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검은 그림자가 빠른 걸음으로 내 뒤를 쫒고 있다. 잡힐 듯 말듯 도망가는데 순간 몸을 누가 옭아 맨 것처럼 옴짝달싹못하고 곧 잡힐 것 같아 두 눈을 꼭 감을 때 눈을 떴다.
“뭐야? 또 악몽 꿨어? 식은땀 좀 봐.”
며칠째 계속되는 악몽에 기분이 영 찜찜하다. 누군가 숨 막히게 쫒아오는데 항상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이 끝이 난다. 잠귀가 밝은 룸메이트는 항상 나 때문에 덩달아 잠에서 깬다.
“안되겠다, 너. 네가 경연이 얼마 안 남아서 신경이 좀 쇠약해 진 것 같아. 몸도 비쩍 마르고. 오늘은 고기파티라도 해야겠다. 얼른 옷 입어. 나가자.”
“아니야, 그냥 집에 있을래.”
“웬일이래? 고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사람이. 너 좋아하는 소고기 먹으러 갈려고 그랬는데? 이래도 안 갈래?”
못이기는 척 룸메이트를 따라나선 우시장 골목.
“검붉은 생간에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걸 보고 입맛이 돌아? 너 전생에 구미호 아니었나 잘 생각해봐.”
아무렇지도 않게 생간을 김에 싸먹는 룸메이트를 보고 어젯밤 꾼 악몽이 떠올랐다. 어쩌면 내 뒤를 바짝 쫒아오던 것이 룸메이트가 아닐까 생각했다.
처음 와본 길치고는 너무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여느 정육점 골목이 그렇듯 붉은 유리창 사이로 적나라한 갈비와 살점을 자랑하는 고기들이 걸려있고 비릿한 피비린내가 코끝을 자극하는 이곳. 우시장 골목을 언젠가 와본적이 있는 것 같았다.
“고기 타겠다. 얼른 먹어.”
고기 한 점을 가지고 깨작대는 내 앞에 놓인 접시에 고기 몇 점을 놓아주었다. 그러면서 우시장 비하인드 스토리라는 것을 들려주었다.
“여기 우시장 뒷골목으로 도축장이 있는데, 거기서 아직도 소 울음소리가 들린대, 음메에에에.”
“무슨, 차라리 옛날에 만득이 시리즈가 더 무섭겠다.”
룸메이트의 싱거운 말에 문득 옛날 기억이 떠올랐다.
우시장에 와 본 적이 있다. 기억이 떠올랐다. 시골에서 기르던 소를 팔러가던 날이었다. 할머니와 엄마는 한 걸음 한 걸음 무거운 발걸음으로 기르던 소의 고삐를 잡고 시장으로 향했다. 나는 그 길이 어떤 길인지도 모르고 웃으면서 엄마 뒤를 쫄래쫄래 따라 간적이 있다. 소는 몇 분 뒤 자신의 운명을 알기라도 하는 듯 자꾸만 뒷걸음을 치는 것 같았다. 할머니와 엄마도 가슴 아픈 심정으로 소의 고삐를 잡아당겼다.
도착한 우시장 골목으로 많은 소들이 사람들 손에 이끌려 와있었다. 무게를 재고 돈을 흥정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음메에에에.’
파란색 천으로 둘러싸인 곳에서는 유난히 구슬픈 소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렸을 때 나는 그곳이 어떤 곳인지 몰랐지만 지금은 알 것 같았다.
소가 구슬피 울어대던 이유를.
그날 엄마는 식탁위에 아빠가 좋아하는 육회와 꽃등심을 올려놓았다. 뭔지도 모르고 덥석 집어먹었던 육회는 고소하면서도 비릿했다.
그리고 왠지 그날 먹었던 것을 다 비워냈던 기억이 난다.
“언젠가 우시장에 와 본적이 있어. 거기에도 도축장이 있었는데 소가 구슬프게 울었던 기억이 나. 왠지 그 때의 기억이 꿈속에 나타나는 것 같아. 붉은 빛이 가득한 좁은 골목이었어.”
“그런데 평소에 괜찮다가 갑자기 왜 나타나는 건데?”
“글쎄, 경연이 다가와서 그런가봐.”
우시장 골목을 빠져나와 멀리서 다시금 붉은 빛이 선명한 정육식당 간판을 보았다. 여전히 고기들은 신선한 핏빛을 자랑하듯 걸려있었고 약간의 비릿한 냄새가 풍겼다.
누군가에게는 선명하고 붉은 빛이 식욕을 자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거운 마음을 내려두고 뒤를 돌아 나왔다.
