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차림을 한 청년들이 모여 있고 그 속에는 유난히 흰 피부를 가진 민규가 눈에 띈다. 소풍이라도 가듯이 청년들은 삼삼오오 한껏 들뜬 표정을 하고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농활을 가는 길이다. 대학졸업을 위해 더 자세하게는 학점을 위해 떠나는 농촌봉사활동이다.
민규에게 시골이라는 공간은 이국의 어떤 사원만큼이나 낯선 공간이었다.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댁 모두 서울이었다. 그래도 민규는 할머니댁 간다는 말을 시골에 간다는 표현으로 쓰곤 했다. 다른 애들처럼.
도시에서만 자란, 민규와 친구들에게 농활은 그저 졸업장을 받기 위한 수단이었고 친구들과 떠나는 2박 3일 MT쯤으로 여겼다. 그저 적당히 물이나 주고 돌멩이나 고르다 오면 그뿐, 맑은 공기 마시며 힐링이나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버스에 오른 민규였다.
뻥 뚫린 고속도로에는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원활한 소통을 보였다. 그래서일까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김제. 내리자마자 코끝에 불어오는 풀냄새와 꽃향기가 느껴졌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에서 그들이 해야 할 일은 가을에 황금빛을 띠며 자랄 벼를 위해 논에 물을 대고 잡초들을 뽑는 일이었다.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농활이었다. 쪼그려 앉아 몇 시간씩 고된 농사일을 하다 보니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일은 해도 해도 끝날 줄을 몰랐다. 하하 호호 웃고 떠들던 청년들은 점점 말수가 줄었고 긴 한숨 소리만 정적을 메웠다.
때마침 반가운 새참시간. 학생들은 환호했고 민규도 뻣뻣해진 허리를 모처럼 폈다. 우두둑 소리가 났다. 새참은 파전에 막걸리였다. 민규가 무리의 끄트머리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파전을 먹었고 이제야 시골에 대한 환상과 현실의 중간을 만난 듯했다.
“힘들지?”
진 초록색 모자를 쓰신 할아버지께서 민규 옆자리에 앉으셨다. 아마 이장님 댁 할아버지이신 듯했다.
“아닙니다. 허허. 저희는 그래 봐야 이틀인데요. 뭐.”
민규는 저도 모르게 이틀이라는 시간을 단정 지었다. 이틀, 그 이상은 봉사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암묵적인 통보처럼 들리기도 했다.
“젊은이들은 모를 거야. 쌀이 어떻게 나오는지. 교과서에서 배웠을지 모르겠지만…. 쌀 한 톨 귀한 줄 알아야 해. 요즘은 산업이다 공업이다 성공의 잣대가 최첨단으로 흐르고 있지만 그 뿌리는 농사다 이거지. 허허”
할아버지는 젊은이들을 앉혀놓고 괜한 잔소리가 아닌가 싶어 끝에 웃음을 흘렸다.
쌀이 어떻게 출하되는지는 민규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할아버지 말대로 민규는 교과서에서 모내기부터 추수까지 나름대로 자세하게 쓰여 있었으니까.
그런데 교과서에는 벼가 쌀알이 되기까지 농민들의 이야기는 한 글자도 언급되지 않았음을 안다.
“우리나라가 농경사회가 아니겠어. 한국인은 밥심으로 사는 거지. 밥을 먹어야 힘이 나는 거야. 알지? 옛날에는 그저 한해 농사만 잘되게 해달라고 빌었으니까. 바랄 것이 그뿐이었던 시절이 다 있었으니까.”
할아버지의 말씀에는 앞뒤 문맥이 어지럽게 섞여 있었으나 이해를 못 할 만큼은 아니었다.
어느새 날이 저물었다. 해가 지니 금방 어두컴컴해졌다. 시골이라 그런지 8시만 되어도 새벽녘처럼 깜깜했다. 하늘에 떠 있는 별만이 환한 빛을 비출 뿐 서울에서 보던 화려한 불빛들이 생각나지 않았다. 오늘은 잠이 잘 올 것만 같았다. 피곤해서 그럴 것이다.
이틀뿐이라던 시간은 흘렀다.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에 오른 민규는 약간은 검게 그을었다. 건강해 보였다. 고속도로는 여전히 소통이 원활했다.
