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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에 더 맛있는 춘천막국수

    겨울에 더 맛있는 춘천막국수

    지역강원도 춘천시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6 호감도

    겨울에 더 맛있는 춘천막국수

    • 프롤로그
    • 1.박물관으로 가자!
    • 2.메밀에 집중
    • 3.국숫발을 뽑아라!
    • 4.상차림
    • 5.막국수가 춘천의 별미가 된 이유
    • 6.막국수의 모든 것
    • 7.시식을 안 할 수 없지
    • 8.아~ 맛나다
    • 에필로그

    겨울에 더 맛있는 춘천막국수

    - 강원도 춘천시 -

    새콤달콤한 맛이 입 안 가득 군침을 돌게 만드는 막국수는 역시 강원도에서 맛보는 것이 일품입니다. 시원한 육수에 쫄깃한 메밀면발이 더해져 매콤하게 즐기는 춘천막국수는 춘천닭갈비와 함께 춘천의 대표별미 중 하나로 꼽힙니다. 춘천막국수, 대체 어떤 점이 특별하기에 춘천을 대표하는 별미가 되었을까요? 그 점이 궁금하다면 이번 <트래블아이>의 미션을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겨울에 맛보면 더 맛있는 춘천의 대표 별미, ‘춘천막국수, 그 맛의 비밀을 밝혀라’입니다.

    배가 출출할 때면 떠오르는 새콤달콤한 맛. 텁텁한 면발조차 후루룩하는 소리에 군침이 절로 돈다면, 춘천 막국수 박물관으로 가자!

    “출출한데 뭐 먹을 것 없나? 새콤달콤한 막국수 한 그릇 먹었으면 좋겠다.” “막국수? 한 겨울에 무슨 막국수야. 막국수는 여름에 먹는 거 아니야? 시원하게.”

    “그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아. 춘천 막국수는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 말아 먹는 거거든. 그래서 겨울에 먹어야 제 맛이지. 그러지 말고 박물관으로 막국수 맛보러 가자!”

    대부분의 국수는 밀가루를 주재료로 하겠지만 춘천 막국수는 다르다. 메밀을 주재료로 하여 반죽하여 면을 뽑는 일도 여간 정성이 드는 것이 아니라는데?

    “춘천에 막국수 체험 박물관이 있었네! 그런데 역시 춘천 막국수의 비결을 메밀면으로 꼽는 것 같아.”

    “여기 맷돌이랑 디딜방아가 있는 것 보니까 옛날 메밀 제분 방법에 대한 설명도 있는 것 같아. 혹시 맷돌에 막 갈아서 막국수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아닐까?”

    일정요금을 내면 막국수를 만드는 체험도 가능하다. 면발을 직접 뽑아보고 국수를 만들어 먹으면 감회가 새롭다.

    “2층으로 가보자. 2층에서는 직접 국수를 뽑을 수도 있고 직접 뽑은 면으로 막국수를 만들어 먹는 체험을 할 수 있거든.”

    “아, 그래서 막국수 먹자더니 박물관으로 온 것이구나.” “응, 그런데 면 뽑는 일도 여긴 정성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야. 힘도 들고.”

    메밀을 주재료로 한 음식은 꽤 다양하다. 메밀전, 메밀빙떡, 메밀칼국수 등이 있지만 그래도 막국수가 제일이다.

    “여기 메밀을 재료로 한 음식들이 모형으로 만들어 놓았네. 생각보다 메밀로 가능한 요리가 꽤 많다.”

    “이쪽에는 상차림이 있어. 요즘에는 막국수 하나에 모든 고명이 올려 나오는데 과거에는 고명 하나하나를 따로 놓아 손님상에 내 놓았나봐.”

    박물관에서는 막국수가 춘천의 별미로 유명해진 배경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설로 몇 가지 정도가 있는데 그 배경을 들여다볼까?

    “조선시대부터 춘천 인근에서 재배된 메밀을 춘천에서 제분하면서 제분소에서 메밀가루로 국수를 눌러 먹던 것이 유명해졌다는 설이 있어."

    "또 다른 배경은 춘천 인근의 농촌에서 손님이 찾아오면 메밀가루를 반죽해서 별미로 대접하였는데 전쟁이후 생활고 해결을 위해 막국수 장사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별미가 되었다고 하는 설도 있어.”

    춘천 막국수는 메밀면을 동치미국물에 말아 먹는 강원도 고유 향토음식으로 메밀수확량이 많은 지역적 특성을 살려 그 시작이 이루어 진 것은 아닐까?

    “막국수는 특별한 재료가 없어도 손쉽게 만들어 먹기 쉬워 긴 겨울을 나기 유용한 음식이었다고 해. 국수틀에 눌러 면을 삶아 건진 후 동치미 국물에 부어먹었는데 담백한 맛을 위해 젓갈이나 고기, 마늘 등을 쓰지 않았다는데?”

    “맞아, 고려 고종 때 그리고 조선시대 때부터 메밀을 사용한 음식에 대한 기록이 있어.”

    면까지 뽑아봤다면 시식을 안 할 수 없다. 직접 뽑은 면발에 새콤달콤 양념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자, 그럼 어디 먹어볼까? 아까부터 군침이 도는 걸 참느라 애썼어.”

    “그런데 다른 음식점에서 먹는 것보다 면이 조금 두툼한 것 같아. 이것도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그건 체험할 때 사람이 직접 반죽을 해서 그럴 거야.”

    춘천막국수는 그 자체로도 맛있지만 두부나 감자부침개와 곁들여 먹는 것도 일품이다. 국수라 양이 부족할 것 같던 사람들도 함께 먹으면 든든한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막국수 하나만 먹는 것도 맛있겠지만 어쩐지 조금 부족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뭐 곁들여 먹을 만 한 것 없을까?”

    “그럼, 막국수와 잘 어울리는 두부나 부침개와 함께 먹는 것은 어때? 고소함이 두 배가 될 거야.”

