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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길 따라 뚜벅뚜벅, 왕피천 계곡 트레킹

    물길 따라 뚜벅뚜벅, 왕피천 계곡 트레킹

    지역경상북도 울진군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5 호감도

    물길 따라 뚜벅뚜벅, 왕피천 계곡 트레킹

    • 프롤로그
    • 1.로마에서는 로마법을
    • 2.아홉굽이 돌고 돌아 오지마을로
    • 3.예스런 마을 곳곳에는
    • 4.굴구지8경 용소로 향하는 첫 걸음
    • 5.원시자연 그대로
    • 6.탐방관리소에 속지 말 것
    • 7.세상에서 제일 긴 400m 거리
    • 8.고생 끝에 만나는 낙원
    • 에필로그

    물길 따라 뚜벅뚜벅, 왕피천 계곡 트레킹

    - 경상북도 울진군 -

    이 땅에서 마지막 남은 오지의 물길이라는 왕피천은 자동차의 경적이나 그 어떤 기계음의 방해도 없이 잘박잘박 제 발자국 소리만 데리고 가는 길입니다.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유영하는 왕피천의 거울처럼 맑은 물을 바라보며 바위를 딛고, 자갈밭을 걷고, 발목을, 무릎을, 허벅지를 적시면서 용소까지 가는 트레킹은 번잡한 마음을 말끔히 씻어내립니다. 하지만 이런 천혜의 원시비경을 즐기려면 그만한 고생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 몸도 마음도 준비 됐나요? <트래블아이>의 오늘 미션은 바로 ‘왕피천 계곡 트레킹을 완수하라!’입니다.

    시간상으로 낭비인 것 같아도 들머리까지 1시간 이상을 구불구불한 시골도로를 걸어가는 게 최선이란다. 왜일까?

    “선택은 자유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이 이곳에 왔으니 왕피천 계곡을 은어처럼 거슬러 올라야 제 맛이고 또 순리 아니겠어?”

    “내가 전혀 보지 못한 천혜의 비경이라도 간직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이 길은 물길을 따라 두 발로 걷지 않으면 아예 접근할 수 없는 건가?”

    이 마을은 고개를 아홉굽이 넘어야 나온다고 해 옛날부터 굴구지 또는 구고동으로 불렸다. 과연! 아홉굽이나 돌아가면 마을을 만나게 될까?

    “안내판을 따라 들어가니 길이 상하좌우로 굽이쳐 차도 덜컹 사람도 들썩. 허허~” “ 양옆으로는 금강소나무숲이 시원스럽구나. 이런 길이라면 아흔아홉굽이라도 좋겠지?”

    “어, 저기! 드디어 왕피천이 눈앞에 나타났어. 아직은 물 좋은 여느 산골마을의 앞내와 별다르지 않은걸?”

    다리를 지나 도착한 마을도 여름날 산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물가에는 다랑이논, 길가에는 살구나무, 울 위에는 능소화, 대문 옆엔 접시꽃, 마당에는… 앗! 저게 뭐지?

    “요건 소 멕일라고 갈대 벤 기고, 요건 외양간 바닥에 깔아 줄라고 갈잎 모다놓은 기고….” “어린애 있는 집 마루가 온통 장난감 차지듯 이 집 마당은 소여물과 깔개 차지로군요.”

    “우린 또 나갈 채비해야 안 합니꺼. 이 동네가 요새 제일 바쁜기라! 감자, 마늘, 양파 파고 그 자리에 이제 콩 심가야지요, 또 논에 가서 피 뽑아야지요.”

    마을 안을 1시간쯤 거닐다 왕피천탐방로 입구에 다다랐다. 이 길을 따라 계속 가면 굴구지팔경 중 첫손에 꼽히는 용소계곡을 쉽게 볼 수 있을까?

    “계곡 트레킹 기분도 낼 겸 저 아래 내를 따라가면 어떨까?” “글쎄…. 저기 저 손바닥만 한 밭 가장자리에 앉은 한 아주머니에게 물어보자.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이 아래 왕피천 물길로 내려가서 걸어도 돼죠?” “물길은 험하다 안해요. 산으로 가는 게 나을 기라.”

    그렇게 산길을 택했다. 세차게 흐르는 계곡이 중간중간 내려다보여 전혀 지루하지 않다. 그러다 포장길이 끊어지고 흙길이 시작되더니 어느덧 깊은 산중이다. 내심 불안한데?

    “낡은 빈집과 흔적만 남은 집터도 제법 되네. 휴~ 휴대전화도 안 터진다, 이제.” “우리가 오지로 들어오긴 왔구나! 괜히 어깨가 으쓱한데?”“왁! 갑자기 길섶 수풀이 풀썩거린 것 같지 않아?!”

    “깜작이야! 뭔가가 후다닥 달아나는 게 살짝 등줄기만 봤는데 작은 멧돼지 같더라!”

    수년 전 왕피천 일대가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된 덕에 그 비경도 알려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계곡 트레킹1번지가 됐다. 하지만 탐방관리소를 만나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

    “휴~ 용케 도착했네. 아슬아슬~ 휘청휘청!” “어데까지 가능교?”

    “저희가 이번 코스에서 반환점으로 삼은 용소계곡까지 갑니다. 여기서부터 내리막길이죠?” “하모예~. 허위허위 내려가 보소. 가다 보모 얼마 안 남았다 하는 푯말도 보일 겁니더!”

    정말 그랬다. 400m 남았다는 안내표지판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 400m가 그리 먼 길일 줄이야! 이 내리막길이 어떻기에 그럴까?

    “아이고~ 경상도말로 참 ‘되네’~. 바위와 잔돌을 디디면서 계곡을 따라 걷자니 속도도 안 나고. 계곡에 빠지지 않고는 더 갈 수가 없겠어! 난 여기서 양말을 벗으련다!”

    “나 이거 참. 그래도 좋은 데가 하도 많아서 구경하랴 정신이 없네. 발 쉴 곳도 웬만큼 많아야지. 쉴 자리 정하기도 쉽지가 않네.”

    잘생긴 그놈 얼굴 한번 보자고 내려가선 온몸이 녹초가 될 지경이다. 그렇게 포기와 도전을 수차례 반복하다 마침내 만난 용소, 그 모습은 어떨까?

    “용이 놀았다는 용소로구나! 이 순간만은 그 용도 부럽지 않아.” “거센 물살이 희한한 모양으로 깎아 놓은 집채만 한 바위, 그 속에 담긴 시퍼런 물. 낭떠러지에서 내려다보고는 있지만 정말 장관은 장관이로구나!”

    “왕피천 최고의 비경이라더니, 우리 이렇게 용소 앞에서 감탄만 쏟아내다 하루 다 가겠어!”