서울은 여전히 높고 화려한 건물들로 가득했고 번쩍이는 네온사인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8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민규는 갑자기 어지러웠다. 잠시 찾아온 현기증 정도로 여겼다.
딩동, 초인종이 울리고 문을 열어보니 웬 택배하나가 할아버지에게 와있었다. 보내는 사람의 이름엔 할아버지의 오랜 고향친구의 이름이 적혀있다. 웬일인가 싶어 상자를 열어보니 고향에서 보내온 홍어다. 상자를 열자마자 코끝까지 전해지는 냄새를 보아하니 잘 삭혀진 홍어임에 틀림없다. 홍어를 지긋이 내려다보던 할아버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할아버지의 유년시절을 떠올리시는 것이다.
할아버지의 고향은 전라남도 나주이다. 영산포 하류에서 단출한 살림에 할아버지는 아버지와 단 둘이 살았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어부셨다. 아버지는 늘 배를 타셨고 아버지가 배를 타러 나가실 때면 집에는 늘 아들 혼자였다. 아버지는 작은 돛단배를 타고 나가시면 하루 이틀은 물론이고 길게는 열흘이나 한 달 동안도 못 들어오신 날도 있다. 바람이 불고 풍랑이 치면 더욱이 그랬다.
어린마음에 아버지에게 배 타지 않으면 안 되냐고 울고불고 떼를 써 보았지만 아버지는 단호했다. 우리 두 식구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배를 타고 나가야 한다고 했다.
사실 아버지가 열흘 동안이나 소식 없이 배를 타고 나가도 돌아오는 날이면 배에 잡히는 것은 고작 두세 마리가 전부였다. 다른 선원들과 잡아온 물고기들은 이미 다른 동네에 팔고 남은 작은 물고기라도 챙겨 온 것이다. 그나마도 오랜 시간 바다에 있어 상해버리기 일쑤였다.
하루는 아버지가 배를 타러 나가러 그물을 손질하고 있을 때였다.
“아버지, 오늘은 꼭 일찍 오셔야 해요. 아버지랑 먹으려고 남겨둔 생선이 있단 말이에요.”
“알겠다. 오늘은 꼭 일찍 들어오마.”
알겠다며 빙긋 웃어 보이시던 아버지는 그날도 그 이튿날도 들어오시지 않았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매일 나루터에 쪼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강가를 바라보았다. 그 때 배 한척이 들어왔고 그 배에는 아버지가 타고 계셨다. 기쁜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가 아버지와 집에 돌아왔다. 아버지와 함께 먹으려고 항아리에 담아두었던 생선을 열어보았다. 그런데 항아리에서는 이미 코를 톡 쏘는 진한 향이 나며 생선이 푹 삭아있었다. 할아버지의 실망한 모습을 본 아버지는 원래 이 생선은 이렇게 냄새가 날 때 먹어야 제 맛이라며 아들의 마음을 위로했다.
“왜 싱싱할 때 먼저 먹지 않고 기다렸어. 이 아비가 언제 올 줄 알고….
매일 놀아주지도 못하고 넉넉하게 맛있는 반찬도 만들어 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생선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코끝이 찡해졌다. 그 모습을 본 아들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도 이렇게 기다려준 아들을 실망시키기 싫었던 아버지는 삭혀진 생선을 크게 한입 물었다. 그런데 특이하게 톡 쏘는 맛이 나며 상한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다음날이 되어도 색이 변하지도 않고 먹고 하루가 지났음에도 배가 아프다거나 탈이 나지도 않아 기이하게 생각하였다. 그 때의 아버지는 분명 아들의 마음과 자신의 마음에 하늘도 감동하여 탈이 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할아버지는 홍어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어보았다. 여전히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지금생각해보면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핑 도는 것이 잘 삭혀진 홍어의 속성 때문이겠지만 할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여전히 홍어는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에 코끝이 찡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할아버지에게 홍어는 아버지의 또 다른 마음이다.
2012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오 년 전 초겨울 즈음의 일이었다. 옆 동네에서 건너 온 소식으로 아침부터 마을이 들썩였다. 어린이대공원 안의 동물원에 있던 어린 여우 두 마리를 소백산으로 돌려보냈는데, 그 중 한 마리가 옆 동네의 아궁이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는 것이었다.
