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조용히 어머니가 작은 소반에 밥과 국, 반찬을 담아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민철의 점심을 주기 위함이었다. 몇 날 며칠 술에 취해 사네 못사네 하던 아들을 위해 조용한 걸음으로 콩나물국을 끓여온 것이다. 평소 같았으면 이놈의 후레자식이라고 욕을 한 바가지 했을 아버지였지만 그저 잠잠히 신문만 바라보신다.
민철은 아버지와의 추억이 없다. 아버지가 소리 한번 크게 내실 때면 심장이 떨려 오줌을 지린 적도 있었다. 민철이 기억하는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다정하게 학교를 데려다 주는 친구의 아버지나 학원을 땡땡이쳐도 눈감아주고 함께 분식집에 들어가는 아버지. 민철에게 그런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었다. 옆집 아저씨라면 모를까.
그맘때 아이들이라면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놀이공원 가족사진. 민철에게는 사진 대신 민철이 그려놓은 그림 한 장뿐이었다. 그림에도 아버지는 없다. 엄마와 민철 그리고 남동생뿐.
설사 그 그림을 아버지가 보았다고 해도 민철이 아는 아버지라면 조금도 서운해하지 않았을 거다.
민철의 고등학교 친구들은 담배를 피웠다. 가끔 술도 마셨으나 다행히 민철에게 권하지는 않았다. 민철은 친구들이 소위 나쁜 짓을 할 때에도 아버지가 무서워 일탈을 꿈꿔본 적도 없다. 혹 꿈에 그런 장면이 나왔더라도 놀란 마음에 하루 종일 가시방석 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민철은 대학도 부모님이 원하시던 의대에 갔고 크게 속 한 번 썩힌 적이 없는 착한 아들이었다. 소위 말하는 엘리트코스를 밟아온 민철에게 큰 사건이 터졌다. 예기치 않게 찾아온 의료사고.
단순히 민철의 잘못만은 아니었다. 환자 가족들도 크게 노여워하지 않았지만 민철은 혼란에 빠졌다. 처음으로 자신이 집도한 환자가 생명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민철은 의사를 그만두어야 하나 생각할 정도로 혼란스러웠고 다시는 메스를 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고가 있고 난 뒤 민철은 일주일간 휴가를 냈다. 몇 날 며칠을 술로 지새우던 그에게 아버지가 조용히 다가갔다.
“옷 챙겨 입고 나와라.”
민철이 대답을 하기도전에 아버지는 조용히 낚시도구를 챙기셨다. 집 밖을 나가기도 싫었던 민철도 웬일인지 말없이 따라나섰다.
아버지가 낚시를 간다고 하면 어김없이 오던 곳이다. 그곳에서 둘은 하염없이 낚싯대만 바라보았다.
“미안하구나.”
낮은 음성으로 아버지가 말했다. 민철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며칠째 술만 퍼마셔서 그런지 헛것이 들리는 줄 알았다. 그래서 미쳐 대답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못 했다.
“많이 힘드냐. 자식 다 큰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네. 사람이 죽는다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거다. 그 사람 목숨 생각하면서 더 많은 사람 목숨을 위해 노력하면 되지 않겠냐.”
그렇게 무섭던 아버지가 왜 미안하다고 하셨을까. 그리고 아버지가 미안해해야 하는 건 무엇일까. 어릴 적 놀이동산에 한번 데려가지 않은 일일까 아니면 회초리 한 대 정도면 될 것을 열대를 때리고도 모자라 씩씩거린 일을 말하는 걸까.
물고기가 미끼를 물었는지 던져놓은 찌가 들썩거렸다. 하지만 아버지도 민철도 낚싯대를 건져 올리지 않았다. 다시금 찌가 잠잠해졌다. 미끼만 먹고 달아났다 보다.
아버지는 민철이 어렸을 적 이곳에 온 적이 있다고 했다. 민철이 기억을 못 하는 것일까. 아니면 민철의 기억 속에 있던 아버지와의 추억을 민철이 스스로 지운 것일까.
민철은 퉁퉁 부은 아버지의 손을 말없이 잡아주었다. 그리고는 이 시간을 잊지 않으려는 듯 낚시터를 빙 둘러볼 뿐이었다.
한참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친구가 어깨를 툭 쳤다.
“야, 너 또 그런 거 보고 있어?”