더 이상 소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고 꿈속에서도 누군가가 뒤 쫒아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야, 서울은 역시 죽이네. 사람들 때깔부터가 다르다. 우리 동네랑은 비교도 안 된다.”
서울로 갓 상경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느끼는 서울의 첫인상은 그랬다. 사람들은 저마다 바쁜 걸음으로 어디론가 향했고 고층 건물들은 한참을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아찔한 높이를 자랑했다. 고층 건물 하나를 가리키며 저기를 올라가려면 며칠 전에 올라가야 하나? 라는 촌티 팍팍 나는 생각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 당시에는 엘리베이터라는 것이 생소할 시기였으니 그럴 만도했다.
내가 서울이라는 곳 그것도 영등포구라는 이 네 글자를 기억하는 건 단 하나였다. 다름 아닌 ‘라디오’ 그때의 청춘이라면 누구나 문세오빠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들었을 것이다. 나 역시 매일 같은 시간이면 지지직거리며 주파수를 잡았고 스탠딩 불빛 하나만 켜놓은채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매일 밤 10시 5분부터 밤 12시까지 문세오빠의 달콤한 목소리와 각각의 사연들 그리고 언제 나올지 모르는 신청곡을 기다리는 재미는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가사를 받아 적느라 팔이 아프도록 글씨를 끼적인 적도 있고 문세오빠가 읽어주는 사연에 눈물콧물을 쏟기도 했다.
라디오는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그런데 항상 라디오에 신청곡이나 사연을 보내라며 말하던 곳이 영등포구 여의도동 사서함…… 이렇게 시작했다. 지방에 사는 나로서는 서울 하면 내가 늘 들어오던 영등포구 여의도동밖에 떠오르는 곳이 없었다. 그렇게 내게 영등포구 여의도동은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그런 공간이었다.
그렇게 올라온 서울은 역시나 특별했다. 사실 정신없는 도로와 사람들 때문에 별 다를 것 없는 공간이 더욱 특별해 보인 것일 수도 있다.
“야야! 저 봐라. 저기 진짜 높은 건물 있다. 저게 다 몇 층일까?”
“야, 니 저거 모르나? 63빌딩!! 63빌딩이니까 63층이지.”
“니는 어떻게 알았는데? 그나저나 63층? 이야. 저기 올라가면 서울 시내 다 보이겠다. 그렇지?”
“올라가볼래? 여기까지 왔는데 63빌딩도 안 올라가보면 사람들이 욕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긴 시간을 보낸 채 도착한 곳은 63빌딩의 전망대였다.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들어왔다. 꿈에 그리던 서울 길. 그리고 그 속에 속해있는 나 자신이 신기한 순간이었다. 서울이라는 단어가 마치 다른 나라 같은 느낌이었는데, 내심 뿌듯해지는 순간이었다.
“야! 저기 저 방송국! 저기에서 문세오빠 라디오 하잖아. 저기서 한참 있다 보면 오빠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바보야, 지금 아직 오후 4시도 안됐는데 무슨, 오빠 라디오 밤에 하는 거 몰라?”
“아, 그렇지. 그럼 우리 오늘 우리 여기 왔었다고 라디오에 사연 보내볼까? 그럼 당첨돼서 문세오빠가 우리 이름도 불러줄걸?”
63빌딩에서 내려와 한참을 문방구를 찾아 헤맸다. 우리 동네는 그냥 마을 어귀에 자그마한 문방구가 하나쯤은 있었는데 여기는 그 흔한 문방구도 잘 보이지 않았다. 무슨 서울이 문방구 하나 없나 하며 지나가는 사람에게 문방구를 물어보니 손끝으로 가리키는 곳에 도착하니 문구와 여자아들이 좋아할 만한 머리핀, 작은 장난감까지 함께 팔고 있었다. 눈이 휘둥그레져 한참을 구경하다 예쁜 엽서 하나를 골라왔다.
투. 문세오빠.
안녕하세요? 문세오빠. 이렇게 시작한 글에 우리는 참 손글씨로 어여쁘게 엽서를 꾸몄다. 긴장감에 손이 부르르 떨렸다. 이 글이 영등포구 여의도동으로 드디어 실려 가는 구나 생각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우리는 두 손을 모아 엽서를 빨간 우체통에 집어넣었다. 언제 방송이 될지도 모른 채 혹여 채택이 안 되면 어쩌나 노심초사 걱정도 되었다.
앗, 10시다! 별이 빛나는 밤에 할 시간이야.
