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하늘이가 손꼽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입니다. 달력에 색연필로 크게 동그라미도 그려놓았지요. 바로 하늘이의 외국 펜팔 친구 데이빗이 오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이는 설레는 마음에 한숨도 못 잤습니다. 친구가 도착하면 무엇을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 잠을 설친 것이지요. 아침 일찍 일어난 하늘이는 분주하게 친구를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우리나라와 하늘이가 살고 있는 보성을 함께 알려줄 수 있는 좋은 것이 없을까 생각하던 하늘이는 좋은 방법이 생겼다며 싱글벙글 입니다. 드디어 만난 하늘이와 데이빗. 하늘이는 곧장 녹차 밭으로 데이빗을 데려갔습니다. 데이빗은 녹차를 먹어본 적이 있다고 말했지요.
“데이빗! 녹차를 마셔본 적 있다고? 티백에 담겨져 있는 녹차를 말하는 거지? 오늘 우리가 마실 녹차는 좀 달라! 기대하라고~”
한껏 신이 난 하늘이는 데이빗을 데리고 녹차 밭을 구경한 뒤 조그마한 다실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아주머니가 계셨고 사람들은 조용하게 자리에 앉았습니다. 하늘이와 데이빗도 조용히 자리에 앉았지요.
“반갑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녹차 밭에 오신 여러분과 차를 함께 나누어 마시게 되어 기쁘네요. 오늘은 다기를 이용하여 차를 우리는 법, 그리고 차를 마시는 예절 등 다례에 대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볼 거예요.”
하늘이가 외국인 친구 데이빗을 위해 준비한 것은 바로 다례체험이었습니다. 보성녹차의 진중하고 진한 맛을 좀 더 세심하게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지요.
선생님께서는 다기의 이름과 함께 오늘 마실 차는 올해 수확한 햇차로 우전이라고 불리는 녹차를 이용하여 차를 마시는 예절까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우선 두 손으로 뜨거운 물을 사발에 붓고 다관 뚜껑을 열어 조금 식은 물을 다관에 따릅니다. 그리고 찻잔이 따뜻해 질 수 있도록 뜨거운 물을 부어두고 차 우릴 물을 준비합니다. 한김 나간 따뜻한 물을 다관에 붓고 여린 녹차를 조금씩 덜어 넣습니다. 녹차가 우러나는 동안 찻잔을 데우던 물을 퇴수기에 따라버려주세요.”
다실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정숙한 분위기로 차를 우리고 예를 지키는 모습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하늘이와 데이빗은 더욱 진지한 모습이었지요. 차를 우리는 방법은 계속 되었습니다.
“자! 앞에 손수건처럼 보이는 다건을 이용하여 다관을 받친 후 팽주(차를 우리는 사람)는 자신의 잔에 먼저 따라보고 색과 향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팽주는 각각의 잔에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세 번에 나누어 차를 따릅니다. 잔 받침이라 불리는 차탁에 잔을 올려 큰 손님부터 드린 뒤 가볍게 목례를 하고 세 번에 나누어 차를 입안에 굴리며 색과 향 그리고 맛을 차례로 음미합니다. 어때요? 어렵지 않죠?”
하늘이와 데이빗도 천천히 차를 음미해보았습니다. 그동안에는 향과 맛을 느끼기 전에 꼴깍꼴깍 마셨던 것을 약간 후회하며 말이지요.
하늘이도 보성에 살면서 녹차를 수없이 마셔왔지만 녹차가 이렇게 진하고 무거운 맛을 내는지 몰랐습니다. 그동안에는 그저 텁텁하고 흔한 차라고만 여겼었지요. 무엇보다 외국에서 온 데이빗이 어설프지만 진지하게 차를 우리고 마시는 모습을 보면서 내심 뿌듯하였습니다.
하늘이는 늘 즐겨 마시는 녹차이지만 늘 티백이나 가루로 물에 타 마시기만 하여 가볍게만 생각하였는데 실제로 예를 갖추어 먹어보니 느낌이 달랐습니다. 훨씬 고소하고 단 맛이 느껴지며 진한 맛과 향이 입안에 가득 맴돌았지요.
데이빗도 굉장히 즐겁고 색다른 추억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저렇게 여린 잎에서 이런 진한 향을 낼 수 있다면서 놀라워했지요.