“아, 깜짝이야. 인기척 좀 내고 다녀라. 간 떨어질 뻔 했잖아. 난 이게 제일 재미있더라.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는 게 한이야, 정말.”
내가 보고 있던 건 다름 아닌 고래 사진이었다. 유치원 때부터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 나의 고래 사랑은 쭉 이어져 왔다. 그렇다고 해서 고래의 생태와 습성 같은 것들에 대해 학술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나는 그냥 고래의 사진을 보는 것이 좋았다.
아쿠아리움에 가면 헤엄치고 있는 돌고래들도 귀엽지만, 뼈 하나가 사람의 키만큼 큰 고래들이 더 멋지다. 포유류들 중 몸집이 가장 크다는 고래. 비행기나 배를 타고 바다 위를 지날 때면, 저 아래 고래 한 마리가 헤엄치고 있는 상상을 해 보곤 한다. 흰긴수염고래처럼 거대한 고래를 만난다면, 나는 아마 기뻐서 기절해버릴지도 모른다. 그보다 조금 작은 긴수염고래도 좋고, 점박이가 귀여운 범고래도 좋다. 다큐멘터리 채널에 고래가 나올 때마다, 기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고래나 공룡은 어렸을 때나 좋아하는 거 아니냐는 사람들이 많은데, 천만의 말씀이다. 이 거대한 생명체가 움직이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고래는 우리 학교 건물만큼이나 커다란 몸집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 육중한 몸을 움직여 바다 속을 거니는 것이다. 학교가 물속을 헤엄치는 모습을 상상 해 보라! 놀랍지 않은가.
“나 어제 텔레비전 보는데 네가 정말 좋아할만한 곳 나오더라.”
자리에 앉자마자 고래 얘기를 시작하려는 내 말을 지영이가 뚝 끊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이미 고래변태라는 해괴한 별명을 얻은 나는 한 번 고래 얘기를 시작하면 멈출 줄을 몰랐다.
“울산에 장생포 고래 박물관이라는 데가 있는데, 거기 가면 4D 영상 체험도 할 수 있고 고래 뼈도 볼 수 있대. 왜, 그 공룡 전시회처럼.”
나는 지영이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지영이를 꼭 끌어안고 말았다. 당장 가자며 방방 뛰며 조르자, 참다못한 지영이가 내 머리에 꿀밤을 한 대 먹였다.
지체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 주말에 바로 친구를 끌고 울산까지 왔다.
“정말, 너한테 그런 말을 한 내가 바보지.”
투덜대는 지영이에게는 울산의 명물이라는 치즈 맛 고래 빵 열 개짜리 한 세트를 사 주었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내가 가끔 꾸는 고래 꿈처럼 달달한 맛이 났다.
고래 박물관답게 정원의 조형물들도 모두 고래 모양이어서 여기저기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눈이 동그래져서 정원을 둘러보고 있는데, 지영이가 고래 모양을 한 매표소 앞의 황동상에서 멈추어 섰다. 황동상은 돌고래와 입을 맞추고 있는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고래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인지, 아니면 소녀가 바다 속으로 들어간 것인지 알 수 없는 신비로운 모습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지영이가 무릎을 탁 쳤다,
“<돌고래의 요정 티코>! 우리 어렸을 때 방영됐던 만화!”
“그런데 만화에 나오는 건 돌고래가 아니라 범고래였어!”
내 말에 지영이가 깔깔 웃었다. 물론 나도 그 만화를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 이십 대 중반 줄에 들어서고 있는 또래들 중, 이 만화를 한 번도 보지 않은 아이가 몇 명이나 될까. 만화는 범고래랑 친구인 소녀가 전설의 황금고래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내용이었는데, 어린 마음에 범고래와 함께 바다 속을 헤엄치는 주인공의 모습이 정말 멋져 보였다. 어쩌면 내가 고래를 좋아하게 된 것이 이 만화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결국 고래 이야기를 시작했다. 고래가 나오는 영화, 고래가 나오는 소설, 고래가 나오는 만화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는 끊이지가 않았다. 박물관에 들어서며,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해 보았다.