“허이구, 그게 삼십 년 전인가에 멸종했다던 그 여우 아니여?”
“맞아요, 맞아. 서울대공원에서 번식 시키려고 그렇게 노력했다던데 정말 아깝게 됐어요.”
“여우? <어린왕자>에 나오는 그 여우?”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졸린 눈을 비비며 어른들의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할머니가 장난스러운 얼굴로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아니야, 아가. 구미호가 와서 죽었단다.”
그 때 그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불여우나 불여시로 불려왔으며, 구미호 전설의 주인이기도 한 토종 붉은여우였다. 온몸이 황적색의 털로 덮여 있는 이 붉은여우는 원래 우리나라에 아주 많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마치 옛날 얘기 속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뒷산의 호랑이처럼 말이다. 호랑이만큼이나 여우가 많았던지 여우를 소재로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졌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구미호 얘기였다.
이렇게 많았던 붉은여우는 안타깝게도 밀렵되거나 쥐약 먹은 쥐를 잡아먹어 야생에서는 멸종되었었다. 옆 동네 아궁이에서 그 새끼 여우가 죽은 채로 발견되기 몇 년 전에 서울동물원에서 40년 만에 토종 여우의 번식을 성공시켰고, 이에 힘입어 야생에 여우 한 쌍을 방사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 쌍의 여우 중 암컷은 아궁이에서 죽었고, 수컷은 이로부터 며칠 뒤에 덫에 걸린 채 발견되었다.
다시 말해, 구미호는 아니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서 붉은여우는 백 년, 혹은 천 년을 살기도 하며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변하여 사람을 유혹해 생간을 빼 먹기도 하는 요물이었다. 여우가 와서 죽은 뒤로, 할머니는 밤이면 밤마다 어렸던 내게 불여우가 얼마나 무서운 동물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다.
불여우는 아홉 개나 되는 꼬리를 치마 속에 감추고 나그네를 유혹했다가, 나그네가 잠들면 쇠고랑 같은 손톱으로 생간을 빼 내 먹는다고 했다. 구미호가 인간이 되려면 사람의 간이 백 개나 필요해서, 나그네만 보면 해치려 든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하다 지친 할머니가 먼저 잠이 드셔도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럼 서울동물원에서는 구미호를 키우고 있는 것일까.
나는 할머니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여우를 상상했다. 여우는 아마 몸집은 아주 커다랗고 온 몸이 붉은 색 털로 뒤덮여 있으며, 날카롭고 긴 발톱을 가졌을 것이다. 입가에는 항상 피가 묻어 있고, 어쩌면 그 입에 갓 빼낸 싱싱한 생간이 물려 있을지도 몰랐다. 밤이면 늑대처럼 주둥이를 길게 빼며 울거나 처녀 귀신같은 모습으로 변해 숲을 돌아다니며 사냥감을 찾을 것이었다. 밤에는 절대 집 밖에 나가지 않겠다고 몇 번씩 다짐하고, 문을 꼭꼭 잠근 뒤에야 잠들 수 있었다.
그런데 몇 달 전에 텔레비전에 여우가 나왔다. 오랜 노력 끝에 드디어 붉은여우가 소백산자락에 터를 잡고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산 너머에 붉은여우가 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붉은여우가 우리 집 근처에 살고 있다는 것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화면 속 여우의 모습이었다. 붉은여우는 작은 몸집에 날씬한 다리, 길고 탐스러운 꼬리를 가지고 있었다. 전설 속의 주인공이라기에는 너무도 앙증맞은 모습에 나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친구와 함께 서울대공원에 있는 붉은여우를 보러 가기로 했다. 번식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이제는 대공원에서 아기 붉은여우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산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 아마 산 속에서는 붉은여우들이 코를 킁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때는 백제시대. 어둠이 얕게 깔리고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커지던 그 순간 어디선가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 검은 그림자가 달빛을 받아 더욱 선명하게 드리운다. 휘리릭 소리가 들려오더니 한 여인이 서있는 곳으로 다가간다. 차림새를 보아하니 왕실의 사람은 아닌듯하다.
