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언젠가 여행지에서 뿌리가 얽혀있는 괴기한 나무를 떠올렸다. 그 나무는 가여울 정도로 뿌리가 훤히 드러나 있었고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뿌리를 밟고 다녔다. 그렇게 뿌리를 드러내고 있는 나무를 본 뒤로는 가로수 길이나 공원에 뿌리가 드러난 나무는 슬쩍 돌아가거나 슬쩍 흙으로 덮어 주곤 했다.
남자에게 내릴만한 뿌리는 없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족보나 성씨, 가문 등의 이야기는 꽤나 먼 과거의 이야기로 여겼을 뿐 더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에게도 이름이 있었으나 그는 이름은 그저 name. 그러니까 견출지에 붙어있는 식별 가능하기 위해 세워둔 표식 정도로만 여겼다. 이름의 뜻은 물론 성에 대한 집착도 하지 않았다. 남자의 이름은 송태식이였다. 남들은 그를 송씨 혹은 태식씨라고 불렀고 남자도 그에 별다른 의의가 없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동네 고아원에서 자랐다. 원장님 말로는 잠시 위탁식으로 맡겨 둔 것이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도록 부모는 나타나지 않았고 원장님은 그저 둥지에서 자식들을 떠나보낼 뿐이었다. 원장님이 혹시나 해서 맡겨두실 때 남겨놓은 주소와 부모님의 이름을 알려주셨지만 고아원을 나와서도 그는 부모님을 찾거나 연락을 하지 않았다.
남자는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기술을 배웠다. 홀몸이라고 해도 입에 풀칠은 해야 했기에 짬짬이 아르바이트를 병행해가며 열심히 일을 했다. 태식은 열심히 일 한 대가로 집도 장만하고 남들처럼 윤기 좔좔 흐르는 양복도 몇 벌 장만하였다. 태식은 어렸을 때 돈을 많이 벌면 꼭 그렇게 양복을 사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런 태식도 어느덧 나이가 서른 즈음에 들어섰기에 주변에서 선자리가 많이 들어왔고 한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서로 호감을 가지며 몇 달을 만났고 드디어 여자의 집에 처음으로 인사를 가게 되는 날이었다.
남자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양복을 하나를 꺼내 입고 머리까지 단정히 손질했다. 비록 옆에서 챙겨줄 식구는 없었지만 모자라는 것 없이 반듯하게 자란 그였다. 그런데 그것이 남자를 혼란에 빠뜨릴 첫 단추가 될 줄은 몰랐다.
“처음 뵙겠습니다! 송태식이라고 합니다. 어머님, 아버님.”
꽤나 당차고 씩씩하게 첫 인사를 나눈 그는 여자의 부모님을 처음 대면했다. 부모가 없이 자란 그라 그는 집 안에 부모님이 있는 따뜻한 가정에 약간을 이질감을 느꼈으나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저 처음 가보는 집이라 그런 것이라 생각할 뿐이었다.
“반갑네. 여기 좀 앉게. 그래. 송태식이라고. 이름이 참 멋있군 그래. 무슨 뜻인가? 아니지 송씨면 여산 송씬가? 아님 은진 송씨? ”
남자의 등줄기에서는 돌연 식은땀이 주륵 흘러내렸다. 뜻하지 않은 질문이었고 자신도 답을 할 수 없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여자친구가 태식의 부모님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 저 그게. 실은 어릴 때 고아원에 맡겨져 지금까지 쭉 혼자 지냈습니다. 아버님. 그래서 이름만 원장님께 들었을 뿐 가문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태식은 조금 풀이 죽었다. 당차던 목소리도 어느새 말끝이 흐려졌고 처음으로 부모에 대한 생각과 말을 내뱉고 있음에 자신이 없었다.
“그런가. 음. 그렇구만. 그럼 그 이름은 누가 지어주신 줄도 모르고? 혹시 원장님이라는 그 분이 그냥 지어주신 게 아닌가?”
그러자 과일을 깎고 계시던 여자의 엄마가 옆구리를 꼭 찔렀다. 한순간에 분위기는 냉랭해졌다. 그래도 차려주신 저녁밥까지 먹고 나오는 배짱을 보였으나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 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그날 이후 남자에게 자신의 이름 그리고 부모에 대한 물음표가 항상 드리워져 있었다. 몇 번이고 자신의 이름을 되뇌어 보기도 했고 그 자리에서 그냥 아무런 송씨나 댔더라면 그렇게 싸늘한 저녁식사를 하지는 않아도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매사에 당당하게 살았으며 고아원 출신이라고 해서 특별히 기가 죽은 적도 없었다. 물론 여자네 부모님의 반응도 아주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실망하지도 않았다.
