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벽빛처럼 어둑한 날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았다. 차마 아무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가 없는 분이니까.
한참을 아무 말 없이 바라만 보다가 조금은 진지하게 묵례를 했다. 가볍게 바람이 일자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내가 선생을 이토록 추억하는 건 선생에 대한 감사와 존경도 있겠지만 생각이 가진 무게와 선생이 늘 지니고 있던 칼의 무게 때문이다. 어찌 보면 나라의 한 국민이었고 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그가 그 기다란 칼 하나에 온 백성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야 했기에 그 짐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생각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하루에 수십 명 아니 수백 명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할 것이고 그것은 단 한 사람의 목숨이 아니라 이 나라 이 백성들의 목숨이고 이는 한 가정의 기둥의 목숨이기 때문에 늘 고뇌에 차있고 누구보다 두려웠으리라 생각한다. 눈을 뜨고 감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고 말 한마디에 수백만의 목숨과 나라가 달려있었기에 태산 같은 두려움이 물밀 듯이 밀려왔으리라.
그래도 그가 그의 삶을 다하는 순간까지 지키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
긴 칼로 누구를 벨 것인가. 내가 베고 있는 것이 적장의 목숨일까 혹 자신의 삶이 아닐까 선생은 하루에 수도 없이 고민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의 직분을 숙명처럼 고스란히 받아냈다. 물러서지 않고 당당하게 맞섰다.
갑옷의 무게만큼이나 무겁고 고된 삶 때문에 선생은 지친 몸을 뉘일 때도 차마 그 짐을 내려놓지 못했다. 언제든 일어나 적과 맞설 수 있도록 갑옷을 입고 칼을 옆에 두었을 것이다.
날이 점차 밝아졌다. 조금은 무거운 바람이 일자 대나무 숲에서 기분 좋은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은 늘 한적했다. 사람이 거의 없었고 조용했다. 짙은 안개가 발아래 깔린 것만큼 진중하여 숨소리 한번 내기가 조심스러울 정도다.
내가 가진 삶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생각한 적이 있다. 내가 가진 무게는 도대체 얼마나 되기에 이렇게 힘들어 하냐고 내 자신을 채찍질 하고 싶을 때 이곳을 찾곤 한다.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보낼 때. 이곳을 찾아 그분을 생각한다.
한참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다가 발길을 돌렸다. 아무런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았음에도 이곳을 찾으면 큰 위로를 받곤 한다. 그분의 칼을 보고 위로를 받는다.
날은 이제야 겨우 한낮의 빛을 찾았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요란한 벨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친구의 전화다.
“어디야? 지금 너희 집 근천데 나올래?”
“나 지금 아산이야.”
“너 또 현충사 다녀오는 길이야? 너도 참 대단하다. 사실 장소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매번 갈 때마다 새로워?”
“장소를 보러 가는 것이 아니니까. 네가 뭘 알겠냐.”
“학교에서도 존경하는 위인하면 한결같이 이순신장군이라고 쓰더니... 그래서 언제 올라오는데?”
“지금 가는 길이야.”
다시 이곳을 찾을 때에는 내 삶의 무게에 대한 답을 들고 오고 싶다. 그리고 선생과 함께 다시 한 번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탁. 식탁에 그릇이 부딪치는 소리가 무심하고 매정하다. ‘크음’ 하고 남편이 마른기침을 내뱉었다. 기침에는 증발하다 남은 알코올의 잔해가 남아있었고 이내 공기 중에 산산이 부서졌다.
후루룩후루룩 소리만 공중에 맴돌았다.
오늘도 아침엔 청양고추 팍팍 들어간 콩나물국이다. 남편에게 술 좀 그만 마시고 몸 생각 좀 하라고 그렇게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해도 마이동풍이다. 이런 잔소리가 오고 가고 무거운 침묵의 시간이 반복될 때면 어느 집이나 어느 가정이나 다 비슷한가 보다 생각이 든다. 예전에 우리 엄마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킁킁, 이건 아빠의 냄새다. 아빠가 또 약주를 한 잔 하신 모양이다. 엄마가 한결같이 잔소리를 해도 변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아빠는 참 올곧은 사람이다. 엄마는 아빠에게 잔소리를 빙자하여 모진 소리도 하지만 그건 다 아빠를 위한 거란다.