소녀와 함께 헤엄치던 고래는 영화 <그랑 블루>의 포스터 속 달빛 아래에서 뛰어오르는 고래와도 닮았고, 황금고래는 <피노키오>에 나오는 거대한 고래와도 닮아 있었다. 사람들이 꿈꾸는 고래의 모습은, 딱 이 귀여운 고래 빵을 수만 배로 부풀려 놓은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니까, 전 세계 사람들은 태어나서 한 번쯤, 고래를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여자를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남자는 한참을 그 시간에 멈춰있었다. 낮인지 밤인지 문 밖에 신문은 켜켜이 쌓여만 갔다. 술로 하루를 시작하고 또 술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남자가 마시는 것이 술인지 눈물인지 모를 만큼 슬픔을 잊기 위해 슬픔을 들이켰다. 얼마나 그 시간에 갇혀 있었던 건지 옆집 사는 사람이 쌓여있는 신문과 상해버린 우유들을 보고 초인종을 몇 번 누르고 간 적이 있다. 인기척을 낼 마음의 여유가 없던 남자는 그냥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렇게 몇 차례 경비 아저씨와 옆집 아주머니가 남자의 집 앞을 다녀간 뒤로 남자의 근황을 염려하는 사람은 없었다.
남자가 여자를 처음 본 것은 병원에서였다. 대학병원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동네에서는 꽤 큰 크기의 종합병원에 근무하던 여자의 직업은 간호사였다.
오토바이를 타다 균형을 잃고 넘어지면서 무릎을 크게 다친 남자는 여자가 근무하는 종합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실로 꿰맨 무릎에 소독을 하러 여자가 남자의 병실에 찾아왔다. 하얀 얼굴이라 그런지 단정한 간호사복이 잘 어울리는 여자는 순백의 천사처럼 보였다. 남자의 상처를 소독할 때면 마치 엄마처럼 상처부위를 호호 불어가며 소독약을 발랐다.
남자의 생활은 꽤 거칠었다. 어울리는 사람들은 험악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생활도 거의 해가 저문 밤에서야 시작되었다. 그런 그를 변화시킨 것도 여자였다. 사랑을 시작하게 되면서 거칠었던 생활도 점차 안정을 찾고 특별할 것 없이 잠잠하게 사랑을 키워나갔다.
그날도 어김없이 여자를 병원에 데려다 주는 길이었다. 매일같이 여자를 데려다 주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날따라 꺼림칙한 느낌에 잠깐 짬을 내어 여자를 데려다 주었던 것이다.
악. 짧은 비명과 함께 여자가 붉은 피를 쏟으며 자리에 쓰러졌다. 종종 어지럽다고 했었는데 그저 과로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여긴 여자의 몸이 병으로 물들어가고 있는 줄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렇게 여자는 남자의 곁을 떠났다.
실로 오랜만에 남자의 집 앞에 인기척이 들렸다. 남자는 여전히 문 밖을 신경 쓰지 않았으나 강제적으로 문을 따는 소리가 들렸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철컥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집 주인의 허락도 없이 현관문은 스르륵하고 열렸다.
“아직도 이러고 있는 거야? 연락을 해도 답이 없더니만.”
남자의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친구의 방문 아니 무단침입이었다. 남자는 그 와중에 원래 집 주인 허락 없이 문 열어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가. 너랑 실랑이 할 힘도 없어.”
“어후, 술 냄새.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 건데. 뭐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할 것 아니야. 밥이라도 챙겨먹어야지 이 술병들 좀 봐.”
“만사 다 귀찮으니까 가라고.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알아서 하긴, 너 이렇게 사는 거 하늘에서 보고 좋아 할 것 같냐? 이젠 충분해 너도 돌아와야지.”
남자의 어깨가 들썩였다. 소리도 채 새어나오지 않은 울음이었다. 아주 작은 흐느낌으로 남자는 슬픔을 삼켰다. 남자는 여자가 이렇게 아팠던 것이 모두 다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았다.
남자의 슬픔을 바라보던 친구는 남자를 억지로 차에 태웠다. 그리고는 회산백련지에 남자를 데려다 놓았다.
“자. 이제 네 모든 슬픔 여기다 다 남기고 가. 그분도 편하게 보내주고. 이젠 편하게 보내줄 때 된 것 같다.”
하얗게 핀 연꽃이 꼭 그녀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담담한 눈빛으로 넓게 펼쳐진 백련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그녀를 조금씩 놓았다.
넓게 펼쳐진 저수지에 유독 하얗게 핀 백련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했다. 이제는 놓아 보겠다고. 희고 아름다웠던 당신을 잊지는 않겠지만 더 이상 슬퍼하지 않겠다며.