    트래킹 길을 따라 쭉 내려가다가 ‘이참에 마을까지 물길 따라 가 볼까’ 하며 계곡을 옆에 끼고 가봅니다. 그러다가 또 ‘이참에 용소 한번 볼까’ 하며 마음먹었다가 결국 얼마 못가 발길을 돌릴지도 모릅니다. 높은 산과 까마득한 직벽으로 가로막힌 왕피천은 예나 지금이나 접근이 어려운 곳입니다. 협곡을 굽이치는 절경을 갖고 있음에도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때 묻지 않은 비경을 간직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물길을 끼고 있는 깊은 산중, 오지 속의 오지, 생태의 낙원, 울진 왕피천으로 뚜벅뚜벅 도보여행 떠나보는 건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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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벌집촌 ‘순이’의 삶을 엿보다

    벌집촌 ‘순이’의 삶을 엿보다

    지역서울특별시 금천구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6 호감도

    벌집촌 ‘순이’의 삶을 엿보다

    • 프롤로그
    • 1.순이의 방
    • 2.희망의 방
    • 3.비밀의 방
    • 4.차디 찬 공동세면장
    • 5.벌집촌, 그 좁은 추억
    • 6.순이를 두 번 울렸던 시절
    • 7.아프지만 남겨둬야 할 기억
    • 8.우리들의 외딴 방에는
    • 에필로그

    벌집촌 ‘순이’의 삶을 엿보다

    - 서울특별시 금천구 -

    지금의 금천구 가산동은 화려한 IT산업 중심의 디지털단지로 탈바꿈했지만, 과거 ‘벌집촌’이라 불렸던 구로공단 자리였습니다. 잊혀질 법도 하지만, 이 자리에서 과거 산업화와 수출의 첨병 역할을 해야 했던 여공들의 애환이 아직 그대로 서려 있습니다. ‘구로공단 노동자생활체험관’에 가면 군사정권 시절 ‘산업화의 역군’으로 포장됐지만 ‘공순이’로 더 잘 통했던 구로공단 여성근로자들의 애환을 엿볼 수 있는 방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 <트래블아이>의 미션은 바로 ‘1970~80년대 구로공단 벌집촌 여공들을 기억하라!’입니다.

    가난한 아버지를 위해, 중학교에 진학하는 동생을 위해, 대학 입학을 앞둔 오빠를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미싱을 돌리던 순이의 심정이 ‘순이의 방’에 들어서면 느껴질까?

    “옷장, 연탄, 밥상, 편지, 급여봉투 등 여공들이 사용했던 소품들을 가지런히 진열해놨어.”

    “순이는 교복 입고 학교 다니는 여학생들 보면서 너무나 부러웠겠지? 맘껏 공부하고 책 읽고 낮에 학교 다니고 밤에 잠자고. 그러면 소원이 없었을 거야.” “학교가 다 뭐람! 당장 부족한 잠이나 실컷 자고 일어나면 더 바랄 게 없었겠지.”

    하지만 이곳 전시관은 노동자들의 성장 스토리를 풀어놓아 색다른 느낌을 준다. 그중 하나가 ‘희망의 방’. 어떤 숨은 이야기가 있을까?

    “힘겨운 하루를 보낸 소녀들이 야학에서 배운 내용을 복습하고 숙제하는 장면이 그려지지 않니?”

    “그런 점에서 순이도 완전히 학업을 포기했을 거라고 보지 않아. 옷 상표를 제대로 붙이지 못해 영어공부를 시작하게 됐을 게 분명해.”

    공장에서 일을 마치고 쪽방에서 잠들기 전 이들은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1층 안쪽에 자리한 비밀의 방으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보자.

    “남몰래 좋아하던 사내아이 이름을 순덕이에게 털어놓았을까? 아니면 공장장 뒷담화? 고단한 몸을 뉘이고도 바로 잠들지 못했을 거야. 영락없는 소녀들이었으니까.”

    “쉬는 날에도 쪽방을 지키며 떠들었을 이야기들, 그 속에 희로애락이 다 담겨 있었겠지? 그들이 나누는 얘기는 소리통에 담아놓았다는데, 궁금하지 않아?”

    수도꼭지에서 물을 받아 세수를 하는 여공들의 모습도 공동세면장에서 실물 크기로 생생하게 재현해 놓고 있다.

    “가난한 아버지를 위해, 중학교에 진학하는 동생을 위해, 대학 입학을 앞둔 오빠를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미싱을 돌리던 순이의 심정, 저 시린 물로 세수를 하는 것보다도 가슴 시렸겠지?”

    “그랬겠지. 눈물을 세수로 덮듯 아픈 심정도 가족들에게 절대 내보이지 않았겠지.”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당시 소녀들이 살았던 쪽방들이 줄지어 광경은 그야말로 ‘벌집촌’을 연상케 한다. 이 안에는 어떠한 모습이 담겨 있을까?

    “이 비좁은 부엌을 좀 봐. 연탄 화덕과 야트막한 선반, 그릇 몇 가지가 전부로구나.” “부엌 너머가 바로 방이야. 근데 방 크기가 더 가관이잖아! 성인 2명이 누울 수나 있을까?”

    “2평 겨우 되겠어. 이 비좁은 방에 사계절 옷이 뒤섞인 옷장, 신발… 책도 꽤 되네! 한자책, ‘국어완전정복’ 교과서에 ‘서양요리’ 서적까지. 좁아도 갖출 건 다 갖췄구나.”

    2층에는 당시 여공들의 생활모습, 노동운동 등 여러 영상자료를 제공하는 영상전시실이 있다. 이곳에는 또 1970~80년대 발간된 신문자료 내용은 ‘벌집촌’ 느낌과 사뭇 다른데?

    “신문들 제목을 봐봐. ‘근로청소년 생활의 질 높인다’, ‘구로아리랑 개봉 전부터 구설수’ 등. 이 벽면 한쪽을 가득 채운 당시 신문기사도 다 비슷한 내용들이야."

    “산업민주화가 이루어지기 전이었지만 언론은 전부 노동환경의 좋은 점들로 기사를 왜곡해놓았구나.”

    체험관은 구로공단 역사 기념사업의 출발점이다. 하여 노동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체험교육을 위주로 각종 테마 중심으로 한 다양한 체험거리들도 직접 접해보자.

    “다른 건 몰라도 연탄 갈기 체험은 뭔가 신선하면서도 마음 한쪽이 아려오면서 좀 씁쓸해.”

    “고통스럽고 지우고 싶고 잊고 싶은 흔적이기 때문에 그런 감정 충분히 공감이 돼. 하지만 ‘공순이’, ‘공돌이’가 이룩한 역사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이 또한 자랑스러운 역사로 남겨야 하는 게 우리 역할 아닐까?”

    수십 가구가 사는데도 화장실은 달랑 한 개였고, 미로 같은 계단 끝에 발만 간신히 뻗을 수 있는 여공들의 공간은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

    “이곳은 가족에게 붙일 급여봉투에 진학의 꿈도 접어 넣어야 했던 ‘순이의 방’, 여럿이 찬물에 세수하던 공동세면장, 밤늦게 공부하던 ‘희망의 방’, 몰래 소리통으로 대화를 나누던 ‘비밀의 방’… 전부 노동의 가치와 의미 되새기는 공간들이야.”