드넓게 펼쳐진 연꽃 사이에 청초하게 서있는 여인은 왕실의 여인이 아닌가. 고운 비단 옷에 단정하게 빗어 내린 검은 머리카락. 달빛을 받아 더욱 고운 얼굴빛은 희고 여리다.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와 가운데 놓인 정자는 잔잔하게 일렁이는 물빛을 받아 아름답고 아름답게 피어난 연잎은 맑은 이슬을 머금고 있다. 그 가운데에 왕실의 여인이 서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그 때 검은 그림자가 여인에게로 다가갔다. 여인이 기다리던 사람인 듯했다.
궁남지는 무왕이 신라 진평왕의 딸인 선화공주가 고향을 그리워하여 무왕이 선화공주를 위해 만든 인공정원으로 천한 신분의 사람이 함부로 발을 들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항상 어둠이 짙게 깔리면 사람들의 눈을 피해 만나온 것이다. 사실 이 둘이 처음 만난 곳도 이 궁남지이다. 그래서 무왕과 선화공주만큼이나 이 둘에게도 이곳 궁남지는 특별한 공간이다.
선화공주는 왕가의 무왕과 함께 이곳에서 달을 보는 것을 즐겨하였으나 왕실의 여인들과 산책하는 것도 즐겼다. 그래서 이 여인도 궁남지를 몇 번 들른 적이 있다. 그러다 선화공주는 궁남지 연못 한가운데에 핀 연꽃이 유난히 아름다워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했다.
그러나 연못 한가운데에 핀 꽃을 꺾으려면 연못으로 들어가야 했고 신하들도 무르고 나온 터라 꺾어다 줄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와중이었다.
“마마, 이 연못 근처 마를 팔던 남자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꽃을 꺾어달라는 청을 해 보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그러자 왕실의 다른 여인이 반기를 들며 말했다.
“아닙니다. 이곳은 저렇게 마를 파는 신분의 천한 사람은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니 그냥 돌아가는 것이 맞는 듯 하옵니다.”
그러자 선화공주가 단호하게 말했지요.
“그런 말 마십시오. 마를 파는 사람이라고 어찌 다 천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누군지 궁금하니 이곳에 올 수 있으면 얼굴 한번 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마를 팔던 남자는 궁남지에 들어와 선화공주에게 꽃을 꺾어다 주고 왕실의 여인을 처음 보게 된 것이다.
이 여인과 남자는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를 많이 닮아있었다. 그만큼 신분을 초월한 사랑은 이루어지기기도 힘들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래서 둘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몰래 이곳에서 사랑을 키워나갔다. 진흙과 닮은 남자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연꽃을 닮은 여인.
무왕과 선화공주의 사랑과 닮은 이 둘의 사랑도 둘처럼 아름답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응? 가보자! 나 진짜 가고 싶단 말이야!”
또 시작이다. 수원으로 전학 온 지 얼마 안 되어 난생 처음 여자 친구가 생긴 것도 좋고, 여자 친구가 애교도 많고 예쁜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이 여자 친구가 나를 정말 좋아해서 주말만 되면 놀러 가자고 성화인 것도 남들에게는 자랑거리다. 물론 놀러 가서 사진 찍는 걸 나를 좋아하는 만큼이나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를 어쩌면 좋은가. 사귄 지 두 달째. 내 통장의 잔액도 이만 원. 안된다고 하자니 울음을 터뜨릴 게 분명하고, 된다고 하자니 비용이 얼마나 들지가 걱정이다. 유미가 데이트할 때 돈을 안 쓰는 성격도 아니었지만, 나는 용돈이 넉넉하지 않은 편이라 일단 가까운 곳으로 가면 안 되냐고 애매하게 말이라도 꺼내보기로 했다.
“응? 화성행궁이 뭐가 멀다고 그래?”
“시외버스 타는 거면 충분히 멀지.”
유미가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돈이 없다는 걸 들킨 건지 아니면 처음으로 싸우게 되는 건지 조마조마해하고 있는데, 유미가 웃는다.
“아, 뭐야. 너 여기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모르는구나. 화성은 화성시가 아니라 수원에 있어, 바보야.”