술이 좋으면 술이랑 함께 살라고 하던가, 술독에 빠진 사람도 당신만은 못할 거야라는 등의 말을 들어도 아빠는 그저 사람 좋은 웃음이다.
아빠는 내게 호랑이같이 무서운 사람이다. 요즘은 딸 바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딸이라면 그저 풀려버린 자물쇠처럼 무장해제인데 우리 아빠는 철저했다. 사랑한다는 말조차 언제 들었나 가물가물하다. 심지어 다른 애들은 늦은 시간이 되도록 딸이 귀가하지 않으면 끊임없이 전화를 한다는데, 우리 아빠가 내게 전화를 할 때에는 아빠 출근 시간에 차키를 두고 왔을 때 가지고 내려오라는 것이 유일했다.
그런 아빠가 무장해제가 되고 딸 바보가 되는 날. 바로 술을 한잔 하시고 들어오실 때이다.
“연주 자니? 아빠 왔어. 아빠가 왔는데 왜 나와 보지도 않아? 이리 와봐.”
“아휴, 술 냄새. 아빠 또 술이야?”
“아이고, 우리 연주 아직 애기네 애기야. 아빠 수염 까끌까끌 하지?”
“아, 따가워. 그리고 이것 좀 놔. 숨 막힌단 말이야.”
사실은 숨이 막혔던 것이 아니라 아빠의 품이 썩 어색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아빠는 지금 이런 모습을 다음날 아침 기억하실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항상 아빠가 술을 드시고 온 다음날이면 북어와 콩나물을 넣은 해장국을 끓여주신다. 특히 청양고추를 송송 썰고 고춧가루까지 팍팍 쳐 아주 매콤하고 칼칼하게 말이다. 내가 맵다고 고추를 쏙쏙 건져놓으면 아빠는 아빠그릇에 넣으라고 손짓을 한다.
엄마는 밥을 먹는 내내 아무 말도 없다. 아빠도 마른기침만 뱉을 뿐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아빠가 술을 드시고 오시는 날마다 벌어지는 풍경이다. 숟가락으로 밥 한 숟갈 뜨고 엄마 눈치 한번. 국 한 숟갈 뜨고 아빠 눈치 한 번씩 번갈아가며 밥을 먹으면 엄마가 무거운 침묵을 깨고 괜히 나에게 호통을 치신다. 밥 먹는데 집중하라고. 치, 밥 먹는데 무슨 집중이람.
내가 더 어렸을 때는 엄마가 아빠와 이혼을 하는 줄 알았다. 왜냐하면 우리 반 지영이네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했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지영이네 아빠가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들어오면 지영이네 엄마는 우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빠가 술을 마시고 온 날이면 안방 문을 배꼼 들여다보며 엄마가 우시는지 확인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아빠를 미워한 것이 아니었다. 매콤하고 칼칼한 청양고추를 듬뿍 넣어 아침상을 차려드린 걸 보면 안다.
내가 지금 그러하고 있는 것과 같이.
수능 즈음은 유난히 바람이 맵다. 코끝이 빨개지도록 바람이 불고 손난로를 들고 있어도 좀처럼 따뜻해지질 않는다. 바람이 맵다는 것은 코끝이 시리다 못해 아리고 숨을 쉴 때마다 차가운 공기가 들어와 목구멍과 폐를 알알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올해의 수능 날씨가 검색어에 오른 걸 보면 이번에도 어김없이 춥겠지, 단단히 입지 않으면 감기 때문에 수능을 망치기 일쑤이다. 내가 수능 즈음을 기억하는 건 11월 둘째 주, 아주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잊을 수 없게 알알하게 박힌 기억 때문이다.
“감기 걸리지 않게 목도리랑 장갑 끼고, 알았지? 어? 엄마가 말하면 대답 좀 해.”
“아, 알겠어. 몇 번을 말해. 내가 애야? 일일이 목도리랑 장갑까지 확인하게.”
“요 녀석, 네가 애지 어른이냐? 엄마한테 자식은 평생 애야. 애.”
“아 알겠어, 귀찮게 정말.”
“저게, 오늘 일찍 들어와. 엄마가 맛있는 떡볶이 해줄게.”