남자는 아주 잘 열어보지 않던 수첩을 하나 꺼내었다. 거기에는 옛날 고아원을 나올 때 원장님께서 적어주신 부모님의 이름과 주소가 적혀있었다. 아주 오래전 주소이기에 이사를 가셨겠다라고 생각했지만 어쩐지 마음이 크게 울렁거렸다.
남자는 그날 이후 다시금 얽힌 뿌리를 훤히 내놓고 있던 나무가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요즘 시에서 가장 크게 투자를 하고 잘 꾸며 놓았다고 소문난 뿌리공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쩐지 그곳에서는 뿌리를 내놓고 있는 나무들이 많이 있을 것만 같았다. 주말에 뿌리공원을 찾은 그는 꽤나 넓은 공원을 천천히 걸었다. 나무들은 단장이 되어 깔끔한 차림을 하고 있었으며 넓은 공원엔 저마다 어떤 비석이 있었다. 족보박물관 앞에 선 순간 남자는 문득 여자 친구 댁에 인사갔을 때를 떠올렸다. 송태식, 자신의 이름을 되뇌며 말이다.
그리고는 낡은 수첩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아버지 이름을 들여다보았다. 송현식. 남자는 불현 듯 자신도 뿌리를 내려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드디어 뿌리를 내릴 곳을 찾았다는 중얼거림과 함께.
3년 전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대학 졸업반 시절 떠난 봉사활동에서였다. 나는 보육원에서 어린 아이들을 돌보며 꽃밭에서 아이들에게 꽃반지를 만들어 주는데 멀리서 날아온 공이 내 앞에 떨어졌다. “Sorry.” 라고 짧은 말을 남긴 채 공을 가지고 휙 달아났다. 벤치에 앉아 공을 들고 간 쪽을 바라보니 남자 아이들과 공놀이를 하며 놀아주고 있었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고 보육원 아이들은 일제히 식판을 들고 배식을 기다렸다. 아이들에게 점심을 먹이고 아이들 낮잠시간이 되니 한숨 돌릴 시간이 났다.
아이들의 장난감을 치우고 빨랫줄에 빨래를 거는데 큰 이불 같은 건 영 쉽지 않았다. 그런데 웬 키 큰 남자가 불쑥 내 앞에 서서 빨래를 걸어주었다. 자세히 보니 아까 축구공을 가지고 간 그 외국인이다.
“때, 땡큐.”
“뭘요.”
“어! 한국말 할 줄 알아요?”
“그럼요. 한국말 조금 할 줄 알아요. 나는 메브에요. 프랑스에서 왔어요. 당신은요?”
“아. 저는 은영이에요.”
빨래를 다 널고 우리는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은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이곳에 봉사활동은 어떻게 알고 왔는지.
“한국은 관심 많아요. 우리 할아버지가 한국전쟁 참전용사이에요. 그리고 여기는. 음. 봉사 좋으니까.”
“그렇군요.”
서툴게 한국말을 하는 메브를 보니 절로 웃음이 났다. 약간은 귀엽다고 할까. 왠지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프랑스 우리 동네에 서울공원 있어요. 나는 가보았습니다. 서울에도 파리공원 있어요.”
“프랑스에 서울공원이요?”
강남역 사거리에 서울시와 이란의 수도 테헤란시가 자매결연을 맺은 기념으로 길 이름을 붙인 것은 알았지만 프랑스와도 이렇게 공원을 지어 외교적인 문화를 나누었다는 것은 처음이었다. 어쩐지 부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프랑스 서울공원 멋져요.”
메브는 휴대전화에서 서울공원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주었다. 한국적인 고전미가 넘치는 정자에 불로문까지. 사진 속 메브는 귀여운 모습이었다.
“멋지네요. 파리공원에도 가 보았나요?”
“아직 못 가봤어요. 내일 가볼거에요. 같이 갈래요?”
그렇게 갑작스런 인연은 하루 더 함께 하게 되었다.
검정색 모자에 빨간색 운동화를 신은 메브는 어제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메브와 파리공원을 둘러보니 정말 파리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파리 느낌을 줄 수 있는 것은 작은 모형의 에펠탑과 개선문 정도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나 에펠탑 정말 보고 싶었는데, 언젠가 파리에 가면 꼭 보고 말거야.”
“이거보다 조금, 조금 더 크다고 생각하면 될 거야.”
“농담 아니야 메브. 난 파리에 꼭 가보고 싶어. 에펠탑도 보고 여기 있는 개선문도 보고.”