    “여공들의 삶이 비록 이곳에서 재현됐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소중한 공간이라는 거지?”

    한국 최초의 공단인 구로공단이 국가 경제에 큰 역할을 했지만, 그 주역은 우리의 어린 누이들이었습니다. 가족을 위해 그들은 봉제, 섬유, 가발 공장 등지에서 그토록 많은 땀을 흘렸습니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는 김수영의 노래를 생각해보면, 그 시대 우리 누이들을 기억하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인간이 역사를 쓰는 것도 ‘기억’을 간직하기 위해서일 겁니다. 역사의식의 소산이 된 구로공단 노동자생활체험관에서 지금 여러분은 어떤 기억을 간직하고 돌아오는 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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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주에서 만난 황희정승

    파주에서 만난 황희정승

    지역경기도 파주시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6 호감도

    파주에서 만난 황희정승

    • 프롤로그
    • 1.새로운 파주
    • 2. 황희를 만나다
    • 3.황희선생묘소에서 듣는 이야기
    • 4.걷던 길을 걸으면
    • 5. 갈매기를 벗삼는 정자
    • 6.양지대에서 바라본 풍경
    • 7.방촌선생영당
    • 8.황희정승을 떠올리다
    • 에필로그

    파주에서 만난 황희정승

    - 경기도 파주시 -

    경기도 파주는 출판단지 혹은 헤이리 예술마을과 같은 특화된 관광명소를 가장 먼저 떠올리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황희정승과 율곡이이와 같은 조선 초기 명재상과도 관계가 깊다는 것을 알고 계시나요? 파주시 금승리로 들어서면 청백리의 표상이자 귀감을 보인 방촌 황희 선생의 묘소와 유적지 등이 위치해 있습니다. 이처럼 황희선생의 은둔생활에서부터 다시금 관직에 이르다 말년을 보내며 파주와의 깊은 연을 맺게 된 황희선생을 만날 수 있는 이번 <트래블아이>의 미션은 ‘파주에서 황희의 발자취를 좇고 오라’입니다.

    파주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관광지가 있는가? 그렇다면 과감히 백지로 비워두자. 그리고 역사책 하나 끼고 파주로 뛰어들자.

    “파주는 꽤 여러 번 갔던 곳이잖아. 새로울 것이 있을까?” “이번 여행은 좀 달라. 그러니 우리가 다녔었던 파주에 대한 기억은 잠시 접어두는 것이 좋을 거야. 이번여행의 테마는 역사거든.”

    “역사? 그럼 무슨 유적지 같은 거야? 파주에 그런 역사적 유적지가 있었다고?”

    황희선생은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여러 요직을 거치며 큰 업적을 남긴 인물로 익히 들은 바 있다. 그런데 황희정승과 파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황희선생 유적지? 오늘 역사탐방 한다더니 그 인물이 우리가 아는 그 황희정승?”

    “그래, 조선 초 가장 오랜 기간 재상으로 청백리의 귀감이 되신 방촌 황희선생의 발자취를 따라 가보는 여행이 될 거야. 먼저 태종과 세종을 도와 조선이 바로 설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고 소신과 원칙은 물론 관용과 배려로 정치를 펼치시던 선생의 묘소로 가보자.”

    황희선생유적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엔 황희정승의 묘역이 자리하고 있다. 묘역 앞에 서면 선생께서 전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와, 재상의 명성답게 상당한 크기의 봉분이구나. 인적이 드물고 조용해서 더 위엄이 넘치는 것 같아.”

    “묘역 아래에 세워진 신도비에는 선생의 삶을 기록해 두었는데 신숙주가 짓고 안침이 썼다고 전해져. 묘역 건너편엔 선생의 셋째 아들인 황수신의 묘도 자리하고 있다고 해.”

    황희선생이 과거에 걸었던 길을 뒤쫓아 걸어본다. 선생이 남긴 발자취를 따라 걷다보면 선생이 남긴 숨결과 정신을 배울 수 있을까?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 중 대부분은 황희선생에 대한 큰 업적을 알 고 있을 텐데 묘역이나 유적지가 파주에 조성되어 있는 줄은 모를 것 같아. 나처럼.”

    “그래서 이렇게 새로운 마음으로 유적지를 찾고 선생의 뒤를 좇아 선생의 뜻과 정신을 기리는 것도 많은 이들에게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관직에서 물러난 선생이 여생을 보내던 반구정 아래에서 내려다보는 임진강의 절경이 마음을 울렁거리게 만든다.

    “반구정을 들어본 적은 있는데 이곳이 황희선생과 관련된 곳이었구나!”

    “반구정은 선생의 나이 89세에 관직을 사양하고 돌아와 임진강의 절경을 바라보던 곳으로 알려져 있어. 예부터 이곳에 갈매기가 많이 날아들어 그 이름도 갈매기를 벗삼는 정자라 하여 반구정이라 이름 짓게 된 거야.”

    1915년 반구정을 옮기면서 지은 양지대 위에서 바라보는 임진강은 아름답고 평화롭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풍경에 잠시 가던 길을 멈춘다.

    “양지대는 반구정을 재건하면서 원래 반구정이 있던 자리에 옮겨 지은 정자야. 선생의 유덕을 우러르는 마음으로 양지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는데 상량문에 적힌 그 뜻을 보면 백성들이 선생을 생각하던 마음이 그대로 전달 돼.”

    “아름답고 평화롭긴 한데 저기 임진강 사이로 보이는 철조망이 가슴 아프기도 해.”

    황희선생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6.25전쟁으로 인해 불에 타 1962년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조심스럽게 선생의 영정 앞에 서본다.

    “여기는 방촌선생영당이야. 본래 영당은 불에 타 소실되어 1962년에 복원되었지. 영당 중앙에 선생 영정도 모시고 있어. 묘역과는 달리 조금은 소박한 영당은 어쩐지 선생의 정치적 삶과 닮아 있는 것 같아.”

    “그래. 방촌영당은 경기도기념물 제29호로 지정되어있고 그 옆에는 동상도 조성되어 있어.”

    파주에서 떠올린 황희선생은 우리가 익히 일던 소신과 원칙을 지키며 재상까지 역임한 인물에서 나아가 황희선생의 다양한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다.

    “생각지도 못한 파주에서 황희선생의 발자취를 좇게 되어 뜻밖이었어. 여행지는 단 한 번의 여행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 같아.”

    “네 말이 맞아. 파주의 유명한 관광지를 관람하는 것도 좋지만 숨겨진 여행지에서 새로운 문화, 역사의 견해를 넓힐 수도 있지.”

