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경릉] 아버지 업보의 대가를 치른 의경세자, 국내여행, 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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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경릉] 아버지 업보의 대가를 치른 의경세자


 헌종의 경릉(景陵)과 능호가 같은 또 하나의 경릉(敬陵)에는 수양대군 세조의 아들 의경세자(추존왕 덕종, 德宗, 1438~1457년)가 잠들어 있다. 문무에 모두 능했던 아버지의 피를 반만 물려받았는지 의경세자는 어려서부터 해서(楷書)에 능하고 글 읽기를 좋아하였으나 몸이 병약했다. 
 1438년(세종 20)에 세조의 맏아들로 태어난 의경세자는 좌의정 한확의 딸 소혜왕후를 맞이하고 월산대군과 훗날 조선 제9대 임금이 되는 성종을 낳았지만, 워낙 병약한 탓에 요절하고 만다. 그의 나이 약관(弱冠) 20세였다.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가 내린 저주 

  • 고양시 서오릉 중 하나인 경릉, 잘 다듬어진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다

    고양시 서오릉 중 하나인 경릉, 잘 다듬어진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다.

의경세자는 아버지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조카 단종의 왕위를 빼앗고 즉위하면서 1455년 7월 세자에 책봉된다. 예정대로라면 아버지의 왕위를 물려받아 옥좌에 앉을 운명이었다. 하지만 아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저승에서 나선 현덕왕후는 의경세자의 운명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의경세자의 죽음을 두고 단종의 생모인 현덕왕후의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조카의 왕위를 찬탈한 후 세조는 성삼문, 박팽년 등 아버지인 세종 때부터 총애를 받은 유능한 학자들이 단종의 복위 운동을 꾀하자 관련인물을 모두 처형했으며, 심지어는 자신의 친동생인 금성대군(세종과 소현왕후 사이의 여섯 번째 아들)마저 자신에게 반기를 들자 처형했다. 그것도 모자라 세조는 영월로 유배를 보낸 단종에게 사약을 내리려 한다. 그야말로 단종과 관련된 인물과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상황이었다. 이 소식이 저승에까지 전달된 것일까? 현덕왕후는 세조의 꿈에 나타나 분노한 얼굴로 그를 꾸짖었다. “어찌 네놈이 죄 없는 내 어린 자식을 죽이려 하느냐! 나 역시 네 자식을 가만두지 않겠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깬 세조는 다시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고 있는데, 그때 동궁의 내시가 황급히 달려와 세자의 위독함을 전한다. 소식을 들은 세조는 급히 동궁으로 향했지만 의경세자는 이미 세상을 뜬 후였다고 한다. 세조 즉위 3년 만인 1457년 9월의 일이다. 

 
  • 경릉에는 후에 덕종으로 추존된 의경세자와 소혜왕후가 잠들어있다

    경릉에는 후에 덕종으로 추존된 의경세자와 소혜왕후가 잠들어있다.

사실 이 일화는 세조의 왕위 찬탈을 못마땅하게 여긴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볼 수 있겠다. 실록을 보면 의경세자는 본래 몸이 약해 세조는 늘 걱정했으며 세자가 세상을 떠나기 오래전부터 병이 나아지도록 갖은 애를 쓴 것으로 나타나 있다. 더군다나 의경세자(1457년 9월)는 단종(1457년 10월)보다 먼저 죽었으니 후대에 지어진 이야기를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어쨌든 세자의 죽음으로 끝날 것 같았던 현덕왕후의 복수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또다시 세조의 꿈에 나타난 그녀는 세조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저주를 퍼부었고 꿈에서 침을 맞은 곳에는 여지없이 흉측한 종기가 돋기 시작했다. 실제로 세조는 재위 기간 중 오랜 시간을 종기 때문에 고생했으며 종기로 인한 피고름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는 세조의 어의가 오대산 상원사에서 발견되기도 하였다. 거기기에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세조의 핏줄 예종(20세), 성종(38세), 연산군(31세) 모두 역대 조선 임금의 평균수명인 44세 보다 훨씬 못미처 단명하니 후대에 지어진 이야기라 할지라도 현덕왕후의 저주가 소름끼칠 만큼 들어맞는 부분이 많다. 그렇다보니 세조와 현덕왕후의 일화는 오늘날 사극의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가 되기도 한다.

단종의 편에 섰던 인물들에게는 속이 후련한 일이었을지 모르나 아버지가 저지를 업보의 대가를 치른 셈이 된 의경세자의 죽음은 조정 내에서 꽤 안타깝게 여겨진 듯하다. 실록은 그의 죽음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세자가 본궁 정실(正室)에서 졸(卒)하였다. 세자는 용모와 의표(儀表)가 아름답고 온량(溫良) 공경(恭敬)하며, 학문을 좋아하고 또 해서(楷書)를 잘 썼다. 양궁(兩宮)이 애도(哀悼)하니, 시종한 여러 신하들이 마음 아파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세조실록 9권, 3년(1457년 9월 2일)> 

 

[트래블아이 왕릉 체크포인트]

서오릉은 동구릉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왕과 왕비의 능으로 조영되어있는데 서오릉 내 경릉(敬陵)은 의경세자와 그의 비 소혜왕후가 잠들어 있다. 의경세자는 왕위에 오르지 못한 채 세자 시절에 요절하였지만 아들인 성종에 의해 덕종으로 추존되었다. 그러나 능은 부왕인 세조가 간소하게 진행하라는 장례 의례에 따라 병풍석이나 난간석 등은 설치되지 않았다. 다만, 소혜왕후는 살아생전에 왕비로 책봉되어 그녀의 능은 왕릉의 능제를 갖춘 점을 볼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위계로 따지면 소혜왕후가 덕종보다 높아 조금은 어색한 모습인데 살아생전의 신분의 차이가 능에 드러나 있는 셈이다.

경릉(敬陵)의 특이한 점은 또 있다. 바로 우왕좌비(右王左妃)의 원칙에 어긋났다는 것이다. 서로 조금 떨어진 다른 언덕 위에 조영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형식을 취한 경릉(敬陵)은 왼쪽에 왕릉, 오른쪽에 왕비릉이 있다. 살아생전에 신분이 높았다고 자리까지 빼앗은 것인지 모르겠으나 의경세자 입장에서는 조금 섭섭해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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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5년 07월 17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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