그 날 나는 남한산성은 남한에 있고 갈매기살은 갈매기 고기라는 등의 놀림을 온종일 당해야 했다.
화성행궁에 갈 건데 왜 연무대에서 만나자고 했나 했더니, 연무대에서 화성행궁까지 행궁열차를 운행하고 있었다. 맨 앞 칸이 용머리 모양을 하고 있는 열차가 들어왔다. 화성열차를 본 적은 있어도 탄 적은 없다는 유미가 신이 나서 방방 뛰었다. 우리 옆에서 엄마 손을 붙잡고 있는 유치원생들이랑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여 웃음이 나왔다. 열차는 빨간 가마 모양이었다. 유미가 임금님처럼 앉아 에헴 하고 헛기침을 하는 것을 보며, 나는 수원시민에게는 열차가 무료라니, 일단은 살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열차는 삼십여 분을 달려 화성행궁에 도착했다. 화성행궁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원래는 우리나라 행궁 중 가장 규모가 컸던 곳인데 건물 하나를 제외한 모든 시설이 일제 강점기에 파괴되었다가 삼십 여 년 전부터 꾸준히 해 온 복원운동으로 이제는 제법 아름다운 모양을 갖추게 되었단다. 매표소 앞에 선 나는 생각보다 훨씬 저렴한 요금표를 보고 다시 한 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내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미가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바로 궁중 전통문화 상설 체험장이었다. 게다가 어디서 엽전 다섯 개를 가져와 내밀었다. 여기서는 이게 돈이란다. 농담인가 했더니 정말이었다. 엽전을 내고 떡메를 치거나 도자기, 한지 체험 등을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그때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궁중 의복 체험이었다.
“너 저것 때문에 오자고 한 거지?”
“당연하지!”
이것도 돈을 내야 하는 건가 고민하고 있는데, 다행히도 엽전으로 계산하게 되어 있었다. 소꿉놀이를 하는 것 같은 기분에 어이가 없기도 하고, 화성행궁만의 방식이 재미있기도 했다. 제멋대로 내게 장군 옷을 골라 입힌 유미가 머리에 가채까지 쓰고 왕비 옷을 입고 나타났다. 이건 좀 불공평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여자 친구가 왕비 옷 입은 걸 언제 또 볼 수 있겠는가! 처음으로 둘이 찍은 커플 사진이 왕비와 장군 옷을 입은 채라니 세상에 우리 같은 커플도 없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미가 나를 쿡쿡 찔렀다. 글쎄, 이번에는 떡메를 치고 오라고 한다. 초등학생들이나 하는 거 아니냐며 자신 있게 나섰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린애 팔뚝만 한 머리가 달린 떡메를 더운 날에 내리치고 있자니 금방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엽전 한 닢을 내고 노동력까지 바쳐야 하는 건가 했더니 내가 친 떡에 고물을 묻혀 순식간에 인절미를 만들어주었다. 꽤 많은 양이라 점심까지 해결되었다. 인절미까지 공짜로 줄 리가 없는데, 이쯤 되니 뭔가 수상하다. 유미는 아직도 손에 쥔 엽전 두 개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누군가 검은 그림자가 빠른 걸음으로 내 뒤를 쫒고 있다. 잡힐 듯 말듯 도망가는데 순간 몸을 누가 옭아 맨 것처럼 옴짝달싹못하고 곧 잡힐 것 같아 두 눈을 꼭 감을 때 눈을 떴다.
“뭐야? 또 악몽 꿨어? 식은땀 좀 봐.”
며칠째 계속되는 악몽에 기분이 영 찜찜하다. 누군가 숨 막히게 쫒아오는데 항상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이 끝이 난다. 잠귀가 밝은 룸메이트는 항상 나 때문에 덩달아 잠에서 깬다.
“안되겠다, 너. 네가 경연이 얼마 안 남아서 신경이 좀 쇠약해 진 것 같아. 몸도 비쩍 마르고. 오늘은 고기파티라도 해야겠다. 얼른 옷 입어. 나가자.”
“아니야, 그냥 집에 있을래.”
“웬일이래? 고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사람이. 너 좋아하는 소고기 먹으러 갈려고 그랬는데? 이래도 안 갈래?”