별이 빛나는 밤에. 문세오빠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얼굴에 꽃받침을 하고 이불속에 쏙 들어가 라디오를 한 참 듣는데 익숙한 이름과 글귀가 흘러나왔다.
투 문세오빠.
안녕하세요? 문세오빠.
그렇게 우리가 보낸 사연이 채택되어 라디오를 타고 흘렀다.
처음 영등포구를 찾던 날, 63빌딩에 올라가 서울 시내를 본 것, 라디오에 사연을 쓰게 된 이야기까지 라디오는 참 신기하게 우리의 이야기를 타고 흘렀다.
라디오에 온 감성을 쏟았고 학창시절이 라디오로 가득 차 있던 시기. 그 속에는 가 본적이 있어도 가보고 싶은 영등포구 여의도동이 있다.
오늘은 어떤 사연이 이 주소로 흐르게 될까.
낮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거실이 시끌시끌했다. 방 안에서 잠시 무슨 소린지 들어보니 손자가 어딜 놀러 가자고 조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거 그냥 가고 싶은 데 가게 두지 그러냐.”
내 말에 며느리가 손사래를 친다. 학교에서 고장의 이름 난 장소에 가 보고 기행문을 써 오라고 했다는데, 글쎄 수혁이 고 놈이 용인하면 에버랜드 아니냐며 놀이동산에 가겠다고 떼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민속촌에 가면 어떻겠냐는 며느리의 말에, 손자는 민속촌에 가겠다고 한 친구가 반에서 열 명이 넘는다며 싫단다. 며느리는 또 에버랜드도 반 친구들이 스무 명은 가겠다며 되받아치고, 실랑이가 끝날 기미가 안 보였다. 게다가 때마침 일터에서 돌아온 아들놈은 할아버지까지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실 수 있는 곳으로 다 같이 가자고 하니, 이것 참 큰일이다.
수혁이는 토라진 듯 방에 들어가 한참이나 컴퓨터를 들여다보았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다들 마음에 들어 할 거라면서 개선장군처럼 방문을 박차고 나왔다.
결국 주말에 나서기로 한 곳은 호박등불마을이었다. 다른 것은 제쳐두고, 일단은 이름이 참 마음에 들었다.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를 묻자 수혁이가 손을 번쩍 들고 대답한다.
“여기가 호박도 유명하고, 등잔 박물관도 유명하고, 또 숯가마도 유명하대요! 그런데 전 은하초코기사단 가서 초콜릿 만들 거예요!”
“그건 안 돼. 엄마가 벌써 호박 떡케잌 만들기 체험 신청 해 놨거든.”
차 안에서 또 한 바탕 난리가 났다. 아들은 그냥 하하 웃는다. 시끌벅적한 것이 우리 집의 장점이기는 하다만, 무슨 일을 벌일 때마다 이렇게 난리가 나니 늙은이로서는 귀가 아파 견디기가 힘들다.
내 행선지는 벌써 등잔 박물관으로 정해진 모양이었는데, 내가 적적할까봐 아들이 같이 가겠다는 것을 그냥 수혁이랑 수혁이 엄마 따라 가라고 보내 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수혁이는 엄마랑은 말도 하지 않겠다며 호박등불마을 입구에 도착할 때까지도 입이 비쭉 나와 있었다. 아들이 가서 중재를 해 주지 않으면 기껏 신청했다던 체험 학습도 다 망치고 올 판이었다.
호박등불마을 체험장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등잔 박물관이었다. 체험장으로 들어가는 수혁이와 아들 내외에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등잔 박물관으로 향했다. 등잔이라고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렜다.
내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수십 여 년 전 쯤에 어머니는 호롱불을 밝히고 바느질을 하셨다. 따뜻하게 데워진 아랫목에 어린 아들을 소중히 뉘이고 밤이 늦도록 다소곳하게 앉아 옷감들을 매만지셨다. 이제는 어머니라는 단어가 새삼스럽다. 물론 어머니가 보고 싶다는 말을 입 밖에 낸 적은 없지만, 수혁이와 며느리가 투닥거리는 것을 보고 있으면 종종 부러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머니는 오래 전에 돌아가셨고, 어머니를 생각하고 감정이 북받쳐 오를 시기는 진즉에 지났다. 다만, 호롱불 아래 일렁이던 어머니의 그림자와 고운 옆모습을 한 번만 더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장승과 연못가의 석탑을 거쳐 걸으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괜히 뒤를 돌아다보며 혹시 수혁이랑 아들 내외가 시간 저편으로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했다. 내가 등잔불 아래의 열 살 배기로 돌아가 버린다면, 지금 저 귀여운 열 살 배기도 사라져버리겠지. 웃음이 나왔다. 암, 할애비는 그냥 수혁이 할애비지.
