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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음표를 달고 가는 시장

    물음표를 달고 가는 시장

    지역광주광역시 북구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6 호감도

    물음표를 달고 가는 시장

    • 프롤로그
    • 1.한권씩 가져가세요.
    • 2.말발굽소리가 들린다.
    • 3.생소한 것을 찾고자 한다면
    • 4.할머니들이 만든 거리
    • 5.자글자글 주름에 피어난 꽃
    • 6.몸도 마음도 든든하게
    • 7. 또 하나의 물음표
    • 8.구수하고 정겨운 추억을 사러가자!
    • 에필로그

    물음표를 달고 가는 시장

    - 광주광역시 북구 -

    간편함과 편리함과는 맞바꿀 수 없는, 아날로그가 흐르는 곳이 바로 재래시장입니다. 천막하나 없이 자리는 만들면 그만이라며 줄지어 늘어서 간이 가게를 만드는 할머니들의 얼굴엔 고단함이라고는 없습니다. 편리함을 따라 갈 법도 한데 여전히 많은 이들이 머리 위로 물음표를 하나씩 달고 이곳을 찾기 때문입니다. 저마다 다른 목적으로 찾는 곳이지만 결국엔 같은 해답을 얻고 돌아가는 광주 북구의 말바우시장, 그래서 트래블아이가 제안합니다. ‘말바우시장에서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고 돌아오라’

    화려한 겉표지에 ‘쇼핑 가이드북’이라 적혀있다. 그리고는 친절하게 한권씩 가져가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시장을 책으로 공부하고 간다고 하면 믿을까?

    “여기가 말바우시장 입구가 맞나? 길 따라 들어서긴 했는데 여기가 말바우 몇 길로 이어지는 줄은 모르겠다. 저기 어르신께 여쭤보자.”

    “처음왔구먼, 여기는 이 책으로 공부를 하고 가야된다우. 거기 보면 어디에 뭘 파는지, 말바우시장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적혀있으니까.”

    말바우라는 시장의 이름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 유래가 궁금하다면 손에 든 쇼핑 가이드북을 펼쳐보라.

    “좁은 골목사이로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왜 말바우시장일까? 가이드 북에도 말이 그려져 있는 걸 보면 말이랑 연관이 있는 게 분명해.”

    “말바우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김덕령 장군이 훈련하던 말이 바위위로 힘껏 발굽을 내디뎠는데 그 바위에 말 발굽모양으로 패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래.”

    말바우 시장에서 팔고 있는 채소나 약초들은 그 이름을 듣기 전까지, 아니 들어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줄곧 ‘이건 뭐예요?’라는 물음표를 머리위로 달고 있다.

    “그런데 여기는 못 보던 물건들과 채소들도 많다. 장터라서 그런가?”

    “물론 재래시장이기도 하지만, 말바우시장은 직접 경작한 생산품을 파는 전통 직거래 장으로 각종 약초나 울금, 함초, 연근 등 생소한 것들이 많아. 그뿐인 줄 아니? 지네나 굼벵이도 판다는데?”

    말바우 1길에서 말바우 7길에의 골목골목엔 우리네 할머니들이 앉아있다. 천막도, 좌판도 없이 자리를 만들었다.

    “저기 할머니들께서 줄지어 앉아 물건을 파시네. 그런데 천막도 없이 그냥 스티로폼에 자리를 깔고 만드셨나봐. 정겹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우리 할머니 생각에 마음이 찡해진다.”

    “그러게, 팥이며 도라지, 대추, 고추, 가지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난 붉은 팥 한 되만 사가지고 갈래.”

    눈가에도 손등에도 고단함이 만든 세월의 꽃이 활짝 피었다. 돈을 내미는 손을 덥석 잡으시고는 “곱네 고와~”라고 하시며 예쁘니까 특별히 덤을 더 주신단다.

    “할머니, 저기 붉은 팥은 한 되에 얼마에요?”

    “아이고, 예쁘게 생긴 아가씨가 시장엘 다 오고, 팥은 한 되에 이만 원인데 특별히 예쁘니까 조금 더 넣어줄게. 이렇게 젊은 사람들이 찾아오니까 좋네 좋아. 생기도 도는 것 같고 아이고 곱다.”

    킁킁하고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냄새에 이끌려 간 곳에서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든든히 배를 채우고 있다. 이곳에서는 어떤 느낌표를 얻을 수 있을까?

    “많이 걸어서 그런가? 슬슬 배고프다. 맛있는 냄새도 나는 것 같고. 단팥죽이 유명하다던데 단팥죽 한 그릇 먹고 갈까?”

    “단팥죽도 좋은데 난 저기 보이는 도토리 묵국수! 국내산 도토리 100%라는 것에서 자부심이 느껴져.”

    흔히 남도음식을 맛깔스럽다고 하는데 문득 남도 음식이 궁금하다. 말바우 시장입구에서 삼각동으로 이동하면 남도의 향토음식을 알려주는 박물관이 있다는데?

    “음식을 맛보고 나니 남도가 더 궁금해지는데?” “그래? 그럼 남도향토음식박물관으로 가볼래? 거기에서 더 많은 남도 음식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해.”

    “아까 묵국수를 먹었는데도 입에 침이 고인다!”

    시장에서 무엇을 살 수 있을까? 단순히 구입에만 국한하지 않고 인심과 추억과 정을 살 수 있는 말바우시장이 더 궁금해진다.

    “흔히 시장을 보러간다고 하는데, 비로소 그 이유를 알 것 같아.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도 둘러보고 물건들도 둘러보기 때문이 아닐까?”

    “맞아, 누군가에겐 사람냄새에 코끝이 찡해지기도 하고 정겨움에 미소를 짓기도 하지. 우리처럼 궁금하던 걸 속 시원히 알아가는 살아있는 박물관 같기도 하고 말이야.”

    상인들은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까지 걱정하며 좋지 않은 사정을 덤으로 메워주고 사람냄새가 그리운 이들에게 진한 그리움의 시간들을 메워줍니다. 물음표를 띄운 이들에게 친절하고 자연스럽게 그 해답을 알려주지요. 새로운 거리를 만들어내고 정겨운 미소를 건네는 말바우시장은 떠나는 이들의 귓가에 생생한 말발굽소리가 맴돕니다. 수많은 물음표를 간직한 곳, 말바우 시장은 신선하고 저렴한 물건들로 가득하며 전통이 살아 숨쉬는 공간입니다. 할머니들이 만든 거리에서 아직 가시지 않는 따뜻한 온기를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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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0년 내공의 맛

    40년 내공의 맛

    지역광주광역시 광산구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6 호감도

    40년 내공의 맛

    • 프롤로그
    • 1.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모아지면
    • 2.추억의 떡갈비
    • 3.참을 수 없는 그 맛
    • 4.단출했던 차림표
    • 5.쌈 크게 싸서!
    • 6.뜨끈한 갈비탕? 시원한 후식냉면?!
    • 7.빼놓으면 아쉬운 그것!
    • 8.맛에 깃들인 멋
    • 에필로그

    40년 내공의 맛

    - 광주광역시 광산구 -

    꼭 광주 광산구에 가야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맛이 있습니다. 비주얼로 봐서는 마치 함박스테이크를 연상시키지만 분명 철판에 내오는 떡갈비입니다. 달달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시각부터 시작해 후각과 미각을 강하게 잡아당기는 송정떡갈비. 현재 광산구청 주변에 조성된 떡갈비 거리에는 12개 업소가 들어서 있습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 골목은, 여전히 과거의 그 소박한 멋과 맛을 간직하고 있을까요?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트래블아이>의 미션입니다.