못이기는 척 룸메이트를 따라나선 우시장 골목.
“검붉은 생간에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걸 보고 입맛이 돌아? 너 전생에 구미호 아니었나 잘 생각해봐.”
아무렇지도 않게 생간을 김에 싸먹는 룸메이트를 보고 어젯밤 꾼 악몽이 떠올랐다. 어쩌면 내 뒤를 바짝 쫒아오던 것이 룸메이트가 아닐까 생각했다.
처음 와본 길치고는 너무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여느 정육점 골목이 그렇듯 붉은 유리창 사이로 적나라한 갈비와 살점을 자랑하는 고기들이 걸려있고 비릿한 피비린내가 코끝을 자극하는 이곳. 우시장 골목을 언젠가 와본적이 있는 것 같았다.
“고기 타겠다. 얼른 먹어.”
고기 한 점을 가지고 깨작대는 내 앞에 놓인 접시에 고기 몇 점을 놓아주었다. 그러면서 우시장 비하인드 스토리라는 것을 들려주었다.
“여기 우시장 뒷골목으로 도축장이 있는데, 거기서 아직도 소 울음소리가 들린대, 음메에에에.”
“무슨, 차라리 옛날에 만득이 시리즈가 더 무섭겠다.”
룸메이트의 싱거운 말에 문득 옛날 기억이 떠올랐다.
우시장에 와 본 적이 있다. 기억이 떠올랐다. 시골에서 기르던 소를 팔러가던 날이었다. 할머니와 엄마는 한 걸음 한 걸음 무거운 발걸음으로 기르던 소의 고삐를 잡고 시장으로 향했다. 나는 그 길이 어떤 길인지도 모르고 웃으면서 엄마 뒤를 쫄래쫄래 따라 간적이 있다. 소는 몇 분 뒤 자신의 운명을 알기라도 하는 듯 자꾸만 뒷걸음을 치는 것 같았다. 할머니와 엄마도 가슴 아픈 심정으로 소의 고삐를 잡아당겼다.
도착한 우시장 골목으로 많은 소들이 사람들 손에 이끌려 와있었다. 무게를 재고 돈을 흥정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음메에에에.’
파란색 천으로 둘러싸인 곳에서는 유난히 구슬픈 소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렸을 때 나는 그곳이 어떤 곳인지 몰랐지만 지금은 알 것 같았다.
소가 구슬피 울어대던 이유를.
그날 엄마는 식탁위에 아빠가 좋아하는 육회와 꽃등심을 올려놓았다. 뭔지도 모르고 덥석 집어먹었던 육회는 고소하면서도 비릿했다.
그리고 왠지 그날 먹었던 것을 다 비워냈던 기억이 난다.
“언젠가 우시장에 와 본적이 있어. 거기에도 도축장이 있었는데 소가 구슬프게 울었던 기억이 나. 왠지 그 때의 기억이 꿈속에 나타나는 것 같아. 붉은 빛이 가득한 좁은 골목이었어.”
“그런데 평소에 괜찮다가 갑자기 왜 나타나는 건데?”
“글쎄, 경연이 다가와서 그런가봐.”
우시장 골목을 빠져나와 멀리서 다시금 붉은 빛이 선명한 정육식당 간판을 보았다. 여전히 고기들은 신선한 핏빛을 자랑하듯 걸려있었고 약간의 비릿한 냄새가 풍겼다.
누군가에게는 선명하고 붉은 빛이 식욕을 자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거운 마음을 내려두고 뒤를 돌아 나왔다.
더 이상 소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고 꿈속에서도 누군가가 뒤 쫒아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대한민국에 많고 많은 커플들은 전국 방방곡곡 어디를 가도 상관이 없겠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더 멋있고 더 로맨틱한 장소를 찾곤 한다. 결혼을 앞둔 남녀는 더욱 그럴 것이다.
“가을여행으로 어디가 좋을까?” 하늘은 구름 한 점 없고 쾌청했으나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눈이 부시지는 않았다. 눈을 살짝 찡그리며 가을여행지를 생각하고 있는 젊은 여자를 향해 남자는 말했다.
“어디긴 어디야, 가을하면 낭만, 낭만하면 갈대 아니야? 갈대를 보러가자.”