오늘은 데이빗과 하늘이 둘에게 여린 잎이 남긴 진한 향은 더욱 진한 추억으로 한 잔의 녹차와 같은 날로 기억될 것입니다.
둘은 아무 말이 없다. 제천 가는 버스에 올라탄 후로 둘은 아무 말이 없다. 남자는 초조하게 손가락만 주기적으로 까딱하고 있었고 여자는 창밖만 내다볼 뿐이었다. 둘은 아무 말이 없지만, 머릿속으로 스쳐 가는 생각들은 같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딜 간다고? 유학?”
“그렇게 됐어.”
“그렇게 됐다니, 무슨 말이 그래? 그럼 나는?”
그럼 나는. 여자는 자신을 책임져 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언제 돌아올지 모르겠다는 남자의 말에 나는 너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냐를 묻는 것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행복할 것 같냐고 물었을 때. 남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가 이러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둘은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고 행복한 둘만의 미래를 머릿속으로 수만 번도 더 그려왔었다. 이제 그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한 여자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사실 여자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그가 돌연 선택한 유학길이 아니라 ‘같이 가자’라는 이 네 글자가 남자의 입에서 나오지 않음이었다.
여자는 차마 ‘나도 같이 가면 안 돼?’라고 물을 수 없었다. 남자의 눈빛은 이미 고요했고 적막하기까지 했다. 여자는 같이 가자는 말을 잊은 건 아닌가 생각했지만 아무런 기대를 바랄 수 없는 눈빛이었다. 소리를 지르고 울어보아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여자도 알았다.
“곧 도착이야.”
긴 침묵을 깬 것은 여자였다. 여자의 말이 끝나고 난 뒤 정확히 2분 뒤 버스는 정차했다. 남자는 여자에게 좀 더 근사한 곳을 가지 왜 하필 여기냐고 했고 여자는 대답이 없었다.
암묵적인 이별상태의 남녀가 마지막이라고 해서 굳이 근사한 곳에 갈 필요가 있을까? 애써 낭만적인 분위기로라도 서로의 앞날을 축복해주어야 하나 생각했다. 사실 둘의 관계가 정말 좋았을 때 분위기 따위는 상관이 없었다. 그곳이 어디든 그저 둘이 있는 곳 그거면 좋았다.
여자는 어렵게 말을 꺼냈다. 차분히 그리고 애써 아무런 원망도 섞여 있지 않은 듯 이야기를 하려니 목소리가 먹먹했다.
“옛날 아주 옛날에 어떤 도령이 있었어. 선비였던 도령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던 중이었지. 날이 저물고 어떤 농가에서 하룻밤을 지새우는데 아주 아름다운 낭자와 마주하게 된 거야. 그런데 과거를 보러 가야 했던 도령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고 낭자를 떠나게 되었지. 아무리 기다려도 도령이 돌아오지 않게 결국 낭자는 죽고 말았대.
하지만 걱정마 나는 아주 잘 살 거니까.”
남자는 무심한 엷은 미소를 보였다. 왜 여자가 갑자기 이곳을 오자고 하였는지 알겠다는 표정이었다. 남자가 말없이 여자의 손을 잡았다. 아주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기를 가지고 있었다.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의 마음과도 같았다. 아주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여자는 배가 고프다고 했고 둘은 근처 도토리묵 집으로 갔다. 남자는 또 겨우 도토리묵이 뭐냐고 했고 여자는 여전히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저 며칠 전 C와 만났던 일을 떠올린다. 남자가 왜 돌연 유학을 떠나기로 했는지 왜 여자에게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지 C의 입에서 듣게 되었다. 그리고는 남자에게 이곳을 오자고 한 것이다.
말캉말캉한 도토리묵이 동동주와 함께 나왔다. 남자가 여자에게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고 이별을 결심했던 것처럼 여자도 남자에게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고 남자를 보내주려는 것이다. 그들은 여전히 웃고 있었고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고 있었다. 아주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은 표정으로.
또 한숨이다.
“내가 몇 번을 말해! 양말 거꾸로 벗어 놓지 말고, 한 번 입은 옷은 옷장에 넣어두지 말라고 한 말 또 까먹었어요?”
“그래. 그러니까 당신이 하라고 당신이.”
“내가 언제까지 당신 뒤치다꺼리나 하고 있어야 되는데. 당신 정말 나 없어도 이럴 거냐고요!”