“언제 놀러와. 우리나라에 은영 초대할게.”
“그래, 고마워.”
“나는 말이야 메브. 꼭 프러포즈는 에펠탑 아래에서 받고 싶어. 그게 내 로망이랄까?”
웬일인지 메브 앞에서 뜻밖의 이야기까지 꺼내는 내가 놀라웠다. 그저 프랑스라는 나라와 파리라는 도시에 연계가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정도로 메브와 가까워 졌다고 느껴졌을까.
“꼭 와. 내가 불 반짝 하고 있을게.”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프랑스 사람과 그 프랑스 앞에 서 있는 한국 사람이 조금은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한발자국 더.
월출산에 올 때부터 이상하긴 했다. ‘달이 떠오르는 산’이라길래 이름마냥 고요하고 아름다울줄 알았는데, 웬걸, 기암절벽에 바위 천지, 산세는 또 어찌나 험한지!
“이 산이 원래 이렇게 험한 거야, 아님 내가 가는 이 코스만 험한 거야?”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어 검색을 시작했다.
“월출산, 우리나라에서 풍수지리상으로 기세가 가장 센 산? 아, 내가 잘못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구만. 게다가 구름다리 코스가 가장 난코스? 아아악, 젠장!”
당장이라도 휴대전화를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따 아내와 통화를 해야 하니까. 싸우고 꼴 보기 싫어도, 집에는 같이 가야한다. 한 집에 사는 사람이라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이렇게 꼬일 줄 알았으면 아내와는 같이 안왔을텐데. 그는 지금 후회하고 있었다.
그의 아내는 처음부터 월출산에 가는 걸 싫어했다. 이왕 여름휴가를 받아 쉴 거면 산 보다는 바다가 좋았다. 하지만 그는 이미 가지도 않은 산악 캠핑장에 푹 빠져 있었다. 그의 아내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망할 리얼 버라이어티가 대한민국 남자들을 전부 된장 캠퍼로 만들어 놨어...’
게다가 전국의 술이란 술은 다 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그인데, 하필 영암에는 그가 아직 섭렵하지 못한 술이 있었다. 그래서 목적지는 두말할 것도 없이 영월이 됐다. 도대체 그냥 막걸리도 아니고, 무화과 막걸리가 뭐길래!
남편의 소원대로, 그들은 월출산 캠핑장에서 무화과 막걸리를 마셨다. 막걸리는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 처음에는 툴툴거리던 아내도 한 사발, 두 사발 받아먹더니, 혼자 한 동이를 다 비웠다. 그렇게 둘이서 세 동이쯤 먹었을까? 혀가 살짝 꼬인 채 남편이 말했다.
“야, 너는 그렇게 오기 싫어하더니, 이렇게 맛나게 출을 처마시냐? 너 인제 내가 하는 말에 토 달지마 이 여편네야.”
“야, 너 지금 말하는 스타일이 왜 그 모양이야. 너 잊었어? 난 지금도 산이 싫어. 벌레는 왜이리 많고, 저 깎아지른 듯 한 산세는 뭔데? 네가 언제 내가 원하는 대로 말 들어준 적이나 있어? 내가 참아주고 사니까 이게 그걸 당연한 줄 알아. 뭐 그리고 술을 쳐 마셔? 그래, 나 아주 상스럽게 처마시고 있다. 너 때문에 열 받아서 술이 아주 그냥 술술 들어간다. 됐냐?”
사실 남편은 말을 입 밖으로 뱉는 순간부터 후회하고 있었다.
‘내가 미쳤지. 아, 입이 방정이다. 오늘 분위기잡고 첫째 만들려고 했는데, 이거 뭐 분위기고 뭐고, 내일 무사히 집에나 갈 수 있음 다행이게.’
결국 아내는 텐트에서, 그는 해먹에서 잤다. 2세 만들기는 생각조차 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함께 나란히 오르기로 한 월출산을 따로 나섰다. 아내는 바람폭포 쪽으로, 남편은 구름다리 쪽으로.
월출산 캠핑장에서 구름다리까지 걸어서 한 시간 정도 걸렸다. 그러나 구름다리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는 이미 후회하고 있었다. 이 어마어마한 산새는 무엇인가; 한 시간 밖에 안 걸었는데도 다리에서 힘이 풀리고 있었다. 게다가 남들은 고어텍스 옷이며 등산용 스틱이며 만반의 준비를 하며 걷는데, 그의 무기는 달랑 등산화뿐이었다. 걷다가 벌써 생명의 위협을 몇 번이나 느꼈던가! 긴장감에 물을 마구 들이켰더니, 물도 벌써 다 떨어져가고 있었다.