    파주는 알면 알수록 새로운 도시라는 생각이듭니다. 임진강변을 따라 걷는 풍경을 좇는 여행이나 젊은이들이 환호하는 아울렛 그리고 특화마을 등이 올망졸망 모여 하나의 지구마을을 이루고 있는 듯합니다. 그중에서도 파주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는 관광지들도 많이 있는데요. 파주의 황희선생 관광지를 비롯하여 안보관광(DMZ), 파주삼릉, 맛고을 등의 관광지가 파주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문화와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도 보람된 여행의 한 부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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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곡매괴성당에 새겨진 또 다른 기억

    감곡매괴성당에 새겨진 또 다른 기억

    지역충청북도 음성군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7 호감도

    감곡매괴성당에 새겨진 또 다른 기억

    • 프롤로그
    • 1.고풍스러운 멋이 있는 매괴성당
    • 2.진짜 이름은 감곡 매괴 성모순례지
    • 3.100여 년의 긴긴 역사
    • 4.어느 프랑스 신부의 간청
    • 5.무염시태의 기적
    • 6.매괴박물관에 들어서면
    • 7.나라와 종교를 뛰어넘은 독립운동가
    • 8.그가 성당에 남겨둔 말
    • 에필로그

    감곡매괴성당에 새겨진 또 다른 기억

    - 충청북도 음성군 -

    이 땅에 오랫동안 뿌리를 내린 유서 깊은 성당을 가보면, 그 곳엔 헌신적인 신부가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매괴’라는 이름마저 낯설게 느껴지는 감곡의 옛 성당에도 그런 분이 있으니 바로 임 가밀로(Camille Bouillon, 1869~1947)라는 프랑스 신부입니다. 100년도 훨씬 전인 1986년도에 세워진 감곡 매괴성당의 초대신부인 임 신부에게는 전형적인 신부 모습 외에도 남다른 면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를 알면 뼈아픈 역사와 슬픈 희생의 정신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트래블아이>가 제안합니다. 매괴성당의 숨겨진 발자취를 만나라!

    논과 밭, 산으로 둘러싸인 한적하고 평온한 마을 감곡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면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을 만난다. 바로 매괴성당이다. 쉽게 찾을 수 있을까?

    “시계를 보니 서울에서 감곡터미널까지 버스로 1시간반 가량 걸렸구나. 감곡마을 방향으로 10분 정도 걸어온 것 같은데? 이즈음에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매괴성당이 보인다고 했어.”

    “저쪽을 봐! 야트막한 동산 위에 붉은 벽돌과 첨탑이 있는 웅장한 건물이 바로 매괴성당일 거야! 가까이에서 보니 더욱 위풍당당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있는데?”

    성당 내부 앞마당에 세워져 있는 이국적인 모습의 성모 마리아상은 ‘매괴의 어머니’로 불리며 많은 사람들의 내적 치유를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왜 ‘매괴’라 할까?

    “수녀님, 그런데 ‘매괴’라는 이름이 너무 낯설어요.”

    “지금은 잘 사용하지는 않는 용어죠. 천주교에서 하는 때문에 묵주기도는 장미꽃다발을 뜻하는 ‘로사리오(Rosario)’ 기도라고 불리는데 이 로사리오의 중국식 번역 한자어가 바로 ‘매괴’에요. 이곳은 ‘성모’를 수호성인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매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1896년 임 신부에 의해 설립된 이 성당은 충북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민족의 아픈 역사,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함께한 셈이다. 차근차근 그 이야기를 들어보자.

    우리나라가 중국으로부터 천주교를 받아들일 당시였으면 정말 이 성당은 긴긴 역사를 갖고 있군요.

    일제강점기엔 청년들과 학생들에게 한글교육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민족의 맥을 이어주었고,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 때엔 성모상이 수난을 당하기도 했었어요.

    초대 신부였던 임가밀로는 1896년 여주 장호원에 본당을 세우고 이후 1930년에 다시 지 었다. 그 험한 시대에 성당과 이곳 성모광장 건립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새로운 사목지를 찾던 중 장호원에서 멋지고 큰 집 하나를 발견한 임가밀로 신부는 “이 집을 성당으로 삼을 수 있게 해달라고, 그러면 성모님을 마리아의 주보(수호성인)로 모시겠다”며 매일같이 성모께 간청을 했지요.“

    “그의 신념이 현실로 이루어진 거군요.”

    1943년 이곳에 또 한번 이곳에 성당이 지어진 연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은 본명 일본군이 신사를 지으려고 터를 닦던 곳이었는데?

    “당시 임 가밀로 신부가 무염시태 기적의 패를 묻어두고 “이 공사를 중단하게 해주시면 이곳을 성모님께 봉헌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하셨답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공사 중 여러 가지 기상이변으로 더 이상 진행하지 못했다고 해요.”

    “그의 뜻이 간절했기에 신사터가 될 뻔한 이곳이 성모광장으로 봉헌될 수 있었군요!”

    이곳 매괴박물관 또한 1930년대 지어진 오래된 건축물. 충북 최초의 석조물인지라 회색빛을 띠기 때문에 화려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런 멋이 느껴진다. 그 안으로 들어가 보자.

    “전시실에는 1930년대에 사용됐던 신구약성서 한지 필사본 등 다양한 천주교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군요. 앗! 이건 임가밀로 신부의 태극기를 소개하는 글 아닌가요?”

    “맞아요. 국 직후 임 신부는 고종 황제로부터 태극기 하나를 받았는데, 일제강점기 때 이 태극기를 제의장 밑에 깔고 미사를 돕던 사람들에게 몰래 보여줬다고 해요.”

    일제의 감시로 사람들은 태극기를 만들지도, 마음대로 꺼내기도 어려웠던 시기였다. 이에 임 신부는 우리 민족에게 태극기를 보여줌으로써 민족의식을 일깨우고자 했던 걸까?

    “정말로 마음 깊숙이 한국을 사랑했고, 한국의 신자들을 사랑했던 마음이 느껴져요.”

    “박물관 옆으로는 산을 따라 묵주기도길과 십자가의 길 14처가 이어져 있어요. 이 성지를 한 바퀴 둘러보고 나면 아름다운 풍경과 100여 년 전 이곳에 살았던 외국인 신부의 마음이 전해져 마음이 더욱 따스해질 거예요.”

    51년 동안 본당에서 사목 생활을 하던 임 신부는 194년 10월 "성모여 저를 구원하소서"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가 평소 하던 말은 더욱 뜻깊다는데?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임 목사가 평소에 자주 했던 말이었습니다. 매괴 성모성지 ‘영성의 집’ 앞에는 임가밀로 신부의 동상과 그 발아래 이 한 줄의 글이 새겨져 있죠.”