그 해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다. 뉴스에서는 비닐하우스에서 딸기를 따던 노인의 갑작스런 사망을 보도했다. 사실상 장마나 태풍이 왔다고 해도 기승을 부리는 더위는 쉽게 가실 줄을 몰랐고 사람이고 식물이고 더위에 지칠 수밖에 없었다.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는 곳에서는 땀이 비 오듯 흘렀다.
택배 배달 일을 하는 나는 유난히 더위에 도출이 잦았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옷이 땀에 젖었다 말랐다 해서 비릿한 냄새가 났다. 아내는 내 땀냄새를 보고 돈냄새라고 했다. 아내에게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이었지만 순수하던 아내가 속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미안했다.
일하던 중 유일하게 쉴 수 있었던 곳은 시원한 백화점이나 좋은 건물에 배달을 가는 것이었다. 운이 좋으면 시원한 음료를 건네기도 했고 수령인이 한 10분만 기다려 달라고 하면 못이기는 척 시원한 곳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기다려주기도 했다.
그 해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다. 아마도 폭염주의보가 사흘째 이어지던 날일 것이다. 온 몸에 주름진 곳이라면 땀이 끼어있었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고 쉴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므로 수십 개 아니 수백 개의 노란색 박스를 옮겨 담았다. 오로지 아내와 딸아이를 생각하면서였다.
순간 핑.
하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눈을 끔뻑이며 정신을 차려보려고 했으나 이미 하늘은 노란빛을 띠었고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전부 두 개로 겹쳐 보이다 이내 검은 빛을 띠었다. 악 소리 한번 질러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상자박스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고 그 다음은 기억이 없다. 눈을 떠보니 하얀색 천장이 보였고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아내의 얼굴이 보였다. 아내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고 내가 눈을 뜬 것을 확인한 뒤 이내 약간의 혈색이 도는 듯 했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내의 얼굴임을 알면서도 잠시 동안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곳이 어디인지, 나는 왜 여기에 누워있는지.
“당신 괜찮아요? 정신 잃고 쓰러졌었는데.”
순간 하늘이 핑 돌더니 이내 쓰러졌던 모양이다. 건강만큼은 자신한다고 생각했는데, 택배 일 하면서 절로 운동한다고 탄탄해진 허벅지를 자랑했는데 이내 쓰러진 모양이었다.
“쓰러졌다고? 얼마나?”
“쓰러지자마자 누가 바로 보고 신고해줘서 다행이었어요. 지금 한 한 시간 정도 지났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그래? 이제 괜찮아. 그나저나 배달은 어떻게 한담.”
“지금 배달이 문제에요? 당신 열사병 때문에 쓰러진 거래요. 날이 계속 덥더니만.”
“열사병?”
쓰러진 이유가 과로이거나 빈혈인 줄 알았는데 열사병이었다. 그날따라 덥더라니.
퇴원 수속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약을 처방받고 며칠간은 뜨거운 곳에서 지나치게 운동을 하거나 일을 하는 것을 삼가라고 했다.
지나치게 운동을 하거나 고온 환경에서 일을 삼가라니. 일을 바로 쉴 수는 없었다. 그저 요령껏 땡볕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이고 시원한 물을 자주 마셔주는 것 밖에는 별 도리가 없었다.
출근 준비를 위해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데 아내가 웬 봉투를 쓱 내민다.
“이거 입고 다녀요. 이거 최고 좋은 거라 비싸게 주고 산거니까.”
아내가 내민 것은 모시양말과 손수건, 개량한복처럼 생긴 모시옷이었다.
“한산 모시? 모시를 입고 출근하라는 거야?”
“모시는 뭐 노인네들만 입으라는 법 있어요? 요즘 젊은이들도 시원하고 가볍고 통풍 잘된다고 다 입고 다녀요. 당신 또 쓰러지면 어떻게 해? 그러니까 그냥 입어요.”
아내는 내가 쓰러졌을 때 꽤나 놀란 모양이었다. 아내가 준비해 준 옷을 한번 입어본다. 바람이 분 것도 아닌데 시원했다.
살갗을 스치는 까슬까슬한 느낌이 좋았다.