    계절에 상관없이 언제 먹어도 맛있는 춘천 막국수. 밀가루와는 다른 건강함과 쫄깃함을 자랑하는 메밀가루로 반죽을 하고 면을 뽑는 체험도 가능한 춘천 막국수 박물관까지 둘러본다면 춘천 막국수의 맛에 대한 비결이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춘천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우뚝 선 춘천막국수, 남녀노소가 즐겨 찾고 정성과 믿음으로 만들어지기에 춘천의 별미로 사랑을 받는 것이 않을까요? 낭만과 추억이 가득한 춘천에서 몸과 마음이 든든해질 수 있는 최고의 별미, 춘천 막국수 한 그릇 하고 가시는 것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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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이 오면 꾸득한 그 속이 그립다

    겨울이 오면 꾸득한 그 속이 그립다

    지역강원도 인제군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6 호감도

    겨울이 오면 꾸득한 그 속이 그립다

    • 프롤로그
    • 1.황태촌의 독특한 설경
    • 2.겨울이 담겨야 제대로지!
    • 3.황금빛으로 익는 고기
    • 4.꾸득꾸득 말린 황태의 식감을 쫓다
    • 5.우리네 아버지의 속을 달래주던
    • 6.황태 익는 소리가 들린다
    • 7.거칠어 보이지만 속은 부드러운
    • 8.인제 가면 언제 오나~
    • 에필로그

    겨울이 오면 꾸득한 그 속이 그립다

    - 강원도 인제군 -

    칼바람에 코끝이 시린 겨울이 오면 무엇보다 뱃속이 든든해야 견디기 수월하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뜨끈한 국물 한사발이면 얼음장처럼 차가운 한파도 거뜬하기 때문입니다. 날이 쌀쌀해지면 마음부터 추워지는 서민들의 허한 뱃속을 채워주던 황태는 칼바람이 부는 겨울날이 아니면 만날 수가 없습니다. 넉 달 동안 나뭇가지에 매달려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해야만 비린내가 없고 부드러운 살갗을 선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트래블아이>의 이번 미션, ‘엄동설한에 만나는 맛깔스런 황태의 맛을 오감으로 느껴라!’

    칼바람이 부는 겨울, 강원도 인제 용대리 황태촌에 가면 독특한 설경을 만날 수 있다. 나뭇가지에 머리를 메어두고 온 몸으로 바람을 맞는 황태덕장을 찾아가자.

    “숨만 쉬었을 뿐인데 하얗게 입김이 서려요. 손발이 꽁꽁 얼어버릴 것 같아요. 그런데 명태는 저렇게 온몸으로 바람을 맞고 있으니 얼마나 추울까요?”

    “그래야만 제대로 된 황태가 될 수 있단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처럼 말이야. 자세히 보면 명태 입으로 눈이 가득 들어가 있지? 그 눈이 황태를 더욱 멋지게 만들어 줄 거야.”

    영하의 온도에서 꽁꽁 얼었다 살짝 녹고 다시 꽁꽁 얼었다를 봄바람이 불 때까지 반복해야 한다. 살갗 마다 겨울이 가득 담겨야 속이 노랗고 부드러운 황태를 만날 수 있다.

    “그럼 명태는 언제까지 저렇게 매달려 있어야 해요?”

    “음, 봄바람이 불 때까지 4개월간 저렇게 말려야 한단다. 하늘이 말라고 바람이 말려야 맛 좋은 황태가 될 수 있으니까. 겨울 내내 추운 겨울을 인내하며 보내야 하니 명태가 대단하지?”

    명태가 하늘과 바람에 익으면서 살이 노랗게 변해 노랑태라고도 한다. 살 겹겹이 눈보라가 들면 가을의 들녘만큼 황금빛으로 물든다.

    “이리 와보렴. 명태의 살은 희고 부드럽지? 그런데 여기 황태를 보렴. 살이 노랗게 변하는 것이 보이니?” “네, 마치 가을에 벼가 황금빛으로 물드는 것처럼 노랗게 변했네요.”

    “녀석, 똑똑하구나. 네 말대로 살이 노랗게 익는다고 해서 황태라고 부른단다."

    꽁꽁 얼고 녹기를 반복하여 명태의 사지가 ‘투툭’하고 터진다. 명태의 살이 터질수록 노랗게 여문 살이 꾸득꾸득해진다. 꾸득한 황태 한 접시면 그거면 된 거다.

    “황태가 많이 불쌍해요. 전 밖에 조금만 나가있어도 이렇게 추운데, 겨울 내내 추운 바람을 맞는 황태는 얼마나 춥겠어요?”

    “그게 바로 황태의 꿈이 아닐까? 온몸이 추위에 터져나가도 그저 맛좋고 꾸득하게 익어 배고픈 사람들이 먹고 속이 따뜻해진다면 그걸로 된 거라며.”

    아버지가 오늘도 거나하게 술 한 잔 기울이며 세월이 흐르는지 당신이 흐르는지 모른 채 밤을 지새우고 나면 어머니는 말없이 식탁에 황태국 하나 얹어놓고 나가신다.

    “자, 추우니까 이제 안으로 들어오렴. 집에서 황태국을 먹어 본 적은 있지?”

    “그럼요. 저희 아빠가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날이면 그 다음날 아침 메뉴는 안보고도 알아 맞출 수 있다니까요. 아빠는 황태국을 드시면서 꼭 ‘아~ 시원하다.’ 그러세요. 속이 다 풀리신다면서요.”

    붉은 양념 몸에 덮고 한숨 푹 자고 나면 촉촉한 황태구이로 변신한다. 노란 속살이 쪄지면서 허연 김을 내뿜으면 은은하게 퍼지는 향과 소리가 이미 침을 꿀꺽 삼키게 한다.

    “황태마을에 왔으니 황태는 맛보고 가야하겠지? 황태구이와 황태찜, 황태전 등 메뉴도 참 다양하구나. 속까지 훈훈하게 녹여주는 황태국으로 한번 시켜볼까?”

    “황태찜은 어때요? 흰 쌀밥에 부드러운 황태 속살 한 점 올려 먹으면 다른 진수성찬이 안 부럽겠어요!”

    노란 살결이 몇 번이고 터져 투박해 보이지만 그 속은 여리고 또 여리다. 여린 놈의 속살이 뱃속으로 들어가면 그 뱃속마저 부드러워진다.

    “ 그런데 저는 왠지 거칠거칠해 보이는 것이 잘 안 먹게 되더라고요.”

    “보기에만 그렇지 막상 먹으면 아주 촉촉하고 부드럽단다. 자 먹어보렴. 아주 부드럽고 쫄깃쫄깃하지? 어린이들에게 좋은 칼슘과 단백질과 같은 영양소도 많이 들어가 있으니 앞으로는 편식하지 말고 먹어야 한다!”

    한번 황태 맛을 본 사람이라면 그 맛의 끝을 모른다. 한 번 먹고 뒤돌아서면 또 먹고 싶은 것이 황태다. 그럴 땐 용대리 황태축제를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이제 집에 가면 언제 또 볼 수 있을까요? 많이 아쉬워요. 황태가 만들어지는 과정도 보고 맛까지 보니까 더욱요.”

    “그래서 ‘인제 가면 언제 오나’ 하는 거란다. 한번 맛 본 사람들은 아쉬움의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서이지. 그래도 때맞춰 열린 황태축제에서 더없이 즐거운 나날을 보냈잖니?”