    맛과 멋을 갖춘 음식점들이 들어찰수록 구에서는 지속적으로 환경·위생까지 꼼꼼히 체크하고 있다는 송정떡갈비거리. 어떤 계기로 특화거리로 발전한 걸까?

    “와~ 여기에 ‘광산 ’ 지정서와 지정표지판이 부착되어 있구나. 친환경 식재료를 사용하면서 특색 있는 메뉴와 원조 맛을 대물림하고 있는 맛집만이 마크를 달 수 있다지?”

    “과거 본연의 맛을 살리려는 식당과 늘 주민들의 건강을 생각하는 지자체의 생각이 맞아 떨어진 거로구나!”

    이제는 엄청나게 불어난 규모만큼이나 맛 또한 과거 주인의 정이 오롯하게 담긴 맛은 사라졌다고 아쉬워하는 이들도 간혹 있다. 과거의 떡갈비 맛은 어떠했을까?

    “송정동도 이렇게 현대화됐구나.”

    “예전 다 쓰러져가는 간판 하나 달랑 있던 송정떡갈비집이 문뜩 생각나. 허름한 곳에서 간혹 맛보던 그 맛, 아직도 고소한 그 맛이 남아 있지만, 왠지 그 시절이 사뭇 그리워지기도 하는걸."

    하지만 그 큰 규모의 식당으로 발전했는데도 여전히 대기표를 받아야 하는 손님들은 하나같이 불평불만이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주인은 할머니가 아들과 며느리로 넘어갔지만 지금도 옛 이름 그대로야. 이 집은 오랜 전통의 레시피도 참 특이해. 양념비법을 고수하면서 직화로 구워내는 방식, 초벌 뒤에 한 번 더 철판에 내오는 것까지.”

    ”그러게. 아~ 옛날 양은그릇에 내어주던 갈비탕도 여전하네! 얼른 맛보고 싶다!”

    산구청 주위에는 떡갈비거리가 조성되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송정떡갈비가 원조다. 메뉴는 과거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름만 보고도 처음부터 여기가 바로 원조였으리라고 식객들은 짐작했겠지.” “맞아. 그런데 메뉴를 보니 예전과 좀 달라지긴 했어.”

    “공깃밥, 비빔밥뿐이었는데 육회랑 냉면도 추가됐네. 식당을 유지하면서 변한 것도 그대로인 것도 모두 정감이 묻어나.”

    야들야들하면서도 달콤한 이곳 떡갈비는 여타 갈비와 차이점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것은 역시 쌈으로 먹는다는 것. 이제 직접 그 맛을 보는 일만 남았다!

    “철판에 올려 내와 온기가 오래간다. 조리면서 익힌 갈빗살은 보드랍고 비린내도 전혀 없어. 야들야들하니 입에 착 감기는구나!”

    “자, 이렇게 쌈을 싸서 먹어봐! 쌈장에 듬뿍 찍어 각종 야채를 올리고 천천히 음미하면 돼!” “음~ 달착지근함 뒤에 오랫동안 남는 고소한 맛이 참 풍성하다!”

    언뜻 선술집 같은 분위기에 달콤한 떡갈비를 맛보고 있으려니 아까 차림표에서 보았던 후식냉면이 떠오른다. 어디, 다시 젓가락을 들어볼까?

    “후루룩, 후루룩, 캬~! 갈비탕과 함께 먹는데도 전혀 느끼함이 없어!” “이 후식냉면도 국물이 참 맛깔나! 고기에 싸서 먹으니 더 좋네!”

    “하하호호 웃음소리, 잔 부딪히는 소리, 듣기만 해도 배부른 소리들이 건넛방에서 넘어오니 흥이 더하는구나!”

    떡갈비를 다 먹고 난 뒤 이것을 추가로 꼭 먹지 않으면 안 된다는데. 이것을 빼놓으면 돌아가는 발걸음이 꽤 아쉽다고!

    “잘~ 먹었다! 하지만 뭔가 섭섭하다고 해야 할까.” “후식으로 식혜를 배놓았구나!”

    “이야~ 식혜 맛도 참 진하다. 요구르트도 선택할 수 있네.” “아이스크림도 셀프로 콘에 담을 수가 있으니 참 괜찮다!”

    식당을 나오면서 무심코 던져본 질문, 예나 지금이나 역시 ‘떡갈비의 진수’ 할 수 있을까? 여전히 떡갈비 본연의 맛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옛날 아빠, 엄마와 손 붙잡고 와서 먹던 겁나게 맛있던 그 맛은 아니야.” “지금은 먹는 게 귀했던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의 맛과 낭만이 깃든 ‘멋있는 맛’이 빠져 있기 때문이겠지. 애석해하게도 영혼을 빼앗겨버렸다고나 할까.”

    “맛이란 게 꼭 변하지 않아도 먹거리 홍수 속에 우리 입맛도 얄밉게 달라지는 건 아닐까?”

    송정떡갈비거리는 미식가들의 발길을 이끌 정도로 이 나 있습니다. 먹는 게 귀했던 시절 광주 시골마을의 넉넉한 인심을 반추하려 물어물어 찾는 집들도 상당합니다. 분위기가 옛날과 많이 달라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애석하게도 그때의 ‘멋있는 맛’이 아닌지라 또 한 번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성과 인심은 여전합니다. 특히 송정떡갈비는 지금도 그때 이름 그대로입니다. 그 하나만으로도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기에 즐겁게 발걸음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광주의 넉넉한 인심을 쫓아 떡갈비골목에 한번 들러보는 건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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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교의 발자취

    유교의 발자취

    지역경기도 오산시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5 호감도

    유교의 발자취

    • 프롤로그
    • 1.도대체 궐리사가 뭐야?
    • 2.신비로운 외관
    • 3.누구든 말에서 내려라
    • 4.인자한 할아버지
    • 5.오백 살 은행나무
    • 6.은행나무 교실
    • 7.내삼문 안에는
    • 8.꾸준한 믿음
    • 에필로그

    유교의 발자취

    - 경기도 오산시 -

    유교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동양식에 아직까지도 크고 작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관혼상제와 제사, 높은 교육열과 삼강오륜 등을 유교로 인한 대표적인 생활양식으로 꼽을 수 있을 텐데, 교회나 사찰에 비해 공자를 모신 사당인 궐리사는 아주 찾아보기 힘든 편입니다. 오산의 궐리사는 논산의 궐리사와 함께 우리나라 2대 궐리사 중 한 곳이라고 하니, 오산의 궐리사를 찾는 일에 의미를 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트래블아이>가 드리는 오늘의 미션, ‘궐리사에 가서 유교의 다섯 덕을 배우고 오라!’입니다.

