내 머릿속에서 차례차례 깜빡였다.
고개를 다 넘고 나서야 나중에 알게 된 일인데, 아리랑고개의 본래 이름은 정릉고개였다 한다. 나운규 감독이 영화 <아리랑>을 촬영한 장소라 아리랑고개라는 지명을 쓰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러고 보니, 아리랑고개 마루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리랑 씨네 센터가 보였다. <쉬리>, <번지점프를 하다> 등의 우리나라의 옛날 영화와 함께 <사운드 오브 뮤직>, <벤허>와 같은 외국 고전 영화들의 감독과 주연배우를 새긴 동판이 거리 보도블록을 장식하고 있었다.
왠지 속은 것 같은 기분에 억울해 한 것도 잠시. 아리랑고개를 넘으며, 머릿속으로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아리랑을 들으며 이야기들을 얻었으니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그러니까 한 백 년 쯤 지나면 누군가가 이 아리랑고개를 넘어가는 내 모습을 상상할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그곳이 어디든 산을 오르는 것이 미연은 영 못마땅하다. 서울의 많고 많은 곳 중에 산이라니. 미연은 혀를 끌끌 찼다.
“너도 참 너다. 이 넓은 서울에 갈 곳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동네 산이니?”
“왜, 좋잖아. 자 공기한번 쭉 마셔봐. 이렇게 맑은 공기를 돈 안내고 마시는 걸 감사해야해. 그리고 멀리 가지 않고 등산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좋아!”
“웃겨. 너랑 주말을 보낸다고 온 내가 바보다.”
미연은 투덜거리면서도 연수의 뒤를 곧잘 쫒아온다. 리본 끈으로 길을 안내하는 곳곳에는 이야기가 있는 관악산 둘레길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아, 힘들어. 원래 이렇게 힘든 코스였어? 동네산이 뭐 이래?”
“여기만 넘어가면 내리막길이야. 조금만 힘내. 너 다이어트 한다며, 한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지방 타는 소리가 들리지~ 안 들려?”
“놀리냐, 힘들어 죽겠구만. 물이나 좀 줘봐.”
관악산 둘레길 제2구간은 물과 바람 공기가 참 시원했다. 작고 아담한 계곡을 지나면 장승과 솟대가 등산객을 반긴다. 한여름이면 여름의 냄새가 나고 가을이면 또 가을의 냄새가 나는 곳이다. 흙길을 걷다보면 오르막길 내리막길이 번갈아가며 나왔다. 오르막을 오르다 지칠 즈음이면 내리막길이 나와 쉼을 주었고 땀이 식을 만하면 다시 오르막길이 나왔다. 작은 들꽃은 휴식을 함께 기뻐해주기라도 하듯 아담하게 피어있다.
희진은 미연이 올라올 수 있도록 보폭을 맞춰주었다. 그리고 뒤에서 미연의 등을 살짝 떠밀어주기도 하며 미연의 힘을 나누고자했다.
“어! 다람쥐다. 여기 다람쥐가 다 있네.”
“그러게, 귀엽다. 우리 이러고 있으니까 소풍 온 어린애들 같아.”
“소풍? 소풍이라면 소풍이지. 점심으로 김밥도 싸왔으니까, 제대 론데?”
미연과 희진은 마주보고 웃었다.
관악산 제2구간은 돌산 조망점에 올라 서울시내를 바라 볼 수 있으며 인근 호수공원도 둘러볼 수 있는 코스라고 했다. 미연과 희진도 곧 돌산 조망점 지점에 도착하였다. 한숨 돌리고 큰 바위에 털썩하고 주저앉으니 서울시내가 한눈에 다 담겼다. 이곳이 정상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는 것이 신기했다. 뭉친 다리근육을 털고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 오이를 꺼냈다.
“경치는 좋네.”
“거봐, 따라오길 잘했지? 땀 흘리고 먹으니까 더 맛있는 것 같다. 그치?”
“이래서 사람들이 산을 오르는 걸까?”
“무슨 소리야?”
“아니, 그냥. 턱 끝까지 숨이 차고 다리가 후들거려도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걸 느끼고 자신이 숨을 쉬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공기가 좋아서 오는 사람도 있고, 바람을 좀 더 많이 느끼고 싶을 수도, 그냥 산이라는 것 자체가 좋아서 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이야기가 있는 둘레길은 친구와, 가족과 연인 등 사랑하는 사람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각자의 산을 오르는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산이 주는 행복과 시원함은 각자의 추억대로 되가져갈 것이다.
누군가 산다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처럼 오르막길 내리막길이 있다고 했다. 흙길로 걷기도 했다가 딱딱한 아스팔트를 걷기도 하며 계단을 오르기도 하고 평지를 걷다 내리막길을 만나기도 한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그곳에 바람도 있고 물도 있고 나무도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구간까지 정복하고 나니 석수역이다. 꽤나 긴 코스를 마치고 내려오니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도 꽤나 알찬 주말을 보낸 것 같은 뿌듯함과 쾌감이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그저 그런 주말이었다면 집에서 밀린 잠을 잔다거나 텔레비전이나 붙잡고 있었을 것이다.