    “이제는 성지 곳곳에 그의 향기와 그를 기억하려는 이들의 사랑이 자욱하게 남아 있어요”

    종교적 의미는 말할 것도 없는 감곡매괴성당. 이와 더불어 이곳은 일제강점기의 혹독한 감시 하에서도 성당을 방문하고 미사를 보던 신자들에게 몰래 숨겨둔 태극기를 보여주곤 했던 임가일로 신부의 투철한 독립운동정신이 깊이 서린 곳이기도 합니다. 당시 신부가 꺼내든 태극기는 한국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그였기에 여기가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우리 민족의 가슴에 새겨두라는 의미였을 겁니다. 진정 나라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요? 여러분은 이곳 성지에서 어떠한 진정성을 느끼고 돌아올 생각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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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류의 맛이 있는 조령리 도리뱅뱅이

    풍류의 맛이 있는 조령리 도리뱅뱅이

    지역충청북도 옥천군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7 호감도

    풍류의 맛이 있는 조령리 도리뱅뱅이

    • 프롤로그
    • 1.진짜 도리뱅뱅이 맛집은 어디?
    • 2.도리뱅뱅이의 시초
    • 3.뱅글뱅글 둘러내와 ‘도리뱅뱅이’
    • 4.겉은 바삭, 속살은 보들보들
    • 5.도리뱅뱅이 그 재료가 궁금해?
    • 6.누런 향토 빛 머금은 밤막걸리도 한 잔
    • 7.풍류의 맛이 담긴 도리뱅뱅이
    • 8.낭만과 함께해온 옥천사람들
    • 에필로그

    풍류의 맛이 있는 조령리 도리뱅뱅이

    - 충청북도 옥천군 -

    옥천을 즐기려면 금강을 알아야 합니다. 금강, 어떻게 즐길까요? 먼저 눈이 호강하는 금강 드라이브 코스가 있죠. 금강휴게소 자락의 금강유원지에서 즐기는 수상레포츠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배부르고 신나는 '금강의 맛'이 더해진다면 금상첨화겠죠? 조령리에 가면 별미 도리뱅뱅이를 맛볼 수가 있습니다. 그 재미있는 이름만큼이나 입안에서 맴도는 느낌도 참으로 유쾌 발랄하다죠? 그래서 <트래블아이>가 제안합니다. ‘도리뱅뱅이를 오감으로 맛보고 돌아오라’!

    금강휴게소에서 고속도로를 타지 않고 굴다리를 지나 도리뱅뱅이 마을로 들어선다. 고속도로 휴게소와 닿아 다가가기가 제법 수월하다. 근데 이 마을 진짜 맛집은 어디에 있지?

    “도리뱅뱅이마을이라 아무 데나 가도 다 도리뱅뱅이가 있겠구나!” “이 마을에 도리뱅뱅이가 맛있다고 소문난 맛집은 따로 있어."

    "대표적으로 선광집이나 대박집을 꼽을 수 있는데, 대박집은 내비게이션이 인식을 못하네?” “그렇다면 선광집으로 가자!”

    금강 자락 어디서든 도리뱅뱅이를 맛볼 수 있지만 도리뱅뱅이의 시작은 이곳 조령리(도리뱅뱅이마을)다. 언제부터 이곳을 도리뱅뱅이마을이라 부르게 됐을까?

    “할머니, 이곳 지명이 원래 도리뱅뱅이마을인가요?” “도리뱅뱅이마을은 무슨. 외지인들은 다 여기를 그렇게 부르대? 여기는 조령리여!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에 도리뱅뱅이 만드는 법을 외지인들이 알려주고 가면서 해먹기 시작했지."

    "그렇게 역사는 깊지 않지만 어찌되었건 도리뱅뱅이를 처음 선보인 건 바로 이곳 조령리네요?”

    별미를 제대로 맛보려면 재료나 함께 곁들여먹는 음식도 알아야 하지만, 그 이름의 어원도 알아야 진짜 맛을 안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도리뱅뱅이’라 하는지도 알아야겠지?

    “왜 도리뱅뱅이지? 금강이 휘돌아나가는 옥동천에서 잡아 요리했기 때문일까?

    “도리뱅뱅이는 피라미를 잡아 내장을 꺼낸 뒤 여러 마리를 둥글게 이어 붙여낸 후 기름을 부어 자작하게 튀겨내지. 그때 이 동그란 모양을 보고 도리뱅뱅이라고 했어. 머리를 마주보고 있다고 해서 ‘마주봐’라고도 부르지.”

    손가락 굵기 만한 피라미로 요리한 도리뱅뱅이를 마주했다. 질서 있게 담아낸 비주얼이 참 좋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는데. 이제부터는 그 맛을 천천히 음미해보자.

    “속살이 정말 부드러워! 기름에 바싹 튀겨졌기 때문에 겉은 바삭하면서 고소해. 신기하게 느끼한 맛이 없어서 자꾸 손이 가네.”

    “이 약간 매콤한 고추장 양념이 가려주는 거야. 고기의 내장을 제거하고 기름에 튀겨낸 뒤 곧바로 양념을 발랐어. 옥천의 별미를 대표할 만한 맛이구나!”

    뼈째 먹어 칼슘도 풍부한 도리뱅뱅이, 피래미로 요리했다. 그런데, 도리뱅뱅이 재료는 계절마다 달라진다는데?

    “이건 피라미로 요리했네?”

    “도리뱅뱅이는 계절에 따라 민물고기 재료가 달라지는 게 특징이야. 겨울이면 피라미 대신 빙어가 올라가기도 하고 빠가사리로 더 유명한 동자개, 모래무지, 새끼붕어 등이 메인재료가 되기도 하지.

    탱글탱글한 생선살을 살캉살캉 씹다보면 걸죽한 시골막걸리 한 사발이 떠오른다. 여기에 곁들여먹는 특이한 막걸리가 있다는데?

    “메뉴에 특이한 이름의 막걸리가 눈에 띄어. 안 그래도 시골막걸리가 막 떠올랐는데, 이건 밤을 넣어 만든 밤막걸리야.”

    “도리뱅뱅이와 막걸리의 궁합이 환상적군. 이걸 두고 금상첨화라 하는구나.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먹거리의 즐거움이 느껴져. 그래서 옥천 사람들이 풍류의 멋을 안다고 하나봐.”

    한 음식평론가는 옥천을 빼놓곤 영동의 맛을 논할 수 없다고 했다. 옥천 특유의 풍경과 향을 품은 도리뱅뱅이를 마주하면 옥천 사람들의 삶도 느껴질까?

    “도리뱅뱅이에서 풍류의 맛이 느껴지지 않니?”

    “맞아. 옛날엔 강가에서 천렵을 즐기며 즉석에서 매운탕을 끓여 먹거나 민물고기 튀김을 만들어 먹는 것을 최고의 피서로 쳤다지?” “정말 이런 피서가 다시없겠어!”

    금강휴게소에서 내려다보는 금강의 풍치는 매우 유명하다. 도리뱅뱅이마을을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탈 생각이라면 금강휴게소에 잠시 들러보자. 한편의 명시를 만날 수 있다.