할머니는 자주 혼자 계셨다. 언제부턴가는 가족들이 할머니를 보러오는 것도 귀찮은 눈치였다. 할머니는 엄마가 오징어채다 콩자반이다 밑반찬을 바리바리 싸와도 늘 김치 하나만 두고 드셨다. 그런데도 밥은 한 가득 꾹꾹 눌러 담아 드셨다. 그런 할머니에게 엄마는 바리바리 싸온 밑반찬과 함께 잔소리도 한 아름 늘어놓았다.
“엄마, 정말 이렇게 살 거야? 언제까지? 엄마도 아빠 따라 가려고 그래?”
“그런 말 마라. 이렇게 사는 게 어떻다고. 늙으면 다 그런 거지. 무슨 유난은. 이제 이런 것도 가져오지 마. 먹고 사는데 아무 문제없으니까.”
“김치, 지겹지도 않아? 그것도 폭삭 쉬어터진거. 만두도 못해먹겠다.”
할머니는 엄마의 잔소리가 귀찮다는 듯 조용히 보청기를 내려놓으셨다.
엄마는 할머니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잔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일종의 분풀이랄까 아니면 그것이 이 두 모녀만의 대화 방법이었을지는 모른다. 그저 반찬만 두고 바로 돌아선다면 독거노인 돌보러 오는 사회복지사와 무엇이 다를까 생각한지도 모른다.
할머니가 이렇게 혼자 계시기 시작한 것은 몇 달 전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서부터이다. 엄마는 할머니가 혼자 계시는 것이 안타까워 모셔간다고 우겼으나 할머니의 고집은 누구도 말릴 수 없이 단호했다. 엄마가 할머니께 반찬을 가져다줄 때면 내가 항상 뒤따랐다. 할머니 혼자 계신 집에 발을 들일 때면 항상 퀴퀴하면서도 짠 냄새가 났다. 할머니 고유의 살비듬 냄새가 벽지와 가구, 침구에 배어있는 듯했다. 할머니 댁에 갈 때면 은연중에 나도 모르게 킁킁거렸다. 예전에 할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에는 분명 깔끔한 냄새가 났었다고 기억한다.
“엄마, 할머니한테서 이상한 냄새가 나.”
“그런 말 마. 가꾸지 않아서 그래. 혼자 살면 원래 더 그런 거야.”
그리움이 켜켜이 쌓여서일까. 할머니의 방에서는 짜고 비릿한 냄새가 났다. 마치 새우젓과 같은 냄새랄까. 할머니의 흔적이 묻어있는 곳에서는 항상 할머니 냄새가 났다.
엄마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배추와 파 고추 등 김장에 필요한 재료들을 샀다. 할머니가 다 쉬어터진 김치만 두고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거실 한가득 김치 재료들을 늘어놓았다. 엄마는 한숨을 푹푹 쉬었으나 할머니를 다시금 찾아 뵐 이유가 생겼음에 기분이 들떠보였다.
김장 재료들 사이로 새우젓이 눈에 들었다. 할머니 방이 떠올랐다. 나중에 우리 엄마 방에서도 이런 냄새가 난다면 어떨까?
보자기로 한 보따리를 들고 할머니 댁을 다시 찾았다. 할머니는 반가운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심 속으로는 반가우신 모양이었다. 엄마는 언제나 그랬듯이 냉장고 문을 열었다. 저번에 엄마가 가져다 준 반찬이 거의 그대로였다. 엄마의 기대에 부응을 한 냉장고는 늠름하게 문을 닫았고 엄마의 잔소리는 다시금 시작되었다.
“엄마, 내가 가져다 준 반찬 하나도 안 먹었어?”
“먹었어.”
“뭘 먹어. 그대론데. 정말 속상하게. 또 김치 하나만 두고 먹었어? 휴. 안 그래도 김치 새로 담가왔어,”
“뭘. 또 새로 만들었어. 놔두라니까.”
할머니가 오늘은 보청기를 빼놓지 않는다. 엄마와의 대화가 이제는 귀찮지는 않은가 보다. 할머니의 방에 들어서면서 숨을 크게 들이마셔보았다. 할머니 냄새가 희미하게 묻어있었다.
할머니의 흔적이 묻은 곳에서는 짜고 비릿한 냄새가 났다.
누군가 검은 그림자가 빠른 걸음으로 내 뒤를 쫒고 있다. 잡힐 듯 말듯 도망가는데 순간 몸을 누가 옭아 맨 것처럼 옴짝달싹못하고 곧 잡힐 것 같아 두 눈을 꼭 감을 때 눈을 떴다.
