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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단청 위의 새 햇살, 창경궁


눈을 감으면 500년 전 옛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말이 풀을 뜯고, 공주와 궁녀들이 까르르 웃으며 술래잡기 하는 소리…. 깊은 밤, 연세 지긋한 대비 마마의 밭은 기침소리. 바로 조선 성종이 왕실 여성들을 위해 지었다는 창경궁에서 들렸을 법한 소리다. 경복궁의 동쪽에 지었다 하여 동궐(東闕)이라 불렸으며, ‘큰 경사(昌慶)’란 뜻을 담고 있는 창경궁. 한때 일제의 야비한 계책으로 동물원(舊창경원)이 들어서기도 했던 창경궁은 오래된 단청 위로 새 아침 햇살을 맞이하고 있다.

                    
                
  • 창경궁의 정전(正殿)인 명정전과 앞뜰

돌다리 너머에 잠든 500년 역사

현재 남아있는 창경궁은 수차례 중건을 거듭한 복원 건축물이다. 창경궁이 최초 세워진 때는 성종대인 1483년으로, 이미 이곳엔 왕좌에서 물러난 상왕 태종의 거처 수강궁(壽康宮)이 자리하고 있었다. 성종은 할머니인 정희왕후 윤씨 등 왕실 여자 어른들의 거처를 물색하고 있었는데, 당시 경복궁의 별궁이던 창덕궁은 이미 남은 방이 없어 수강궁을 확장하고 창경궁이라 명명했다.

이처럼 별궁 성격으로 지어진 창경궁은 임진왜란과 궐내 화재를 각각 겪으며 재건을 거듭했다. 최초 재건은 1616년(광해 8)이었으며, 이후 화재가 발생함에 따라 1834년(순조 34년) 재건했다. 

우선 정문인 홍화문(弘化門)으로 들어가면 야트막한 언덕 같은 옥천교가 방문객을 맞아준다. 옥천교는 궐내 연못 춘당지에서 발원한 물인 금천(禁川)을 가로지르는 다리다. 이 다리를 건너면 정전인 명정전(明政殿)이 나온다. 창경궁 명정전은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인정전과 함께 조선 한양 궁궐의 대표 정전이다. 명정전은 앞서 말한 두 정전과 달리 아담하다 못해 소박한 느낌까지 주는데, 이는 창경궁이 애초에 정치하는 곳이 아닌 왕실 사람들의 생활공간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 창경궁의 편전인 문정전에서 바라본 앞뜰. 문정전 앞뜰은 사도세자 뒤주 살해사건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창경궁 문정전 앞뜰은 조선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생을 마감한 비극의 장소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여름, 사도세자의 넋이 아직 떠도는 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명정전 왼편은 문정전(文政殿)이다. 문정전은 왕이 정무를 보던 편전이나, 영조비와 철종비의 혼전으로 각각 사용되기도 했다. 왕의 집무실임에도 불구하고 구석에 치우쳐져 있다는 느낌을 배제할 수 없는데, 이런 씁쓸한 느낌을 더해주는 사건이 바로 이곳에서 일어났다. 바로 여기가 조선 역사 중에도 손꼽을 만큼 널리 알려진 ‘사도세자 비극’의 무대다. 바로 이곳 명정전 뜰에서, 채 이립(而立)도 되지 않은 사도세자가 아버지 영조의 어명에 따라 뒤주에 갇혀 살해됐다. 사건이 일어난 때는 음력 5월이었다 하니, 만물이 활기를 띠는 여름날 홀로 어둠 속에 생을 마친 사도세자의 슬픈 넋이 아직도 이곳에 머무는 건 아닌지 가늠해본다.

  • 창경궁 숭문당. 임금과 신하가 이곳에서 학문을 교류했다. 

 
  • 창경궁 함인정. 옛 그림인 <동궐도>에 따르면 3면이 막혀 있었다고 하나, 현재 이곳은 사면이 개방돼 바람이 드나든다.