    “지금이야 정지용 시인 덕에 '향수의 고장'으로 알려졌지만 그가 복권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 옥천은 금강줄기로 더 유명했다지?”

    “맞아. '옥천'을 모르는 이들도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하면 '아, 거기'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기왕 여기 온 김에 정지용생가로 한번 가보는 건 어때?”

    청정 보청천에서 잡은 민물고기로 직접 요리해 팬에 뱅뱅 돌려 내오는 도리뱅뱅이로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우면 포만감에 절로 흡족해질 겁니다. 과거 대청댐으로 환경도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금강이 휘돌아나가는 옥천 조령리. 다른 휴게소와 달리 금강유원지이자 주민들의 생활터전을 감상할 수 있어 더 좋은 이 마을은 여전히 강가에서 민물고기를 잡아먹습니다. 이곳 도리뱅뱅이의 맛은 이제 특산품을 넘어 옥천의 맛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강줄기가 그려낸 풍경에 더해진 옥천 민물 맛이 궁금하다면 지금 당장 옥천으로 떠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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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 빛의 도시가 되다

    밤, 빛의 도시가 되다

    지역부산광역시 수영구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5 호감도 hotmark

    밤, 빛의 도시가 되다

    • 프롤로그
    • 1.추억과 만나는 곳
    • 2.영화 속 그곳!
    • 3.벽에 그려진 익숙한 얼굴
    • 4.바닷소리, 그리고…
    • 5. 우리나라가 아닌 듯이!
    • 6.새로운 랜드마크
    • 7.바다를 물들이다
    • 8.쏟아지는 불꽃의 향연
    • 에필로그

    밤, 빛의 도시가 되다

    - 부산광역시 수영구 -

    부산 수영구는 어느새 ‘광안리’라는 이름으로 크게 불리게 되었습니다. 부산 하면 떠오르는 바다에 손꼽히는 광안리는 해수욕장을 비롯해 많은 관광명소와 축제 등을 통해 점점 더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여름이면 피서객으로 넘쳐나는 이 곳. 하지만 최근 여름만이 아닌 ‘밤’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가득하다고 하는 데요. 뜨거운 태양 아래 빛나는 금빛 모래사장, 맑게 출렁이는 녹색 바다가 아닌 새로움! 오늘의 <트래블아이>미션은 ‘광안리의 밤을 느껴라!‘입니다.

    광안리 해수욕장에는 두 가지 조형물이 서있다. 그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그것만 보면 아, 이곳이 광안리가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 조형물의 이름은 ‘상생공간’이라고 해. 바다와 사람, 환경이 어우러진 모습을 담아낸 이 조형물은 광안리의 만남의 광장을 상징한다고 해.”

    “하지만 저 멀리 보이는 반짝이는 조형물도 시선을 마음껏 끌고 있는 걸? 아마 저 조형물이 ‘바다의 노래’인가봐. 그런데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광안리는 그저 해수욕을 즐기기 위한 공간이라 말하기에는 너무도 문화적 가치가 높다. 특히나 저 요트장은 어디에선가 많이 본 것 같은데?

    “요트장이야! 수 백 대의 요트가 세워져 있는 저 곳을 보면 꼭 영화 속 주인공이 요트를 타고 밤 바다를 달리던 장면이 생각나는 것 같아.”

    “정확히 봤어. 바로 저 곳이 여러 영화에서 활용되는 요트 장면의 배경이 된 곳이지. 어떤 영화인지 알아볼까?”

    민락 활어 직판장에는 한 번 쯤은 보았을 법한 얼굴이 그려져 있다. 사실적으로 그려진 이 그림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고 하던데?

    “이 그래피티의 이름은 ‘나이든 어민의 얼굴’이야. 주차타워의 벽을 가득 채운 이 그래피티는 멀리서도 한 눈에 들어올 만큼 커다랗게 그려져 있지.”

    “도심의 벽에 장난스럽고 익살적으로 그려진 그래피티는 많이 보았지만, 이렇게 섬세하고 크게 그려진 것은 처음 보는 것 같아. 과연 누가 그린 그림일까?”

    푸른 페인트가 칠해진 스탠드에는 돗자리를 깔고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게다가 조금씩 찰랑이다 이따금씩 땅으로 올라오는 파도가 재미있다.

    “수변공원? 이름이 정말 잘 어울리는 곳이야. 천장도 잘 마련되어 있어서 뜨거운 여름날에도 휴식을 취하기에 좋은 곳이지 않을까?”

    “수변공원은 국내에서 최초로 바다와 휴식공간을 결합한 곳이라고 해. 이곳의 시설은 4만명이나 수용할 수 있다고 하니 유명세를 탄 광안리에 정말 잘 어울려.”

    해외에나 있을 법한 테라스가 쭉 펼쳐져 있다. 해안 모래사장을 벗어나면 즐비해있는 테라스에는 꼭 외국인들이 앉아 브런치를 먹고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의 정서를 바꾸어 놓은 곳 인 것 같아. 테라스 문화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부터 조성되었다고 하니, 정말 놀라워”

    “끈기의 승리이지. 누가 알았겠어? 이런 테라스를 구성해 놓자 야경이 아름다운 광안대교를 찾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 올 거라고!”

    밤의 광안대교를 달려보지 않았다면, 부산에 다녀왔다고 말 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니, 광안대교가 어떻길래?

    “대교 아래로 아득하게 펼쳐진 바다를 좀 봐! 광안대교에서 빛나는 아름다운 조명빛이 하늘과 바다로 쏟아지니 정말 장관을 연출하는 것 같아!”

    “광안대교를 배경으로 펼쳐진 수영구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오잖아! 이 곳에 오르니 수많은 사람들이 광안리 해변과 그 주변에서 우리를 올려다보고 있는 것 같아.”

    허공에 글자가 떠다닌다. 게다가 은하수는 보이지 않는 도심에서 별빛이 쏟아 내릴 것만 같다. 이런 빛들이 광안리의 밤에 있었다니!

    “광안리 전체가 밤이 되니 하나의 미술관이 되었어. 다름 아닌 ‘빛 미술관’이지. 어둡고 으스스할 것만 같은 밤바다에 이런 예술이 자리하고 있었다니 전혀 몰랐어.”

    “게다가 이 바다 빛 미술관은 세계에서 최초로 시도 된 것이라고 하니, 모든 작품을 찾아 걷는 밤의 광안리에 쏠쏠한 재미가 생겨났어.”

    매년 10월, 이틀간 광안리의 바다는 숨 쉴 틈 없이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리고 일순간, 광안리의 검은 밤하늘과 광안대교를 배경으로 수많은 불꽃이 수놓아지기 시작한다.

    “이제 곧 불꽃축제의 시작이야! 그런데 사람이 이렇게나 많이 몰려오면, 불꽃을 제대로 구경하기엔 힘이 들 것 같아.”