“알겠어, 갔다 올게.”
수업이 끝날 무렵 주기적으로 울어대는 진동음이 신경 쓰였다. 다름 아닌 엄마의 전화. 또 일찍 들어오라는 잔소리를 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고 생각된 나는 그 전화를 받지 않았다.
웅, 웅. 웅, 웅.
‘오늘따라 왜 이렇게 끈질겨. 엄마도 참.’ 엄마의 전화가 그날따라 끊임없이 울렸다. 한 번쯤 받으면 어떨까, 나 곧 간다고 한 마디라도 하고 끊으면 될 것을. 배터리를 빼버리는 일종의 반항을 저지른 뒤 곧바로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교실 밖에서 서성이는 나를 발견한 친구의 부름에 곧바로 친구와 함께했다. 친구는 떡볶이를 먹자고 했다. 떡볶이? 집에서 먹는 거나 친구랑 먹는 거나 그게 그거라고 여겼던 나는 그 날 유난히 매운 떡볶이를 먹었다.
혓바닥에 불이 난 것처럼 매운 떡볶이에는 고추가 생으로 올라가 있었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되면서도 물 한 모금 먹지 않고 한 접시를 비웠다.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달리 갈 곳이 없던 나는 집으로 발길을 돌리며 엄마 생각이 났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엄마한테 미안한 감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에잇, 집에 가서 떡볶이 한 번 더 먹지 뭐.’ 하며 휴대전화 전원을 켰다.
띠링, 띠링, 띠링.
연속적으로 문자가 들어왔다. 엄마였다.
“이슬아, 엄마야. 우리 딸.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예쁜 우리 딸. 엄마가 집에 못 돌아갈 것 같아. 미안해. 엄마 지금 지하철인데, 사고가 났어, 우리 딸. 엄마가 미안해.”
“이슬아, 엄마가 많이 사랑해.”
“이슬아. 이슬아 사랑해. 사랑해 우리 딸”
엄마!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뚜르르 신호만 걸릴 뿐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날 그리고 그 다음 날에도. 무작정 달려가 현관문을 열어보니 엄마는 없었다. 그저 차갑게 식어버린 빨간색 떡볶이만 있을 뿐. 그리고 그 위에 아주 맵게 생긴 고추 고명이 예쁘게 얹어져 있을 뿐이었다.
눈물이 났다. 매운 떡볶이를 먹었을 때보다 더 매운 눈물이었다.
“엄마.”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엄마, 나 왔어. 이렇게 떡볶이만 두고 어디 간 거야. 장난치지 말고 빨리 나와. 나 장갑이랑 목도리 다 하고 이렇게 뛰어왔는데. 엄마 전화 안 받아서 장난치는 거지? 빨리 나와.”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저 코끝이 아리도록 매운 눈물이 흘러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여전히 수능 즈음은 날씨가 차다. 찬바람에 눈이 시려 가끔 눈물이 맺히곤 한다. 찬바람에 눈이 매워서인지 엄마가 그리워서 인지는 모른다. 그저 코끝이 찡하다는 것만 알뿐이다.
딩동, 초인종이 울리고 문을 열어보니 웬 택배하나가 할아버지에게 와있었다. 보내는 사람의 이름엔 할아버지의 오랜 고향친구의 이름이 적혀있다. 웬일인가 싶어 상자를 열어보니 고향에서 보내온 홍어다. 상자를 열자마자 코끝까지 전해지는 냄새를 보아하니 잘 삭혀진 홍어임에 틀림없다. 홍어를 지긋이 내려다보던 할아버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할아버지의 유년시절을 떠올리시는 것이다.
할아버지의 고향은 전라남도 나주이다. 영산포 하류에서 단출한 살림에 할아버지는 아버지와 단 둘이 살았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어부셨다. 아버지는 늘 배를 타셨고 아버지가 배를 타러 나가실 때면 집에는 늘 아들 혼자였다. 아버지는 작은 돛단배를 타고 나가시면 하루 이틀은 물론이고 길게는 열흘이나 한 달 동안도 못 들어오신 날도 있다. 바람이 불고 풍랑이 치면 더욱이 그랬다.
어린마음에 아버지에게 배 타지 않으면 안 되냐고 울고불고 떼를 써 보았지만 아버지는 단호했다. 우리 두 식구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배를 타고 나가야 한다고 했다.