낭만을 입에 달고 사는 남자는 이번에도 또 낭만이다. 다른 때 같았으면 무슨 또 낭만이냐고 했겠지만 이번에 제안한 가을갈대를 보러 가는 것은 꽤 솔깃한 제안이었다.
별다른 준비가 필요 없이 순천으로 가는 차에 올라탔다.
“노을이 짙게 내릴 때면 더 죽여줄 텐데. 안 그래?”“그럼 멋있긴 하겠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돼. 곧 5시 반이야.”
가을이라곤 했지만 아직은 늦더위가 가시지 않아서일까 둘은 약간 거리를 두고 걷고 있었다. 각자가 생각하는 가을 낭만을 떠올리고 있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사진 찍는 것이 취미인 남자는 순천만 갈대밭의 이곳저곳을 담기에 바빴다. 바람에 스러지는 갈대의 모습이며 빛을 받아 반짝이는 갈대의 모습까지. 남자친구는 주로 풍경사진을 찍었다. 그 사이에 간간히 여자의 모습이 함께 담긴 사진들도 있었으나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여자도 남자의 취미를 존중하고자 남자가 사진을 찍을 때에는 달리 말을 걸지 않았다.
‘찰칵’
“어!”
남자의 외마디 감탄에 여자는 남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연히 굉장히 잘 나온 사진을 건진 것이 분명하다는 직감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남자는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백발의 두 노인이 손을 꼭 잡고 있는 모습이었다.
할아버지는 온 신경을 할머니에게 쏟고 있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 손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이제는 힘이 많이 빠져 손에 힘줄이 솟아나도록 힘을 주지 않으면 할머니 손을 놓칠 것 같아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잡은 손에 힘을 꽉 주셨다. 할머니는 꽃분홍색 스웨터를 입고 계셨는데 표정이 마치 소녀 같으셨다. 볼에 분칠을 하지 않으셨는데도 발그레 하게 꽃이 핀 것 같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꽤 먼 거리에 계셔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시는지 들을 수는 없었지만 해가 저무는 노을빛을 받은 갈대밭 사이로 서로를 향해 웃음 지으시는 노부부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두 분이 어떤 말씀을 나누고 어떤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지 알 것만 같았다.
“와, 정말 멋지지 않아?”
“응. 그렇다. 아마 두 분의 귓가에는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려올 거야. 왜냐면 이렇게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함께 손을 잡고 걸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 자체에 감사함을 느끼고 계실 테니까.”
어쩐지 저렇게 늙어갈 수 있다는 것이 참 행복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까지 순수한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스럽게 바라봐 줄 수 있을까. 너의 늙음이 나의 늙음과 같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따뜻하게 보듬어 줄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말없이 서로의 손을 찾아 손을 뻗었다. 맞잡은 두 손이 어쩐지 따뜻했다.
“우리도 나중에 저렇게 아름답게 늙을 수 있을까? 난 말이야. 늙는다는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 그리고 정말 로맨틱하다. 나는 로맨틱이라는 단어는 젊은 이 삼십대 사람들에게만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정말 로맨틱하다.”
바람이 살짝 귓가를 스치는 날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밝지도 어둡지도 않게 내려앉은 노을 때문이었을까. 여자는 감성에 젖어있었다.
“우리도 지금처럼만 지낸다면 저렇게 아름답게 늙을 수 있다고 생각해. 이렇게 로맨틱하게. 그럼 지금 이 노부부 사진에 제목을 한번 지어볼까?”
“음. 생각났어. 더 로맨틱!”
사사삭 사사삭, 나는 유독 의성어나 의태어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소리들을 좋아했다. 예를 들면 뽀드득 뽀드득 같이 눈 오늘 날 눈을 밟을 때 나는 소리나 가을철 떨어지는 낙엽을 밟을 때 나는 바스락 거리는 소리 그리고 모래사장에서 맨발로 모래를 밟을 때 나는 사사삭 하는 소리와 같은 것 말이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소리들에 남달리 귀가 쫑긋 솟는 나는 그만큼 소리에 민감하게 굴어 친구들과 자주 다투기도 했다. 어쩐지 친구들은 그런 나와 싸우면 치사하게 내가 싫어하는 소리들을 내곤 했다.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다던가 식판을 숟가락으로 긁는 다는 등.
