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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과 석상 사이를 지나다 눈을 의심했다. 젖줄 같은 넝쿨 끝에 덩그러니 놓인 수박 하나.
흐린 시야 너머로 산등성이가 붉게 타오르는 게 보였다. 하얀 구름이 짙어질 정도로 눈부신 오늘이 떠오르고 있다.
천 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이곳을 지나갔을 무수한 사람들. 그 사람들의 기억이 이어지는 한 영원이 흔들릴 깃발들.
둥글지 않은 것들 사이를 걷는다는 것은 어느 순간 서러워지고야 말 일이다. 갈수록 짙어져가는, 곡선에 대한 낯선 그리움.
열쇠 없이 걸어 둔 문이 올곧은 약속을 말한다. 쉬이 잠그지도, 쉬이 열지도 않을 것.
'지혜'라는 이름을 이곳에 선사한 것이 저 향교일까, '지혜'의 이름을 가진 고장이기에 저 향교를 지었을까.
구름에 가려진 빛을 상상하는 것은 언제나 설레는 일. 슬쩍 제 모습을 내비치는 저 재치를 보라.
한 사람의 손 끝에서 어찌 이리 다양한 빛깔이 필 수 있는 것인지. 정갈하고 정성스러워 젓가락 드는 일을 잠시 멈추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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