사실 아버지가 열흘 동안이나 소식 없이 배를 타고 나가도 돌아오는 날이면 배에 잡히는 것은 고작 두세 마리가 전부였다. 다른 선원들과 잡아온 물고기들은 이미 다른 동네에 팔고 남은 작은 물고기라도 챙겨 온 것이다. 그나마도 오랜 시간 바다에 있어 상해버리기 일쑤였다.
하루는 아버지가 배를 타러 나가러 그물을 손질하고 있을 때였다.
“아버지, 오늘은 꼭 일찍 오셔야 해요. 아버지랑 먹으려고 남겨둔 생선이 있단 말이에요.”
“알겠다. 오늘은 꼭 일찍 들어오마.”
알겠다며 빙긋 웃어 보이시던 아버지는 그날도 그 이튿날도 들어오시지 않았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매일 나루터에 쪼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강가를 바라보았다. 그 때 배 한척이 들어왔고 그 배에는 아버지가 타고 계셨다. 기쁜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가 아버지와 집에 돌아왔다. 아버지와 함께 먹으려고 항아리에 담아두었던 생선을 열어보았다. 그런데 항아리에서는 이미 코를 톡 쏘는 진한 향이 나며 생선이 푹 삭아있었다. 할아버지의 실망한 모습을 본 아버지는 원래 이 생선은 이렇게 냄새가 날 때 먹어야 제 맛이라며 아들의 마음을 위로했다.
“왜 싱싱할 때 먼저 먹지 않고 기다렸어. 이 아비가 언제 올 줄 알고….
매일 놀아주지도 못하고 넉넉하게 맛있는 반찬도 만들어 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생선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코끝이 찡해졌다. 그 모습을 본 아들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도 이렇게 기다려준 아들을 실망시키기 싫었던 아버지는 삭혀진 생선을 크게 한입 물었다. 그런데 특이하게 톡 쏘는 맛이 나며 상한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다음날이 되어도 색이 변하지도 않고 먹고 하루가 지났음에도 배가 아프다거나 탈이 나지도 않아 기이하게 생각하였다. 그 때의 아버지는 분명 아들의 마음과 자신의 마음에 하늘도 감동하여 탈이 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할아버지는 홍어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어보았다. 여전히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지금생각해보면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핑 도는 것이 잘 삭혀진 홍어의 속성 때문이겠지만 할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여전히 홍어는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에 코끝이 찡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할아버지에게 홍어는 아버지의 또 다른 마음이다.
“유리씨, 괜찮겠어? 오를 수 있겠냐고.”
걱정인지 귀찮음인지 모호한 어조로 말하는 팀장의 목소리에 괜히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지만 이를 악물고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그럼요. 피해 안 가도록 천천히 뒤따라갈게요.”
팀장은 대답을 다 듣긴 한 것인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찬바람을 남기고 다른 팀원에게로 가버렸다. 가까스로 참고 있는 눈물에 손과 발이 미세하게 떨렸다. 팀장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자칫하다가는 큰 사고로 이어져 남은 사람들에게 그동안의 삶처럼 짐이 되어버릴 수 있으니까.
유리는 선천적으로 하반신 근육과 뼈가 약해 약한 충격에도 쉽게 부러지곤 했다. 그래서 다섯 살 때부터 그녀의 엄마는 언제나 괜찮겠어? 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그래서 그녀는 남들 한 번씩은 다 타본 자전거도 타본 기억이 없고 그 나이 때 여자아이라면 누구나 다 해본 고무줄놀이 한번 못해봤다. 사실 해볼 생각도 못 해봤다고 하는 게 더 맞겠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행복한 기억 중 하나인 운동회 날의 기억을 묻는다면 사실 나는 즐거웠지만 엄마는 오히려 엄마가 학교에 말해 줄 테니 학교에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된다고 했다.
그런 재미없는 학창시절을 보낸 뒤 직장생활의 첫발을 내디딘 그녀다. 어릴 적부터 늘 고민이면서 꿈이었던 문제가 드디어 터진 것이다. 처음으로 입사한 회사에서 갖는 첫 워크숍을 치악산으로 온 것이다. ‘악’이 들어가는 산은 바위로 이루어져 산세가 험하여 건장한 남자들도 힘들다고 한 것쯤은 유리도 안다. 그래서 엄마는 물론 팀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녀를 말렸다. 하지만 그녀는 굳이 우기고 우겨 따라가겠다고 하여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을 거야.’