구름다리는 정말 장관이었다. 밥로스 아저씨가 나이프로 휙휙 휘저어 그린 듯한 바위절벽 사이에 끝도 보이지 않게 긴 다리가 있었다. 어마어마한 공포가 밀려왔다. 한참동안 다리 입구에서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두 손으로 난간을 꼭 잡은 채 한 발 두 발 걸어갔다. 다리가 덜덜 떨렸다. 경치는커녕 눈을 어디에도 돌릴 수 없었다. 간신히 눈을 돌려 난간을 잡은 자신의 손끝을 바라보다, 그는 깜짝 놀랐다. 난간에는 매직으로 네 글자가 적혀있었다. ‘떨어져라.’
그는 꽁지에 모터가 달린 듯 건너편을 향해 걸어갔다. 차원이 다른 공포였다. 산의 기운이 짓누르기 전에 산과 산을 잇는 이 허공에서 도망가야 할 것 같았다. 그는 민망할 정도로 빠르게 구름다리 건너편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전화기를 꺼냈다.
“뚜르르르르... 뚜르르르르... 딸칵. 왜?”
“너 어디야, 바람폭포야?”
“아니, 나 천황봉 거의 다 왔는데? 이제 내려갈 거야. 끊어.”
“야야야야야! 너! 아니, 미안하다.”
“너 왜 그래, 약먹었어?”
아내의 목소리를 듣자 그는 오만생각이 떠올랐다.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순간에 떠오르는 건 역시 마누라밖에 없구나. 지가 아무리 기가 세고 바가지를 긁는들 그 기운이 월출산만큼 뻗치진 않으니. 적어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진 아니하잖나. 악처라도 처가 있는 게 낫다고, 감사하며 살자.
“아냐. 생각해보니까 그냥 미안해서. 나 인제 구름다리니까 조금만 기다려. 사랑한다.”
“놀고 있네... 빨리와. 투둑. 뚜.뚜.뚜.뚜...”
어느 날 문득 걸려온 전화 한 통. 초등학교 동창생에게 걸려온 전화이다. 사실 그녀가 학교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 초등학교 동창생 인줄은 꿈에도 몰랐다. 설거지를 하던 도중에 급히 받은 전화라 대충 받고 끊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생각보다 길어진 통화에 고무장갑까지 벗고 진지하게 전화를 받았다.
1993년 폐교가 된 생둔분교. 가물가물한 이름을 말하는 동창생이지만 일단 반갑게 통화를 했다. 평소보다 한 옥타브 정도는 더 높은 톤의 목소리에 동창생과 통화를 하는지 콜 상담원직원과 통화를 하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걸려온 전화의 요지는 이번 동창회는 특별하게 분교에서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번에는 반드시 참석하라는 것. 권유가 아닌 통보다.
홍천에서 서울로 떠나온 지가 언제인데. 그리고 이름도 얼굴도 가물가물한 옛 친구들과의 분교캠핑이라니. 다 늙어서 무슨 캠핑이람?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다.
홍천 시내에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나오는 오지마을. 그동안 궁금하긴 했다. 매캐한 연기와 콘크리트 덩어리들 사이에서 쉼 없이 달려온 그동안의 시간 속에서 이곳이 궁금하긴 했다. 학교도 친구들도 마음속으로 안녕을 전해야만 했던 추억들이었다.
미숙이의 끈질긴 설득에 못 이기는 척 동창회에 나가기로 했다. 약속장소 도착 5분 전 친구들이 나를 못 알아보면 어쩌나, 초등학교 친구들이라 얼굴이 많이 변했을 텐데. 똑같이 나이를 먹고 같이 늙어가는 처지였으나 어쩐지 늙는다는 것이 서럽게 느껴졌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동창회 소식을 알리던 미숙이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전화 속 목소리와 다를 것이 없었다.
“어머 반갑다. 얘, 얘는 어떻게 늙지를 않니?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엉?”
궁금한 것이 많은 모양이었다. 버스 안에 앉아있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니 졸업을 하기 전 떠난 수학여행이 생각났다. 많지 않은 전교생이라 소풍 정도로 보였겠지만 그 나름의 추억이 있었다.
도심의 때가 묻지 않은 마을에 도착하니 감회가 새롭다. 점심도 그때의 추억 그대로 김밥에 주황색이 진한 환타 병까지 준비되었다. 삼삼오오 둘러앉아 점심을 먹으니 언제 그랬냐는 듯 어색함이 눈 녹듯이 사라진다. 세월이 무색하게도 어색함이 없는 친구들. 맨 앞자리에 앉던 키 작은 친구, 뺑뺑이 안경에 반에서 일 등만 하던 반장 모두 그대로이다.