씩씩하게, 하지만 느린 걸음으로 박물관을 돌아보았다. 어머니의 냄새가 시간을 건너온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박물관 앞마당에 앉아 정원을 바라보고 있자니 저만치서 수혁이가 달려와 입에 뭘 쑥 넣어준다.
“할아버지, 내가 만들었어요!”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이 입 안 가득 퍼졌다. 며느리가 ‘저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이!’하고 쫓아오는 통에 수혁이가 도망을 친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껄껄 웃었다.
옛날, 어느 마을에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잠잘 때, 밥 먹을 때 빼고는 입을 쉬는 일이 없었다. 목소리는 또 얼마나 우렁찬지 가까이 있으면 귀가 따가울 정도였다. 도대체 어떤 말을 하고 다니느냐. 옆집 똥개가 새끼 낳은 일부터 아랫동네 아낙이 바람난 일, 나라님 흉보기, 어제저녁 밥상의 반찬, 죽다 살아난 할아버지 이야기, 조상님 묏자리까지 인간세상 일은 다 관여하고 다녔다. 남의 일이라면 상대 가리지 않고 이리저리 말을 나르는 탓에 피해 본 사람도 한둘이 아니었다.
하루는 마을 사람들이 훈장님 댁에 모여 앉아 불만을 토로했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 때문에 귀가 따가워 일할 수가 없소.”
“그가 안 해도 되는 말을 옮긴 탓에 나는 아직도 마누라와 전쟁 중이라네.”
“이대로는 안 되겠소. 이제부터 우리 모두 그의 얘기를 들어주지 맙시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도 못 듣는 척했다. 들어주는 이가 없자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마을을 떠날 결심을 했다.
“좋아. 말을 하면서 전국 팔도를 유랑하는 거야. 내가 직접 들을 사람을 찾아서 이야기하고 다니자.”
그는 그렇게 봇짐을 꾸려 여행을 떠났다. 세상은 넓고 말할 사람은 많았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말을 지어내고 옮기며 행복하게 몇 년을 보냈다.
전국방방곡곡을 다니던 어느 날,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정동진에 도착하였다.
“풍광이 아름답구나. 신선이 따로 없네. 이제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만 있으면 되겠어.”
이야기할 사람을 찾아 바닷가를 걷던 그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하지만 너무 작아 잘 들리지 않았다. 소리를 향해 다가가자, 파도가 바닷가에 선 나무를 향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는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그래서 토끼가 용왕님에게 뭐라고 했느냐면…….”
파도의 목소리가 신기하여,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집중해서 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파도의 이야기는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이야기보다 재미있는 게 아닌가.
‘아니, 이렇게 재밌는 이야기가 있었단 말이야? 전부 들어 말하고 다녀야지.’
그는 바위에 쪼그려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파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가 다리가 저렸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슬쩍 다리를 펴다가 솔잎을 밟고 말았다.
“어머나, 깜짝이야.”
솔잎의 소리에 놀란 파도가 저만치 바닷속으로 도망쳤다. 그는 파도를 향해 외쳤다.
“파도야. 도망치지 말고 더 이야기해다오. 뒷내용이 궁금해서 자리를 뜰 수가 없구나.”
하지만 파도는 그를 경계하며 말했다.
“안 돼요. 제가 했던 말은 용궁의 비밀이랍니다. 오로지 해안가의 나무만이 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요.”
용궁의 비밀이라니, 더없이 탐나는 이야기였다. 용궁의 비밀을 전국 팔도에 말하고 다닐 생각에 잔뜩 들뜬 그는 파도를 향해 외쳤다.
“내 그 이야기를 위해 기꺼이 나무가 되마.”
그러자 그는 다리가 땅에 박히고 피부는 점점 딱딱해졌다. 손에는 싹이 돋았고 머리칼은 초록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소나무가 되자 입도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말하는 데에 눈이 멀어 영영 말할 수 없게 되어버린 그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에게 입이 없으니 영원히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소나무가 되어 아직도 정동진 해변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다.
아이를 잃은 지 벌써 닷새가 조금 넘었다. 집 앞 골목에서 놀던 아이는 이내 사라져버렸다. 달도 기울어진 밤. 어스름히 비추는 가로등이 자꾸만 깜박거린다.