누군가 내게 가장 좋았던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타임머신이 있다고 해도 나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가장 좋았던 그 순간 같은 해에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순간이 교집합처럼 얽혀있기 때문이다.
5년 전 여름 나는 가장 좋아하는 친구 유경과 마주앉아있었고 우린 웃으며 팥빙수를 나눠먹었다. 성격도 잘 맞고 모난 내 성격을 잘 받아주는 유경이었기에 우린 소위 평생친구를 하기로 하며 자주 만났다. 유경과 한참 다이어트를 하며 다음 해 여름엔 꼭 살 빼서 비키니를 입고 부산 앞바다를 누비고 다니자며 약속을 했었는데 우정도 사소한 말다툼엔 배길 재간이 없었다. 사실 지나고 보면 별 것도 아닌 것이었는데 그 때의 소녀감성엔 말 한마디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화해를 하긴 했지만 한 번 금이 간 접시를 다시 쓸 수 없는 것처럼 우리 둘 사이의 보이지 않는 공백은 쉽게 메워지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친구 B에게 유경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당장 전화기를 들어 만나자고 하고 지난날을 후회하며 눈물 콧물을 쏟으며 화해를 하고 웃으며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괜한 자존심도 아니었고 유경에 대한 미움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저 네가 미국으로 떠나는 날 괜스레 송도해수욕장을 나와 맨발로 하염없이 모래사장을 거닐기만 했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났을까. 학창시절에는 별로 친하지 않았던 친구 B와 연락을 지속해오던 나는 B에게서 유경의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조만간 한국에 잠시 들어온 다는 것이었다. 친구 B에게 소식을 전해들은 나는 멋쩍은 말투로 그래? 라고만 했을 뿐 언제인지 어디로 오는지 캐묻지 않았다.
이년 간 다닌 직장을 그만 둔 나는 며칠 간 방안에서 빈둥거리기만 했다. 그러다 문득 친구 B에게서 들은 유경의 소식이 머릿속에 맴돌았기에 점퍼 하나만 집어 들고 송도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여전히 사람들은 많았다. 물놀이를 즐기는 이들은 없었으나 나처럼 맨발로 모래사장을 걷는 이들은 많았다. 사사삭, 사사삭. 내 발끝으로 모래가 밟히자 얄궂은 소리를 내며 내 무게 그대로를 바닥에 그려나갔다. 그렇게 한 발자국 두 발자국을 걸었다. 사사삭 사사삭.
그런데 저 멀리에서 아주 낯익은 누군가가 보였다. 유경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는 없었지만 어쩐지 유경의 모습인 것 같았다. 나는 섣불리 달려갈 수 없었다. 만약 유경이라면 무슨 말을 건네야 할까? 미안했다고 보고 싶었다고 말해야 할까? 아니면 그렇게 가버리는 게 어디 있느냐고 소리를 질러야 할까?
문득 천천히 유경에게 다가가는 데 바닥에 탁 하고 걸리는 것이 있다. 빈 소라껍데기였다. 소라껍데기를 집어 들고는 잠시 귀에 가져다대었다. 사람들이 많았기에 소라껍데기에서 바다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을 텐데 내 귓가에는 솨아아하고 바다소리가 들렸다. 유경이도 나를 보았을까? 내 발걸음이 조금은 빨라졌다. 유경에게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다가가는 데 귓가에서는 더 이상 사사삭하는 모래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오직 소라껍데기에서 들리던 솨아아 하는 소리만 들릴 뿐.
그렇게 맨발로 걸어간 그 길 끝엔 거짓말처럼 유경이 서있었다. 유경은 나를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그리고는 맨발로 달려온 내 발끝만 바라보고 있었다.
“여전하구나 넌. 모래사장 걸으면서 사사삭 소리 듣는 거 보니. 나한테 무슨 할 말 없어? 난 너한테 할 말 되게 많았는데.”
나는 말없이 빈 소라껍데기를 건넸다.
“여기, 여기에 내가 하고 싶은 말 다 담았어. 들어봐.”
유경은 웃으며 빈 소라껍데기를 귓가에 가져다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