남자들은 물고기를 잡겠다며 바지를 걷어 올리고 족대를 들고 한껏 들뜬 모습으로 계곡으로 향했고 여자들은 금방 쪄낸 옥수수를 하나씩 들고 살아온 이야기를 나눴다.
일찍 시집갔던 친구는 벌써 손주를 보았고 여태껏 일만 하다 결혼을 못 한 친구도 있었다. 삶이 다 제각각이었지만 다들 열심히 살았나 보다.
언젠가 경비아저씨와 악을 싸우며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는 중년의 여성을 본 적이 있다. 내 나이와 비슷한 중년의 여성은 쉬지 않고 말을 했고 그 모습이 적잖이 꼴 보기 싫었다. 그 이후로 중년의 여성이 쉼 없이 말을 하는 것은 결코 아름답지 않음을 느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모인 이들 앞에서 쉼 없이 지난날을 곱씹고 있다. 누가 보면 꼴 보기 싫을 수도 있으나 상관하지 않는다.
어느새 내 옆에 와 있는 미숙이가 가볍게 한마디 던졌다.
“거봐, 오길 잘했지?”
빙그레 웃었다. 오길 잘했다. 2013년이 아닌 1993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으니까.
밤공기가 제법 쌀쌀해졌다. 서울 도심 한복판이었으면 열대야라며 손부채질을 끊임없이 해댔겠지만 이곳의 공기는 청명했다. 달도 밝고 별도 쏟아질 듯이 빛났다.
어느 샌가 친구들은 모두 별을 바라보았다. 언제 다시 이곳에 모일 수 있을까. 벌써 헤어짐이 아쉬운 걸까. 그리움을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의 행복과 기억이 추억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것인지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몰랐을 것이다.
밤공기를 들이마셔 본다. 차가운지 따뜻한지 모를 공기가 콧속으로 들어와 마음에 머문다.
내가 참 좋아하는 소리들 몇 가지가 있다. 보글보글 끓던 어머니의 된장찌개 소리, 지글지글 삼겹살이 익는 소리, 뎅그렁 하는 풍경 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몽돌해변의 자갈 소리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던 사람들이 ‘엥?’하며 반문해 오는 것이 바로 이 마지막 소리. 몽돌해변 자체를 모르는 것이다.
“야, 너희들이 해변을 몰라서 그래. 해변 그리라고 하면 모래사장만 그리지? 이 형님이 알고 있는 해변은 말이야…….”
말 그대로 주변에는 의외로 모래로 덮인 해변만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한 번 빠지면 빠져 나올 수 없는 매력을 지닌 것이 바로 이 몽돌해변, 그 중에서도 몽돌들이 파도에 구르면서 나는 자그락자그락 하는 소리다.
나는 몽돌해변 변두리의 작은 마을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이천 년대 초반, 아이들은 아직 컴퓨터로 게임을 하거나 인터넷을 사용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고마운 일이다. 그래서 매일 방과 후에 동네 아이들과 함께 몽돌 위를 달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
어렸을 때에는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뭐든 재미있다는 말이 맞다. 예쁜 색의 몽돌을 찾는 것도, 제일 큰 몽돌을 찾아오는 것도, 똑같이 생긴 몽돌을 찾는 것도 모두 재미있는 놀이가 되었다.
그런데 해가 넘어가기 시작해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나는 여전히 몽돌해변에 있었다. 다른 지방에서 장사를 하셨던 부모님은 노을이 다 진 뒤에야 돌아오셨다. 혼자 집에 있는 게 무서웠던 깡마른 초등학생 꼬마는 몽돌해변에 앉았다.
자그락자그락, 파도가 몽돌 새를 스치며 묘한 소리를 냈다. 쌀을 씻는 소리 같기도 하고, 조개껍질이 부딪히는 소리 같기도 했다. 햇볕에 따뜻하게 데워진 몽돌 위에 누워, 나는 한참이나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번 여행은 몽돌해변으로 가자.”
여름방학을 맞아 여행 계획을 세우기 위해 모인 것이었는데, 난데없는 추억 얘기가 길어졌다. 머쓱해진 나는 ‘달궈진 모래에 몸을 파묻는 장난은 칠 수 없겠지만, 따뜻한 몽돌 위에 누워 있으면 온돌 침대가 따로 없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자! 재미있겠는데? 나도 정동진이나 해운대 같이 예쁘기로 소문난 해변은 많이 가 봤는데, 몽돌해변은 한 번도 안 가봤어.”