    궐리사는 조선시대의 사당으로, 공자의 출생지가 중국 산동성 곡부현 궐리인 것을 따 ‘궐리사(闕里祠)’라고 한다. 특히 오산의 궐리사는 공자의 후손과 연관이 있다는데?

    “공자의 64세손인 공서린이 우리나라에 건너 와 처음으로 정착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고 해. 그래서 정조가 직접 궐리사를 짓도록 명하고, 편액까지 내렸다고 하던걸?"

    "궐리사에서는 봄과 가을에 공자의 초상화와 성상을 모시고, 공 씨의 후손이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도왔다고 해. 공자 말고도 주자의 화상도 모셔져 있다는데?”

    솟을대문에 사고석담을 돌려 지은 오산의 궐리사. 언뜻 보기에는 사찰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이것만 기억하면 사찰과 궐리사를 구별할 수 있다?

    “담장도, 건물의 형태도 모두 사찰과 비슷해. 언뜻 봐서는 다른 점을 쉽게 찾을 수 없겠는 걸? 궐리사 안내도에 성상전, 제기고, 성묘 등이 적혀 있는 것이 다르기는 한데…”

    “우리가 지나온 대문을 한 번 봐. 외삼문에서 크게 다른 점이 있었어.” “아, 대문에 태극문양이 그려져 있어! 이 태극문양을 찾으면 궐리사 구별이 쉽겠는데?”

    하마비는 태종 13년에 예조에서 건의하여 처음으로 쓰게 된 표목. 이 표목에는 大小官吏過此者皆下馬라고 적혀 있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오산 궐리사에도 있다.

    “하마비? 들어 본 적이 있어. 여기 적혀 있는 한자는 ‘대소 관리로서 이곳을 지나가는 자는 모두 말에서 내리라’는 뜻이잖아. 조선시대 유교의 위상을 확인해 볼 수 있는 부분인 걸?”

    “맞아. 하마(下馬)는 말에서 내리라는 뜻이지. 이 궐리사를 지나는 사람들도 모두 말에서 내렸겠지? 예전에 이곳은 아주 신성한 곳이었던 것이 분명해.”

    궐리사 내에 위치한 공자의 석상은 중국 산동성 곡부현에서 가져온 것. 아주 신성하게 모셔질 법도 한데, 가을에는 공자 석상 앞에서 고추를 말리기도 한다고?

    “공자 석상을 보고 있으니 왠지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것 같아. 사찰에 가서는 미륵상의 웅장함에 압도되기 마련인데, 이곳의 공자는 마치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느낌인데?”

    “공자의 가르침, 오덕(五德)을 기억하니? 난 이 공자 상을 보니 그 중 첫 번째 덕인 인(仁)이 떠올라. 사람을 사랑하는 너그럽고 따뜻한 마음 말이야.”

    오산 궐리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아름드리 은행나무. 사방으로 가지가 뻗은 모습이 아주 장관인데, 여기서도 유교의 가치를 느낄 수 있을까?

    “이 나무는 아마 아주 오래 전부터 이 자리에 있었을 거야. 저 울창한 가지를 좀 봐. 궐리사를 위해 있는 나무가 아니라, 궐리사가 이 나무에 어우러져 있는 것 같지 않니?”

    “유교에서는 자연을 인간의 부모이며, 인간은 자연의 자식이잖아. 자연을 함부로 훼손했을 리가 있니? ‘자연 그대로의 상태가 아름답다’는 유교의 덕목이 돋보이는 나무야.”

    궐리사의 오른쪽에는 행단(杏檀)이 있다. 행단의 행(杏) 또한 은행나무를 뜻하는 말이라는데, 은행나무와 유교 사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옛날에 공자는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자를 가르쳤다고 해. 그래서 중국 곡부에서는 행단이라는 말이 바로 공자의 학당을 뜻하는 것이래. 오덕 중 지(智)를 배우는 곳이지.”

    “2층으로 이루어진 누각이 아름다워. 이렇게 보니 우리나라의 건물 양식보다 중국의 건물 양식을 닮은 것 같기도 해. 붉은 색과 검은 색의 조화가 멋진 걸?”

    궐리사에 보관되어 있는 성적도 목판은 공자의 76세손인 공재헌이 중국 산동성에 있는 성적도를 가져와 다시 새긴 것이다. 이것은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유일한 성적도다.

    “내삼문은 성묘와 성상전 두 곳에 있어. 성묘 내삼문 안에는 공자의 위패와 영정이 봉안되어 있기 때문에 들어갈 수 없지만, 성상전 내삼문은 들어가 볼 수 있어. 이 성상전 내삼문 안에 있는 것이 바로 성적도 목판이야.”

    “공자께 예를 갖추어야 할 거 같은 기분이 들어. 아, 예(禮)도 오덕 중 하나였지?”

    종교로서의 유교는 쇠퇴하지 않았다 하기 어려우나, 궐리사를 찾는 발걸음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는 무엇 때문일까?

    “조상이 믿어 온 것들에 대한, 그리고 조상에 대한 꾸준한 믿음 때문이 아닐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명절이면 조상님께 제를 올리잖아. 이 믿음이 있는 한 유교는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수 있을 거야.”

    “그게 바로 신(信)이지. 우리가 일상 속에서 갖추는 의(義)도 유교 덕택일지도 몰라.”

    궐리사를 직접 돌아보며 배우는 유교의 다섯 가지 덕,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 학교에서보다 조금 더 많이 와 닿았을 것 같습니다. 저 먼 중국 땅의 현자가 우리나라의 일상생활에 아직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 신비롭고도 위대하게 느껴집니다. 비단 유교의 가치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의 일원으로서 꼭 지켜야 할 가치, 인의예지신. 자신이 이 중 몇 가지를 지키며 살고 있는지 한 번 되돌아보는 것도 정신적으로 한 걸음 더 성장하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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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물관으로 가자!

    박물관으로 가자!

    지역경기도 부천시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4-10-14 호감도

    박물관으로 가자!