마음속으로 수십 번 수백 번을 되뇌어 왔지만 사실 그녀도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이곳까지 따라오면서 그녀가 생각한 것이 있고 약속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워크숍을 따라 오기로 작정한 후 줄곧 생각한 것이 있다. 바로 코끼리와 말뚝 이야기이다.
서커스에서는 작은 코끼리를 어렸을 때부터 말뚝에 메어둔다. 발목에 족쇄가 채워진 아기 코끼리는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벗어날 수가 없다. 그렇게 자란 코끼리는 나뭇가지만 한 말뚝을 충분히 뽑아내고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벗어나지 못한다. 이미 코끼리는 어렸을 때부터 불가능 할 것이라고 되뇌어왔기 때문이다.
다시금 팀장이 내게로 왔다.
“유리씨. 유리씨가 간다고 하니까 말리지는 않을게. 근데 유리씨도 참 유별나다. 남들은 오르기도 전부터 힘들다고 저렇게 울상인데 굳이 가겠다고 하는 이유가 뭐야?”
“말뚝에서 좀 벗어나 보려고요.”
유리는 발가락을 잠시 꼼지락거려본다.
‘나도 그렇지 않을까. 나도 어쩌면 자전거도 타고 고무줄놀이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어 놓은 한계에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드디어 한 걸음 발을 떼어본다. 어쩐지 발이 가볍다.
자, 따라하세요.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죄송합니다. 아픕니다.
다시 한 번 따라하세요. 자, 저기 알리씨. 입을 더 크게 벌려야 소리도 크게 나지요.
외국인 근로자들은 점심시간 전 10분 동안 기초 한국어 회화를 배운다. 배운다기보다는 반복적으로 따라 읽는 것이다. 한국말이 서툰 사람들에게는 비교적 알찬 시간이 된다.
“장미씨는 한국말 잘 하니까 이런 수업이 필요 없죠? 그래서 우리 조선족 사람들이 참 좋아. 말도 잘 통하고 일도 야무지게 잘 하고. 자자 손님들 몰릴 시간입니다. 서두르세요.”
경영지원이라는 팀의 차장은 슬쩍 장미의 어깨를 톡톡 치며 능글스런 얼굴을 하고 지나쳤다.
공장이나 공단에서 그렇듯 서울 주변 식당에서도 이주노동자들의 고용률은 대폭 상승했다. 국적도 언어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지만 그중에서도 연변사람 즉 조선족들의 고용률이 눈에 띄게 많았다. 아마 외국인근로자라는 이유로 임금 부담이 낮은데 한국어를 할 줄 안다는 장점 때문일 것이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각자 ‘코리안 드림’을 가슴에 품고 하루를 버텨가고 있다. 임금을 받으면 최소한의 생활비만 남기고 모두 고향으로 보내고 하루빨리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아파도 아프지 말아야 했다.
저기요, 여기 이거 고기 정량 맞아요? 저기요, 여기 반찬 좀 더 달라는데 왜 안 갖다 줘요? TV프로그램 채널 좀 돌리게 리모컨 좀 가져다 줘요.
식당을 찾는 사람들은 말투와 억양이 좀 어색한 외국인 근로자들을 보면 유난히 뾰족한 말투로 그들을 대했다. 여기 사장 나오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반말로 야, 너라고 말하는 사람, 심지어는 욕설까지 아무렇지도 내뱉는 사람들까지.
사실 그들을 홀대하는 것은 식당을 찾은 손님들만은 아니었다. 식당에서도 일종 텃새라는 명목으로 그들에게 좀 더 험한 일을 한다거나 사고가 났을 때 처리들이 그들을 더욱 힘들게 했다. 주방에서 일을 하다 화상을 입었다거나 배달을 나갔다가 오토바이 사고라도 나면 병원비를 지급해주기는커녕 오토바이 수리비를 임금에서 차감하는 일도 잦았다.
그들의 코리안 드림은 녹록치 않았다.