    간밤에 걸친 술이 미처 깨기도 전에 얼얼한 손을 비비며 일터로 나가는 우리네 아버지들의 빈속을 채워주던 황태는 참 따뜻한 음식입니다. 차디 찬 바람을 지내고 비로소 맑은 국물에 몸을 담그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추위는 저만치 물러가고 맙니다. 삼한사온이라는 날씨가 황태를 꾸득허니 잘 말려 비로소 거친 속과 마음을 부드럽게 달래줍니다. 잘 익은 황태 한 점을 입에 넣으면 찬바람을 견디어온 황태의 기나긴 여정까지 오감으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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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겸재 정선과 구암 허준

    겸재 정선과 구암 허준

    지역서울특별시 강서구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5 호감도

    겸재 정선과 구암 허준

    • 프롤로그
    • 1.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
    • 2.내 마음속 스승 겸재
    • 3.가양동 ‘박물관 가는 길’
    • 4.의성 허준을 추앙하며
    • 5.옛 성현들의 발자취를 따라
    • 6. 거장의 삶을 알리다
    • 7.소악루를 마주하다
    • 8.‘구암’과 ‘겸재’를 통해 뭉친 사람들
    • 에필로그

    겸재 정선과 구암 허준

    - 서울특별시 강서구 -

    언제부터인가 서울 가양동 일대가 역사와 문화의 향기가 흐르는 거리로 변신해 있습니다. 양천초등학교 담장에는 겸재 정선의 산수화와 형제간의 우애를 위해 황금을 물속에 던져버렸다는 투금탄 고사 이미지를 한강 물줄기로 연결하여 형상화한 ‘서울풍경’이라는 입체 벽화로 단장했는가 하면, 양천향교 벽면에는 향교로 향하는 아이들을 부조로 표현한 ‘향교종이 땡땡땡’을 전시했습니다. 허준박물관, 구암공원, 궁산 등 다양한 역사문화 자원을 문화벨트로 엮어진 가양동 ‘함께 걷고 싶은 예술의 거리’를 걸어라! <트래블아이>의 미션입니다!

    양천고성지-소악루-양천향교로 연결되는 역사문화투어 공간이자 진경산수화의 산실로써 자리매김해 있다. 겸재정선기념관이 강서구 가양동에 자리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경산수화라는 우리 고유의 화풍을 개척한 겸재 정선(1676~1759)이 65세부터 70세 때까지 서울 강서구와 양천구 일대 현감을 지냈다는 거 알고 있니?”

    “그럼! 그 당시 겸재는 서울 근교의 명승지와 한강변 풍경을 그린 ‘경교명승첩’ ‘양천팔경첩’ ‘경교명승첩’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잖아.”

    겸재정선기념관에서는 겸재의 화혼을 오늘에 되살리기 위해 2013년에 ‘겸재 맥찾기 유수작가 초청전’을 여는 등 겸재의 실험정신을 본받아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동·서양의 여러 작가를 탐구하고 섭렵한 끝에 만난 나의 마음속 스승이 겸재 정선이야. 우리 전통 미술에서 느끼는 미감이 배어서 낯설지 않고 친근감마저 주고 있잖아.”

    “맞아. 특히 근작의 풍경화는 투박한 듯하면서도 무겁지 않고 양감이 풍부한 주홍색 필선이 뼈대를 이루고 있어 더운 기운과 함께 밝은 광채를 느끼게 해.”

    경관 조명은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이 길이 단순한 거리가 아닌 다양한 테마를 갖춘 역사·문화 명소로 자리매김한 이유이다. ‘박물관 가는 길’은 어디로 안내할까?

    “허준선생은 당대 최고의 명의로서 질병으로 고생하는 백성들의 아픔을 덜어주고자 9종이나 되는 많은 의학서를 저술하셨지. 선생의 다양한 자료뿐 아니라 모형, 영상, 터치스크린, 허준체험 공간 등이 있는 허준박물관이 이 길에 이어지고 있구나!”

    “웬걸! 한의학 전문 박물관으로서도 기능을 하고 있어!”

    900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가양동에 위치한 허준박물관에서 우리나라 한의학을 집대성한 <동의보감>을 저술한 허준 선생의 인품까지 들여다볼 수 있을까?

    “단순히 보는 박물관이 아니야. 직접 체험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한방 음식전, 한방약재공예작품전, 약초표본전, 동의보감 특별전 등을 수시로 열어서 이곳에 나는 자주 오는 편이야.”

    “한의학을 쉽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도록 꾸며졌구나. 동양의 의성(醫聖)으로 추앙받는 허준 선생의 모든 것을 만나보니 숭고한 인간애까지 느껴져.”

    해마다 음력2월과 8월에 유림, 지역주민, 학생들이 모여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에 대한 석전제를 지내고 있는 양천향교 터에서는 예절교육, 견학코스도 운영하고 있다.

    “양천향교가 서울시 유일의 향교라는 거 알고 있니?” “아니. 전혀 몰랐어!”

    “우리 조상들의 교육문화의 산실이었던 양천향교는 옛 선비정신을 되살려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정신적, 교육적 가치를 드높이는 교육기관이자 문화유산이다.”

    겸재의 그림 <소요정>에서 어부 두 명이 낚싯줄을 드리우고 태평하게 앉아있는 풍광이 돋보이는데, 그 속에 허가바위가 등장한다. 영등포공고 정문 앞 탑산에서 이를 찾아라!

    “사람 10명 이상이 들어갈 수 있는 이 동굴을 좀 봐. 옛날 석기시대 사람들이 한강 가에서 조개와 물고기를 잡으며 이곳에서 살았으리라 짐작되는 흔적들이 곳곳에 있어.”

    “이 굴에서 양천 허씨의 시조 ‘허선문’ 이 태어났다는 설화도 있고, 허준이 <동의보감> 집필을 마친 곳도 여기라고 알려져 있지!”

    겸재정선기념관 뒤편에 있는 궁산근린공원으로 가보자. 이곳에는 어떤 이야기가 깃들어 있을까?

    “궁산근린공원은 파산, 성산, 관산, 진산 등 다양한 명칭이 있다는 거 알고 있니?”

    “물론이지. 옛날 백제의 양천 고성지와 조선시대 화가인 겸재가 양천 현감으로 재임하면서 그림을 그렸던 소악루가 자리하고 있잖아.” “맞아, 양천향교도 이곳에 위치하고 있으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겠어.”

    강서에는 ‘양천향교 제례’, ‘박물관 가는 길’ 등 특색 있는 작품을 조형화하여 포토존으로 꾸며져 있는가 하면 4개 역사문화 코스 나뉜 거리가 조성돼 있다

    “조선시대 도성과 양천, 강화를 이어주던 공암나루와 가을이 되면 단풍으로 어우러진 탑산이 있어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푸근하게 하는구나.”