시계를 보니 오후 4시 50분.
“드디어 도착. 음, 막걸리에 파전 어때?”
“좋지!”
어느새 ‘강남’이라는 행정자치구 자체가 하나의 문화가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강남을 외쳤고 그 외침 하나로 강남이라는 지역 일대에 파란이 일었다. 땅값은 물론 그곳에서 피어난 문화, 패션, 거리 하나까지 그 시대의 트렌드를 이끄는 한 공간이 되어버렸다.
강남스타일이라는 대중가요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도대체 ‘강남스타일’이 무엇이기에 사람들은 그것에 열광을 하는 것일까 생각한 적이 있다.
언젠가 강남이라는 단어는 부의 상징이었고 무너져가는 아파트라도 강남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훈장처럼 달리는 명예였다. 소위 잘산다는 사람들의 동네로 불리는 강남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워너비 동네로 자리 잡고 있다.
“너 장래 희망에다 뭐 썼어?”
“난 청담동 며느리.”
“청담동 며느리가 되는 것이 꿈이야?”
“그럼, 좋은 집안에 시집가서 남편 잘 만나 행복하게 사는 것만큼 좋은 게 어디 있니?”
민지는 청담동 며느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민지 말대로 좋은 집안에 시집가서 행복하게 사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겠지만 그것이 곧 행복이고 꿈이라는 건 조금은 슬픈 일이었다.
드라마에서 재벌집들이 전화를 받으면 동네 이름을 말하며 전화를 받는 것처럼. 민지도 콧소리를 흘리며 ‘청담동입니다’라고 할 것이다.
민지는 항상 만날 약속장소를 말하면 강남역 7번 출구였다. 그래서 친구들은 민지를 강남역 7번 출구라고 부르기도 했다. 금요일이면 강남역은 젊은이들의 문화로 가득했고 만남과 만남으로 들떠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붕붕 울리는 음악과 현란한 사람들의 발소리가 늦은 시각임을 실감하지 못하게 했다. 민지의 헬스클럽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강남역 7번 출구로 나갔다.
민지는 운동으로 잘 다져진 탄탄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것도 다 청담동 며느리가 되기 위한 하나의 조건이라고 하며 자랑스러워했다.
커피숍에 들어가도 민지는 아메리카노 이외에는 입에도 대지 않았다. 나는 약간 비꼬는 목소리로 그것도 강남 스타일이냐? 라며 비웃었지만 민지는 눈 하나 끔뻑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도도한 목소리로 그렇게 달달한 거 자꾸 먹으면 ‘살쪄’라며 생크림 잔뜩 들어간 달달한 내 음료를 비난했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사람들은 강남과 강북을 갈랐고 조망권과 교통권, 문화생활의 차이를 만들어갔고 그 차이를 통해 만족을 느끼려했다.
어쩌면 강남은 서울의 수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뛰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 많은 스펙을 쌓으며 어떤 것을 이루려고 하는 것일까. 과연 서울에도 수도가 있다면 그곳은 강남일까.
여전히 강남역엔 사람들이 붐볐다. 압구정동이나 청담동에는 비슷한 차림새에 비슷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생각과 다른 사연들을 품고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나는 물끄러미 지나가는 행인들을 바라보았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돈이 많은 건 아닐 텐데. 비슷한 얼굴에 비슷한 차림을 하고 있지만 그들이 원하는 삶과 생각은 다를 텐데 말이다.
민지와 꽤 늦은 시간에 헤어졌다. 민지는 저들 틈으로 사라져갔다. 유유히. 민지는 금세 사람들 사이에 스며들어 누가 누군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멀어져갔다.
순간 나는 길을 잃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내가 가야할 곳을 말해줄 것 같은 사람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나에게 ‘이쪽으로 가면 강남역이 나오고 저쪽으로 가면 청담으로 가는 길일 거예요. 저쪽은 삼성동이고요.’정도로 이야기 해주겠지.
겨우 길을 걸으면서 나는 민지를 떠올렸다. 우리는 민지를 선뜻 속물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아니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사람들의 통념이 그렇듯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웬만하면 서울, 그 중에서도 강남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더 많은 사람들의 장래희망이 혹은 꿈이 ‘도곡동 고급아파트, 삼성동 유명백화점, 청담동 며느리’가 되지 않기를 바랄뿐이었다.