꺅. 짧은 외마디 비명이 주방 창고 쪽에서 들렸다. 식당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창고 쪽으로 향했고 몇몇 사람들이 창고 쪽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창고에서 식당 최고참 주방장이 허겁지겁 나오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주방장은 별일 아니고 선반에서 물건이 장미씨 머리 쪽으로 떨어질 뻔 했다고 했다. 그런데 창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아래쪽 선반에는 물건들이 어질러져 있고 장미씨가 겉옷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었다.
“장미씨, 이리와 봐요. 아까는 많이 놀랐죠?”
식당에서도 유일하게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친절한 여직원이 장미를 불렀다.
“아, 네. 조금요.”
“나도 한국 사람이지만 식당일 하면서 사람들한테 정떨어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야. 그러니 외국인들은 오죽할까 싶어. 나라도 나서서 이런 저런 이야기 해주고 싶지만, 괜히 불똥 튈까 무서워서 그러지도 못하고. 씁쓸하네.”
“아니에요.”
“혹시나 사장이든 주방장이든 또 그런 일이 있다고 하면 참지 말고 말해요. 왜 당하고 있어야 해. 사실 그렇잖아. 나나 그쪽이나 여기 사장이나 다 돈 벌자고 하는 거잖아. 가족들 부양해야 하고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봐주고 외국인이라고 무조건 참고 그건 옛날 일이야. 요즘은 그런 시스템도 다 잘 돼 있다고 하더라고. 주방장일은 내가 잘 말해볼게. 놀랐을 텐데 오늘 마감은 내가 하고 들어갈 테니 얼른 집에 가봐요.”
장미는 눈물이 찔끔 났다. 서럽고 서러운 마음이 겹겹이 복받쳐 뜨거운 눈물로 흘려 내렸다. 당장이라도 짐을 싸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말처럼 쉽지 않음을 알기에 장미는 옷깃을 단단히 여몄다.
강해져야 했다. 기회의 땅에서 외로움을 딛고 당당히 일어나 꿈을 이루어야 하기에.
“종소리 울려라. 종소리 울려. 기쁜 노래 부르면서 빨리 달리자.”
겨울, 서울 명동. 북적이는 사람들 무리 속으로 징글벨 노래가 울려 퍼졌다. 바람결에 실려 온 노래가 겨울의 귓가에도 들려왔다. 뭉클, 뜨거운 눈물 같은 것이 겨울의 눈에 맺혔다.
“명동 와봤어?”
지금 겨울의 옆에는 수현이 서 있었다. 겨울의 옆에 서 있는, 모델 몸매의 복학생 선배 수현. 수현과 겨울은 말하자면 ‘밀당’ 중인, 하지만 아직 사귀고 있지는 않은 사이였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였고, 수현은 아마 고백을 하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겨울은, 조금 달랐다.
“너 미쳤어? 요즘은 3학년 때부터 취업 준비 해야 돼. 우리 언니가 그랬어.”
내년이면 대학교 3학년. 친구들은 복학생인 수현과 사귀는 것을 걱정부터 했다. 더군다나 수현은 인기가 많아 여학생들 사이에선 ‘한국대 김수현’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렇게 인기 많은 수현이 자신에게 잘해준다는 사실이 겨울은 사실 겁도 났다.
“명동에서는 굳이 맛집에 안 가도 돼. 여긴 군것질이 맛있거든.”
겨울이 수현의 별명을 떠올리고 있을 동안, 수현이 다짜고짜 노점상에 멈춰 서서 오뎅꼬치를 사들었다. 겨울이 쑥스러워 하며 망설이자, 수현이 대뜸 손에 꼬치를 쥐어주었다. 아주 잠깐 둘의 손이 스쳤다. 겨울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수현은 그런 겨울이 귀여운지 싱긋 웃었고, 겨울 역시 그걸 봤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마음을 들키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얼른 먹고 우리 남산 가자.”
사람들이 많은 거리 안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수현은 더욱 대담하게 겨울을 이끌었다. 겨울은 그런 수현이 결코 싫지 않았다.
옆에 수현이 있어 떨리긴 했지만, 오랜만에 온 명동은 볼거리가 많았다. ‘유커’라 불리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았고, 거리 곳곳의 휘황찬란한 불빛이 시선을 끌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맞게 꾸민 조형물과 조명이 눈을 황홀하게 했다. 가게마다 새어 나오는 캐럴송은 가뜩이나 들뜬 마음을 더욱 설레게 했다.