    “강서구 가양2동, 한강 남쪽 강변에 위치한 허준마을은 한강 너머로 확 트인 시계가 확보돼 멋진 풍광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게 됐어.”

    탑산 아래는 허준의 동의보감 집필장소로 널리 알려진 허가바위가 있으며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허준박물관과 허준의 아호를 따 조성된 구암공원도 지근거리에 있습니다. 인근에는 겸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겸재정선기념관이 소악루와 함께 자리해 있습니다. 이 지역 사람들의 역사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애향심은 얼마나 남다를까요? 이는 그간 문화체험길을 만들기 위해 서로가 똘똘 뭉쳐 해온 노력에서 엿볼 수 있을 겁니다. 가볍게 한 바퀴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역사의식을 고취할 수 있는 가양동 역사문화길을 걸어보는 건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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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남해 속의 작은 나라

    경남 남해 속의 작은 나라

    지역경상남도 남해군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7 호감도

    경남 남해 속의 작은 나라

    • 프롤로그
    • 1.여권도 없이 해외여행을 떠나다
    • 2.고국으로 돌아온 이들
    • 3.아기자기, 민박지도
    • 4.독일 축제를 맛보다
    • 5.작품이 된 마을
    • 6.또 다른 풍경, 미국마을
    • 7.전통 있게 살아오다?
    • 8.남해 속의 작은 나라
    • 에필로그

    경남 남해 속의 작은 나라

    - 경상남도 남해군 -

    경남 남해는 빼어난 자연경관과 함께 해양생태관광 등의 관광도시로 유명합니다. 해바리 마을, 내산 꽃 단지, 죽방렴 등 여러 명물과 체험 마을이 가득해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특색 있는 곳을 꼽으라면 ‘경남 남해 속의 작은 나라’ 독일마을과 미국마을이 있습니다. 시골농촌마을 대신 자리하고 있는 이들 외국인마을은 그야말로 동화속 세상을 품고 언제든 찾는 이들의 시선과 발길을 사로잡습니다. 오늘의 <트래블아이>미션은 ‘여권 없이 해외여행하기’입니다.

    독일마을이라고 쓰여 진 커다란 표지석 뒤로 보이는 신기한 마을이 있다. 독일 깃발이 펄럭이는 이 곳. 정말 외국에 온 것은 아닐까?

    “와, 태극기과 독일의 국기가 함께 걸려있어. 산바람을 타고 흔들리는 모습이 꼭 그곳을 향해 오라며 손짓 하는 것 같아.”

    “해외에 온 듯한 기분이 이렇게 선명하게 들다니. 꼭 공항에 들러 여권에 도장이라도 받아와야 할 것만 같아.”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지붕, 티끌 없이 하얗게 칠해진 건물 외벽까지. 우리나라 산에 있는 건물이 맞는 것일까? 이국적인 분위기가 끝이 없다.

    “독일에서 고국으로 돌아오고자 했던 이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라 한국적인 느낌이 있을 줄 알았는데, 건물마저 외국 느낌이라니 조금 낯설어.”

    “하지만 그 곳에서 살아간 문화를 모두 벗어날 수는 없으니, 이곳의 모두가 공동체가 되어 다시금 살아가는 힘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대체로 민박을 운영하고 있는 독일마을의 사람들. 그러다보니 민박지도 한 장을 들고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독일마을은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등의 TV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에 노출되면서 그 유명세가 한층 더 올라갔다고 해.”

    “맞아. 촬영 명소로도 유명하고, 그 속에서 나왔던 명장면을 따라 연출해보는 것도 이 곳의 새로운 관광문화가 되었데.”

    독일의 명물 하면 역시 맥주. 독일 맥주 축제가 우리나라에서 열린다니, 정말 기가 찰 노릇이다. 한국에서 먹는 진짜 정통 독일 맥주는 어떤 맛일까?

    “옥토버 페스트? 독일 서부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축제이잖아! 와, 우리나라에서 작지만 그런 축제를 맛볼 수 있다니 놀라워!”

    “축제를 재현해낸 것뿐만이 아니야. 독일 맥주, 소시지 등을 제공하고 공연 등의 볼거리 행사도 제공한다지. 멀리 가지 않고도 독일 축제를 그대로 느낄 수 있겠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이 마을은 한층 더 이국스럽다. 화려한 저택들이 찾는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이야~ 원예 전문가들이 꾸민 정원이라 그런지 정말 독특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맛이 있어!” “맞아. 스페인풍의 조각정원을 비롯해서 네덜란드 풍의 풍차정원, 핀란드 풍의 스파정원 등 원예인들이 조성하고, 또 그들이 직접 살면서 가꾸고 있다고 해.”

    “게다가, 공공정원과 전시장, 기념품 점 까지! 정말 관광지로서 모든 것을 갖추고 있어!”.

    미국 교포들이 건강한 노후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고, 동시에 관광지로도 개발 된 미국마을. 독일마을과는 또 다른 신비로움을 가졌다.

    “저기 봐, 미국의 대표 랜드마크인 자유의 여신상이야. 조금 작고 어설픈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게 더 재미있는 것 같은데?”

    “다들 자유의 여신상이 되어서 팔을 들어 올리고 사진을 찍고 있어. 미국마을 최고의 명소가 아닐까?”

    미국의 전통을 그대로 따라 살아온 듯이, 미국의 한 마을을 그대로 떼어다 옮겨놓은 풍경이다. 영화 속에 나오던 바로 그 모습이다.

    “잘 정비된 가로수 길과 우리나라 문화와는 다른 주차풍경, 또 집의 모양 까지도 정말 미국에 온 것 같아. 꼭 영화 속 주인공들이 지나다닐 것만 같아.”

    “개인이 살고 있는 집도 있지만, 미국마을은 펜션으로 운영되고 있는 집들이 더 많다고 해. 바다를 앞에 두고 있으니 이곳에 숙소를 잡아도 좋지 않을까?”

    여권도 없이 나선 여행에서 이국적인 감성을 느낀다는 것. 그 색다른 힘이 더해져 이 곳, 남해의 작은 나라의 의미를 더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의 작은 마을에서 외국을 경험하는 색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아. 사람이 살지 않는 테마 관광지의 인위적인 느낌이 적은 곳인 것 같아.”