“뭐야? 또 악몽 꿨어? 식은땀 좀 봐.”
며칠째 계속되는 악몽에 기분이 영 찜찜하다. 누군가 숨 막히게 쫒아오는데 항상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이 끝이 난다. 잠귀가 밝은 룸메이트는 항상 나 때문에 덩달아 잠에서 깬다.
“안되겠다, 너. 네가 경연이 얼마 안 남아서 신경이 좀 쇠약해 진 것 같아. 몸도 비쩍 마르고. 오늘은 고기파티라도 해야겠다. 얼른 옷 입어. 나가자.”
“아니야, 그냥 집에 있을래.”
“웬일이래? 고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사람이. 너 좋아하는 소고기 먹으러 갈려고 그랬는데? 이래도 안 갈래?”
못이기는 척 룸메이트를 따라나선 우시장 골목.
“검붉은 생간에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걸 보고 입맛이 돌아? 너 전생에 구미호 아니었나 잘 생각해봐.”
아무렇지도 않게 생간을 김에 싸먹는 룸메이트를 보고 어젯밤 꾼 악몽이 떠올랐다. 어쩌면 내 뒤를 바짝 쫒아오던 것이 룸메이트가 아닐까 생각했다.
처음 와본 길치고는 너무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여느 정육점 골목이 그렇듯 붉은 유리창 사이로 적나라한 갈비와 살점을 자랑하는 고기들이 걸려있고 비릿한 피비린내가 코끝을 자극하는 이곳. 우시장 골목을 언젠가 와본적이 있는 것 같았다.
“고기 타겠다. 얼른 먹어.”
고기 한 점을 가지고 깨작대는 내 앞에 놓인 접시에 고기 몇 점을 놓아주었다. 그러면서 우시장 비하인드 스토리라는 것을 들려주었다.
“여기 우시장 뒷골목으로 도축장이 있는데, 거기서 아직도 소 울음소리가 들린대, 음메에에에.”
“무슨, 차라리 옛날에 만득이 시리즈가 더 무섭겠다.”
룸메이트의 싱거운 말에 문득 옛날 기억이 떠올랐다.
우시장에 와 본 적이 있다. 기억이 떠올랐다. 시골에서 기르던 소를 팔러가던 날이었다. 할머니와 엄마는 한 걸음 한 걸음 무거운 발걸음으로 기르던 소의 고삐를 잡고 시장으로 향했다. 나는 그 길이 어떤 길인지도 모르고 웃으면서 엄마 뒤를 쫄래쫄래 따라 간적이 있다. 소는 몇 분 뒤 자신의 운명을 알기라도 하는 듯 자꾸만 뒷걸음을 치는 것 같았다. 할머니와 엄마도 가슴 아픈 심정으로 소의 고삐를 잡아당겼다.
도착한 우시장 골목으로 많은 소들이 사람들 손에 이끌려 와있었다. 무게를 재고 돈을 흥정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음메에에에.’
파란색 천으로 둘러싸인 곳에서는 유난히 구슬픈 소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렸을 때 나는 그곳이 어떤 곳인지 몰랐지만 지금은 알 것 같았다.
소가 구슬피 울어대던 이유를.
그날 엄마는 식탁위에 아빠가 좋아하는 육회와 꽃등심을 올려놓았다. 뭔지도 모르고 덥석 집어먹었던 육회는 고소하면서도 비릿했다.
그리고 왠지 그날 먹었던 것을 다 비워냈던 기억이 난다.
“언젠가 우시장에 와 본적이 있어. 거기에도 도축장이 있었는데 소가 구슬프게 울었던 기억이 나. 왠지 그 때의 기억이 꿈속에 나타나는 것 같아. 붉은 빛이 가득한 좁은 골목이었어.”
“그런데 평소에 괜찮다가 갑자기 왜 나타나는 건데?”
“글쎄, 경연이 다가와서 그런가봐.”
우시장 골목을 빠져나와 멀리서 다시금 붉은 빛이 선명한 정육식당 간판을 보았다. 여전히 고기들은 신선한 핏빛을 자랑하듯 걸려있었고 약간의 비릿한 냄새가 풍겼다.
누군가에게는 선명하고 붉은 빛이 식욕을 자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거운 마음을 내려두고 뒤를 돌아 나왔다.