“많이 먹어. 이따 놀랄 수도 있으니까.”
명동에서도 가장 번화가라고 불리는 제일은행 사거리에서 수현이 대뜸 말했다. 놀랄 수도 있다는 말이 귀에 쏙 들어왔다. 하지만 그건 겨울도 마찬가지였다. 겨울 역시 수현이 놀랄 만한 말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말은 겨울의 마음 속에서 이미 수십번도 더 연습된 상태였다.
‘수현오빠, 우리 이제 각자 갈 길을 가요. 전 이제 취업 준비에 집중하려 해요. 오빠도 마찬가지일 테니, 우리 각자 취업이 되면 다시 만나요.’
준비한 말을 다시 한 번 마음 속에서 되뇌자 다시 눈물이 나오려 했다.
“어디 아파?”
겨울의 표정이 폭설에 갇힌 마을처럼 어두워지자 수현이 걱정스레 물었다.
“아니, 그냥. 추워서요.”
겨울이 나지막이 답했다. 문득 정말로 추워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수현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겨울의 볼을 꼬집기라도 할 듯 한 표정으로 싱긋 웃었다. 겨울의 마음이 다시 더욱 아파지기 시작했다.
“남산에 가기 전, 잠시 들를 데가 있어. 가자.”
수현이 겨울을 다시 이끌기 시작했다. 얼떨결에 손목을 붙잡힌 겨울은 수현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빽빽이 들어찬 사람들 사이로 발걸음이 빨라졌다. 일본어와 중국어 설명이 쓰인 화장품 가게를 지나고, 목도리와 장갑 따위를 늘어놓고 파는 가판대를 지나고,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나는 보세 옷가게를 지났다. 피켓을 들고 단체 관광중인 중국인 관광객 무리를 스치고, 다정한 커플들 사이를 지나, 수현이 멈췄다. 명동 중심가의 트리 밑이었다. 주변에는 구세군 종소리도 울려 퍼졌고, 때마침 트리 주위에서 방송이 나왔다.
ㅡ크리스마스에 명동을 찾아주신 여러분, 모두 소원은 비셨나요?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에 겨우살이 나무 밑에서 키스를 하면, 사랑이 평생 유지된다는 속설이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겨우살이 나무는 아니지만, 이곳 명동 트리 아래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소중한 시간을 보내보세요.
그러자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들린 건 여자들의 ‘꺅’ 소리였다. 분위기 탓인지 감동을 받은 듯 한 여자들의 즐거운 비명소리가 명동을 메웠다. 드문드문 ‘오오’하는, 중저음의 남자들 목소리도 들렸다. 그리고 그때였다.
“겨울아, 내 마음을 받아줄래. 우리, 아직 불안한 청춘이지만, 지금 이 순간 소중한 우리의 20대를 함께 보내자.”
겨울은 자신 앞에 무릎 꿇은 수현을 내려다봤다. 모델처럼 키 큰 수현이, 자신에게 무릎을 꿇은 채 자신의 손등에 입을 맞추고 있었다. 전율이 손등을 타고 온몸에 퍼졌다.
“네 마음은 어떠니?”
수현이 겨울을 올려다 보며 물었다. 겨울과 수현의 눈길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저는... 저는.”
겨울의 입술이 떨렸다. 마음 속에 연습한 말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저는... 저도, 좋아요.”
겨울은 연습한 말 대신, 마음이 시키는 말을 하고 말았다. 그러자 수현이 겨울에게 다가와 입을 맞췄다. 두 사람의 얼굴에 미소가 눈꽃처럼 번졌다. 크리스마스에, 겨울과 수현은 마주보고 웃었다. 크리스마스에 겨우살이 나무 밑에서 입맞춤을 하면 영원한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머릿속에 오래오래 떠올랐다. 수현과 겨울은 남산타워로 말없이 걸었다. 그리고 사랑의 자물쇠를 채우며 서로에게 사랑을 속삭였다.