    “고국으로 돌아오기를 원하는 교포들을 위해 처음 조성된 곳들이지만, 그 특색은 관광지로서의 힘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경상남도 남해 속 이 작은 나라들은 그저 박물관이나 전시장이 아니라, 모두 사람이 살고 있는 실제 마을입니다.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조성되었고 숙박시설과 관광지가 연계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곳에 가면 사람이 사는 냄새를 맡으며 실제 해외여행을 온 듯한 기분을 충분히 느끼고도 남습니다. 해외여행을 떠나기에 조금 벅찬 감이 있다면 이곳으로 ‘여권 없는 해외여행’ 한번 떠나보는 건 어떠세요? 이국적인 남해의 모습에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아쉬움이 생길지도 모르니 마음 굳게 먹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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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고한 역사의 동네 변천사

    고고한 역사의 동네 변천사

    지역서울특별시 성북구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6 호감도

    고고한 역사의 동네 변천사

    • 프롤로그
    • 1.기억에도 없는 추억에 젖어드는 동네
    • 2.성북동을 성북동답게 하는 명소
    • 3.놓치기 싫다면 대비하라!
    • 4.선잠단지의 또 다른 옛 이야기
    • 5.개운사에 숨어든 비밀
    • 6.숱한 주부들 기죽인다는 ‘효재’
    • 7.자꾸만 걸음이 멈추는 길
    • 8.만해의 절개가 녹아 있는 공간
    • 에필로그

    고고한 역사의 동네 변천사

    - 서울특별시 성북구 -

    사대문을 감싸 안은 옛 성곽 아래, 부채꼴 모양으로 내려 앉아 서울시내를 굽어보고 있는 성북동 일대는 언덕 위로 대저택들이 많아 ‘서울부촌’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1960년대 이전만 해도 대표적인 서민 주택가였습니다. 가난한 작가, 화가 등 많은 예술인들이 일제부터 이곳에 빽빽하게 들어앉아 있었습니다. 오래됐지만 바래지 않았고, 소박하지만 부유한 부촌1번지 성북동에는 이야깃거리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트래블아이>가 제안합니다. ‘고고함이 묻어나는 성복동의 옛이야기를 들어라!’

    예부터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아름다운 바위들이 어울린 산자수명(山紫水明)한 마을 성북동은 지금도 서울에 있지만 서울 같지 않다.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조용한 산동네에 고급 주택들이 들어서 있지만 아직 플라스틱 굴뚝에서 피어나는 흰 연기, 오래된 한옥과 작은 골목, 비탈에는 덧니처럼 흐트러진 돌계단. 돌담에 놓인 노란색 양철통. 오래된 대폿집까지, 시간 속을 거슬러 올라가 이내 또 다른 성북동의 얼굴을 마주한 듯해.”

    “맞아. 지금 서 있는 이곳이 어디인지, 기억에도 없는 추억에 젖어든다니까.”

    잘 보존된 고택과 미술관, 옛 선인들의 보금자리를 보고 있노라면 드라마 속 ‘성북동 사모님’도 울고 갈 부자는 따로 있는 듯하다. 성북동을 성북동답게 하는 명소를 찾아보자.

    “일찍이 우리나라 고미술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알아보았던 혜곡 최순우 선생의 옛집, 현재 보수공사(2013년 9월1일 ~ 11월30일) 중이라 관람은 어려운 상태구나.”

    “어떤 모습으로 일반에 공개될지 무척 기대돼. 최순우 옛집은 전통가옥의 모습에 충실하고 있다는데, 재개발의 풍파에 휩쓸려 하마터면 헐릴 뻔한 이 집을 시민들이 지켜냈다지?”

    고택과 성당, 미술관이며 골목골목 숨은 찻집, 밥집까지 모두 헤아려보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 출발 전, 어떻게 해야 동선을 보다 쉽고 편리하게 가져갈 수 있을까?

    “선잠단지길로 100m도 채 가기 전에 작은 교통섬이 나오다니. 잠깐, 우연찭게 저기 골목을 들여다보니 북정미술관이 위치해 있는 걸 발견했어!”

    “이거 잘못했으면 ‘동양의 피카소’를 놓칠 뻔했군 그래! 행여나 또 이런 좋은 구경거리 놓칠까 봐 슬슬 불안해지는데? 구청에서 그림지도나 안내책자라도 챙겨올 걸 그랬지.”

    성북동길을 따라 성북초등학교 옆길까지 10분여를 걷노라면 오롯한 홍살문이 눈에 들어온다. 살진 누에고치와 좋은 실을 기원하던 선잠단지의 또 다른 옛 이야기를 들어보자.

    “성종 때 선잠례를 지냈지만 1908년 제사 장소를 사직단으로 옮기면서 지금은 터만 남아 있어. 하늘높이 솟은 뽕나무는 아직도 여전한데 말이야.”

    “여느 양반집 아낙을 기리는 열녀문이 있었다는데, 새삼 이 안이 궁금하지 않아? 문은 잠겨있지만 인근 주민에게 부탁하면 열어줄지 혹시 알아?”

    안암동 개운사의 암자인 보타사 대웅전 뒤쪽 화강암 암벽에는 고려시대 마애불상이 조각되어 있다. 이 거대한 보살상 어깨를 보면 숨은 과거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데?

    “웅대한 이 불상을 봐. 얼굴 생김새부터 토실토실한 게 미감이 풍부한 표정을 하고 있어.”

    “최근에 온몸을 흰색으로 칠해서 백불의 인상을 풍기고 있군. 그런데, 이 마애불 어깨 쪽 좌우에 홈이 패여 있는 것으로 보아 불상을 보호하던 전각이 있지 않았을까? 이 아래 새긴 명문은 뭘 뜻할까?”

    성북동이 내려다보이는 야외 찻집도 고풍스럽고 계곡 주변에 자리 잡은 성북동쉼터에는 쪽에는 오래된 느티나무도 그 나름의 멋이 있다. 건너편에는 또 어떤 멋들이 있을까?

    “여기 좀 봐. 성북동쉼터 너머에 이런 곳이 자리해 있었다니. 한복 보자기 등 손으로 마법을 빚는다는, 숱한 주부들 기를 죽인다는 그 ‘효재’야!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참선수양을 할 수 있는 ‘침묵의 방’도 일반에 공개하고 있구나.”

    “정말이네. 울긋불긋 담쟁이가 돋보이는 새하얀 담장이 특히 매력적이야.”

    길상사를 나와 만해 한용운 선생의 유택으로 향하다 보면 비둘기 조형물과 함께 한쪽 벽면에 소설 <성북동 비둘기> 현판이 위치한 비둘기공원이 또 한 번 발길을 잡는다.

    “이곳을 지키고 있는 이름 모를 잡초가 왠지 쓸쓸해 보여.”

    “슬레이트 지붕을 올린 집들과 동네를 비집고 들어선 100평짜리 저택들, 골목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는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를 읊조리겠지?”

    좁은 골목길은 제법 가파르다. 숨이 턱에 찰 즈음 한용운 선생이 말년을 보냈다는 심우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옥이 일반적으로는 보기 드물게 북향이어서 관심이 더 간다.