아내는 눈물 섞인 소리를 내뱉었다.
“없긴 누가 없다 그래. 그런 쓸데없는 소리 마.”
아내에 비해 꽤 담담한 어투다. 남자의 목과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으나 아내가 눈치 채기엔 남자의 말투가 너무 무심했다.
남자의 사전엔 책임감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학교에서도 반장은커녕 기준도 제대로 외치지 못하던 남자였다. 심지어 그는 나라와 국민들의 안위조차 자신의 가녀린 두 어깨에 짊어지는 것이 무거워 군대도 가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도 아내와 노모가 있다. 말하자면 그는 가장인 셈이었다. 부양해야할 가족. 남자가 생각하는 그 책임감이라는 것이 남자의 어깨에 잔뜩 얹혀 있는 것이다. 그는 아내에게 나쁜 남편이었다. 아내가 아프기 전까지. 도무지 한 회사에 정착해서 다닐 생각도 못하던 남자를 아내는 조금도 채근하지 않았다. 그런 아내에게 남들은 저러다 화병에 걸려 제명에 못 죽을 거라고 했다. 말이 씨가 됐을까. 아내는 화병은 아니었지만 의사에게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죄가 있다면 무책임한 남편을 방관한 죄일 것이다.
아내는 병원에 다녀온 뒤부터 남편에게 평소에 하지 않던 잔소리를 해대기 시작했다. 아마 자기 없이 남편 혼자 스스로 살아가는 삶을 익혀두게 할 작정이었을 것이다. 남편은 그런 아내에게 신경질을 부렸고 심지어는 아내의 짐을 싸 내보내려고 아내의 서랍을 뒤졌다. 그러다 발견한 약봉지와 진단서. 남자는 그날로 집을 나갔다.
남자에게서 연락이 온 것은 남자가 집을 나간 후로부터 보름쯤 지난 후였다. 남자는 그저 조금만 기다리라는 말을 할뿐 다른 말이 없었다.
남자는 전국 방방곡곡 아내의 병에 좋다는 약을 수소문하며 찾아 다녔다. 전국에 유명한 의원들을 찾아가 아내의 진단서를 보여주며 고칠 수 있겠냐고 따져 묻듯이 소리를 지르기도 벌써 보름하고도 닷새가 넘어섰다.
남자는 중얼거리듯 조금만 기다려 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남자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도착한 곳은 산청. 남자는 어렴풋이 산청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아내가 드라마를 볼 때였나 그럴 것이다.
남자는 몸에 좋다는 약초들을 찾아다니느라 그동안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 남자는 간만에 어느 선술집 자그마한 방에 몸을 뉘었다.
숨을 쉴 때마다 앙상한 갈비뼈 윤곽이 드러났다 사라지곤 했다. 아내에게 이렇게 신경을 써 본적이 있을까. 그동안 아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생각했다.
피곤한 몸이라 금세 잠이올 줄 알았는데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문득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내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뚜르르, 한참을 신호가 흐르고 딸깍 소리가 났다.
“여보세요.”
“나야. 별 일없지?”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 없으니까 편하지 뭐, 안 그래? 양말 뒤집어 놓는 사람도 없고.”
“당신도 참. 그나저나 어디서 뭐 하고 다니는 거예요?”
“내일 올라가. 그 때까지만 기다려. 꼭.”
남자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어디 아프지는 않냐고 물어보고 싶었으나 그럼 아내와 자신 모두가 말을 잇지 못할 것 같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아내의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소와 다름없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아내혼자 이별을 준비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왜 내게 이야기 하지 않았냐고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으나 남자는 여전히 무심한 어조로 기다리라는 말뿐이다.
통화를 하는 남자의 손에는 아내에게 가져다 줄 한 아름의 약초와 한약재가 쥐어져있었다.
“유코, 여기야!”
공항에서 부르는 일본 이름이 조금 낯설었다. 몇 년 전부터 펜팔을 주고받아 오던 일본인 친구가 드디어 한국 땅을 밟게 된 것이다. 유코는 상기된 표정으로 내 쪽으로 다가왔다. 둥근 얼굴에 긴 머리를 가진 유코는 내 예상처럼 키가 작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일본 소녀였다.
“안녕, 미주. 만나고 싶었어. 나는 한국을 많이 좋아해.”