    • 프롤로그
    • 1.교육의 변천사를 한눈에~
    • 2.교육 전문 테마박물관
    • 3.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
    • 4.하나의 예술이 된 돌덩이
    • 5.옹기를 굽던
    • 6.옹기에 담긴 우리 정신
    • 7.바람을 가르며
    • 8.궁도의 맥을 잇다
    • 에필로그

    박물관으로 가자!

    - 경기도 부천시 -

    "그 나라를 제대로 알려면 그 나라의 역사박물관을 다녀오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처럼 여행에서도 그 지역을 제대로 알려면 지역 박물관을 둘러보는 것이 좋습니다. 경기도 부천은 6개의 전문테마 박물관이 밀집되어 있어 문화도시로서의 입지를 굳히고 있습니다. 이에 시민들로 하여금 다양한 문화를 향유하고 문화를 소통할 수 있는 장을 열고 있는데요. 부천으로의 여행을 준비한다면 <트래블아이>의 이번 미션 '진한 문화향기를 느끼려거든 부천의 박물관으로 가라!'를 기억하세요.

    옛 추억이 방울방울 피어나는 부천 교육박물관. 서당에서부터 일제강점기 교육현장까지 두루 살펴본다. 더불어 우리 엄마, 아빠의 학창시절을 들여다볼까?

    “이야, 옛날생각 나네. 아빠 어렸을 때는 여기 보이는 국민교육헌장 있지? 그거 줄줄 외워야 했단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지금도 잊어버리지 않고 있지.”

    “아빠, 저기 좀 보세요. 신기한 옛날 물건들이 많아요. 아빠 설명이 듣고 싶어요!”

    추억의 물건과 불량식품이 눈길을 끈다. 추억으로 남아버린 지난 학창시절을 떠올리는 세대와 현대를 살아가는 세대들의 보이지 않는 소통이 아우성친다.

    “정말 옛날 교과서부터 학용품에 불량식품까지 다 전시되어 있네.” “아빠 때도 불량식품이 있었어요? 우리 학교 앞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네. 어떻게 보면 이것도 대대로 흘러 내려오는 전통이 아닐까요?”

    “녀석도 참, 양은도시락에 낮은 책상까지. 자, 저기 서보렴. 사진 한 장 찍고 가자.”

    최영장군은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 하였다. 하지만 돌이 황금처럼 보이는 곳, 바로 수석박물관이다. 돌 하나가 어떻게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아빠, 저기 좀 보세요. 저기 전시 되어 있는 것들이 모두 다 돌이라고요? 정말 화려하고 예쁜데요? 조각가가 조각을 해 놓은 것 같아요.”

    “그런데 조각가가 아니라 자연 그대로 조각이 되었으니 더 특별하고 아름다운 것 아니겠니? 돌 본연의 속성이 자연의 현상이나 작용을 받아 무늬가 새겨지거나 깎여지는 것이지.”

    수석이 아름다운 건 순전히 자연 그대로가 예술이 되었기 때문이다. 고로 인공미가 아닌 자연미에 눈이 번쩍 뜨인다. 어떤 형상을 닮았는지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무엇보다 수석박물관에서는 돌에 대한 새로운 지식과 상식을 알 수 있다는 것이 좋아요. 수석 박사가 될 것 같아요.”

    “그래, 여기 전시되어 있는 수석관련 자료는 총 2,000여 점이 있단다. 끊임없이 발전하고 소통하는 수석박물관이라 더욱 그 가치가 높단다.”

    천주교 신자들이 종교 탄압을 피해 점말마을로 이주해 옹기를 구워 생계를 이어나갔다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 역사의 숨결이 옹기 하나하나에 깃들어 있지 않을까?

    “이곳의 옹기에는 서민들의 애환이 담겨 있단다. 그 이유는 1866년 병인박해를 피해 천주교인들이 이곳에 이주해 와 옹기를 구워 생계를 이어나갔기 때문이지. 그것을 염두에 두고 옹기를 바라보면 좀 더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아빠 말씀을 듣고 보니 작은 옹기 하나에도 큰 의미와 숨결이 담겨있는 것 같아요.”

    모양도 제각각, 쓰임새도 제각각인 옹기들이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얼은 모두 같지 않을까?

    “선시시대부터 최근까지 수천 년 동안 지나온 옹기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단다. 옹기 제작과정과 종류, 쓰임새까지 쉽게 설명되어 있어서 어린이들도 이해하기 쉬운 것 같구나.”

    “맞아요. 처음에 옹기라고 했을 때는 멀게만 느껴지고 조금은 생소한 느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설명과 함께 체험도 할 수 있어서 가깝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영화의 한 장면이 절로 떠오른다.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라는 명대사를 생각하며 바람을 가르던 활의 움직임을 주시해본다.

    “어! 여기 저번에 아빠랑 엄마랑 보러 가신다던 영화 포스터가 있어요. <최종병기 활> 맞죠? 활박물관이라 그런지 활에 관련된 영화가 눈길을 끌어요.”

    “그렇구나. 참 재미있게 본 영화였는데. 활과 바람에 대한 내용이 아주 인상 깊었지. 화살촉의 종류가 다양한 것도 영화에서 알게 되었단다. 우리 꼬맹이는 여기에서 볼 수 있겠구나.”

    부천 활박물관은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故 김장환 선생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설립되었다. 국궁 제작과정과 궁도의 맥을 잇는 숭고한 마음도 깊이 새겨보자.

    “사냥이나 전투에 사용하던 활의 종류와 그 종류도 역사에 따라 변화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구나. 활의 기원과 역사는 궁장이셨던 故 백인 김장환 선생과 故 김박영 선생 덕분에 지금까지도 이렇게 이어져오고 있단다.”

    “와, 정말 대단해요.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이 국궁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부천의 박물관은 거리상 멀지 않고 전문적인 테마성이 짙어 생소한 분야의 문화 까지도 두루 관람할 수 있습니다. 방학을 맞이해 가족단위로 방문하여 체험을 하며 둘러보는 것도 좋습니다. 선조들의 지혜와 사상 그리고 당시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와 체험을 공유하는 부천시 박물관은 언제나 열려있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합니다. 부천의 진한 문화향기를 느끼고자 한다면 부천의 박물관부터 가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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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슬렁어슬렁 장뜰시장 나들이

    어슬렁어슬렁 장뜰시장 나들이

    지역충청북도 증평군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7 호감도

    어슬렁어슬렁 장뜰시장 나들이

    • 프롤로그
    • 1.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뻥튀기
    • 2.장터 나들이의 요깃거리
    • 3.생선노점에서 풍기는 시골장터의 맛
    • 4.재래시장에서 만난 오디, 자랑할 만하네!
    • 5.쿵쾅쿵쾅, 망치질 소리
    • 6.장뜰시장 또 하나의 명물
    • 7.형형색색 슬리퍼가 단돈 2천원
    • 8.없는 거 빼고 다 있는 골동품가게
    • 에필로그