 
  • 창경궁 명정전 앞뜰에서 바라본 국립서울대병원. 명정문의 고즈넉함과 병원 건물의 도회적 느낌이 대비된다.

이어진 길로 나가면 숭문당과 함인정이 나온다. 숭문당은 한자 그대로 학문을 숭상한다는 뜻의 학문 경연장이며, 함인정은 인의에 흠뻑 젖는다’는 뜻의 정자라고 조선 시대 문헌인 <궁궐지>는 전한다. 구석에 치우쳐 음울한 느낌을 주는 문정전과 달리, 이곳은 탁 트여 시원한 느낌이다. 명정전 앞뜰뿐 아니라 여기서도 정면에 국립병원인 서울대학교병원이 보이는데, 대학병원의 차가운 유리창문과 숭문당의 한지 문을 번갈아보노라면 500년 세월의 간극을 느껴볼 수 있다. 

  

창경궁 내전은 조선 숙종비 희빈 장씨(본명 장옥정)의 굴곡진 삶의 전설이 담긴 곳이다. 희빈 장씨는 이곳에서 인현왕후를 향한 질투심을 몰래 삭였다. 


왕실의 침전, 창경궁 내전

이곳의 오른편에 창경궁의 내전(內殿)이 있다. 바로 경춘전, 환경전, 통명전, 양화당이다. 내전이란, 집으로 치면 안방에 해당하는 곳으로서 왕과 왕비의 침전 기능을 하는 곳이다. 조선 정조와 헌종이 경춘전에서 탄생했으며, 수많은 왕후가 이곳에서 승하했다. 내전의 중심 전각인 통명전은 주로 왕비의 침전으로 사용됐고, 바로 옆 양화당은 접대 공간으로 사용됐다.

명정전이 사도세자의 아픔이 묻힌 곳이라면, 통명전은 장희빈 일화의 배경이 된 곳이다. 조선 역사를 통틀어 가장 변덕스러운 왕으로 꼽히는 숙종 때의 일이다. 일개 궁녀에서 왕비가 된 숙종비 희빈 장씨(장희빈, 본명 장옥정)의 일화에 관해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인현왕후를 저주했다는 빌미로 끝내 사약을 받은 희빈 장씨가, 왕후를 향한 각종 저주 물건을 파묻었다는 곳이 바로 통명전 주변이다. 

희빈 장씨는 왕비보다 한 단계 낮은 ‘빈’으로 강등되자 앙심을 품고 인현왕후 형상의 꼭두각시와 동물 사체 등을 통명전 주변에 몰래 묻었는데 이것이 탄로나 목숨을 잃게 됐다. KBS 2TV 사극 <장희빈> 등, 장희빈을 그린 수많은 드라마는 장 씨를 영리하다 못해 표독하기까지 한 미모의 지략가로 그려내고 있는데, 과연 긴 세월 인현왕후와 장희빈을 저울질하며 정쟁의 소용돌이를 비켜간 숙종은 아무런 책임이 없는지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 과거 왕실 마구간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창경궁 궐내각사 터. 일제 때 관청이 헐리고 동물원이 세워졌으나,
    지난 1980년대 우선 터만 복원됐다.

 

한 때 말이 뛰놀던 창경궁 궐내각사터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그 흔적이 모두 사라졌으며, 지금은 푸른 잔디만이 단정히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사라진 그곳, 내전 터와 궐내각사 터

창경궁은 왜란과 내부 화재로 중건이 거듭됐다. 이에 따라 지금은 그 흔적조차 남지 않아 문헌으로만 가늠할 수 있는 구역이 있는데, 바로 내전 터와 궐내각사터다.