더 이상 소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고 꿈속에서도 누군가가 뒤 쫒아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휴학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새내기로 맞았던 대학의 첫 봄은 너무 빨리 지나가버렸다. 남들도 다 겪는다는 미완의 러브스토리도 두어 개 생겼고, 아주 많은 사람들과 아주 많은 시간을 보냈다. 벚꽃 날리는 캠퍼스 잔디밭에 앉아 이야기를 하던 꿈같은 지난 봄. 올해도 캠퍼스에서 봄을 맞을 수 있었는데, 연년생인 동생이 사립 명문에 턱걸이로 합격하며 나는 휴학을 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동생의 학비를 위해 내 학업을 잠시 접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카페에서 시작한 파트타임의 아르바이트는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흰색과 푸른색으로 꾸며진 심플한 내부에 하얀 의자들이 놓인 카페는 내 취향에 꼭 맞는 곳이었고, 사장님께 라떼 아트를 배우는 재미도 쏠쏠했다. 직장인들이며 대학생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점심시간 대를 제외하고는 손님도 그렇게 많지 않았고, 별다른 사건 사고도 없었다.
문제는 이 사건사고가 없는 점이었다. 스물한 살이 맞는 봄 치고는 너무도 단조로운 이 봄. 동생의 SNS 페이지에 올라오는 대학 생활의 단면들을 감상하며, 왠지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여기에서 샷을 내리고 휘핑크림을 얹고 있고, 동생은 웃고 떠들고 공부하고 논다. 등록금 때문에 빚을 낼 수도, 갓 대학에 합격한 동생을 휴학시킬 수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억울한 마음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정오 즈음부터 해가 질 무렵까지 이어지는 아르바이트 때문에 여행을 가기도 애매했고,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과는 시간이 맞지를 않았다.
작년 12월에 1학년의 두 번째 학기를 종강한 이후로 카페와 집만을 오가던 내가, 갑자기 카페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린 것은 순전히 기분 전환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 날도 불만에 가득 찬 표정으로 계양역에서 내려 계양대교 위를 건너가는데, 기차 한 대가 다리 밑을 지나갔다. 갑작스런 소음에 귀를 틀어막고 눈을 감았는데, 눈을 떠 보니 아라뱃길 위로 지나는 유람선이 보였다.
평소에는 눈길도 주지 않던 아라뱃길이 그날따라 왜 그렇게 아름답게 보였을까. 계양대교를 따라 아라뱃길 위를 건넌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귤현타워 계단을 내려가 버렸다. 그리고 그대로 걷기 시작했다.
봄꽃이 꽃망울을 틔워내는 시기였다. 바람은 차가웠지만, 봄바람에 섞여 온 아련한 꽃향기가 코를 간질였다. 그러고 보니 봄이 된 지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꽃구경 한 번 하지 못했다. 시간이 없어 못했다기보다는, 도저히 꽃구경을 할 기분이 나지 않았다.
삼십 여 분을 걸었을까, 저 멀리 아라폭포가 보였다. 친구들한테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인공 폭포라고 해서 공원이나 캠퍼스에 조성되어 있는 작은 폭포를 상상했었는데, 아라폭포는 생각보다 꽤 컸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아라폭포 위로 올라 가 볼 수 있는 계단이 만들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왜 떨어지는 모습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래로 떨어지는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폭포 안쪽에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길이 있었다. 옛날이야기 속의 신선이라도 된 것 같이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폭포 안으로 들어갔다. 물줄기에 가려져 바깥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대로 폭포 안에 쪼그려 앉아 머리 위에서 힘차게 떨어져 내리는 물줄기를 바라보았다. 아래로 흐른 물은 다시 위로 올라갈 것이고, 또다시 아래로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는, 또 위로 올라갈 것이다. 하루가 지나듯, 한 달이 지나듯. 그리고 일 년이 지나듯 말이다.
휴대전화를 꺼내 보니 사장님의 부재중 전화가 열통이 넘게 찍혀 있었다.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문자와 함께. 그리고 동생이 보낸 메시지가 와 있다. 메시지를 읽기 전에 나는 폭포를 나와 내려가는 계단에 앉았다. 시원한 물소리가 귀를 때렸다. 물줄기를 따라 봄이 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응? 가보자! 나 진짜 가고 싶단 말이야!”