    어슬렁어슬렁 장뜰시장 나들이

    - 충청북도 증평군 -

    비교적 작고 한적한 읍내라지만 장이 서는 1일과 6일에는 장 보러 나선 사람들로 마을은 그야말로 활기가 넘쳐나는 곳, 시골 인심으로 상거래를 하던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나 소탈한 웃음이 절로 나는 곳, 바로 증평 장뜰시장입니다. 비록 홀로 나선 장보기 나들이일지라도 수십 년간 망치질 소리가 끊이지 않은 대장간을 둘러보다가 모자람 없이 몇 번이고 채워주는 인심 좋은 국밥집에서 출출함을 달래도 보고, 떡만 40여 년 동안 팔아온 시장 토박이 아주머니와 수다도 떨고. 그야말로 심심할 틈이 없죠. <트래블아이>가 제안하는 오늘의 미션입니다. 느릿느릿 장뜰시장을 걸으며 구석구석 숨어 있는 재미를 찾아보세요!

    장 한가운데서 벌어진 엿장수의 각설이타령 소리도 가르며 들려오는 “뻥이오~!” 외침. 코끝을 자극하는 뻥튀기 냄새가 나는 곳에는 어떤 풍경이 있을까? 그곳으로 가보자.

    “(뻥이오~!) 자자, 거기 아가씨도 군침만 흘리지 말고 한번 맛이나 보시구랴. 튀밥도 맛있으니 한번 잡숴봐.”

    “제가 어릴 적에 맛보았던 뻥튀기가 바로 여기 있었네요! 다이어트에는 이만한 게 없는데 어디 가도 도통 배불뚝이 뻥튀기를 찾을 수가 있어야죠!”

    ‘한 봉지에 천원’이라고 대충 갈겨 쓴 손글씨마저 정겨운 떡 파는 노점상 앞을 그냥 지나치려니 입이 심심하다는 느낌이 불현듯 밀려온다. 어디 하나 골라볼까?

    “안녕하세요, 할머니. 시루떡부터 바람떡, 인절미, 송편에 약식까지! 와~ 없는 떡이 없네요. 이중에 무슨 떡이 제일 맛있어요?”

    “여기 맛없는 떡은 없어, 이 아가씨야. 아무거나 골라도 다 맛나. 지금 먹으려면 바람떡 사가. 방앗간에서 가져온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따끈혀.”

    생선노점 앞에는 사람들이 꽤 붐빈다. 호주머니를 만지작거리다 이내 발길을 돌리는 사람도 있고, 상인아주머니에게 흥정을 걸어보는 사람도 있다. 얼마까지 싸게 주시려나?

    “조기 만원에 5마리 줄게! 이 싱싱한 것 좀 봐봐! 물도 참 좋고, 어디 가서 이 가격에 절대 못 사.”

    “에이~ 아주머니, 두 마리만 더 얹어주세요. 그게 재래시장 오는 맛 아닌가요?” “허허~ 이 아가씨 고집 꺾기 힘들겠네. 옜다, 인심 썼다!”

    엉덩이 붙일 만한 곳에는 할머니들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제철 맞은 오디를 들고 나온 할머니도 있다. 판매 품목은 오디 딱 하나. 오디는 어떻게 먹을까?

    “이건 손으로 못 따. 저녁 때 나무 밑에 돗자리 펴놓고 다음날 아침에 가보면 저절로 떨어져서 이만큼씩 쌓여 있어. 그러니 웬걸. 오늘 아침에 오디 거두느라 야단을 했지.”

    “고놈들 참 실하네. 그런데, 이걸 그냥 먹나요?” “술 담가먹으면 몸에 좋아. 그냥 먹어도 맛있고. 한번 먹어봐.”

    1974년 문을 연 이래 쇠 녹이는 화덕에 불 꺼진 날이 없다는 이 지역 명물 증평대장간을 찾았다. 쇠를 다루는 일이 제일 쉽다는 대장간 주인장의 망치질을 구경해보자.

    “우리 대장간 물건 참 좋아. 청주에서 일부러 여기까지 온다니까.” “남들이 호미 150개 만들 때 아저씨는 500개를 만드신다고요? 그게 정말 가능한 거예요?”

    “내가 일을 혼자 해도 워낙 손이 빠르니까 전국에서 주문이 와도 다 해내지. 얼마 전에도 TV 드라마에서 쓴다고 창을 수십 개나 만들었어.”

    장뜰시장에 대장장이 말고도 또 다른 장인도 있다 해서 들른 곳. 장뜰시장의 대표 맛집 장터순대다. 돼지고기를 손질하고 국밥을 끓여낸 30년 넘는 세월의 맛을 느껴보자.

    “순대 모자라면 순대를 더 드리고, 국 모자라면 국을 더 드리고. 배고파서 왔으니 배가 불러서 가셔야지.”

    “입에 착착 감기는 게 얼큰하니 속이 다 개운해져요. 국밥집은 어떻게 시작하신 거예요?” “애들 아빠는 아픈데 여섯 식구가 먹고 살려니 처음에는 혼자 고생도 참 많이 했지요.”

    ‘단돈 2천원’. 종이상자를 뜯어다 써붙인 문구 아래 화려한 색깔의 슬리퍼들이 수북하다. 이것저것 신어보며 쇼핑 삼매경에 빠져보자. 여인네의 장 나들이는 요런 재미 아닐까?

    “대형마트보다도 슬리퍼 종류가 더 많네요.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어요. 슬리퍼 치곤 발에 착착 감기는 게 한 켤레로는 부족하겠어요.” “다 신어봐~. 신어도 보고 만져도 보고 해서 제일 마음에 드는 놈으로다 가져가. 내 오늘 인심 써서 3개에 5천원 줄게.”

    화로에 향로, 꽹과리가 앞줄에 서고 뒤편에는 금박의 돼지인형, 앙증맞은 주전자들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골동품점. 이곳에 들르고 싶다면 시장길을 끝까지 걸어가 보자.

    화로에 향로, 꽹과리가 앞줄에 서고 뒤편에는 금박의 돼지인형, 앙증맞은 주전자들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골동품점. 이곳에 들르고 싶다면 시장길을 끝까지 걸어가 보자.

    “장독대 덮던 망부터 칼, 안마기계, 귀이개 등은 죄다 1천원이야. 가격이이 싸니 한가득 담아서 가도 부담 없다니깐.”

    “언뜻 보면 유치하고 조악하지만 들여다볼수록 정겨워요. 옛 물건들이 하나같이 깨알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아요.”