이 가운데 내전 터는 앞서 살펴본 4곳의 내전과 비슷한 기능을 했던 곳이다. 지금 이곳은 오래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고적하게 버티고 있을 뿐이지만, 과거에는 공주와 궁녀들을 위한 처소가 있던 곳이라고 한다. 또 왕자들을 위한 건물도 있었다고 하는데, 역시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아울러 궐내각사터는 군사 업무를 관리하는 도총부, 왕실 수레와 말을 관리하던 내사복시, 마구간, 사료 창고 등이 자리했던 곳이다. 당시 말은 가장 빠른 운송수단이었으니, 오늘날로 치면 KTX 차량기지쯤 되었던 셈이다. 지금 이곳은 너른 터에 풀만 가지런히 자라고 있는데, 말들을 놓아먹였을 이곳에 일제가 무엄하게도 동물원을 만들었다(1986년 복원사업 때 동물원은 헐렸다). 그리고 이름도 창경궁이 아닌 ‘창경원’으로 격하했다. 이는 조선의 궁궐을 한낱 유원지로 전락시키려는 일제의 비열한 계략이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이곳의 본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단서가 창경궁과 창덕궁을 그린 ‘동궐도’에 있다. 빛바랜 화폭에 정갈히 담겨 있는 궐내각사는 ‘터’가 아닌 일련의 단정한 건물들로 묘사돼 있다. 만약 이마저 남아 있지 않았다면 우리 후손들은 당시의 모습을 떠올릴 때 오롯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창경궁 단청(왼쪽)

  • 장식기와(오른쪽)

창경궁, 우리 뿌리의 한 가닥을 찾아서

500년 역사의 산실을 어찌 종이 몇 장에 요약할 수 있을까. 건물 한 동, 나무 한 그루마다 사연 없는 곳이 없고, 사람 손길 안 닿은 곳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알아야 한다. 창경궁이 왜 지어졌고, 어떻게 훼손됐으며, 무슨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그저 창경궁을 ‘다녀오는’ 것이 아닌, 창경궁을 ‘알아보려는’ 사람이라면 창경궁 곳곳에 얽힌 우리 옛 이야기들을 스스로 조사하고 배움이 옳을 것이다.

고궁 담장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거나, 창경궁 연못에 사는 향어에게 고기밥을 주는 것은 소풍이지 답사는 아니다. 물론 그렇게라도 역사의 자취를 찾아 나서는 것이 나름의 의미가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건강해지고자 하는 사람이 우선 자기 몸을 정밀 검진하듯, 건강한 국민 의식을 가지려는 사람은 우선 우리 곁의 문화재들을 꼼꼼히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세계화를 외치면서 정작 자기 자신의 문화에는 무지하다면, 이는 개인의 부끄러움일 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손실이다. 자기 자신의 뿌리에 관해 무지한 국민이 과연 한국의 세계화를 도모할 수 있을까?

 
  • 창경궁 숭문당 뒤뜰 담장의 오래된 나무. 석축을 파고든 뿌리가 세월을 짐작케 해준다.

한때 창경원이라는 치욕적인 이름으로 불렸던 창경궁. 고아한 옛 정취 대신 짐승의 분뇨 악취가 풍겼던 그곳은 아직도 제 모습을 찾는 중이다. 소실된 건물 모두가 복원된 것은 아니며, 이미 복원된 곳이라도 더욱 치밀한 역사적 고증이 필요한 곳도 있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낡고 갈라진 단청과, 잡풀이 돋아버린 기와, 그리고 오직 창경궁만이 간직한 옛 조선 왕조의 비화(悲話)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창경궁을 기억해야 하고, 아픈 손가락 돌보듯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창경궁에 가거든, 긴 세월 우리 곁에 있어줘 고맙다고, 이렇게나마 남아 있어줘 감사하다고, 단청에도 기와에도 말을 걸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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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E.H.Carr'이라는 말이 있죠? 긴 세월 속에 역사의 길을 함께 걸어온 모든 만물에 대해 호기심이 더욱 들게 되네요.   

트래블투데이 이나래 취재기자

발행2014년 11월 11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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