    “마당 너머 한 눈에 들어오는 성북동 전경도 좋은 볼거리로구나. 낮은 지붕이 마주칠 정도로 다닥다닥 붙은 주변의 작은 집들이 멀리 산자락의 대관저들과 상반돼 더 특이하다.”

    “그렇구나. 마당의 향나무는 만해가 손수 심었다지. 그런데, 만해는 무엇이 보기 싫어서 산비탈로 방향을 틀어서 집을 지었을까?”

    명망 있는 재벌가 대사관저가 몰려있어 ‘부자들의 동네’로 이름난 성북동은 한 걸음 더 들어서면 옛 선인의 발자취가 그대로 녹아 있는 동네였습니다. 조선의 도읍 한양을 지키던 서울성곽에 고종의 다섯째 아들의 별채가 있고 만해 한용운의 기개가 돋보이는 한옥과 요정정치 산실에서 급변신한 문화 종교시설, 민간모금운동으로 지켜낸 시민문화유산 1호까지. 사실 성북동의 문화유산을 돌아보려면 4~5시간이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기왕 마음먹은 여행, 넉넉하게 한나절 할애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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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난과 영광이 공존하는 섬 소록도

    고난과 영광이 공존하는 섬 소록도

    지역전라남도 고흥군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5 호감도

    고난과 영광이 공존하는 섬 소록도

    • 프롤로그
    • 1.화합과 소통의 다리
    • 2.고난을 저울질해 보려거든 그곳에 가라
    • 3.비토의 눈물
    • 4.옹벽에 그려진 ‘한센인의 꿈’
    • 5.아픔 서린 단종대
    • 6.낙인 그리고 완전한 격리
    • 7.중앙공원의 어제와 오늘
    • 8.주인의 손으로 만들어져야 하는 천국
    • 에필로그

    고난과 영광이 공존하는 섬 소록도

    - 전라남도 고흥군 -

    하늘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 작은 사슴을 닮았다 해 이름 붙여졌지만, 실제 사슴처럼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소록도는 전남 고흥반도 끝자락인 녹동항에서 1km가 채 안 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섬의 면적은 15만평 정도로 작지만 깨끗한 자연 환경과 해안 절경, 역사적 기념물 등으로 인해 고흥군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육지와 연결하는 소록대교가 개통되면서 소록도는 더이상 외롭고 쓸쓸한 섬이 아닙니다. <트래블아이>의 미션! 고난과 영광의 소록도 소록도가 들려주는 메시지에 귀 기울여라!

    소록도로 향하는 길. 2009년 완공된 소록대교 다리 위엔 하늘 높이 길쭉하게 솟은 다이아몬드 모양의 상징이 눈길을 끈다. 무엇을 의미할까?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의 애환이 깃들어 있어. 그때는 최대 6천여 명이 살고 있었지. 지금은 약 600명 환자가 ‘기도의 용사’로 사랑과 희망을 전하고 있지만 말이야.”

    “소록도는 이제 외롭고 쓸쓸한 섬이 아니군요. 저 다리를 보세요. 일반인과 한센인이 한마음으로 화합하고 소통하라고 말을 하고 있는 듯해요.”

    소록도에 처음 교회가 생긴 때는 1922년 10월. 2대 원장으로 부임한 일본인이 종교의 자유를 인정해 구북리교회가 창립됐다. 이후 12년간은 태평성대였다.

    “1934년 성결교 시대가 막을 내리고 ‘소록도 기독교’라 개칭하면서 일제의 만행에 따른 탄압도 시작됐어. 41년 태평양전쟁이 확대되면서 주일이면 더욱 심한 중노동을 시키는 등 교회에 대한 일제의 만행은 더욱 노골화됐지.”

    “하지만 이곳에 교회들이 계속 생겨났잖아요.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요?”

    이곳 소록도가 한센인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구한말이던 1910년 개신교 선교사들이 세운 시립나요양원을 세우면서부터다. 그들의 한서린 세월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1957년 비토리에서 일어난 한센인 집단학살사건을 알고 있니? 알려진 지는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마저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져가고 있겠지.”

    “아름다운 섬 비토에 그런 숨은 핏빛 이야기가 있었다니. 너무나 안타까워요.” “본격적응로 알려진 건 2005년이야. 하지만 그에 대한 기록도 많지가 않지.”

    소록리 국립소록도병원 쪽으로 가면 옹벽에 길이 110m로 대형벽화가 그려져 있다. 여기에는 어떤 메시지가 표현돼 있을까?

    “한센인들의 아픔과 희망을 새긴 걸까요?”

    “아마도. 그러면서 벽화엔 소록도의 과거·현재·미래가 담긴 듯하구나. 소록도의 아픈 과거는 단종되는 아기 사슴으로, 밝은 미래는 초원에서 평화롭게 노니는 아기 사슴으로 말이야. 야물게 참 잘 만들어졌지?”

    천형(天刑)의 낙인이 찍힌 한센인들을 소위 ‘문둥이’라 했다. 일반인과 격리된 그들만의 세상에서도 일제는 강제로 단종수술 등 인권유린의 아픔을 겪었다.

    “일제는 한센병 환자들에게 전염 방지를 목적으로 소록도를 거주지로 마련해줬지만,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서만 삶의 터였을 뿐, 주검이 되지 않고서는 나갈 수 없었지.”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검시실, 감금실 같은 무시무시한 이름의 빨간 벽돌 건물이 문화재청 등록문화재이라는 사실이 묘하게 느껴져요. 검시실에 들어가니 지금도 소름이 끼친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도 철저한 통제와 억압 속에 살아야 했던 그들의 삶을 대표하는 장소가 국립소록병원 입구 수탄장(愁嘆場)에 있다. 말 그대로 탄식의 장소이다.

    “과거 한센병 환자는 병사지대와 직원지대 사이에 있는 도로에서 한 달에 한 번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해. 전염될까 손을 잡지도 못하게 해 눈물만 흘리며 서로를 마주보았을 그들의 모습은 소록도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묘한 대조를 이루지.”

    “부모자식이 도로 양옆으로 갈라선 채 눈으로만 상봉해야 했던 광경이 눈에 선해요.”

    일제 강점기에 환자들을 강제 노역에 동원해 만든 중앙공원에는 적송, 백송, 편백나무 등이 조경이 잘 가꾸어져 있다.

    “유한양행의 상징이 된 설송도 이곳에 있구나. 소록도에 기부를 많이 한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가 이 나무를 보고는 안티푸라민 뚜껑에 광고로 사용했다지.”

    “고흥반도 남쪽 끝 녹동에서 약 500m 거리의 이 섬이 갖는 슬픈 사연 뒤에 소소한 사연들도 참 많네요.”