이번 여행을 위해 한국어를 많이 공부했다는 유코가 더듬거리며 인사를 건넸다. 나는 유코를 꼭 안아 주었다.
공항을 떠나 우리 집이 있는 강북 쪽으로 향했다. 한국은 물론이고, 외국에 나와 본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는 유코는 많이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 편지에서 ‘한국인들은 일본인을 많이 싫어하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그것을 신경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유코를 데리고 어디로 가장 먼저 갈까 고민하다가, 유코가 ‘쇼핑을 가장 좋아한다.’고 썼던 것을 기억해냈다. 아무래도 문화재 같은 것들을 먼저 보여주는 것 보다는 즐거운 분위기에서 긴장을 풀어주는 것이 급선무일 것 같았다. 어디가 좋을까 생각하다가, 외국인들이 쇼핑을 위해 많이 찾는 명동을 떠올렸다.
“일본의 하라주쿠 같은 곳이 있는데, 한 번 가 볼래?”
유코는 자신의 친구들도 한국에 왔을 때 명동에 가 보았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명동의 거리는 여느 때처럼 북적이고 있었다. 유코는 내 팔을 꼭 잡고 걸었다. 친구들과 왔을 때는 몰랐는데, 유코와 함께 걸으며 살펴보니 여기저기서 일본어와 중국어로 말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유코도 일본어로 말하는 사람들과 일본어로 된 안내판이 적혀 있는 것들을 보고 신기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옷이나 화장품들을 사며 명동을 활보하는 동안, 유코의 긴장도 많이 풀린 것 같았다.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유코는 명동 거리에서 느껴지는 젊음이 마음에 쏙 든 모양이었다. 호객인들 몇이 유코가 일본인인 것을 알아채고 다가와 말을 걸자 웃는 얼굴로 대답을 하기도 했다. 중국어로 말을 걸었다가도, 유코가 입을 열자마자 일본어로 다시 말을 걸었다. 우연히도 우리가 들어간 음식점의 종업원도 일본인이기에, 이제 유코는 자신감을 조금 되찾은 것 같았다.
정말 외국인들이 많이 오긴 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유코가 웃으며 말을 꺼냈다.
“미주, 여기 사람들은 모두 친절한 것 같아. 나는 한국에 오면 한국어만 써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여기 사람들은 일본어도 잘해.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
일본어와 한국어가 반쯤 섞인 유코의 말을 듣고, 나도 조금 뿌듯해졌다. 예전에 중국으로 여행을 갔을 때, 한국인과 한국어로 쓰인 호객 문구들을 보고 반가웠던 것과 같은 기분일까. 낯선 땅에 와서 혹시나 길을 잃거나 사기를 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많았는데, 한국인들이 많이 다녀가는 곳이다 보니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중국 상인들도 많았고, 모두 한국인을 친절하게 대해줘서 정말 고마웠던 기억이 났다. 전에는 느끼지 못했었는데, 외국인 관광객들을 가장 많이 배려하는 곳이 바로 명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명동의 필수 코스, 회오리감자와 노점상 식혜까지 먹은 뒤 숨을 좀 고를 겸 번화가를 벗어나 명동성당으로 향했다. 해가 넘어갈 무렵이라, 명동성당의 멋진 야경을 보여주기에 딱 좋은 시간이었다. 유코는 성당의 규모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건물을 한 바퀴 둘러보고 있자니 여기저기서 아름다운 조명이 켜지기 시작했다.
그 때, 유코가 저 멀리서 한 무리의 불빛이 일렁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봉헌초였다. 유코와 나도 촛불을 하나씩 켜 보았다.
“한국의 밤은 정말 아름다운 것 같아.”
초를 밝히고 돌아서는데, 이번에는 건물 너머로 남산타워가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것들을 보여줄 수 있어 다행이었다. 내가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유코가 먼저 벤치에 걸터앉아 남산타워를 올려다보았다. 미소를 띠고 있는 유코의 옆얼굴을 보며, 나도 따라 웃었다.
