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넘는 박달재를 아시나요?
- 충청북도 제천시 -
천등산과 지등산 사이에 가로 놓인 고개 박달재는 대중가요 '울고 넘는 박달재'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넘는 우리 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 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굽이마다 울었소 소리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 노래만 들어봐도 이 고개에 뭔가 가슴 아픈 사연을 품고 있음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연이 있기에 가슴 터지도록 소리치고 울며 넘어야 했을까요? 짐작하셨겠지만, ‘박달재에 서린 슬픈 전설을 찾아라!’ 이것이 오늘 <트래블아이>가 여러분께 드리는 미션입니다.
‘울고 넘는 박달재’가 이 조용한 산기슭의 적막을 깨고 들려온다. 한 개에 노래에 여러 버전을 입혀 똑같은 노래 같지 않다.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노래를 감상해보자.
“지금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여봐. ‘울고 넘는 박달재’야. 여러 노래를 틀어주는 줄로 착각했는데 계속 들어보니 한 노래를 갖고 여러 버전으로 편곡했네.”
“정말 그렇구나. 이 노래들이 박달재휴게소에서부터 들리고 있어. 기분 좋은데? 산행을 하면서 귀가 이리도 호강한 적은 없었는데 말이야.”
박달재 정상에 다다르기 전 박달재의 옛 지명을 알려주는 ‘이등령’이라는 팻말을 발견할 수 있다. 왜 이 고개 이름이 현재는 박달재로 바뀐 걸까?
“여기 팻말을 봐봐. 이곳을 본래 이등령이라 명명했다고 나와 있어. 양쪽으로 보이는 두 산 가운데에 위치했다고 해서 ‘이등령(二等嶺)’인가?”
“맞아. 박달재의 본래 이름은 천등산과 지등산의 영마루라는 뜻을 지닌 ‘이등령’이었어. 하지만 지금은 박달과 금봉이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가 회자되면서 박달재로 고쳤지.”
마당바위 인근 목굴암이라 칭하는 곳으로 향하면 한 스님이 사후 박달도령보다 조명 받지 못하는 금봉의 처지를 딱히 여겨 만든 암자 하나를 만날 수 있다.
“저 암벽의 여래좌상 표정을 좀 봐봐. 정말 온화하지? 오랜 시간 박달에 대한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지쳤을 금봉의 쓰라린 마음을 달래주고 있는 듯해.”
“정말 그렇네. 저 또한 깊은 애정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 그런데 애초 금봉을 위해 생겨났다는 이곳이 목굴암으로 더 잘 알려지게 된 이유는 뭘까?”
설렘 가득한 표정이 있는가 하면 가슴을 울리는 슬픈 표정의 동상도 있다. 이 표정에서 두 사람의 비극적인 결말을 암시하는 듯하다. 두 사람은 정말 행복한 결말을 맺지 못했을까?
“과거 급제 후 함께 살기로 굳게 약속하고 한양에 올라온 박달은 결국 낙방했고 금봉을 볼 면목이 없어 평동을 다시 찾지 않았어.”
“그렇게 금봉은 돌아오지 않는 박달을 기다면서 고갯길을 수십 번도 더 오르내렸겠구나.” “그렇지. 그렇게 목놓아 박달을 기다리다가 결국 마음의 병을 얻고 세상을 떠나게 됐대.”
뚜벅이로 넘기에 험하디 험했던 이 고갯마루 절벽 끝에 서보자. 한서린 금봉과 박달의 생의 마지막 모습이 그려질까?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야. 금봉의 소식을 듣고 슬퍼하던 박달은 그녀의 환상을 보았고 금봉이 이 천길 낭떠러지로 향하자 그녀를 끌어안으려던 박달도 절벽 아래로 떨어지게 돼”
“지금은 박달재에 터널이 뚫려 자동차로 쉽게 오갈 수 있지만 이 험준한 절벽 아래에서 내려다보면 금봉이 고갯마루를 향해 너울너울 춤을 추며 달려가는 듯해.”
정상에서 100m 정도 아래로 내려가면 목각공원이 나온다. 이곳에 두 주인공의 목각동상과 함께 즐비하게 세워진 장승들의 표정에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 있는 듯하다.
“박달재 목각공원은 정상에는 없는 장승들이 곳곳에 있구나. 전설 속 두 주인공의 극락왕생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아. 지역의 번영과 무사안녕을 기원하기 위함이라는데, 네 말대로 마치 이 정승들이 이루지 못한 둘의 사랑을 위로하고 그 넋을 기리는 듯하구나.”
산 정상과 목각공원에만 두 사람을 형상화해 놓은 것이 아니다. 과연 두 주인공의 캐릭터가 이 일대 어디어디 숨어 있을까?
“가로등 하나까지 캐릭터를 새겨놓았어. 박달재 이야기가 제천의 상징임을 단번에 알 수 있지.”
“가만 생각해보니, 여기 말고도 제천역 바로 앞 동상에서도 같은 캐릭터를 본 적이 있어! 정말 제천 하면 박달재, 박달재 하면 제천이구나.”
정상에서 공원까지 모두 둘러봤다면 돌아오는 길에 다시 한 번 ‘울고 넘는 박달재’를 들어보자. 사뭇 달라진 느낌을 받게 된다면 박달재의 전설이 마음을 울렸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의 트로트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들으니 이토록 애절하게 와닿을 줄이야.”
“과거시험을 마치고도 소식을 알 길 없는 박달을 그리워하며 고개를 오르내리던 금봉의 마음과, 금봉의 죽음을 마주한 뒤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박달의 마음이 가사에서 구구절절이 느껴지지 않니?”
박달재는 흘러간 유행가를 통해 다시 살아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1948년 반야월 작사 김교성 작곡의 '울고 넘는 박달재' 속에서 말이죠. 그러면서 노랫말 속 박달과 금봉의 안타까운 사연에 관심을 갖는 이들도 점차 늘어났어요. 하지만 박달재터널에 직접 가면 애절하고도 슬픈 사랑 이야기 외에 또 다른 모습들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다름아닌 금봉의 수수하고 청초한 모습과 박달의 준수하고 늠름함을 동시에 닮아 있는 박달재의 모습이죠. 젊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마음으로 듣고 싶다면 백운면 박달재터널에서 잠시 차를 멈춰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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