아이를 찾으려 경찰, 미아신고센터 등 발을 넓혀 수소문해보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실마리는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유괴라면 협박을 하는 전화 한통쯤은 걸려왔을 법한데 이상하리만큼 잠잠했다. 그렇다면 아이의 실종일까. 일곱 살 난 아이가 혼자서 길을 잃었다면 누군가 보호를 하거나 신고를 했을 텐데 동네에 아이의 흔적은 토막 난 시간처럼 깨끗했다.
“생김새가 유사한 아이를 목격했다는 제보전화입니다. 사례금을 먼저 묻는 걸 보니 약간 의심스럽긴 한데 그래도 일단 만나보심이…….”
사람들은 남들의 아픔에 치명적인 순간을 노리곤 한다. 장난전화라는 무책임한 단어에 피가 마르고 심장이 덜컥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돈을 노린 하이에나들처럼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솟는다는 기분이 이럴까. 아내는 자신이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반 실성을 하며 통공했다. 식음을 전폐하고 결국 자리에 누웠다. 아이의 이름만 중얼거릴 뿐이었다. 경찰은 아직 일주일을 넘기지 않은 상황이니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노력을 해보자고 했다. 물론 그들도 달리 뾰족한 방법은 없는 듯했다.
아이가 어디로 사라진 걸까. 단순히 길을 잃은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 보호하고 있는데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 것일까. 그 다음의 최악의 상황은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왜 불길한 상황에서의 생각은 자꾸만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드는지 모르겠다. 아이가 ‘아빠’하며 찾을 것을 생각하니 밤이 깊어가도 좀처럼 자리에 누울 수 없었다. 아이가 어디에서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데 부모가 되어서 어떻게 발 뻗고 잠들 수 있을까.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났다. 경찰에서도 우리 쪽에서도 그렇게 발 빠르게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이제는 조금 느슨해졌다.
따르르르르릉. 전화 한 통이 울렸다.
화순의 한 절이라고 했다. 우연히 아이를 찾는 전단지를 보았는데 자신이 보호하고 있는 아이와 비슷한 것 같아 전화를 했다고 했다. 몇 차례 장난전화를 받았지만 매번 아이를 보호하고 있다는 전화가 걸려오면 심장이 심하게 요동쳤다. 그런데 아이를 보호하고 있는 곳이 절이라니. 장난일리는 없겠다고 생각이 되었지만 만약 정말 아이가 있다면 어떻게 그곳에서 보호하고 있을까 생각했다. 전화를 건 사람의 목소리에서는 장난기라고는 없었고 꽤나 진실했다. 우선 아이는 잘 있다는 말을 먼저 하는 걸 보니 안심이었다. 문제는 그곳까지 아이가 어떻게 갔을까이다. 차로 족히 10Km는 가야할 거리이다. 버스를 타고 간다고 해도 아이혼자 쉽지 않은 거리인데. 아이를 만나러 가는 길임에도 자꾸만 의심이 가슴 속에서 콕콕 솟아올랐다.
급하게 차를 세워두니 저 멀리서 아이가 뛰어왔다. 아이의 상태는 괜찮은 듯 했다. 눈으로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니 5일간의 마음고생이 사라지니 급하게 피곤이 몰려왔다. 아이를 어떻게 보호하게 되었는지 자초지종을 듣기위해 스님과 잠시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많이 놀라셨지요? 빨리 연락을 드리지 못하여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닙니다. 그래도 이렇게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아이도 잘 보살펴주시고.”
스님은 천천히 칠성바위 쪽으로 나를 안내했다. 며칠 째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여 몸이 천근만근이었으나 아이를 찾았다는 마음 하나만으로도 버틸 수 있었다.
“이것이 칠성바위입니다. 언뜻 보면 그냥 7개의 원반석으로 보이나 자세히 보면 북두칠성이 지상에 그림자를 드리운 듯한 모습을 하고 있지요.”
아이를 어떻게 보호하게 되었는지를 묻었는데 스님은 대뜸 북두칠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그렇다고 스님의 말을 자를 수 없었기에 말없이 예에. 하고 듣고만 있었다.
“북두칠성은 북극성과 같이 나그네의 길잡이가 되어준다지 않습니까. 아이가 저를 찾아오게 된 것도 다 그런 이치이지요.”
스님은 자꾸만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으셨다. 간절한 마음이 북두칠성의 밝은 빛을 받아 아이를 이쪽으로 움직이게 하였을까.
자꾸만 졸음이 쏟아져 스님의 이야기가 희미해진다. 이제 겨우 아이를 어떻게 발견하였는지 이야기를 하는데 정신이 희미해지고 몽롱해진다.