주말아침부터 남편은 머리가 복잡하다며 아스피린을 찾았다. 얼마 전 이직한 회사에서의 업무스트레스와 잦은 야근 때문인 것 같다며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사실 과도한 피로를 풀지 못한 탓도 어느 정도 있었다. 삶에 쉼표 하나 그리지 못하고 경주마처럼 달려가는 삶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 꼬맹이는 아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하다는 아빠 다리에 매달려 놀러가자고 성화였다. 남편은 그저 쉬고 싶다며 아이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동화책 하나를 쥐어주었다. 아이는 동화책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꾸만 남편을 귀찮게 했다.
“자기야 그러지 말고 오늘 망우리 공원 다녀오는 거 어때? 자기도 맑은 공기 쐬면서 머리 좀 식히고 우리 집 요 꼬맹이랑 놀아주기도 하고. 응?”
남편은 보나마나 귀찮다고 하겠지만 특기에 없는 콧소리를 내가며 애교를 부렸다. 애교가 먹혔는지 아니면 정말 머리를 식히고 싶어서였는지 남편은 선뜻 그럴까 했다. 남편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서둘러 간편하게 나들이 짐을 꾸렸다.
망우리 공원에는 사람이 많지도 적지도 않게 적당히 분산되어 머무르고 있었다.
“자기야, 여기가 사색의 길이래. 오늘 여기 걸으면서 생각들 좀 정리하고가.”
아이는 모처럼 나온 나들이 길에 신이나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아이를 진정시키고자 불러 세웠다.
“도진이 너, 여기가 어딘지 알아?”
“엉, 여기 공원이잖아. 공원!”
“맞아, 공원이야. 그런데 여기 원래는 공동묘지였어. 도진이 공동묘지 알지? 으으으 귀신 나오겠다!”
아이를 골려주니 으악 하면서 아빠 품으로 쏙 숨었다. 아이를 골려주려고 꺼낸 이야기였지만 사실이었다.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공동묘지라는 이미지를 개선하고 휴식공간으로의 탈바꿈을 거치자 많은 사람들이 찾기 시작한 곳이다. 사실 아이를 이곳으로 데려온 이유가 또 하나 있었다.
“도진아, 엄마가 여기는 ‘사색의 길’이라고 했지? 사색의 길이 뭐냐면 조용히 생각을 하며 걷는 길이란 뜻이야. 도진이 학교 복도를 걸을 때 조용조용히 걸어야 하지? 도서관에서처럼.”
아이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기도 그렇게 걷는 거야. 조용히. 그리고 엄마가 여기가 공동묘지라고 했지? 무서워 할 것 없어. 이곳에는 일제에 항거하신 독립운동가 그리고 만해 한용운 선생님과 소파 방정환 선생과 같은 선생님들이 계신 곳이야.”
언제부턴가 아이와 함께 남편도 내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남편과도 이곳은 처음이었기에 그럴 것이다. 늘 집근처 공원이나 한강을 찾곤 했는데 오늘은 모처럼 이곳을 오자고 우긴 이유가 여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내 말을 백프로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무언가 알아듣겠다는 듯 이마에 힘을 잔뜩 주고 뒤꿈치를 살짝 들며 사뿐사뿐 걸었다. 아마 복도에서 걷듯이 조용히 걸으라고 한 탓이었다. 웃음이 풋 나오려는 걸 참고 나도 사색에 잠겨보려 했다. 오랜만에 남편 손을 잡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어쩌면 이곳이 삶과 죽음이 이어지는 공간이 아닐까. 전혀 무섭지도 오싹하지도 않은 담담하고 경건한 느낌이었다. 공원의 또 다른 모습이자 서울의 또 다른 모습이랄까. 서울의 화려한 겉모습에 이렇게 잠잠한 공간이 있다는 것이 오묘했다.
남편의 얼굴을 올려다보니 살짝 눈을 감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 길이 사색의 길인만큼 혼자만의 생각을 할 수 있도록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저 남편이 눈을 떴을 때 모든 근심이 내려놓아지길 바랄뿐이다.
그것은 우리 가족에게 계획된 마지막 여행이었다. 여섯 살짜리 딸아이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알지 못해서인지 김밥을 싸 가자고 성화였다. 잠이 많아 아침마다 깨워서 유치원에 보내기가 그렇게 힘들었던 아이가 나보다도 일찍 일어나 고사리손으로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남편은 아직 자고 있는 것 같았다. 딸아이가 아빠를 깨우겠다며 쪼르르 건넛방으로 달려갔다.