그런데 내 얘기에 빠져 있던 친구들이 모두 오케이 사인을 보내 왔다. 몽돌해변이 뭔지 모르는 친구들이 절반은 됐는데, 몽돌해변에 가 본 친구들이 줄줄이 말을 잇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앉은 자리가 몽돌해변 이야기로 들썩였다.
“몽돌이면 조약돌 같은 거지? 이름 정말 예쁘다. 돌 하나 주워 와도 돼?”
“당연히 안 되지, 임마. 너 같은 사람들 때문에 해변이 없어지는 거야. 대학생씩이나 돼 가지고 자연 망칠 생각부터 해?”
독설가로 소문 난 영민이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어쨌거나, 나는 이렇게 해서 얼떨결에 몽돌해변에 가 보게 되었다.
울산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깜빡 잠이 든 나는 꿈을 꾸었다. 나는 오렌지 빛깔의 노을과 흑진주 같은 몽돌 사이에 누워 하루의 마지막 볕을 쬐고 있었다. 자그락자그락, 아이들의 작은 발이 몽돌 위를 달린다.
어디선가 ‘현규야, 밥 먹자!’하는 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했다. 그 목소리도, 몽돌의 온기도 아주 따뜻했기 때문에 나는 꿈속에서 또 잠이 들어버렸다.
할머니 손에서는 매운 내가 난다. 할머니 댁에 가서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면 할머니는 아이고 예쁘다 내 새끼 하면서 내 볼을 쓰다듬는다. 그때마다 매운 냄새가 코끝에 맴돌았기 때문에 안다.
엄마, 일 좀 그만하시라니까. 엄마 고집도 참. 근데 저번에 담근 고추장은 잘 됐나? 하며 은근슬쩍 장독대로 향한다. 그럼 할머니는 말없이 빛깔 좋은 고추장을 아낌없이 담아주신다. 말은 일 좀 그만하라고 하면서 매번 고춧가루와 고추장을 가질러오는 엄마는 할머니가 정말 일을 그만두시길 바라는 것일까.
할머니는 늘 손끝이 아리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마당에 널려있는 고추들을 만질 때면 더욱 그러셨다. 고추를 만지면 손끝이 아리구나. 아린 다는 뜻이 무언지는 몰랐지만 만지지 않았다. 엄마는 마트에서 파는 고추장은 쳐다도 안 봤다. 내가 우연히 마트에서 할머니네 동네에서 나오는 고추장이라고 말했을 때에도 엄마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우리 동네 유명한 고추장 장인이셨다. 도심에서 수도 없이 맛의 비결을 물었지만 할머니는 고추장을 만들 때만큼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어느 날인가 할머니가 엄마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병원에 가 봐야 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갔고 그때까지도 할머니에게 또 잔소리를 했다.
“거봐, 그러니까 내가 일 좀 그만하시라니까. 이게 다 일을 너무 많이 해서 그래.”
…
“노인성 치매이신 것 같습니다. 정밀한 검사를 받아봐야 알겠지만…”
의사는 전문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엄마와 할머니는 이미 충격에 의사가 말하는 뒷말이 그저 소음으로만 느껴져 미간을 찌푸렸다.
“그…. 그러니까. 치매라고요? 저희 엄마가요? 얼마나 진행된 상태인가요?”
“아, 의사 소견상 치매인 것 같으나 아직 정밀한 검사를 …”
할머니는 소신 있게 자신의 소견을 이야기하는 여의사의 말을 더 듣지 않고 일어났다.
항상 정갈하고 깐깐하게 한 길만을 고집하였던 할머니였기에 의사의 입에서 나온 치매 진단을 받아들일 수 없는 우리였다. 아니 할머니 자신이었다. 어쩐지 그런 할머니에게선 고추의 매운 냄새가 아닌 미묘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치매로 인해 가꾸지 못해서 그런 것인지 할머니조차 가장 아끼는 고추장처럼 발효되어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할머니는 고추장 다음으로 장독대를 제일 아끼셨다. 그곳에서 고추장의 맛이 깊어진다고 하셨으니까. 할머니 댁에 가면 마당에 담장을 끝으로 수십 개의 장독이 늘어서 있다. 언젠가 할머니께 이 장독대에 다 고추장이 들어있느냐며 팔짝 뛰며 신기해한 적이 있다.
할머니는 의사에게 진단을 받으시고는 장독을 하나씩 깨뜨리기 시작하셨다. 지나온 세월에 대한 분풀이였을 것이다.
