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 따라 뚜벅뚜벅, 왕피천 계곡 트레킹
- 경상북도 울진군 -
이 땅에서 마지막 남은 오지의 물길이라는 왕피천은 자동차의 경적이나 그 어떤 기계음의 방해도 없이 잘박잘박 제 발자국 소리만 데리고 가는 길입니다.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유영하는 왕피천의 거울처럼 맑은 물을 바라보며 바위를 딛고, 자갈밭을 걷고, 발목을, 무릎을, 허벅지를 적시면서 용소까지 가는 트레킹은 번잡한 마음을 말끔히 씻어내립니다. 하지만 이런 천혜의 원시비경을 즐기려면 그만한 고생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 몸도 마음도 준비 됐나요? <트래블아이>의 오늘 미션은 바로 ‘왕피천 계곡 트레킹을 완수하라!’입니다.
시간상으로 낭비인 것 같아도 들머리까지 1시간 이상을 구불구불한 시골도로를 걸어가는 게 최선이란다. 왜일까?
“선택은 자유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이 이곳에 왔으니 왕피천 계곡을 은어처럼 거슬러 올라야 제 맛이고 또 순리 아니겠어?”
“내가 전혀 보지 못한 천혜의 비경이라도 간직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이 길은 물길을 따라 두 발로 걷지 않으면 아예 접근할 수 없는 건가?”
이 마을은 고개를 아홉굽이 넘어야 나온다고 해 옛날부터 굴구지 또는 구고동으로 불렸다. 과연! 아홉굽이나 돌아가면 마을을 만나게 될까?
“안내판을 따라 들어가니 길이 상하좌우로 굽이쳐 차도 덜컹 사람도 들썩. 허허~” “ 양옆으로는 금강소나무숲이 시원스럽구나. 이런 길이라면 아흔아홉굽이라도 좋겠지?”
“어, 저기! 드디어 왕피천이 눈앞에 나타났어. 아직은 물 좋은 여느 산골마을의 앞내와 별다르지 않은걸?”
다리를 지나 도착한 마을도 여름날 산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물가에는 다랑이논, 길가에는 살구나무, 울 위에는 능소화, 대문 옆엔 접시꽃, 마당에는… 앗! 저게 뭐지?
“요건 소 멕일라고 갈대 벤 기고, 요건 외양간 바닥에 깔아 줄라고 갈잎 모다놓은 기고….” “어린애 있는 집 마루가 온통 장난감 차지듯 이 집 마당은 소여물과 깔개 차지로군요.”
“우린 또 나갈 채비해야 안 합니꺼. 이 동네가 요새 제일 바쁜기라! 감자, 마늘, 양파 파고 그 자리에 이제 콩 심가야지요, 또 논에 가서 피 뽑아야지요.”
마을 안을 1시간쯤 거닐다 왕피천탐방로 입구에 다다랐다. 이 길을 따라 계속 가면 굴구지팔경 중 첫손에 꼽히는 용소계곡을 쉽게 볼 수 있을까?
“계곡 트레킹 기분도 낼 겸 저 아래 내를 따라가면 어떨까?” “글쎄…. 저기 저 손바닥만 한 밭 가장자리에 앉은 한 아주머니에게 물어보자.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이 아래 왕피천 물길로 내려가서 걸어도 돼죠?” “물길은 험하다 안해요. 산으로 가는 게 나을 기라.”
그렇게 산길을 택했다. 세차게 흐르는 계곡이 중간중간 내려다보여 전혀 지루하지 않다. 그러다 포장길이 끊어지고 흙길이 시작되더니 어느덧 깊은 산중이다. 내심 불안한데?
“낡은 빈집과 흔적만 남은 집터도 제법 되네. 휴~ 휴대전화도 안 터진다, 이제.” “우리가 오지로 들어오긴 왔구나! 괜히 어깨가 으쓱한데?”“왁! 갑자기 길섶 수풀이 풀썩거린 것 같지 않아?!”
“깜작이야! 뭔가가 후다닥 달아나는 게 살짝 등줄기만 봤는데 작은 멧돼지 같더라!”
수년 전 왕피천 일대가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된 덕에 그 비경도 알려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계곡 트레킹1번지가 됐다. 하지만 탐방관리소를 만나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
“휴~ 용케 도착했네. 아슬아슬~ 휘청휘청!” “어데까지 가능교?”
“저희가 이번 코스에서 반환점으로 삼은 용소계곡까지 갑니다. 여기서부터 내리막길이죠?” “하모예~. 허위허위 내려가 보소. 가다 보모 얼마 안 남았다 하는 푯말도 보일 겁니더!”
정말 그랬다. 400m 남았다는 안내표지판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 400m가 그리 먼 길일 줄이야! 이 내리막길이 어떻기에 그럴까?
“아이고~ 경상도말로 참 ‘되네’~. 바위와 잔돌을 디디면서 계곡을 따라 걷자니 속도도 안 나고. 계곡에 빠지지 않고는 더 갈 수가 없겠어! 난 여기서 양말을 벗으련다!”
“나 이거 참. 그래도 좋은 데가 하도 많아서 구경하랴 정신이 없네. 발 쉴 곳도 웬만큼 많아야지. 쉴 자리 정하기도 쉽지가 않네.”
잘생긴 그놈 얼굴 한번 보자고 내려가선 온몸이 녹초가 될 지경이다. 그렇게 포기와 도전을 수차례 반복하다 마침내 만난 용소, 그 모습은 어떨까?
“용이 놀았다는 용소로구나! 이 순간만은 그 용도 부럽지 않아.” “거센 물살이 희한한 모양으로 깎아 놓은 집채만 한 바위, 그 속에 담긴 시퍼런 물. 낭떠러지에서 내려다보고는 있지만 정말 장관은 장관이로구나!”
“왕피천 최고의 비경이라더니, 우리 이렇게 용소 앞에서 감탄만 쏟아내다 하루 다 가겠어!”
트래킹 길을 따라 쭉 내려가다가 ‘이참에 마을까지 물길 따라 가 볼까’ 하며 계곡을 옆에 끼고 가봅니다. 그러다가 또 ‘이참에 용소 한번 볼까’ 하며 마음먹었다가 결국 얼마 못가 발길을 돌릴지도 모릅니다. 높은 산과 까마득한 직벽으로 가로막힌 왕피천은 예나 지금이나 접근이 어려운 곳입니다. 협곡을 굽이치는 절경을 갖고 있음에도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때 묻지 않은 비경을 간직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물길을 끼고 있는 깊은 산중, 오지 속의 오지, 생태의 낙원, 울진 왕피천으로 뚜벅뚜벅 도보여행 떠나보는 건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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