“마지막으로 민주가 가고 싶다고 했던 섬이나 다녀오자. 텔레비전에서 본 이후로 벌써 열 번도 넘게 조른 것 같아.”
나는 목소리가 떨려오는 것을 꾹꾹 참으며 말했다. 사소한 일로 시작된 다툼이 어느새 산불처럼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져 있었다. 그게 무엇 때문이었더라, 아마 설거지나 빨래 같은 아주 사소한 문제였던 것 같다. 각방을 쓰게 된 지도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고, 하루 종일 말 한마디도 주고받지 않은 날도 허다했다. 다른 건 다 괜찮았다. 우리 둘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점점 더 소극적인 성격이 되어가는 민주를 두고 보기가 힘들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는지, 먼저 이혼을 제의해 왔다. 이상하게도 그때 내게는 딱히 이혼을 거절할만한 구실도, 이유도 떠오르지 않았다.
섬에 다녀온 뒤에 이혼 서류 같은 것들을 정리하고, 민주에게도 엄마 아빠의 결정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이번 여행은, 우리 가족에게 있어서 마지막 여행이 될 터였다.
서울에서는 두 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장고항에서 고작 십 분. 배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섬이라기에 민주가 멀미를 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장고항에서 섬이 훤히 보일 정도였다.
국화도. 생각할수록 기억하기도 쉽고 참 예쁜 이름이었다. 고작 여섯 살밖에 안 된 민주도 텔레비전에서 한 번 본 섬 이름을 기억하고 한 달이 넘게 국화섬에 데려가 달라고 졸랐을 정도니까 말이다. 국화도는 바다 위에 떠 있는 한 송이의 국화처럼 작았다. 민주가 옷소매를 잡고 늘어지며 외쳤다.
“엄마, 나 토끼섬!”
토끼섬이 뭔가 했더니 도지섬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남편이 민주를 안아 올려 목마를 태워 주었다. 민주는 신이 나서 토끼섬, 토끼섬 하고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른다. 국화섬은 세 개의 섬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지만, 세 개 중 가운데에 있는 가장 큰 섬을 이르는 말이기도 한다고 했다. 위성을 거느린 행성처럼, 썰물 때에는 도지섬과 매박섬으로 가는 길이 모두 열린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도지섬으로 향하는 길에 만난 아주머니 한 분이 도지섬에 가는 것을 만류하신 것이다.
“지금 가면 안 될 텐데. 지금 밀물이라 들어가면 못 나올 수도 있어요. 잠깐 물놀이하면서 썰물 때까지 기다려 봐요.”
밀물이었다. 민주가 토끼섬 못 가냐며 울먹이다가, 끝내는 울음을 터뜨렸다. 남편도 나도 당황하여 일단 민주를 달랬다.
“민주야, 아주머니 말씀대로 좀 이따 썰물 때 가면 되잖아. 응?”
민주는 밀물이 싫다며 막무가내였다.
울다 지친 민주를 남편이 안아 재우는 동안 머리를 식힐 겸 산책을 나왔다. 나는 그때야 안내문을 제대로 들여다보았다. 도지섬은 지대가 높아 밀물 때에만 길이 끊기고, 매박섬은 지대가 낮아 썰물에만 길이 열린다고 한다. 남편과 나, 그리고 민주도 밀려오는 파도를 고스란히 받아내야 한다. 나는 도지섬이 될까, 매박섬이 될까. 나는 왈칵 울음이 쏟아져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민주는 국화섬처럼, 도지섬과도 매박섬과도 매번 이별을 되풀이하며 살게 될 것이다.
뒤따라 나온 줄도 몰랐던 남편이 달려와 나를 일으켜주었다. 왜 우느냐고 묻는 남편에게 나는 조금 전의 민주가 했던 말을 되풀이하는 수밖에 없었다.
“여보, 밀물이야.”
잠시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옆에 앉은 친구가 나를 툭툭 쳤다. 진동이 울려 휴대 전화를 확인 해 보니 메시지 한 통이 도착 해 있었다.
‘절대 잠들면 안 돼. 잠드는 사람이 돼지국밥 쏘는 거야.’
알았다니까 그러네. 나에게도 잠들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오랜만에 타는 기차가 신기할 뿐이었다.