어린나이에 남편과 헤어지고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도 벌써 3년이 지났다. 친정엄마도 아이를 그다지 탐탁지 않아 하였기에 아이를 봐달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서부터 어린이집에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이집 원장님께서 전화를 주었다.
“풀잎이 어머님 되시죠? 여기 어린이집인데요. 아이 문제로 상의드릴 일이 좀 있어서요.”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는데 나는 급하게 처리하던 일 때문에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더 급하니 나중에 다시 전화를 걸어 달라고 말할 뻔했다.
“네? 잠시만요. 아이 문제라니요?”
“풀잎이가. 말을 잘 안하려고 하네요.”
“아이가 원래 말을 잘 안 해요. 집에서도. 몸이 아프거나 그런 건 아니죠?”
“어머님. 이건 몸이 아픈 것 보다 더 심각한 문제인 것 같은데요. 일단 오늘 저 좀 뵙고 가세요.”
어린이집 원장선생님께 한 차례 꾸중 아닌 꾸중을 듣고 난 뒤 7시가 넘은 시각에 아이를 데리러 갔다. 아이는 방 한 편에 곤이 자고 있었다.
“풀잎이 어머님 되시죠? 잠시 제 방으로.”
“네, 오전에는 죄송했어요. 제가 급한 일을 처리할 게 있어서. 원장님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못했네요.”
“일이 많이 바쁘신 건 알겠지만. 그리고 제가 의사도 아니라 잘은 모르겠지만 풀잎이가 유난히 또래보다 정서발달이나 언어 발달이 늦은 것 같아요. 지금 풀잎이 정도면 한창 이것저것 호기심도 많고 말도 많이 웅얼거릴 시기인데 혼자 장난감만 쥐었다 폈다 정도니까.”
원장님의 말에 갑자기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아이에게 좋은 옷, 좋은 음식,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려고 했던 것뿐인데 지금 아이는 홀로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니. 그것도 이렇게 조그마한 아이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네? 선생님.”
“뭐, 일단 아이와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엄마 아빠와 고루 정서를 교감하는 것이 아이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물론 그러기 힘들다는 것 저도 잘 알고 있지만요. 아니면 자연이나 동물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차선책이긴 하지만 그런 것도 좋고요.”
아이와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최선이라는 원장선생님 말씀에 큰 결심을 해야 했다. 엄마손이 가장 많이 필요한 시기에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부족한 아이는 정서가 고루 발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랜만에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이번 주 주말에 하루만 시간을 내기로 했다.
오랜만에 우리 세 식구가 모였다. 가족이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어색함이 감돌았지만 날씨도 좋았고 북서울꿈의숲에는 역시나 가족단위로 모인 사람들이 많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넓고 넓은 잔디밭이 어색한지 자꾸만 한곳에 가만히 서있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잔디를 밟아보았다.
“풀잎아. 이게 잔디야. 잔디. 그리고 지금 풀잎이 볼을 스치고 간 건 바람.”
풀잎이도 마음이 조금 열렸는지 발을 콩콩 굴렀다. 한 손에는 아빠의 손을 다른 한 손에는 엄마의 손을 잡은 풀잎이는 모처럼 신이 난 모양이었다.
“우리 풀잎이 기분 좋아? 풀잎이가 좋으니까 엄마도 기분 좋다.”
“엄마, 아빠, 풀, 바람, 하늘, 구름”
풀잎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단어들을 나열하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니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눈물이 흐르는 것을 감추기 위해 하늘을 바라보니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쾌청했다.
남편이 이런 내 모습을 보았는지 가볍게 등을 토닥여 주었다. 남편의 뜻밖의 행동에 서러움이 북받쳤는지 또 눈물이 핑 돌았다.
“혼자 힘들었을 거 알아. 양육비랍시고 돈 보내주는 것 밖에 못해서 미안해. 오늘 풀잎이 보니까 나도 느끼는 거 많았어. 미안해. 앞으로 자주 시간 보내자.”
남편의 말에 어쩐지 힘이 났다. 그 누구의 말보다 그 누구보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했다.
멀리서 경종소리가 들려왔다. 바우덕이는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했다. 청룡사 남사당패인 개패거리에 들어온 지 오늘로 꼬박 열 두 해째 되는 날이었다. 그녀가 다섯 살이 되던 해 홀아비 머슴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생을 얼마 연명하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시름시름 앓던 그가 끼니도 제대로 연명하지 못한지 닷새만이었다. 아비는 임종 직전, 때때로 함께 술을 나누던 청룡사 남사당패 꼭두쇠에게 그녀를 맡겼다. 왜 하필 남자들만 있던 남사당패에 그녀를 맡겼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개머리패에 들어온 그날부터 그녀는 김암덕이라는 이름 대신 바우덕이라고 불렸다.