    “맞아. 하지만 불꽃놀이를 관람할 수 있는 곳은 이 광안리 해수욕장 뿐만은 아니니까. 미리 알아보고 왔으니 걱정하지 말라구!”

    해수욕장의 밤 하면 떠오르는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떠올라 봐야, 어둡고 찬찬한 바다를 배경으로 돗자리를 깔고 앉은 몇몇의 사람들만 떠오를 것입니다. 하지만 부산 수영구의 바다는 그렇지 않습니다. 밤을 알리는 달이 떠오르면, 광안리 바다를 중심으로 활기찬 사람들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집니다. 이렇게 화려한 밤이 우리나라 또 어디에 있을까요? 바다여행을 계획하고 계신다면, 부산 수영구의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낮, 밤 할 것 없는 황홀한 바다를 즐겨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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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牛 횡성, 名品 한우

    와牛 횡성, 名品 한우

    지역강원도 횡성군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7 호감도

    와牛 횡성, 名品 한우

    • 프롤로그
    • 1.횡성하면 역시 한우
    • 2.소를 생각하는 남다름
    • 3.뚜레길의 비밀
    • 4.횡성한우에 열광하는 이유
    • 5.부드러운 육질과 풍부한 육즙
    • 6.달콤 쌉쌀한 더덕과 함께라면 금상첨화
    • 7.가격이 걱정이라고?
    • 8.횡성사람들에게 한우란?
    • 에필로그

    와牛 횡성, 名品 한우

    - 강원도 횡성군 -

    남녀노소 누구나 식탁에 오르면 젓가락이 가장 먼저 향하게 되는 것이 바로 '고기'입니다. 그 중에서도 부드럽고 담백한 한우는 담백하고 부드러운 맛에 반하여 체면 불구하고 젓가락질 전쟁을 멈출 줄 모르게 합니다. 한우 하면 횡성! 횡성으로의 여행에서 한우를 맛보는 것은 빠질 수 없는 필수 코스가 되어버렸습니다. 횡성한우는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하나의 브랜드를 형성하며 맛과 품질에 신뢰를 이어오고 있는데요, <트래블아이>가 제안하는 오늘의 미션은 ‘횡성 한우의 5가지 특별함 찾아보기’입니다.

    횡성 톨게이트를 지나 마을입구로 들어서면서부터 보이는 한우 동상이 역시나 한우의 고장다운 느낌을 물씬 풍기게 한다. 마을 건물들 사이로 한우전문점이 많이 보이네?

    “역시 한우의 고장답게 횡성으로 들어서자마자 한우전문점들도 많이 보이는데, 횡성 어딜 가나 신선하고 맛있겠지만 특별한 맛집이 따로 있을까?”

    “소 잡는 날을 표기해둔 한우 직판장들이 보인다. 그곳에 가면 한우의 특별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횡성한우가 명품이 된 이유는 따로 있다. 소를 생각하는 마을사람들의 남다른 마음 때문일 것. 자식보다 더 끔찍이 생각하고 가족처럼 보듬던 그 마음 때문이 아닐까?

    “횡성은 예부터 소를 생구(生口)로 여기면서 한 식구처럼 살았어. 농사를 짓는 사람들로 소는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재산이었지. 소 하나만 바라보면 안 먹어도 배부르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논밭을 갈고 짐을 나르던 소를 팔러 우시장으로 가는 길엔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지 않아 가다 쉬다를 반복했더랬지.”

    소와함께 뚜벅뚜벅 걷는 길. 소가 사람의 발에 걸음을 맞추고 사람은 소의 힘겨움에 발걸음을 늘인다. 함께 걸어온 지금까지의 세월이 뚜레길의 비밀이 아닐까?

    “주인아저씨 말을 들으니까 횡성 사람들이 얼마나 소에게 각별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이따 저기 뚜레길도 걷고 와봐. 220km 정도의 도보길인데 소코뚜레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 뚜레는 몸과 마음의 질병에서 벗어난다니 한번 쯤 걸어보는 것도 좋지.”

    횡성한우가 고유의 브랜드로 인정받고 신뢰할 수 있게 된 것에도 특별한 이유가 숨어있겠지?

    “횡성에 한우가 유명해진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아. 아마 소를 생각하는 마음에 소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고 건강한 소가 건강한 맛을 내는 게 아닐까?”

    “맞아. 그리고 논농사를 지으며 나온 볏짚을 소에게 먹이고 오염 없는 좋은 송아지만 잡아서 부드럽고 담백한 맛을 자랑한다고 해.”

    횡성한우는 입에 넣는 순간 부드럽게 씹히는 감칠맛이 일품이다. 건강하고 우수한 소가 건강하고 담백한 맛을 내는 비결이 아닐까?

    “핏기가 가셨으니 한 번 먹어볼까? 음~ 정말 부드러운데? 이래서 명품한우라고 하나봐.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진해져.”

    “천천히 먹어. 횡성한우는 역시 부드럽고 풍부한 육즙이 살아있는 것 같아. 자꾸만 손이 가네.”

    횡성의 또 다른 별미 중 더덕을 빼놓을 수 없다. 달콤 쌉싸래한 더덕과 배를 올려 노른자를 탁 깨 넣으면 금세 신선한 더덕육회 한 접시가 완성이다.

    “횡성하면 더덕을 빼 놓을 수 없잖아. 한우랑 함께 먹어도 그만이라기에 조금 주문해봤어.”

    “횡성더덕은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태기산기슭에서 재배한 더덕으로 국내 최고 품질로 인정받고 있다지? 함께 먹으니까 심심하지 않고 간이 딱 맞는 것 같아.”

    가족의 건강과 여행의 즐거움에 가격걱정은 잠시 접어두자. 입이 즐겁고 통통해진 뱃살에 얇아지는 지갑이 대수랴.

    “그런데 우리 이렇게 많이 주문해도 괜찮을까? 슬슬 걱정이 되는데?”

    “여기는 한우 직판장이라 일반 한우전문점보다 가격이 훨씬 낮다고. 하지만 품질은 다른 곳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라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그리고 밑반찬도 다른 가게와 다를 것 없이 준비된다고 하니 훨씬 저렴하게 먹을 수 있어.”

    소 하나만 바라온 세월만큼 정직하고 건강한 한우를 만들어 내는 것일 터. 횡성 사람들에게 한우는 횡성사람들의 삶 그 자체가 아닐까?

    “횡성 한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한우를 먹어보니까 왜 횡성한우가 횡성의 대표가 된 것인지 알 것 같아.”

    “난, 왠지 횡성 사람들이 지금도 소를 몰며 어디론가 가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소는 횡성 그 자체 인 것처럼 말이야.”