    아직도 600여 명의 한센병 환자들이 살고 있는 소록도에 아름다운 이름과는 상반된 무거운 공기도 아직 감돌지만, 이제 명실상부한 관광명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100년 역사를 안고 있는 소록도에 2009년 소록대교의 개통으로 육로로 접근가능해지면서 이제 한 해 다녀가는 관광객이 50만 명을 넘는다죠?”

    “전염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인식이 자연관광을 하러 오는 대중들 사이에 어느 정도 깔려 있다는 방증이겠지?”

    믿는 사람의 눈은 역경 속에서도 빛이 납니다. 영광스러운 미래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고난과 영광이 공존하는 땅 소록도 사람들의 눈은 그래서인지 유독 사슴의 눈처럼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그러면서도, 고난은 앞으로 받을 영광에 비하면 큰 바다에 떨어지는 잉크 한 방울에 불과하다는 말도 새삼 떠오르게 합니다. 소록도를 보고 여행의 의미를 다시 깨닫기도 합니다. 여행은 경치 좋은 곳만 찾아 구경하는 게 아닌, 과거를 돌이켜 나를 돌아보게 되는 것임을 말입니다. 소록도가 여러분에게 전해준 메시지는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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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산에 핀 연꽃들

    고려산에 핀 연꽃들

    지역인천광역시 강화군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5 호감도

    고려산에 핀 연꽃들

    • 프롤로그
    • 1.보물섬이 모인 곳
    • 2.연꽃은 어디에 피었을까?
    • 3.연꽃의 전설
    • 4.백련의 절
    • 5.적련의 절
    • 6.청련의 절
    • 7.연꽃이 진 자리들
    • 8.고비고갯길
    • 에필로그

    고려산에 핀 연꽃들

    - 인천광역시 강화군 -

    열다섯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인천의 강화군.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리는 그 유명한 강화도를 포함하고 있으며, 언제 찾든 발길이 닿는 곳마다 볼거리가 가득한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어 강화군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을 찾는 것이 어려울 정도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이야깃거리가 끊이지 않는 곳이 바로 강화군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 흥미진진한 강화군에서 드리는 <트래블아이>의 특별한 미션, ‘강화도 고려산의 연꽃들을 찾아라!’입니다.

    충렬사, 석모도, 덕진진, 고인돌 유적지 등 강화군의 자랑거리를 모두 돌아보자면 하루가 모자랄 지경. 이 때문에 강화군은 항상 방문객들로 북적이는 곳이다.

    “강화군으로 여행을 떠날 때에는 사전 조사를 잘 해 두는 것이 좋아. 볼거리가 아주 많아서, 어디에 갈 것인지 고민하는 사이에 시간이 가 버리기 십상이거든.”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여행이나 소풍 장소로 강화군에 다녀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그런데도 고인돌 유적지나 고려산의 연꽃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 놀라운 일이지.”

    강화읍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고려산이 있다.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태어났다는 전설이 전해지기도 하는 산. 바로 이곳에 연꽃들이 있다는데?

    “고려산이라면 고려산 진달래 축제가 열리는 바로 그곳 아니야? 신문에서 사진을 보았는데, 능선이 온통 진분홍빛 진달래로 가득했어.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던걸?”

    “네가 말하는 그곳이 맞아. 그런데 고려산은 고려가 강화로 천도하며 바뀐 이름이지. 원래 이름이 무엇인지 아니? 바로 다섯 개의 연꽃의 산, 오련(五蓮)산이야!”

    고구려 장수왕 4년, 인도의 고승, 천축조사가 절을 지을 곳을 찾다가 고려산에 이르렀다. 그런데 고려산 정상에는 다섯 개의 연못이 있었다?

    “이 다섯 개의 연못에는 다섯 빛깔의 연꽃이 찬란하게 피어 있었다고 해. 천축조사는 연꽃이 알려주는 곳에 절을 짓기로 결심하고 정상에서 다섯 송이 연꽃을 날렸어."

    " 연꽃이 떨어진 자리에 지은 절이 바로 다섯 개의 연꽃 절, 오련암이야. 고려산 정상에는 지금도 이 연못들 중 세 개의 연못이 남아있다고 하지.”

    백련사는 이름 그대로 하얀 연꽃이 떨어진 자리에 지은 절. 한 때 팔만대장경이 봉안되어 있었던 절이기도 하다고 한다.

    “이곳이 바로 첫 번째 연꽃이구나!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저 우람한 나무들을 좀 봐. 모두 몇 백 살은 족히 되어 보이는데?”

    “고구려 시대에 생긴 절에 있는 나무이니 당연한 일이지. 다원에서 차를 한 잔 마시고 가자. 차에서 백련향이 날 것 같지 않니? 다원 앞의 작은 웅덩이도 정말 아름다워.”

    붉은 연꽃이 떨어진 자리에 가고자 한다면 적련사 대신 적석사를 찾아야 한다. 적련(赤蓮)이라는 이름 때문에 불이 자주 난다고 여겨 적석(積石)사로 이름을 개명한 것.

    “그 이름은 바뀌었지만, 적석사에는 여전히 붉은 색에 관한 이야기가 많지. 첫째, 적석사의 감로정이란 우물은 나라에 변란이 일어날 때마다 붉은 물이 올라온다고 해."

    " 둘째, 적석사 낙조대는 강화 8경 중 한 곳으로 붉은 낙조가 아주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지.” “그 말을 들으니 붉은 연등이 한층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것 같아.”

    푸른 연꽃이 떨어진 자리에 지은 절, 청련사. 정상에서 날린 연꽃들 중 유독 푸른 연꽃만이 고승이 원하지 않는 자리에 떨어졌다고 하는데도 아름다운 절이다.

    “푸른 연꽃을 실제로 한 번 보고 싶어. 정말 아름다운 빛깔을 하고 있을 것 같아.”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이 푸른 연꽃이 아니고 뭐겠어. 청련사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300살이 넘은 고목 세 그루야. 봐. 청련사를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고목들 때문에 절도 푸른빛으로 보이는 것 같지 않아?”

    아쉽게도 황련사와 흑련사는 지금 그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 황련사지는 아직 보존되어 있다고 하니 이곳을 찾아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흑련사, 적련사, 백련사, 청련사는 고려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위치해 있지만 황련사만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다고 해. 다음번에는 황련사지에 가 보도록 하자.”

    “연꽃의 흔적을 조금 더 찾아보고 싶다면 아까 이야기했던 정상의 세 연못에 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혹시 연꽃이 피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

    청련사 입구에서 십여 분을 걸으면 강화 나들길 5구간인 고비고갯길에 닿는다. 아쉬운 대로 국화저수지를 끼고 있는 이 길을 걸으며 못다 맡은 꽃향기를 상상해보자.

    “백련, 적련, 청련에 이어 국화까지! 오늘은 머리가 어질해질 때까지 꽃향기에 취해 보는 날이구나! 세 곳의 절을 둘러보며 꽃을 상상하는 일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벌써 진한 국화 향기가 느껴지는 것 같은데?”