또 시작이다. 수원으로 전학 온 지 얼마 안 되어 난생 처음 여자 친구가 생긴 것도 좋고, 여자 친구가 애교도 많고 예쁜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이 여자 친구가 나를 정말 좋아해서 주말만 되면 놀러 가자고 성화인 것도 남들에게는 자랑거리다. 물론 놀러 가서 사진 찍는 걸 나를 좋아하는 만큼이나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를 어쩌면 좋은가. 사귄 지 두 달째. 내 통장의 잔액도 이만 원. 안된다고 하자니 울음을 터뜨릴 게 분명하고, 된다고 하자니 비용이 얼마나 들지가 걱정이다. 유미가 데이트할 때 돈을 안 쓰는 성격도 아니었지만, 나는 용돈이 넉넉하지 않은 편이라 일단 가까운 곳으로 가면 안 되냐고 애매하게 말이라도 꺼내보기로 했다.
“응? 화성행궁이 뭐가 멀다고 그래?”
“시외버스 타는 거면 충분히 멀지.”
유미가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돈이 없다는 걸 들킨 건지 아니면 처음으로 싸우게 되는 건지 조마조마해하고 있는데, 유미가 웃는다.
“아, 뭐야. 너 여기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모르는구나. 화성은 화성시가 아니라 수원에 있어, 바보야.”
그 날 나는 남한산성은 남한에 있고 갈매기살은 갈매기 고기라는 등의 놀림을 온종일 당해야 했다.
화성행궁에 갈 건데 왜 연무대에서 만나자고 했나 했더니, 연무대에서 화성행궁까지 행궁열차를 운행하고 있었다. 맨 앞 칸이 용머리 모양을 하고 있는 열차가 들어왔다. 화성열차를 본 적은 있어도 탄 적은 없다는 유미가 신이 나서 방방 뛰었다. 우리 옆에서 엄마 손을 붙잡고 있는 유치원생들이랑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여 웃음이 나왔다. 열차는 빨간 가마 모양이었다. 유미가 임금님처럼 앉아 에헴 하고 헛기침을 하는 것을 보며, 나는 수원시민에게는 열차가 무료라니, 일단은 살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열차는 삼십여 분을 달려 화성행궁에 도착했다. 화성행궁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원래는 우리나라 행궁 중 가장 규모가 컸던 곳인데 건물 하나를 제외한 모든 시설이 일제 강점기에 파괴되었다가 삼십 여 년 전부터 꾸준히 해 온 복원운동으로 이제는 제법 아름다운 모양을 갖추게 되었단다. 매표소 앞에 선 나는 생각보다 훨씬 저렴한 요금표를 보고 다시 한 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내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미가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바로 궁중 전통문화 상설 체험장이었다. 게다가 어디서 엽전 다섯 개를 가져와 내밀었다. 여기서는 이게 돈이란다. 농담인가 했더니 정말이었다. 엽전을 내고 떡메를 치거나 도자기, 한지 체험 등을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그때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궁중 의복 체험이었다.
“너 저것 때문에 오자고 한 거지?”
“당연하지!”
이것도 돈을 내야 하는 건가 고민하고 있는데, 다행히도 엽전으로 계산하게 되어 있었다. 소꿉놀이를 하는 것 같은 기분에 어이가 없기도 하고, 화성행궁만의 방식이 재미있기도 했다. 제멋대로 내게 장군 옷을 골라 입힌 유미가 머리에 가채까지 쓰고 왕비 옷을 입고 나타났다. 이건 좀 불공평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여자 친구가 왕비 옷 입은 걸 언제 또 볼 수 있겠는가! 처음으로 둘이 찍은 커플 사진이 왕비와 장군 옷을 입은 채라니 세상에 우리 같은 커플도 없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미가 나를 쿡쿡 찔렀다. 글쎄, 이번에는 떡메를 치고 오라고 한다. 초등학생들이나 하는 거 아니냐며 자신 있게 나섰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린애 팔뚝만 한 머리가 달린 떡메를 더운 날에 내리치고 있자니 금방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엽전 한 닢을 내고 노동력까지 바쳐야 하는 건가 했더니 내가 친 떡에 고물을 묻혀 순식간에 인절미를 만들어주었다. 꽤 많은 양이라 점심까지 해결되었다. 인절미까지 공짜로 줄 리가 없는데, 이쯤 되니 뭔가 수상하다. 유미는 아직도 손에 쥔 엽전 두 개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