    횡성에 들어서면 거리마다 줄지어 늘어선 한우전문점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질 좋은 한우 중에서도 으뜸이라는 횡성한우는 언제나 품질과 맛에서도 언제나 앞서고 있습니다. 횡성한우의 다섯 가지 특별함으로 함께 맛본 한우, 그 중에서도 소를 생각하는 횡성사람들의 진심이 가장 특별한 비밀이 아닐까요? 육즙이 살아있는 고기 한 점에 달콤 쌉싸래한 횡성 더덕 하나 올려 크게 쌈 하나 싸먹으면 다른 보약이 필요가 없습니다. 소를 위하는 마음이 담겨 더욱 특별한 한우의 맛이 궁금하다면 지금 바로 횡성으로 떠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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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적인 美를 품은 전주 한옥마을

    한국적인 美를 품은 전주 한옥마을

    지역전라북도 전주시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5 호감도

    한국적인 美를 품은 전주 한옥마을

    • 프롤로그
    • 1.자고로 한옥은 낡음의 미학이 아닐까
    • 2.항일정신위에 지어진 한옥마을
    • 3.두 눈에 담긴 전주
    • 4. 전통주 한잔 걸치고
    • 5.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 6. 태조 이성계의 본향
    • 7.승광재로 오시쇼
    • 8.뉘엿뉘엿 해가지면
    • 에필로그

    한국적인 美를 품은 전주 한옥마을

    - 전라북도 전주시 -

    한옥만큼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잘 표현하는 건축물이 있을까요? 가지런히 놓인 기와에 넓게 펼쳐진 대청마루는 예스러움과 함께 고풍스러운 아름다움까지 흐릅니다. 도심에서는 한옥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쉽지 않지만 전북 전주에는 조선을 품은 전주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항일정신이 깃들어 있는 한옥마을의 길목 길목마다 피어있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은 시간의 흐름마저 무색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트래블아이>가 제안하는 이번 미션은 ‘전주 한옥마을에서 한국적인 멋’입니다.

    도심 속 공사 중이라는 단어를 본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높고 번듯한 새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한옥이 아름다운 것은 자고로 세월의 흔적이 묻은 낡음 때문이 아닐까?

    “도심 속 높고 세련된 새 건물들만 보다가 한옥을 보니까 안정적이고 기품이 흐르는 것 같아. 역시 한옥은 세월의 흔적을 입고 조금은 낡은 모습이 멋있는 것 같아.”

    “서울 근교에서는 쉽게 보지 못한다는 것이 한옥의 아름다움을 더 극대화 시켜 주는 것일지도 몰라.”

    풍남동으로 들어서면 오밀조밀 한옥마을이 모여 있다. 한옥의 밑자리에 민족의 자긍심보다 더 짙은 항일정신이 깔려있다.

    “갈림길이 나왔어. 풍남동으로 가볼까?”

    “풍남동은 일제 강점기에 주민들이 똘똘 뭉쳐 한옥을 지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는 곳이야. 서쪽 가까이 일본인이 거주하며 큰 상권을 이뤘는데 반대편 풍남문 쪽에 오밀조밀 한 한옥마을을 지으면서 첨예한 대립을 이룬 곳이기도 해.”

    전주 시내를 한 눈에 담고 싶다면 오목대로 올라가보자. 완만한 빌딩 숲 사이로 빽빽하게 자리한 검은 기왓장이 늠름하게 담긴다.

    “지도를 보니까 10분정도 더 걸으면 오목대가 나와. 오목대는 고려 말 이성계가 왜군을 무찌르고 본향으로 돌아와 승전고를 울리며 자축한 곳이라고 하네.”

    “역사내용도 좋지만 난 오목대에서 바라본 풍경이 더 멋진 것 같아. 전주 시내가 다 보여.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아.”

    전통주 한 잔에 정겨운 노랫가락 한 소절 뽑으면 그것이 진정한 풍류 넘치는 삶이 아닐까? 전통을 어우르기에 전통주 한 잔이면 충분한 것을.

    “전통술박물관은 아직 멀었어?” “으이구, 조금만 기다려 곧 나와. 저기 보이지? 벌써부터 구수한 술 냄새가 풍기는 것 같은데? 취한다 취해.”

    “너야말로 진정해. 전통주에 취하기보단 자연과 경치에 취하는 것이 진정한 풍류야.”

    한옥마을 곳곳에 자리한 골목길은 정겨움 그 자체이다. 시간이 흐르는지 멈춰있는지 분간이 되지 않는 골목길들은 유난히 느린 걸음으로 걸어야 그 맛을 느낄 수 있다.

    “골목들이 좁고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다 다른 매력들이 숨어 있어. 자세히 보면 담장의 문양도 다르다고.”

    “정말이네. 소담하고 예스러운 것이 한옥뿐만 아니라 한옥들을 연결하고 있는 마을 골목길에서도 느낄 수 있어.”

    조선왕조를 세운 태조의 어진을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진 경기전. 한옥마을에서 만난 역사는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기에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한다.

    “어두워지기 전에 얼른 경기전으로 가자. 5시 전에 도착해야만 전통의상을 입어 볼 수 있다고.”

    “조선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의 본향이 전주라는 걸 오늘 처음 알았어. 한옥마을에서 한국적인 멋도 보고 역사도 배우니까 일석이조가 따로 없네.”

    마지막 황손 이석이 살고 있다는 승광재를 비롯해 전주 한옥마을은 한옥숙박체험을 해 볼 수 있다. 외국인뿐만 아니라 내국인들에게 더욱 환영받는 곳이다.

    “저기 외국인들도 많이 보인다. 무슨 체험을 하는 걸까?”

    “저긴 승광재를 비롯한 한옥숙박체험마을이야. 외국인들에게는 생소한 체험이라 인기가 많고 국내 관광객들도 한옥을 보기만 했지 그 속에서 지내 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내국인들에게도 인기 만점인 공간이라지? 한옥마을의 숙박체험 공간은 9개라는 것 기억해둬.”

    한옥마을을 돌아보면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노을에 잠긴 한옥마을은 비로소 그 멋의 절정을 이룬다.

    “마을 한 바퀴를 돌고나니 어느새 하루가 다 지나버렸어.”

    “마치 조선시대로 돌아간 기분이랄까? 텔레비전에서 한옥을 많이 봤기 때문에 별다를 것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고 나니까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더 깊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 같아.”

    하늘을 이불삼고 땅을 벗 삼아 낮은 자세로 흐르는 한옥마을에서 하늘높이 치솟은 빽빽한 건물들은 도심은 잠시 접어 둡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의 삶은 꺼지지 않는 네온사인처럼 반짝이지만 전주 한옥마을은 고풍스러운 예스러움에 풍류가 절로 흐릅니다. <트래블아이>의 미션대로 느린 걸음으로의 여행을 다녀보니,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빠른 걸음 속에 살아왔는지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으셨나요? 전주 한옥마을은 다양한 체험을 통해서도 또 다른 한국미를 느낄 수 있다니 도심 속 갑갑함이 지겹다면 전주 한옥마을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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