    요즘은 현대적으로 탈바꿈하면서 시골장터의 분위기를 잃은 재래시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장뜰시장의 5일장은 그렇지가 않죠. 영수증을 가져오는 사람은 경품을 주는 새로운 모습도 더러 생겼지만, 이곳은 여전히 예나 지금이나 고단한 일상의 짐보따리를 풀어놓고 잠시 쉬며 삶의 여정을 만끽할 수 있는 축제의 마당입니다. 그렇게 세월이라는 염료로 덧칠해진 기억의 풍화작용으로 퇴색되어갔던 시골 재래시장의 추억을 장뜰시장에서 되찾을 수 있습니다. 정겨운 인심에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이곳 시골장터에서 옛 추억을 만나보는 건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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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가 잠든 곳

    이야기가 잠든 곳

    지역경기도 수원시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6-04-25 호감도

    이야기가 잠든 곳

    • 프롤로그
    • 1.장헌세자 이야기
    • 2.정조 이야기
    • 3.성벽이 낮아도 된다?
    • 4.공사는 일사천리
    • 5.수백 년 전 모습 그대로
    • 6.눈썹모양의 돌
    • 7.화성의 보물창고
    • 8.비밀통로
    • 에필로그

    이야기가 잠든 곳

    - 경기도 수원시 -

    ‘사방으로 통해 있는 아름다운 산’이라는 뜻이라 하여 태조 이성계가 이름을 지은 이 산에는 수원 성곽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수원 화성은 우리나라의 성 가운데서 가장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 성들 중 하나로, 그 보존 가치 또한 매우 높습니다. 화성에는 장헌세자와 정조의 애틋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수많은 과학적 비밀 또한 숨겨져 있으니 이것들을 찾아내신다면 수원 화성을 몇 배나 더 재미있게 관람하실 수 있으실 것 같습니다. ‘화성에 숨겨진 비밀들을 찾아내라!’ 오늘의 <트래블아이> 미션입니다.

    화성에 대한 흥미를 북돋워 주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장헌세자 이야기 알기. 장헌세자라는 이름은 생소하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 이름이라면 이야기가 다른데?

    “화성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융릉이 있는데, 여기가 바로 정조의 아버지인 장헌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능이란다. 이 무덤 때문에 만들어진 도시가 수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장헌세자가 대체 누구죠? 왕의 아버지인데 세자라는 호칭을 쓰지 조금 낯선걸요?” “그럴 줄 알았어. 영조가 뒤주 안에 자신의 둘째 아들을 가두어 굶어 죽인 이야기는 알지?”

    정조는 열한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당시 스물여덟 살이었던 젊은 아버지가 뒤주 안에서 죽어가는 것을 목격해야 했다.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그의 효심은 남달랐다고 하는데?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죽는 것을 봐야 했다니, 충격이 참 컸을 것 같아요.”

    “융릉 근처에는 정조가 아버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절인 용주사도 있단다. 정조는 한 달에 스물아홉 번이나 거동을 한 적이 있을 정도로 아버지를 극진하게 모셨다고 해. 사도세자와 정조에 얽힌 설화들이 아주 많은데, 이걸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겠구나.”

    화성의 성벽은 4m 정도로, 다른 성들에 비해 낮은 편이다.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성벽들은 모두 아주 높은 것들인데, 요새 역할을 하는 화성의 성벽은 왜 낮을까?

    “생각해보니 이상해요. 성벽이 이렇게 낮은데, 적군으로부터 성을 방어할 수 있었을까요?”

    “네가 보았던 <반지의 제왕>과 같은 영화에서 나오는 전쟁들은 보통 아주 옛날의 전쟁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란다. 이 시대의 전쟁은 이미 성벽을 넘는 것이 아니라 화포로 성벽을 무너뜨리는 형태였기 때문에 성벽을 높게 쌓을 필요가 없었지.”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화성에는 화서문, 장안문, 창룡문, 팔달문 등 사대문을 포함, 총 48개나 되는 시설물이 있다. 화성은 아주 빨리 지어진 건물이기도 하다는데?

    “우와, 몇 백 년 전에 지어진 성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어요! 정말 웅장한데요? 이 성이 다른 성들보다 더 빨리 지어졌다니,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건가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실학자 정약용이 화성을 지을 때 총 11대의 거중기를 사용했다고 한단다. 작업 능률이 다섯 배나 높아졌기 때문에 화성은 매우 빨리 지어진 건물이기도 해.”

    지금의 화성은 일제의 침략과 6.25 전쟁을 겪으며 심각하게 훼손되었던 것을 다시 복원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저도 배운 적이 있어요. 문화재를 복원했을 때에는 원래의 재료가 일정 비율 이상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심각하게 훼손되었던 화성은 어떻게 세계문화유산이 된 거죠?”

    “비밀의 열쇠는 정약용이란다. 정약용은 <화성성역의궤>라는 책에 화성 축조 당시의 모든 것을 세세하게 기록해 놓았단다. 때문에 화성의 벽돌 색 하나까지 그대로 복원되었지.”

    네모반듯한 성곽의 돌들 가운데 툭 튀어나온 돌이 있다. 눈썹 모양의 돌이라 하여 미석(眉石)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이 돌을 알아볼 수 있을까?

    “성벽이 전체적으로 평평한데, 저 돌들만 튀어나와 있어요. 저게 바로 미석인가요?”

    “잘 알아보았구나. 저 돌은 우산 같은 역할을 해. 정약용은 성벽의 틈 사이로 물이 스며든 뒤 이것이 얼었을 때, 부피의 차이 때문에 성벽이 무너지는 것을 막아주는 거지. 미석 덕분에 비나 눈이 와도 물이 성벽으로 스며들지 않고 땅으로 바로 떨어지게 된단다.”

    성의 일부를 가져다 만든 것 같은 모양의 수원 화성 박물관, 이곳에서는 화성의 모든 비밀을 만날 수 있다. 심지어 내부 계단의 모양도 화성 공심돈을 본 딴 것이니 올라볼 것.

    “군사들이 성 안에서 어떻게 적을 공격하는지 궁금했는데 모형이 마련 돼 있네요? 아까 말씀하신 거중기로 성을 쌓는 모습도 있고요! 남아 있던 궁금증이 싹 풀리는 것 같아요.”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장면도 재현되어 있고, 정조가 화성 행차 때 입었던 황금 갑옷도 볼 수 있지. 화성의 과학은 물론, 정조의 가족 사랑도 느껴볼 수 있단다.”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은 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수원팔경 중 한 곳인 이 방화수류정 근처에 화성의 마지막 비밀이 있다는데, 찾을 수 있을까?

    “화성의 마지막 비밀은 바로 비밀통로란다. 구석진 곳에 비밀 문을 설치해서 적들 몰래 가축이나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한 것이지."

    "그래서 이 비밀통로를 통하면 방화수류정에서 물의 시작점인 용연까지 가장 빨리 이동할 수 있단다. 이 비밀문의 위치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한 번 찾아볼게요!”