서울역에서 테이크아웃 해 온 아메리카노 컵에는 물기가 맺혀, 홀더까지 눅눅해졌다. 기차 여행 기분을 제대로 내기 위해 사 온 김밥과 삶은 달걀도 껍데기만 남은 지 오래. KTX가 아닌 무궁화호를 탄 지라 부산까지는 다섯 시간. 부산역에 도착하기까지 이제 한 시간 정도가 남았다. 오랫동안 기차를 타니 피곤한 듯 잠든 승객들이 대부분인 가운데, 우리 넷만 초롱초롱한 눈으로 장난스런 눈빛을 주고받고 있었다.
서울 중에서도 강북 지역에 살고 있는 우리가 저 먼 남쪽 끝 부산으로의 여행을 결심한 데에는 특별한 계기가 없었다. 부산에 연고지가 있는 친척도 없었고, 야구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사직구장을 보러 부산까지 갈 만큼 열성적인 팬은 아니었다.
부산의 명물인 돼지국밥이나 밀면, 씨앗 호떡 같은 것들도 보성에 가면 녹차 아이스크림을 먹고, 전주에 가면 비빔밥을 먹듯이 당연한 수순일 뿐. 우리에게는 해운대나 광안리 해수욕장 같은 것들도 가까이 있는 만리포나 정동진과 별다르지 않았다.
한 마디로, 부산이 부산이어서 택한 것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대체 우리가 부산을 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야, 이왕에 여행을 갈 거면 부산 정도는 돼야지!”
그렇다. 내가 별 생각 없이 던진 이 말 한 마디에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우리가 원한 것은 여행다운 여행이었다. 부산에 가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두지 않았기 때문에 KTX가 아닌 완행열차를 택했다. 비둘기호가 사라지지 않았다면, 무궁화호 대신 비둘기호를 택했을 것이다. 우리들의 즐거운 여행은 서울역을 출발하며 이미 시작된 것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다섯 시간 동안 조용히 명상만 할 수는 없는 노릇. 우리는 기차 안에서 여행 계획을 짜기로 했다. 우리들의 규칙은, 절대 여행을 떠나기 전에 미리 조사하지 않는 것이었다. 여행의 모든 것들은 여행 중에 결정하기로 했다.
지난 네 시간 동안 우리는 휴대 전화로 관광지를 짜고, 수첩에 메모를 하고, 실제로 가보고 싶은 풍경의 사진들을 공유했다. 여행 계획을 짜는 동안 여행지와 가까워지고 있다니, 얼마나 낭만적인가! 무계획이 계획이라는 우리들의 작전을 듣고 코웃음을 쳤던 수많은 주변 사람들에게 지금 우리들이 느끼는 설렘을 그대로 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몰운대와 보수동 책방 골목, 동백섬, 영화의 거리, 범어사와 영도다리, 광안대교까지 우리는 가고 싶은 곳을 모조리 수첩에 적었다. 하루가 걸린다면 무박 여행이 될 것이고, 일주일이 걸린다면 일주일짜리 긴 여행이 될 것이다. 이 날을 위해 우리 네 명 모두 몇 달 동안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해 왔으니, 여비 걱정도 없었다.
‘이렇게 두근거리면서 도착하기를 기다려 본 건 난생 처음인 것 같다, 야.’
단체 채팅방에 올라온 한 마디를 읽고, 우리는 또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지났다. 다섯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으니, 여행의 시작은 성공적인 셈이었다. 부산역은 큼지막한 여행 가방을 메거나 캐리어를 끌고 있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여행자들의 도시. 나는 부산에게 붙여 줄 첫 번째 타이틀을 이것으로 정했다.
기차에서 떠들지 못했으니, 도착하자마자 남자 애들 답지 않게 수다가 만발했다. 친구 한 녀석이 입이 근질근질해 죽는 줄 알았다며 손나팔을 만들어 소리를 내질렀다.
“우리가 왔다!”
제 갈 길을 찾아 바삐 움직이던 여행자들이 뒤를 돌아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우리가 왔다. 작전명, 부산 정복. 우리는 발길 닿는 대로 부산을 헤맬 것이고, 우리가 본 모든 것들이 우리들만의 부산을 만들 것이다.