간만에 친구들을 만나 수다 좀 떨었다. 고등학생일 때부터 줄기차게 보던 얼굴들이기는 하나, 기혼자 다섯 명이 한꺼번에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요즘은 늦게 하는 결혼이 대세라는데 내 친구 녀석들은 뭐가 그리 급한지 스물다섯 먹던 해부터 줄기차게 시집을 갔다. 스물다섯, 스물여섯, 스물일곱, 스물여덟, 이렇게. 다들 아홉수를 피하려고 작정을 한 건지 마의 스물아홉 이전에 전부 유부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뒤 나 혼자 독신녀로 남아 저 독한 유부녀들을 상대했다. 친구들은 남편 얘기, 아이 얘기, 아니면 또 다른 애인 얘기에 여념이 없는데, 나는 뭐 일거리 말고는 할 만한 얘기도 없었다. 남자아이돌들을 좋아하긴 하나, 친구 녀석들한테 얘기해봤다 정신 못 차렸다며 잔소리나 들을 테고. 그래서 친구들이 수다 떨 동안 조용히 쭈그린 채로 음식에 심취하거나, 이따금 고개를 끄덕이며 리액션을 해주었다. 아, 가끔 야한 이야기를 할 때는 집중해서 들었다.
그러다 서른다섯 겨울, 드디어 나도 결혼이란 걸 하게 됐다. 상대는 나보다 세 살 많은 회사원. 평소 핥던 아이돌처럼 얼굴이 잘나지도, 몸매가 뛰어나지도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그래도 같이 있으면 말이 통하고 편안해서 살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준비하던 무렵, 친구 녀석들이 나에게 넌지시 물었다.
“동준씨, 기력은 좀 있어?”
나는 무슨 소린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친구 녀석들은 서로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눈치만 봤다. 그 중 미경이가 총대를 메고 입을 열었다.
“아니, 너네 애기도 낳을 거라면서 신랑 기운이 좋아야 2세를 낳지.”
순간 얼굴이 좀 붉어졌지만, 미경이 말이 맞다 싶었다. 우린 만나기만하면 서로 죽겠다며 피로를 토하고,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고개를 젖힌 채 잠들기 일쑤였다. 이래가지고 어디 자식 보겠나 싶어 걱정이 됐다. 그때 혜진이가 내 표정을 읽었는지 입을 열었다.
“우리 다음 주에 광양에 어른 물 받으러 갈 건데, 너도 갈래?”
“어른물이라니, 물중에 어린 물도 있고 늙은 물도 있나?”
“야야, 알아듣게 설명을 해줘야지. 광양에 고로쇠물이 유명하다잖아. 미경이 남편이랑 우리 남편이 요즘 영 골골거리고 지루해서 우리 다음 주에 물 받으러 갈 거야. 고로쇠물이 기력 회복에도 좋고 비뇨기 계통에도 아주 좋다더라고. 너도 갈래?”
결혼준비도 중요하지만, 결혼 후의 생활을 생각하니 갑갑해지는 게 사실이었다. 그이나 나나 나이 마흔이 다 되어 가는데, 신혼도 즐기고 아이도 가지려면 역시 몸관리가 필수지! 가구랑 전자제품 들어오는 날짜를 어찌저찌 계산하다보니, 결혼 일주일 전 딱 반나절 정도 시간이 비었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바로 광양으로 향했다.
약수통 하나 들고 룰루랄라 가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과 전혀 달랐다. 왜 난 백운산 중턱을 오르고 있는가! 왜 아무도 나에게 산으로 올라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단 말인가! 물먹으러 사람들이 이런 산중까지 올라오다니 이해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어느 정도 걸어 들어가니 평지와 함께 고로쇠나무들이 등장했다. 나무마다 하얀색 물통이 꽂혀 있었고, 나무에 꽂혀 있는 호스를 통해 고로쇠 물이 한 방울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겉보기엔 그냥 맑은 물인데 이거 한 말에 오만 원씩이나 한단말야? 아깝다. 이 돈이면 족발을 아주 그냥 원 없이 먹을 수 있는데.”
“아서라, 너는 그게 예비 신부가 할 말이냐? 이리 와서 어른 물 한 잔 마셔봐. 고로쇠 물로 끓인 백숙도 죽여줘.”
혜진이의 닦달에 고로쇠 물 한 모금 먹고, 백숙 한 점 뜯었다. 신기하게도 물이 달았다.
“야, 어른 물 생각보다 달고 맛난다. 어른은 쓴물만 먹고 살아야 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단물 먹어도 되는 거야? 어른 좋네.”
그 후로도 나는 한참동안 닭 한 점 뜯고 고로쇠 물 마시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처음에는 한두 잔만 주고, 동준씨 갖다 줄 생각이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약수통이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 동준씨만 기력 차리란 법 있나? 애는 내가 낳는 데 내 몸부터 챙겨야지. 고로쇠 물에 푹 빠져 입맛을 다시는 날 보고 미경이가 말했다.
“지금 많이 마셔 둬. 너 이제 시집가고 나면 쓴 물 배터지게 먹을 테니까.”
나는 약수통 바닥에 남은 고로쇠 물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잔에 부었다. 그리고 잔 바닥까지 핥아 마셨다. 캬, 어른 물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