    이야기가 있어 특별한 수원 화성. <트래블아이>와 함께 미션을 수행하며 더 재미있게 즐기실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수원 화성 박물관에서는 혜경궁 홍씨와 정조대왕의 옷을 입고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코너도 마련되어 있으니, 마치 역사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생생함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과학적인 축성 방식에서부터 정조의 효의 정신과 애민정신까지 생생히 느껴볼 수 있는 수원 화성. 이번 휴일에는 수원 화성에 가서 역사와 사랑을 동시에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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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대한 절터 그 역사를 걷다

    거대한 절터 그 역사를 걷다

    지역경기도 양주시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4-11-10 호감도

    거대한 절터 그 역사를 걷다

    • 프롤로그
    • 1.상상 이상의 절
    • 2.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는데?
    • 3.유래와 발굴현황
    • 4.절터에서 건물배치 엿보기
    • 5.회암사지와 세 고승
    • 6.현존하는 회암사
    • 7.귀중한 유물을 만나다
    • 8.귀중한 역사를 걷다
    • 에필로그

    거대한 절터 그 역사를 걷다

    - 경기도 양주시 -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에는 조선전기 최대의 사찰이었던 회암사지 절터가 남아있습니다. 그 규모와 중요도를 인정받아 국가사적 제128호로 지정된 회암사지는 그 터를 발굴하고 유물을 발견하는 과정을 시행하면서, 양주시에서는 회암사지와 관련한 정보와 가치를 더 많은 시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박물관을 건립하였습니다. 찬란했던 우리 문화와 역사에 대한 관심의 시선이 필요한 요즘, 그래서 <트래블아이>가 제안하는 이번 미션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 거대한 절터의 찬란했던 순간을 마주하라’입니다.

    260여 칸의 규모에 3,000여 명의 승려가 머물렀다던 대규모의 절은 아름답고 장엄하기가 동방에서 최고라는 찬사를 받았다는데?

    “회암사지면 과거 회암사가 있던 터를 말하는 거지요? 그 흔적만 남았는데도 그 규모가 상당해요. 그래서 당대 최대의 사찰로 찬사를 받았던 것 같아요.”

    “회암사는 목은 이색이 보고 찬사를 보낼 정도로 그 규모와 역할이 상당했다고 해. 지금 이렇게 드넓은 터만 보고도 알 수 있지.”

    무학대사가 머무르며 최고의 전성기를 맞은 회암사는 배치가 고려시대 궁궐건축 건물구조와 비슷한 특징을 보이고 있어 왕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데, 더 깊은 이야기는?

    “회암사지는 조선 최대 왕실사찰로 일반적인 사찰건축과는 달리 궁궐건축 구조를 보이고 있어. 무엇보다 당시 왕실과 관련된 불교문화를 살펴 볼 수 있는 중요 자료가 되고 있지.

    종교적 공간과 정치적 공간의 구분이 잘 되어있던 회암사는 가람배치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왕실과의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는 구조라고 해.”

    회암사지에서 출토된 토수와 용두, 금탁과 청기와 등의 유물들은 당시의 조선전기 회암사의 격과 입지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회암사지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기와류와 왕실 도자기류, 토수와 용두 등이 있는데 이도 왕실문화와 불교문화가 접목되어 살펴볼 수 있는 중요 자료야."

    "토수는 처마 끝에 사래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된 장식으로 용의 모습을 하고 있어. 그 모양은 이따 박물관에서 확인하도록 하자.”

    회암사의 건물배치는 일반적인 사찰과 마찬가지라 가람 배치를 원칙으로 하나 종교적인 공간과 정치적인 공간의 결합이 눈에 띈다. 찬란했던 회암사의 과거가 그려진다.

    “아까 잠깐 가람배치에 대해서 말했지만 회암사 건물은 남쪽에 보광전이나 설법전과 같은 주요 불전을 배치하고 그 주변으로는 위계가 낮은 종교적인 공간을 마련하였고 남북측에는 정치적인 공간을 마련하여 일반적인 사찰과는 다른 구조배치를 볼 수 있단다.”

    “와아, 절터만 보고도 당시의 규모나 위엄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대단해요.”

    회암사에서 지공선사와 나옹선사, 무학대사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삼대화상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들어보자.

    “회암사지는 세 고승과 연관이 깊은 곳인데 이 세 고승과 관련된 유물들도 볼 수 있단다."

    "회암사는 1328년(고려)에 승려 지공선사와 나옹선사에 의해 크게 중창되었는데 무학대사 때 이르러 전성기를 맞았다고 볼 수 있어. 현재 삼대화상의 초상화와 부도탑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단다.”

    천보산 중턱에는 현재의 회암사가 자리하고 있다. 과거의 회암사의 거대규모는 아니지만 과거 회암사지와 연관이 깊은 문화재들이 보존되어 있어 눈을 사로잡는다.

    “회암사지에서 약 600m만 이동하면 현재 회암사가 자리하고 있단다. 과거의 거대한 규모는 아니지만 그대로 귀중한 유물들이 많고 많은 승려들이 하안거를 하러 오기도 하여 옛날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편이지.”

    “그럼 얼른 아까 세 고승과 관련된 유물을 만나러가요!”

    삼대화상과 관련된 유형문화재를 비롯하여 각종 보물들이 보존되고 있는 회암사의 뒤편은 살아있는 박물관이나 다름없다. 가늠하기 힘든 세월의 흐름이라 마음이 경건해진다.

    “세 고승의 부도와 석등 부도탑이 나란히 위치해 있었구나. 아빠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란다. 부도는 승려의 사리를 안치한 것이고 석등은 불성을 밝혀주는 법등이란다.

    그밖에도 지공선사 부도비와 무학대사탑, 양주회암사지공선사부도비 등도 볼 수 있지. 가슴 아프게도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는 불에 타 파손되었다 현재는 복원된 상태란다.”

    귀중한 역사의 현장을 두 눈에 담았다면 정보를 좀 더 심오하게 접하고자 하는 욕심이 슬쩍 올라온다. 그렇다면 주저 말고 회암사지박물관으로 가자!

    “이렇게 실제 눈으로 그 터와 유물을 보니 실감이 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곳은 없을까요?”

    “있단다. 양주문화원에서도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지만 회암사지를 테마로 한 전문 박물관이 있으니 그곳에서 자세한 이야기와 정보, 모형 등을 만나보자꾸나.”