여기 토끼 같은 여자와 거북이 같은 남자가 있다. 지금까지 토끼와 거북이를 생각해보면 둘은 결코 친해질 수 없는 경쟁상대로 인식되어오고 있다. 그런 입장에서 본다면 토끼와 거북이는 1:1 무승부이다. 토끼는 거북이에게 간을 빼앗기지 않았으므로 1승을 거두었고 거북이는 달리기에서 토끼를 제치고 결승점에 도달하였으므로 결론은 무승부이다.
그런데 이 둘의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수씨하고 민주씨 잠깐 내 자리로 와볼래요?”
팀장의 부름이다. 민주는 밝고 명랑한 목소리로 네! 라고 대답하며 재빨리 쪼르르 팀장의 자리로 달려갔고 현수는 민주보다 한 박자 늦은 대답고 걸음으로 팀장의 자리로 갔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 프로젝트에서 두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생겼어요. 어려운 건 아니고, 음. 보자. 그러니까.”
팀장도 부장님께 듣고 온 업무가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부장이 넘겨준 업무자료를 이리저리 넘기며 쓸데없는 단어로 말을 이어붙이고 있을 뿐이었다.
아! 하는 소리와 함께 팀장은 말을 이었다. 이 둘이 해야 할 일이 정리가 된 모양이었다.
“이번 테마는 갯벌이야. 갯벌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우리 회사 이미지를 잘 부합해서 진행해보도록 하라고. 체험이나 코스, 맛 뭐 다양하잖아? 잘 할 수 있지?”
팀장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비교적 간단했다. 그런데 프로젝트 업무를 맡은 이 둘의 조합이 문제였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둘이었지만 한 편으론 그리 나쁜 조합도 아니었다. 토끼 같은 여자는 아이디어가 좋았고 간간이 분위기도 잘 띄우는 사람이었다. 거북이 같은 남자는 조용하고 남들보다 한 박자 느렸으나 성실함만큼은 누구도 따라오기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회사에서 큰 프로젝트가 이 둘에게 떨어졌다. 팀장은 아이디어가 좋은 여자와 성실한 남자를 붙여놓기로 한 것이다.
회사의 여직원들은 어떻게 저렇게 답답한 사람이랑 일을 하냐며 민주의 하소연을 들어주었고 남직원들은 꾀만 부리면서 일하는 것보다 현수씨처럼 일하는 것이 정석이라며 각자의 편을 들어주었다.
둘은 시장조사도 해야 했고 갯벌에도 다녀와야 했음으로 온종일 거의 붙어있다시피 해야 했다. 민주는 매번 너무 꼼꼼하고 느린 성격의 현수가 답답했고 현수는 계획 없이 밀어붙이기만 하는 민주가 못미더웠다. 둘은 거의 각자 스타일대로만 기획안을 만들기 시작했고 팀장은 다시금 그 둘을 불러 세웠다.
“도대체 이게 뭐야? 둘이 같이 조사한 것 맞아? 누가 기획안 따로따로 작성하래?”
“팀장님 그게 아니고.”
“아니고 맞고 간에 오늘 둘이 사천 내려갔다와. 거기 갯벌에서 뒹굴든 치고 박고 싸우든 알아서 해. 제대로 된 기획안 가져오기 전까지 서울 올라올 생각도 하지 말고, 알겠어?”
팀장은 민주의 말을 매정하게 끊은 채 톡 쏘아 붙였다.
민주와 현수 둘은 하는 수없이 사천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둘은 도착하기 전까지도 한 마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도착한 곳. 둘은 사전조사를 위해 섬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토끼가 하늘을 나는 듯한 모양의 섬이었다. 마을에 거주하는 할아버지께서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가 내려져 있는 곳이라고 했다.
정신없이 섬을 둘러보다보니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둘은 말없이 떨어져가는 해를 바라보았다.
“이 섬이 토끼와 거북이에 관한 섬이래요. 마치 우리를 닮은 것 같네.”
“이번 내기에서는 누가 이길 것 같은데요?”
“아직도 둘 중 누가 이길 것 같은 게 중요해요? 참. 이번 경기에서는 누가 이기고 지고 할 게 없다고요. 아까 팀장님 말 기억 안나요? 둘이 머리 싸매고 함께 해야 한다고요.”
토끼 같은 여자와 거북이 같은 남자는 서로 마주보고 싱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