엄마는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할머니는 울지 않으셨다. 그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 괜찮아 보일까 싶어서였을까.
장독을 세 개쯤 깨뜨리시던 할머니는 그만 자리에 주저앉으셨다. 그리고는 깨뜨린 장독에서 흘러나온 고추장을 맨손으로 매만지셨다.
“손끝이 아리구나.”
할머니의 기억은 점점 감퇴되었다. 하지만 할머니 손에서는 여전히 매운 내가 났다.
오늘 아침은 유난히 몸이 무거웠다. 간밤에 누군가에게 솜방망이로 두들겨 맞은 것처럼 삭신이 쑤셨다. 의도하지 않은 무거운 신음이 입 밖으로 슬며시 흘러나왔다. 겨우 팔과 다리를 뻗어 자다 깬 그대로 기지개를 켰다. 겨우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데 현기증이 났다. 한번 휘청거리며 선반 모서리를 손으로 짚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창문을 가리고 있는 커튼을 걷는데 창문으로 새어 들어온 빛 때문에 다시금 현기증이 났다. 머리를 부여잡고 침대에 앉았는데 몇 개의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공지사항. 어제 연락드린 외국인을 위한 맞춤 프로그램에 대한 문서 메일로 보내드렸습니다. 확인 바랍니다.
클라이언트는 도무지 주말과 휴일의 개념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회사에 나오라는 말만 안 했을 뿐이지 자신이 보낸 메일을 확인하라는 것 자체가 일의 연장선임을 진정 모르는 것일까 생각했다. 미지근한 물 한잔을 마시고 메일을 확인해보려는데 입사동기 성연의 전화가 왔다.
“어, 성연씨. 무슨 일이야?”
“어! 웬일이야. 매번 여보세요 하고 딱딱하게 받더니. 다른 게 아니고 메일 받았냐고.”
“응, 지금 열어보려던 참이야. 뭐 급한 거야? 이렇게 전화를 다 주고.”
“급한 거라기보단 외국인 협업 프로젝트라나 그런 건데 자기랑 나랑 하게 되었더라고. 그래서 연락해봤어. 무슨 주말이 이러냐. 아무튼 메일 확인하고 시간 잡아서 기획 좀 짜보자고.”
이렇게 정신없는 아침도 없을 거라며 눈을 한번 지그시 감았다 떠보니 클라이언트가 보낸 메일이 와있었다. 내용인즉슨 관광을 통한 지역의 문화 익히기라는 주제의 행사를 맡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그리 기획만 탄탄히 짜면 그리 어렵지 않은 프로젝트였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프로젝트 담당자가 자신과 성연이라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민주와 입사동기인 성연은 늘 비슷한 업무를 맡았기에 항상 비교, 평가의 대상이었다. 물론 민주의 자격지심이라면 자격지심이었겠지만 민주는 이번 프로젝트 담당이 외국인인 것에 더욱 신경이 쓰였다. 성연은 화려한 어학연수 스펙을 가지고 있었으나 민주는 비행기라고 타본 것은 제주도를 갔다 온 것뿐이었다. 민주는 쓴 한숨을 내뱉었다. 어쩐지 성연이 한껏 들뜬 목소리로 전화한 것이 참 얄미웠다.
민주와 성연은 각자 관광 지역을 선정하고 지역의 문화에 대해 조사하기로 했다. 민주는 강진청자를 떠올렸다. 우연히 들렀던 강진에서 외국인들의 청자 만들어보기 체험을 본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강진청자 만들기 체험? 무슨 애들도 아니고. 외국인들이라고 해서 어린이들이 아니야. 이게 뭐니?”
참. 말 한마디도 얄밉다. 청자 만들기 체험이 무슨 어린이들만 해야 하는 대표 프로그램도 아닌데 저렇게 길길이 날뛴다.
그렇게 두 파트로 나누어 각각 10명의 외국인들과 함께 자신이 기획한 일정대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민주는 말이 좀 어색했지만 그만큼 외국인들의 말을 들으려 노력했고 더 세심한 준비를 했다.
흙을 만져본 느낌, 청자에 대한 첫 생각 등을 참 편안하게 나누었다. 그리고는 각자가 만든 도자기에 자신이 새기고 싶은 문구나 기억하고 싶은 문구를 새기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외국인들은 흥미로워했고 꽤 진지하게 문구를 생각했다.
프러포즈 내용을 쓰기도 하고 자신의 다짐을 쓰기도 했다.