그녀는 갖가지 기예를 배워나갔다. 어름(얼음 위를 걷듯이 어렵다는 줄타기), 풍물과 버나(대접돌리기), 살판(땅재주)까지 기예를 하나씩 익혀갈 때마다 사람들은 그녀의 재능을 놀라워했다. 바우덕이는 모든 기예에 능했다. 그녀가 거리낌 없이 재주를 익혀나갈 수 있었던 것도 꼭두쇠인 곤(滾) 덕분이었다. 그는 바우덕이에게 있어 아비나 마찬가지였다. 발이 부르트도록 줄 위에 올려두었다가도, 밤이 되면 그녀의 발에 어렵사리 장(醬)을 구해 발라주던 것도 그였다. 바우덕이는 곤을 유독 따랐다. 그럴수록 줄타기에 매달렸다. 그녀는 위태로운 줄 하나에 몸을 내맡겨 날아오르는 것이 좋았다. 그 모양새가 제 처지와 비슷해 보이기도 했고, 늘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살아야 했던 그녀에게 하늘을 위해 솟아오르는 일은 유일한 해방구였다.
곤은 그녀가 열다섯이 되자 꼭두쇠에서 물러났다. 이레 전 수레에 다리가 밟히는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바우덕이를 향해 돌진하던 수레를 가로막아 당한 사고였다. 곤의 다리는 점차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 놀이를 하지 못하는 그는 꼭두쇠로 있을 수 없었다. 곤은 울고 있는 그녀를 불렀다.
“덕아, 왜 우느냐.”
덕이는 울음이 북받쳐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자 곤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는 그저 놀면 되는거다. 네 재주껏 한 판 놀면 되는 거란다.”
그녀는 그날부터 힘껏 뛰어올랐다. 조금 더 높이. 더 크게. 그녀의 줄타기를 본 사람들은 저마다 탄성을 질렀다. 그토록 위태롭고도 높이 날아오르는 사람은 없었다. 바우덕이는 안성을 넘어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그녀의 줄타기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대원군은 경복궁 중건에 쓰이는 일꾼들을 위해 그녀의 남사당패를 불러 들였다.
합장을 하던 그녀의 손이 떨렸다. 그녀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쥐고 있던 부채를 크게 펼쳐보았다. 곤에게서 받은 부채였다. 그녀는 그것을 무척이나 아꼈다. 가는 부채살들이 제대로 펼쳐졌는지 꼼꼼히 살폈다. 살 하나가 크게 구부러져 있었다. 부러진 살을 세우려고 했다. 하지만 한번 부러진 부채살은 세워지지 않았다.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는 크게 한번 숨을 가다듬었다. 바우덕이에게 오늘은 무엇보다 제일 큰 놀이판이었다. 머리에 두른 두건을 다시 한번 질끈 묶었다. 꽹과리 소리가 크고 경쾌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때 멀리서 곰뱅이쇠가 뛰어왔다. 숨을 헐떡이는 그의 얼굴은 온통 눈물범벅이었다. 그녀는 보따리에서 탈 하나를 꺼내들었다. 곰뱅이쇠가 바우덕이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녀는 곤이 처음으로 만들어주었던 탈을 썼다. 바우덕이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어떠한 표정으로 서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손이 줄을 튕겼다.
이내 바우덕이는 줄을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평소보다 더 거침없이 뛰어올랐다. 한번! 두 번! 세 번! 일꾼들이 그녀의 줄타기를 보며 추임새를 넣었다. 그녀는 마치 춤을 추는 듯 했다. 한 손에는 활짝 펼쳐든 부채를 부드러운 곡선을 따라 흔들었다. 바우덕이의 양 다리는 꼿꼿이 그러면서도 유연하게 움직였다. 하늘을 향해 춤을 췄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크게 회전하며 돌기 시작했다. 그녀의 춤은 멈출 줄을 몰랐다.