    “국화 저수지를 돌아보며 황련과 흑련을 상상해 보는 것도 멋진 일이지.”

    여행은 특별한 테마를 가지고 떠날수록 특별해지는 것 같습니다. 고려산에 핀 연꽃들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 수백 년을 이어져 온 세월의 향기도 함께 맡을 수 있었다면, 더없이 향긋한 여행이 되었을 것입니다. 봄에 고려산을 찾으신다면 진달래 향기도 더할 수 있을 것이니 꽃을 찾는 여행으로는 이보다 좋은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고려산 정상에 위치한 연꽃이 피었던 연못들, 오련지를 찾아보고, 적석사 낙조대에서의 일몰까지 모두 감상하셨다면 알찬 여행에 마음까지 뿌듯해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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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매화 암향 은은한 학자의 봄

    고매화 암향 은은한 학자의 봄

    지역경상남도 산청군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7 호감도

    고매화 암향 은은한 학자의 봄

    • 프롤로그
    • 1.두류산양단수(頭流山兩端水)
    • 2.제덕산계정주(題德山溪亭柱)
    • 3.덕산복거(德山卜居)
    • 4.종죽산해정(種竹山海亭)
    • 5.원천부(原泉賦)
    • 6.산중즉사(山中卽事)
    • 7.청학동(靑鶴洞)
    • 8.민암부(民巖賦)
    • 에필로그

    고매화 암향 은은한 학자의 봄

    - 경상남도 산청군 -

    지조를 지키고 일관된 삶을 지향하는 선비는 그릇됨과 교만함을 경계하고 늘 자신을 되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경남 산청군 덕산기슭 산천재는 남명 조식선생의 기품과 정신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수수한 솟을대문과 현판에서도 찾을 수 있고, 낡은 서가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초록빛 자태를 뽐내고 남명매가 청량한 향기를 뿜어낼 때 그 고결한 품성은 고스란히 와 닿습니다. 이곳에서 선생의 시를 읊조리며 걷다 보면 ‘학자의 봄’을 만날 수 있을까요? 오늘 <트래블아이>의 미션은 ‘산천재에서 남명의 시를 노래하라!’

    수십 차례를 오르내릴 정도로 지리산을 좋아했던 남명 선생은 천왕봉이 보이는 덕천강 옆에 산천재를 지었다. 담을 따라 흐르는 강가에서 ‘두류산양단수’를 읊어보자.

    “두류산 양단수를 예듣고 이제 보니 도화 뜬 맑은 물에 산영(山影)조차 잠겼어라

    아이야, 무릉(武陵)이 어디냐 나는 옌가 하노라“

    어느새 강과 산 사이에 고즈넉한 담벼락을 두르고 있는 작다란 산천재가 보인다. 이곳에서 선비로서 올곧은 길을 가고자 다짐을 ‘제덕산계정주’를 읊어보자.

    “천석의 무게를 가진 큰 종을 보게나!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가 없네.

    어떻게 하면 저 두류산처럼,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 수 있을까.“

    대문 위에 수수하게 펴 있는 배롱나무 아래를 지나 선생이 기거하던 산천재의 솟을대문과 현판이 소박하기만 하다. 이곳에서 ‘덕산복거’를 노래해보자.

    “봄 산 어딘들 향기로운 풀 없으랴만, 하늘 가까운 천왕봉 마음에 들어서라네

    빈손으로 왔으니 무얼 먹을 건가? 십리 은하 같은 물, 먹고도 남으리.“

    산천재에는 선생이 직접 심었다고 하는 남명매가 고고한 자태로 서 있다. 그가 이 매화나무에 담아낸 심경, ‘종죽산해정’을 읊다 보면 알게 될까?

    “대나무가 외로운가 외롭지 않은가? 소나무와 이웃이 되었네

    풍상 치는 때 보려고 하지 말게나 살랑거리는 모습 속에 참된 뜻 보겠네“

    관직에 나가지 않고 이곳 산천재에서 한 평생 마음을 정진하고 후학양성에 몰두했던 선생. 학문의 맥과 깊이를 ‘원천부’ 구절에서 느낄 수 있을까?

    “진실로 신령한 뿌리가 마르지 않으면 천하를 적시고도 마르기 어려우리

    덮어 놓지 않은 샘의 차가운 물을 보라 아무리 퍼내어도 여전하지 않은가!“

    툇마루에 올라서서 보면 세상을 관조하는 듯 소나무 아래에서 바둑을 두는 신선의 벽화를 볼 수 있다. 허나 선생의 시에서 분명 선비는 이곳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해지는데 산골의 아이 호미를 메고 서서 김맬 때도 묻지 않고 심은 때도 잊어버렸네

    오경의 학 울음소리에 새벽 꿈을 깨자 비로소 몸이 개미나라 왕을 겸했다는 걸 알았다“

    산천재 오른편의 작은 문집 책판서고는 오랜 세월만큼이나 빛이 바랬다. 이 낡은 서가건물에서 단단한 남명선생의 정신이 이 명시를 통해 되살아날 수 있을까?

    “한 마리 학은 구름을 뚫고 하늘 나라로 올라갔고, 구슬이 흐르는 한 가닥 시내는 인간 세상으로 흐르네.

    누(累)없는 것이 도리어 누가 된다는 것을 알고서, 산하를 마음으로 느끼고서 보지 않았다고 말하네.“

    바른말하는 하는 사람들이 죽임을 당는 난세의 병폐를 지적하는 그의 대쪽 같은 기품도 지리산 기상과 닮아 있다. ‘민암부’를 노래하다 보면 남명학의 기풍을 느낄 수 있을까?

    “볼 수 없는 건 마음인데 위험이 안에 있어 소홀히 대한다네

    걸어다니기에 평지보다 더 평탄한 곳이 없지만 맨발로 살피지 않고 다니다간 발을 상하지“

    덕천강이 보이는 평지에 자리한 산천재 툇마루에 앉아 강줄기를 보며 가벼운 졸음 오기를 기다리는 여유를 즐기다가도 이따금씩 고개 돌려 천왕봉 머리를 보고는 흐뭇해했을 조식 선생. 산천재 기둥의 주련에 쓰인 글귀는 분명 ‘봄’입니다. 그냥 봄이 아니라 안분지족(安分知足) 하는 선비의 봄입니다. 청량한 향기를 뿜어내는 고결한 품성을 느낄 수 있는 ‘학자의 봄’이 그의 시를 통해 고스란히 와닿았나요? 남명 조식 선생이 가장 사랑했던 이곳 지리산자락 산천재와 덕천강에서 여러분은 선생의 진짜 ‘봄’을 발견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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