그새 정이 들었는지 외국인 한명 한명에게 좋은 추억이 되었을까 진심어린 걱정이 되었다. 고맙게도 외국인들은 이번 체험에 만족했고 즐거운 추억을 안고 돌아간다며 고마워했다. 그렇게 프로젝트는 성공리에 마쳤다.
그날 아침은 생각보다 상쾌했다. 적당히 불어오는 바람도 산뜻했고 햇볕도 그다지 따갑지 않았다.
‘택배요’
택배? 주문한 게 없는데.
손에 안겨진 것은 다름 아닌 서툰 글씨가 새겨진 청자였다.
‘보고 싶은 사람에게.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정말이지 추억은 국경을 넘어선다.
안녕? 마일로. 나 동호야.
벌써 네가 우주로 간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어. 벌써 보고 싶다. 너와 처음 만난 날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거야. 쪼글쪼글한 얼굴에 귀여운 외모를 가진 너는 나보다 키가 훨씬 작아서 난 네가 개미인 줄 알았다니까.
고인돌 앞에서 우연히 널 처음 만났을 때 네가 하도 작아서 내가 널 밟을 뻔한 것도 기억이 생생해. 그땐 정말 아찔했는데 말이야. 그때 넌 머나먼 별에서 왔다고 하며 이곳이 어딘지 물었었지. 특히 넌 고인돌을 보고 이 큰 돌이 무엇이냐고 신기해했었지.
널 우리 집으로 몰래 들여보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것이 생각나. 넌 내가 사는 지구 그리고 우리 마을에 대해 궁금해 했고 난 네가 살고 있는 우주에 대해 궁금해 했었지. 그래서 우주에서 온 너를 위해 나로우주센터과학관에 널 데려갔었지. 그때 넌 정말 신기해하면서도 집에 가고 싶어 했던 것이 생각나. 그리고 난 과학자를 꿈꾸고 있기 때문에 널 만난 것을 참 행운이라고 생각했어. 너에게 직접 우주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우주과학센터에서 보는 것들에 대해 너와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어.
그리고 넌 우주로 오는 지구인들을 봤다는 이야기도 했었지. 그때 넌 정말 신기해했는데. 지구인들은 우주에 오면 신기한 옷을 입고 생활한다면서 말이야.
우리 고흥은 특히 과학의 도시야. 너도 알다시피 우리 고흥에서는 100kg급의 인공위성으로 지구 저궤도에 진입시킬 수 있는 한국 최초 우주발사체 나로호 발사 준비에 한창이었지. 사실 1차와 2차를 발사했었지만 아쉽게도 실패했었어.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3차 준비에 매진하던 시기였어. 그때 널 만난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고.
넌 왜 고흥에서 나로호를 발사하는 것이냐며 궁금해했었지? 그건 발사장 주변의 안전과 발사각도, 발사장의 여러 시설의 설치 등을 생각해서 발사해야 하기 때문이야. 특히 우리 고흥은 발사운용 각도가 15도로 넓고 발사체를 발사했을 때 발사체의 추락과 같은 국제적인 문제도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들었어. 나 꽤 똑똑하지? 네가 다시 우주로 돌아가고 더욱 우주와 과학에 대해 궁금해졌어.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
아참! 나 너와 약속했던 비밀 아직도 지키고 있어. 바로 3차로 발사될 나로호에 널 몰래 태운 말이야. 지금 생각해도 심장이 두근거린다니까. 나로우주과학관에서 나온 넌 네가 살던 별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보였었잖아. 그때 나도 무척이나 가슴이 아팠었어. 그래서 생각했지. 네가 우리 마을로 떨어진 날이 1월 28일이었잖아. 그런데 1월 30일에 나로호 3차 발사가 예정되어있었어. 그래서 널 몰래 나로호에 태웠었지.
그래서 나로호가 발사되는 것이 나에게는 더욱 뜻깊은 일이 되었어. 네가 나로호에 탄 것은 아마 우리나라 사람 아무도 모를 거야. 그리고 난 네가 나로호에 탔기 때문에 3차 발사에 성공하길 더욱더 간절하게 바랐어.
나로호 발사를 몇 분 남겨놓지 않고 너와 작별인사를 했을 때가 생각나. 널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야. 그래도 널 너의 별나라로 보내줄 수 있어서 기뻤어. 그리고 나도 더 열심히 공부해서 2021년에 다시 한 번 발사될 한국형 발사체에 탑승해 널 꼭 다시 만나고 싶어. 너와 함께 보냈던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될 거야.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으면 좋겠어. 비록 너의 소식을 들을 수는 없지만 네가 잘 도착해서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야. 그럼 다음에 또 만날 때까지 안녕. 동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