소복소복 눈이 내리던 날. 인애는 코끝이 빨개지도록 민준을 기다렸다. 수업이 끝날 시간이 훌쩍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민준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자 인애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장갑을 낀 손은 따뜻해질 줄 몰랐고 몸도 점점 으슬으슬 떨렸다. 민준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
인애와 민준은 같은 학교 선후배로 만났다. 인애는 긴 생머리에 항상 음악교재를 들고 다니며 뭇남성들의 마음을 뒤흔들어놓곤 했다. 민준도 그 중 하나였다. 인애는 학교생활도 열심히 했다. 피아노 연습이 없는 날이면 동아리 활동으로 학교 방송실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학생들은 신청곡이나 사연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인애에 대한 연애편지를 보내기 일쑤였다. 그런 인애가 민준을 만난 곳은 뜻밖의 장소였다.
법학과 학생이었던 민준은 인사관 건물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음료수 캔 하나를 뽑아 마시려 오백 원짜리 동전을 자판기 동전투입구로 밀어 넣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동전을 집어삼킨 자판기가 고장이었는지 꿈쩍도 안하는 것이었다. 민준은 자판기를 손으로 쿵쿵 쳐보다가 그래도 아무런 낌새가 없자 발로 쾅쾅 걷어차 보았다. 그때였다.
“저기, 지금 거기서 뭐하는 거예요? 자판기를 그렇게 걷어찬다고 음료수가 나오겠어요? 돈이 없으면 마시지를 말던가.”
민준의 행동을 본 인애의 가시 박힌 말이었다. 민준은 순간 당황하였고 부끄러운 마음에 손에 들고 있던 법학개론 책을 슬쩍 뒤로 숨겼다.
“저기요, 그게 아니라 돈을 넣었는데 이 자판기가 먹어서 잠깐 쳐본 거거든요? 알지도 못하면서 왜 남의 일에 오지랖 넓게 참견이에요?”
“뭐라고요? 오지랖이요? 자판기가 돈을 먹었으면 연락을 하면 될 것을 그것도 법을 공부한다는 학생이 그래도 된다는 말씀이세요?”
인애가 민준의 책을 본 모양이었다. 민준은 얼굴이 홍당무보다 더욱 벌개져서 마른기침을 한 번 내뱉더니 황급히 자리를 빠져나왔다. 살면서 특별히 죄를 짓는다거나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 없이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낯 뜨겁고 황당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것도 인애 앞에서라니. 민준은 책으로 머리를 세게 내려쳤다.
민준은 오해를 풀고 싶어서였는지 아니면 인애에 대한 정면승부인지 방송실에 사연을 보내기로 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전 자판기에 대한 화풀이도 아니었고 그저 동전을 집어삼킨 자판기에 대한 작은 하소연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오해는 하지 말아줬으면 해서요. 신청곡은 없고 이 사연 들으면 정문 앞으로 4시까지 나와 줄래요?’
일을 저지르긴 했으나 정말로 인애가 나와 줄지 걱정이었다. 드디어 4시. 정문 앞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는데 인애가 나왔다. 둘은 그렇게 만났다.
*
조금 더 있다가는 추위에 인애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뒤를 돌아서 가려는데 민준의 친구가 인애를 불러 세웠다. 지금까지 민준을 기다린 거냐며 민준이 오늘 열병이 나 학교에 못나왔다는 것이었다. 그저 서프라이즈로 일부러 전화기도 꺼놓고 기다린 것이었는데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전화를 많이 했을까 하고 전화기 전원을 켜보니 수십 통의 전화와 문자가 남겨져 있었다. 인애는 곧바로 민준에게로 달려갔다.
민준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워보였다. 그 와중에도 코끝이 빨개진 인애에게 얼마나 기다린 거냐며 감기걸린것 아니냐고 물었다. 인애는 바보같이 아픈 사람이 누굴 걱정 하냐며 잠시만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부엌으로 향했다. 달그닥 달그닥 소리가 들리더니 한참 뒤 죽을 끓여왔다.
“그냥 편의점 죽 하나 사다주지 뭐 하러 이렇게 만들어. 그런데 이건 무슨 죽이야?”
“게살죽! 대게 살 발라서 이렇게 죽에 비벼먹으면 힘이 불끈불끈 솟는다니까.”
“게살죽? 맛있겠다. 네가 살 다 바른 거야?”
“그럼! 나 아팠을 때 우리엄마가 항상 영덕대게 푹 삶아서 다릿살이랑 내장이장 참기름 한 방울 넣어서 쓱쓱 비벼줬거든. 그러면 한 그릇 뚝딱이었어. 그러니까 한 번 먹어봐.”
“맛있다. 정말, 힘이 불끈 솟는데? 고마워.”
다음날 방송실로 한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인애는 시계를 한 번 들여다보더니 자판기에서 음료를 하나 뽑아들고 정문으로 향했다. 누군가에게 달려가는 사람의 발걸음은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