아내와 이혼 한 뒤에도 별 탈 없는 생활이 이어졌다. 외국에 나가서 살고 있는 딸은 몇 년 전에 오붓한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결혼식장에서 딸의 손을 잡아주지는 못했지만, 딸과 종종 연락을 하며 지내기는 했다. 딸에게도 이제는 귀여운 딸이 생겼다. 아내와 이혼한 이후로 자주 만나지 못해서일까, 딸도 이제는 삼십 대 중반이 되었지만 내게는 여전히 아이가 아이를 낳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내게는 나이 들어 한 가지 취미가 생겼다. 바로 철새들을 사진에 담는 것이었는데, 조금 더 가까이 조금 더 많이 새들을 담고 싶은 마음에 딸이 결혼한 바로 그 해에는 낙동강 하류로 이사까지 왔다. 사실은 이사를 결정했을 때, 아내가 지금 이 곳에 살고 있다고 들은 것을 조금 염두에 두기도 했었다.
“왜? 왜, 할아버지. 한국, 눈 오는 나라!”
“민주야, 거 가만히 있지만 말고 유리한테 여기 따뜻해서 눈 안 온다고 영어로 설명 좀 해 줘 봐봐.”
나는 매년 설날만 되면 난감한 상황에 처하곤 했었다. 손녀가 태어난 이후로 딸은 일 년에 한 번, 설에만 내 집에 다녀가곤 했는데, 겨울이 없는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나고 자란 손녀딸은 부산에서 항상 눈을 찾는 것이었다. 여섯 살 배기 손녀딸은 부산에서는 좀처럼 눈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눌한 한국어로 매년 눈을 보여 달라 보채다가 종국에는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한층 더 난감한 상황이 찾아왔다. 딸이 돌연 유리만 내게 맡기고는, 제 남편이랑 아내의 집에 다녀오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손녀가 잠든 사이, 딸과 사위가 슬그머니 집을 나섰다. 유리는 역시나 일어나자마자 눈을 찾기 시작했고, 나는 유리의 손을 잡고 딸이 사전에 일러 준 장소로 향했다.
유리가 신이 나서 하도 뛰어 다니는 통에 나는 혹여 유리를 놓칠까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부산시민이 된지도 어느 새 칠 년 차인데 이런 곳이 있는 줄은 몰랐다. 내가 종종 철새 사진을 찍으러 오던 생태공원에 부산에 단 하나 뿐인 눈썰매장이 열린 것이다.
눈썰매장은 눈을 찾으러 나온 아이들로 가득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한 눈에 봐도 예쁘장한 혼혈아인 유리를 보고 연신 감탄사를 터뜨렸는데, 나는 손녀 애의 보호자인 것이 마냥 어색하기만 했다. 일 년에 꼭 한 번 밖에 못 보는 아이인지라 손녀에 대해 아는 것도 거의 없었고, 무엇보다 철새처럼 아이도 곧 제 부모를 따라 내 손을 떠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손녀와의 첫 외출인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부끄럽기도 했다.
“할아버지! 여기!”
슬로프를 미끄러져 내려오며 손녀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아이는 신이 난 모양이었지만, 할아버지 되는 입장에서는 불안하기만 하다. 나는 손녀가 넘어질세라 얼른 썰매가 오는 쪽으로 달려가 손녀를 받아 안았다.
그런데 손녀 쪽으로 달려오다가 발걸음을 멈추는 한 사람이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그 곳에는 이십 여 년 동안 자글자글하게 주름이 져 버린 아내가 서 있었다.
사위는 떠나기 전에 내 손에 먼 타국의 이름이 적힌 비행기 티켓 두 장을 건네주었다. 그것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황망한 표정으로 서 있으려니, 딸애가 다가와 티켓을 쥔 내 손을 잡으며 가만히 말을 걸어 왔다.
“아빠, 있잖아. 옛날에 엄마는, 한 번쯤은 아빠가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고 집에 찾아 와 주기를 바라고 있었어. 아빠가 돌아와야 할 곳이 언제나 우리 집으로 정해져 있었으면 했었어.”
그 날, 아내는 딸과 사위를 따라 왔던 자리에서 나를 마주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던지 황급히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하지만 나는 인파를 헤치고 있는 그 뒷모습에서 미움이나 경멸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설렘이나 사랑은 더더욱 아닌 미묘한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내게도 그렇듯이 아내에게도 아쉬움이 깊게 남았으리라. 제가 사는 낙동강 하류에 어느 새 나도 흘러들어 있던 것을, 아내가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