    역사의 한 페이지를 걷는다는 것은 소중하고 뜻깊은 기억으로 남습니다. 남아있는 절터에서 당시의 규모와 구조를 엿볼 수 있고 재미있는 역사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살아있는 박물관이 되어주기에 더 없이 좋은 문화지가 되고 있는데요. 보물 제387호로 지정된 회암사지 선각왕사비의 원형은 등산객의 부주의로 몸돌이 파손되었답니다. 이에 문화재 보존가치에 대한 의식을 높이며 귀중한 역사와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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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움의 응어리 흥이 되어

    설움의 응어리 흥이 되어

    지역충청남도 천안시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6 호감도

    설움의 응어리 흥이 되어

    • 프롤로그
    • 1.만남과 어울림의 현장
    • 2.삼남대로 분기점
    • 3. 머물러가는 거리
    • 4. 만남을 기약하며
    • 5.뜨내기사랑 꽃이 되어
    • 6.제 멋에 겨워서 휘늘어졌구나
    • 7. 능소의 신명
    • 8.이야기가 되살아나는 곳
    • 에필로그

    설움의 응어리 흥이 되어

    - 충청남도 천안시 -

    천안 하면 호두과자나 천안삼거리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호두과자의 뿌리가 된 광덕사 호두나무나 천안삼거리 삼남의 분기점에 얽힌 이야기에 이 지역의 문화적 상징이나 역사가 모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천안삼거리에 얽힌 이야기는 역사․문화가 현재에도 살아 숨쉬며 천안의 대표명소로 자리해 있습니다. 호사스런 관행이 지나가기도 하고 초라한 선비가 아픈 다리를 쉬어가기도 하던 길, 천안삼거리를 걷다 보면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그 여정이 바로 오늘 <트래블아이>의 미션입니다!

    천안을 대표하는 명소 삼룡동에 자리한 천안삼거리는 예로부터 삼남(三南) 사람들의 문화가 만나서 어우러지고 퍼져 나가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이 길이 왜 조선시대부터 삼남대로의 분기점으로 통했을까?”

    “서울에서 내려오는 길은 천안에 이르러 이 두 갈래로 갈라지지. 한 길은 병천을 지나 청주에서 문경새재를 넘어 경상도로 가는 길, 또 다른 한 길은 공주를 지나 논산에서 전라도로 가는 길이야 천안삼거리는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의 만남과 어울림의 현장이었지.

    냇가를 따라 난 길에 천안삼거리초등학교가 나오고 그 다음 골짜기에 바로 천안박물관이 있다. 사람들은 바로 이즈음을 천안삼거리로 보고 있다.

    “이곳에서 남북을 잇는 대로가 동쪽으로 병천-청주-문경을 거쳐 영남으로 이르는 길과 갈라지는 결절지대를 이루고 있구나.”

    “이 주막들이 생겨난 배경과 유사하지. 지금도 이즈음에서 국도 1호선과 21호선이 교차하고 있으니 이 길은 여전히 교통 요충지로서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야.”

    천안시는 이 유서 깊은 천안삼거리를 관광지로 키우기 위해 가로수로 능수버들을 심어 가꾸고 있다. 이 나무가 전하는 이야기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여기에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서려 있다는데, 혹시 그 구체적인 내막도 알고 있니?”

    “당연하지. 천안 사람들 중에 이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먼 옛날 어린 딸 능소와 살던 무관공신 유봉서가 나라에 전쟁이 터지자 홀로 둘 수 없던 딸과 함께 변방으로 가던 길이었어. 이때 이 삼거리에 있는 주막에 하룻밤 머물며 결국 생이별을 해야 했다지.”

    천안삼거리에 얽힌 설화에서 어린 능소가 주막에 살게 되면서 아버지가 남긴 지팡이 하나가 등장하는데, 이때부터 이야기는 점점 흥미가 더한다.

    “전쟁터까지 어린 딸을 데리고 갈 수 없었겠지. 부녀의 서럽고 애틋한 이야기가 전부인가?”

    “아니지. 아버지는 하는 수 없이 능소를 주막에 맡겨 놓기로 하고 지팡이를 땅에 꽂으며 말했어. ‘이 지팡이가 자라서 큰 나무가 되어 잎이 무성해지면 너와 내가 다시 만나게 될 터이니 너무 슬퍼하지 말거라’ 하고 딸을 달랬어.”

    전라도에서 한양 과거 길에 올랐던 선비 박현수가 이 주막에서 아리따운 능소를 만나게 되면서 이야기의 재미가 정점에 달한다.

    “둘은 첫눈에 반해 백년가약을 맺었고, 과거급제한 뒤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살게 됐지.”

    “하지만 아버지의 소식이 걱정되어 능소는 눈물로 세월을 보내지 않았을까?” “맞아. 아버지가 꽂아 놓은 지팡이가 잎이 무성한 나무로 자랐다는데, 이곳에 박현수가 창포를 심어 능소를 위로했어.”

    길손을 재워주는 주막도 아직 즐비한 천안삼거리. 이곳의 능수버들에 얽힌 이야기가 바로 천안삼거리 흥타령의 기원이라 한다.

    “매년 천안흥타령춤축제도 이 일대에서 개최돼 오고 있지. 아까 지나쳤던 천안박물관은 축제를 배로 즐길 수 있는 팁이니 참고하라고.”

    “그렇군. 천안삼거리 흥타령은 슬픈 사연이 깃들어 있지만 지금은 기쁨의 대명사가 되어 있구나.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으니.”

    지역민요 ‘흥타령’으로 유명한 천안삼거리를 기념해 만든 천안삼거리공원 입구에서 있는 흥타령비 뒤로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도열하고 있다.

    “1970년대 조성한 이 공원은 언제 와도 버드나무가 참 호젓한 멋을 자아내고 있지.”

    “정말 그렇구나. 아버지가 꽂아둔 지팡이가 버드나무가 되고 천안삼거리에 나무들이 많이 퍼지게 됐다지?” “맞아. 천안에 있는 버드나무는 특이하게 능소 이름을 본 따 ‘능수버들’로 불리고 있어.”

    공원 연못가에는 조선 선조 35년에 세운 영남루까지 있어 여름엔 많은 사람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이와 함께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비석이 여럿 있다.

    “원래 중앙초등학교 정문 쪽에 있던 누각인데 이 공원보다도 역사가 더 오래됐지.”

    “그런데, 이 공원에 있는 비석들은 전부 민요에 얽힌 이야기만 하고 있지 않구나. 안서동 유려왕사 터에 있던 삼룡동삼층석탑도 지금 여기 있고, 독립투쟁의사 광복회원기념비, ‘하숙생’ 노래비 등도 자리하고 있네?”

    천안삼거리는 조선시대 전라도와 경상도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는 길목에 주막이 있어 자연스럽게 만남과 헤어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장소에는 선남선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있게 마련이고, 천안삼거리에도 그와 같은 설화가 몇 가지 전해집니다. 그 가운데 일반에 가장 잘 알려진 능소와 박현수에 관한 설화는 천안삼거리 흥타령 노래에 녹아 지금까지 불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곳 천안삼거리에서 만난 이야기를 통해 내 연인 또는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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