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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저 그림도 빛바래기 전에는 선명했을 텐데 마치 빛바래기 전이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상상이 되지 않아.
하늘은 하루 중 아주 잠깐의 시간 동안만 묘한 빛깔로 물든다. 꽃물이 든 하늘 앞에 누가 쉬이 걸음을 뗄 수 있을까.
누군가의 죽음에 문을 달아 여닫는 이는 또 누구인가. 모든 것에 문을 달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가시는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따스한 속삭임에 발길을 쉬이 떼기 어렵다.
사찰은 사라졌지만 남아있는 것이 많다. 여백으로 남아버린 공간들을 상상하며, 시간을 들여다 본다.
항상 올곧을 수는 없다. 어지러이 뻗어 나가더라도 설령 뿌리를 드러낸다 하더라도 잎은 언제나 푸른 법이다.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할 수 밖에 없는 것들이 가득한 여행길.
바람에 스며든 녹차향이 코끝에서 진하게 퍼진다. 따뜻한 물이 없어도 저 태양만 있으면 녹차를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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